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64)
제 777화
187화. 찾아야 할 사람들, 의외의 단서(6)
[어서 와라.]숲으로 들어서자 쉴라가 일행을 맞이했다.
“오랜만입니다, 쉴라 님.”
과거 진과 발레리아가 완타라모 숲을 다녀간 이후, 쉴라는 다시 저주받은 요정왕의 권능을 되찾았다.
오랜만에 본 그녀는 이전보다 강한 마력을 품고 있었고, 그녀를 중심으로 한 숲의 질서는 완벽하게 정돈된 모습이었다.
[우리 기준에선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나도 너와 발레리아가 무척이나 반갑구나. 특히 발레리아는…… 마음이 많이 좋아진 것 같군.]“제 마음이 보이십니까?”
발레리아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녀는 지난번 만남 이후 쉴라에게 일종의 유대감을 품고 있었다.
저주받아 망령이 된 자와 진짜 요정의 의지를 이어받은 자의 차이가 있지만, 결국 둘 다 뿌리는 요정이었다. 발레리아는 쉴라를 다정한 할머니 비슷한 존재로 느꼈고, 쉴라 역시 발레리아를 손녀처럼 생각했다.
[그럼, 너를 아는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사명과 복수만으로 가득했던 소녀의 얼굴이 이토록 맑아졌으니 말이야. 진과 동료들 덕분인 것 같군.]발레리아가 민망한 기색을 내보이자 쉴라는 웃으며 진을 바라보았다.
[네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야겠구나. 발레리아가 좋아진 것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을 구한 것에 대해서도. 지상에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네게 빚을 진 것과 다름이 없다.]“과찬이십니다.”
“맞아, 과찬이지. 사실 얘가 아니라 명왕족 투신이 구했다고 봐야…… 아 왜 때려! 이 쪼그만 것들이!”
베일을 때린 건 진이 아니라 묘인족들이었다. 진은 씩씩대며 묘인족들에게 화를 내는 베일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대는 베일 룬칸델 경이겠군요.]“어, 나를 아냐?”
쉴라는 천 년 전, 헬루람에게 저주를 받기 전의 기억을 일부 떠올리고 있었다. 진이 거대한 사건을 하나씩 해결할 때마다 지플의 역사 조작은 그 힘을 잃어가는 중이다.
[천 년 전 그대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대는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군요. 그때는 쉴 다미로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만.]“쉴 다미로? 기억이 날 것도 같은데. 아아, 집사장의 하녀였던가?”
[동생입니다. 그때의 요정들에게 하녀라는 개념은 존재치 않았었고요.]“그렇군. 동생이 하나 더 있지 않았어?”
[……그 아이는 제 손으로 직접 보내주었습니다. 우리들의 의무를 잊고, 배신해서 일족을 위험에 빠뜨렸기 때문이죠.]“아, 괜한 얘길 물었네.”
[아닙니다. 다만, 베일 경께도 분명 그런 의무가 있을 겁니다. 반드시 수행해야만 하는 의무가. 아마 그건 룬칸델의 수호, 혹은 솔더렛의 유산과 관련이 있을 테죠. 경께선 십대기사였으니 말이에요.]“난 그런 거 잘 몰라. 난 그때도 사실 가문이 아니라 사라를 위해 싸웠을 뿐이거든.”
[아뇨, 언젠가 기억하게 되실 겁니다. 분명 언니는 그때 모두가 한 마음으로 싸우는 중이라 했으니…….]평소라면 네가 뭔 상관이냐며 역정을 냈을 테지만, 베일은 왠지 쉴라에게 나쁜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쉴라 님, 오는 길에 네루 님이 그러더군요. 쉴라 님의 기운을 파괴된 은신처로 가져가보니 묘한 반응이 있었다고.”
[그래, 진. 내 기운에 이끌려 푸른 빛이 일었다더구나. 언니의 힘이 솔더렛의 아공간을 넘어 발현한 것이다.]기록 마법의 원형, 요정의 권능.
묘인족들이 본 건 그 흔적이 맞았다. 진은 심장이 빠르게 뛰는 걸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 년 전의 룬칸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드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 시절에 대해 남은 기억이 별로 없군요.]
테마르의 세 번째 무덤에서 르엣이 했던 말.
당장 르엣을 찾는다 할지라도 천 년 전의 비밀이 다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 조작이 약해졌다 할지라도 르엣의 모든 기억이 돌아왔을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작은 단서들만으로도 힘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발레리아의 기록 마법을 발전시키는 일에도 큰 도움이 될 수밖에 없으며, 그건 곧 그 시절의 역사를 복원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였다.
[아마 언니도 느끼고 있을 것이야.]“어서 가봐야겠습니다.”
[통로는 이미 다 준비해놨어.]네루가 바닥에 보랏빛 기운을 일으키며 말했다. 묘인족 특유의 신령스러운 보랏빛이 마법진을 그리고 있었다.
이어 마법진에서부터 하나의 문이 치솟았다.
[문이 좀 작지? 거리가 멀다 보니 우리 기준에 맞추는 게 한계였어.]“괜찮습니다.”
[다녀오너라. 어쩐지 금방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 같구나.]천 년 전 잃어버린 언니에게 드디어 늦은 사과를 전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직감에, 쉴라는 들뜬 목소리를 냈다. 묘인족이 쉴라로부터 기운을 받아 바구니에 담았다. 기운은 흘러 넘칠 듯 하면서도 전혀 새지 않았다.
“예, 쉴라 님.”
일행은 쪼그려 앉아 문으로 들어섰다.
문 너머엔 몇 년 전 망령대들에게 파괴된 묘인족들의 은신처가 있었다.
폐허처럼 변한 은신처 한가운데, 기록 마법과 유사한 푸른 빛이 반딧불처럼 일렁이는 모습이 보였다.
발레리아는 왜인지 그 모습을 보자마자 마음이 울컥했다. 르엣이 꼭 자신처럼, 홀로 남아서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완전히 잊히지 않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기록의 사명을 짊어진 고독한 사람들, 그녀와 르엣의 운명엔 닮은 부분이 있었다.
“베일.”
진의 말에 베일이 힘을 개방하며 금빛 권능을 퍼뜨렸다.
그의 권능이 더해지자마자 푸른 빛이 더욱 강렬한 반응을 일으켰다.
“네 예상이 적중했군, 발레리아. 정말 르엣 님과 관련한 무언가가 닿자마자 바로 반응이 오고 있어.”
이어 실루스를 기운의 중심에 놓자 한 번 더 푸른 빛이 증폭되었다.
[오오!] [드디어 르엣을 만날 수 있는 건가!]묘인족들이 기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변화는 거기까지였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놀라운 현상이긴 했으나, 샤칸이 테마르의 무덤에 반응한 것에 비하면 다소 약한 감이 있었다.
진이 영기 해방을 펼쳐도 마찬가지였다. 그간 테마르의 모든 무덤들은 이런 상황에 늘 영기에 반응을 했는데도 말이다.
[어쩌지? 쉴라 님의 기운을 더 가져와볼까?] [그건 이미 진이 오기 전에 해본 방법이잖아.]일행이 잠시 고민에 빠진 사이, 발레리아는 조용히 은소나무지팡이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기록을 살펴볼게.”
르엣의 기운 가운데로 푸른 기록창이 떠올랐다.
이런 상황이면 언제나 그랬듯이 기록 마법은 이번에도 극히 한정적인 정보만을 내어주는 모습을 보였다.
