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51)
제 777화
185화. 남은 사람들(2)
‘기사왕’ 발라스 룬칸델.
그는 진을 보자마자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 내 손자 이후에 가문에 그만한 인물이 나려면 또 천 년은 필요하리라 생각했건만. 네가 또 이 증조부를 놀라게 하는구나. 시론, 그 녀석처럼!]‘그 녀석’이라는 대목에서 진은 저도 모르게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 세상에 감히 시론을 그렇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할아버지가 아끼는 손자를 그리 부르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하긴, 증조부님의 기억 속 아버지는 여전히 소년일 테지.’
발라스는 시론이 열다섯이 되던 해에 운명을 다한 인물이다.
그리고 진은 잘 모르지만 발라스와 시론은 마치 론과 단테와 비슷한 관계였었다.
가문의 어른들 중엔 시론이 본격적으로 냉정해지기 시작한 시기를, 발라스의 사후로 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가문의 다른 권속들은 발라스의 거침없는 언행에 이미 적응해서 달리 놀라운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알펜은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공적인 자리에서 현 가주를 함부로 칭하는 게 불편한 듯 발라스의 귀에 이런 말을 속삭였다.
‘57대, 그래도 이런 자리에선 현 가주를 좀 더 존중하는 게 옳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알펜의 노력이 무색하게 발라스는 또 한 번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껄껄! 선조님, 괜찮소! 시론이 이제 나이를 좀 먹었기로서니 이 할아비를 무안하게 할 놈이 아니오.]‘그 녀석도 모자라 이번엔 노, 놈이라니요, 57대!’
[크하핫, 사소한 것은 접어두고 어서 우리 증손 녀석이나 반겨줍시다.]알펜은 이마를 짚었고, 타샤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재미있는 듯 미소를 지었다.
‘예와 법도’에 관한 아버지의 고지식한 면모가 상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본 것이다.
선조로서 발라스의 경솔한 언행을 나무라자니 나이가 너무 많은 게 문제였다.
젊은 날 전사한 알펜이나 타샤와 달리 발라스는 노년까지 가주로서 자리를 지켰던 것이다.
때문에 알펜은 자신이 선조임에도 발라스를 어렵게 대하고 있었다.
‘하여간 아버지는 귀여운 구석이 있다니까.’
타샤는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아버지와 함께 이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이 그저 즐거웠다.
“처음 뵙겠습니다, 증조부님. 12기수 진 룬칸델입니다.”
[오냐!]진은 발라스가 무어라 더 말하기를 기다렸으나,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씨익 웃으며 자신을 구석구석 살펴보는 발라스의 시선이 다소 부담스러웠다.
‘그, 57대. 가문의 권속들이 모두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서 임명식을 끝내고 모두 일선으로 복귀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한시가 바쁠 때입니다.’
[아아! 그렇지, 맞소. 내 그만 증손을 보는 일이 즐거워 잠시 잊고 있었군. 몸도 다부지고, 눈빛도 좋고, 풍기는 기개도 그냥 막 빛이 나는구만. 선조께서 보기에도 그렇지 않소?]‘그렇기는 합니다.’
[아니 그런데 선조님, 왜 자꾸 아까부터 속삭이기만 하는 것이오? 혹 목이 아프시오? 약이라도 좀 달여드려?]타샤는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거의 터질 듯이 붉어졌고, 알펜은 민망한 마음에 헛기침을 연발했다.
[……흠흠! 괜찮습니다.] [또박또박 말씀하니 듣기에 훨씬 좋소. 자, 증손은 이리 더 가까이 오너라. 너 깨어났다고 우리가 모두 생도들처럼 급히 모였느니라. 이 할아비가 얼마나 빨리 뛰었는지 아느냐? 이 빈 팔소매가 펄럭펄럭대느라 땅먼지가 휘날릴 지경이었다. 임명식을 어서 처리해야 하니까!]발라스가 장난스레 외팔을 가리고 있는 소매를 흔들며 말했다.
그 대목에선 진도 타샤처럼 웃음을 겨우 참으며 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네가 입고 있는 그 코트의 의미를 알고 있을 테지?]“그렇습니다.”
[본래 코트와 더불어 흑검 카이너도 하사해야 하나, 그건 웬 벌레 같은 놈이 갖고 있다 들었다. 참고로 그 벌레 놈과 카이너는 현재 추적하는 중이니라.]“조슈아가 살아남은 겁니까?”
[사실 뒤졌을지 살았을지도 알 수 없다. 전자일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 전장에서 그놈이 충격파에 튕겨 이리저리 나뒹구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있다더구나. 란과 뷔고는 사망이 확인되었다.]진은 조슈아에 대해선 약간의 찝찝함을, 란과 뷔고에 대해선 조금 씁쓸한 느낌을 받았다.
하나 둘 다, 남은 사람들에 비하면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오백여 년 전 빛의 기사라 불리며 성국수호전을 승리로 이끈 가문의 20대 가주와 그 딸로서 마족 잔당들을 소탕했던 21대 가주, 그리고 근현대 룬칸델의 초석을 다진 57대 가주.
두말할 것도 없이, 세 사람이 가진 정통성은 진을 소가주로 임명하기에 충분히 넘쳤다.
“제가 소가주가 되는 대신 세 분께서 가주 대행을 맡아주셔도…….”
[어허! 초 치는 소리를 하는군. 우리 같은 망령이 무슨 가주 대행을 한다는 말이냐?]망령이라는 단어에 진은 씁쓸한 한숨을 삼켰다.
물론 흉신전을 함께 헤쳐온 전우로서, 또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선조들로서. 진은 그들이 계속 존재하기를 바랐으나.
세 사람의 부활은 영묘의 영혼에 혼돈의 권능이 더해져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흉신이 죽었을 때 이들도 함께 사라져야 했다.
‘세 분의 현현이 끝나지 않은 게 흉신의 권능이 완전히 소멸하지 않은 결과라면, 아직 전쟁은 끝난 게 아니다…….’
진이 거기까지 생각한 찰나, 알펜은 그 속을 알아보며 고개를 저었다.
[12기수. 흉신의 힘이 이 세상에서 완벽하게 사라졌다는 건 히스터의 마법사가 몇 번이나 확인했다네. 그러니 일단 마음 놓고 한쪽 무릎을 꿇어 57대께 예를 올리게.]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이는 진.
발라스는 얼굴에서 장난기를 지운 채 깊은 눈동자로 증손을 내려다보았다.
[룬칸델 20대 가주 알펜 룬칸델과 21대 가주 타샤 룬칸델, 그리고 나 57대 가주 발라스 룬칸델은, 가문의 오랜 전통과 법도에 따라 기수 중 가장 빛나는 자에게 한 가지 자격을 부여하고자 한다.]기사들이 일제히 검을 들어 올렸다.
[룬칸델 59대 12기수 진 룬칸델. 그는 천 년 전 가문이 맹약의 굴욕을 겪은 이래, 가장 큰 위기로부터 검의 정원을 수호하고 룬칸델의 이름을 지켜냈다. 이에 우리는 현 가주를 대신하여, 12기수를 정식으로 가문의 소가주로 임명하는 바이다.]스릉!
발라스가 검을 뽑아 진의 어깨를 눌렀다.
진은 어깨가 부서질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은 탓에 압박이 더욱 고통스럽게 다가왔다.
어깨를 짓누른 검에 점점 더 강대한 기운이 실리자 진이 꿇어 있는 정원 바닥이 움푹 꺼지고 있었다.
[12기수는 검의 무게를 딛고 일어서도록.]몸을 일으키기 시작한 진은 힘겨운 듯 부들부들 다리를 떨었다.
십여 초 후, 진이 완전히 몸을 일으키자 발라스는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크크, 이놈이 일부러 힘든 척을 하면서 이 증조부의 체면을 세워주기까지 하는군.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날 수 있었을 텐데.’
발라스가 검을 거뒀다.
[현 시간부로 너는 가문의 소가주다. 가주가 없을 때 가문의 중대사를 결정해야 할 때면 누구든 너를 먼저 찾아야 할 것이고, 가문에 좋은 것이 들어올 때면 네가 가장 먼저 취해야 할 것이며, 가문에 위기가 닥칠 때면 네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명심하겠습니다.”
[지금부터는 네가 곧 룬칸델이고, 룬칸델이 곧 너다. 너의 말은 곧 룬칸델의 법이며 너의 행동은 곧 룬칸델의 뜻이다. 뒤돌아서 너의 권속들을 바라보라.]진이 몸을 돌리자.
가문의 모든 권속들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가슴에 오른손을 얹었다. 깃발을 들고 있는 형제들도 고개를 숙인 채 예를 갖췄다.
전대 가주 세 명을 비롯해, 가문 전체로부터 그 어떤 이견도 나오지 않은 소가주 임명은 단연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진은 가슴 속에 묘한 감정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전생에서부터 그토록 원했던 가문의 왕좌까지, 이제 정말 한 걸음만 남겨두었다.
가슴이 벅차면서도 앞이 막막했다. 이 자리에 서기까지 너무 많은 이별과 슬픔이 있었고, 가문은 멸망 직전까지 내몰렸었다.
“……아버지보다도.”
진은 찬찬히 권속들을 내려다보았다.
“불명예스러운 옛 가주 대행보다도 훨씬 더 뛰어난 모습을 보이도록 하겠다. 나는 가주께서 부재한 상황에서도, 그대들이 그 빈자리를 느낄 수 없도록 만들 것이다.”
실로 자신감 넘치는 소감에 권속들은 저도 모르게 흠칫하고 말았다.
인간 시절의 로사는 몰라도, 기수가 시론을 뛰어넘겠다고 모두 앞에서 공표하는 모습은 상상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권속들은 오랜만에 옛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다들 늘 도전적이고 파격적이었던 12기수의 유소년기를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돌아보면 진은 늘 이런 식이었다.
누구도 나서기 꺼려 하는 일들에 나서며 거리낌이 없었고, 자신이 내뱉은 말을 모두가 비웃어도 반드시 실현하고는 했다.
그 시절에 빛나던 소년은, 이제 더 깊은 빛을 품은 거인이 되어 있었다.
[크핫! 고놈 참 성격도 시원시원하구나! 이것으로 임명식을 마치겠다. 그럼, 소가주?]발라스가 어서 권속들에게 명령을 내리라는 듯 눈짓을 보냈다.
“모두 서둘러 해산하고 일선으로 복귀하라. 기수들은 20분 뒤에 내가 직접 확인해야 할 보고서들을 챙겨 가주 집무실로 오도록. 또한 집사와 문사들은 가문 내 재화, 비품 보유 상황을 상세히 정리해서 내게 올려라. 지금부터, 가문을 재건하도록 하겠다.”
“받들겠습니다!”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도열한 수천 명의 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검의 정원에서 가주의 명령은, 이토록 절대적이었다.
순식간에, 정원엔 진과 전대 가주들만이 남았다.
진은 그들에게 감사를 전한 다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선조님들, 그리고 증조부님. 세 분이 아직 존재할 수 있는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알펜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답했다.
[12기수, 우린 멀쩡히 존재하는 듯 보이나, 사실은 서서히 사라져가는 중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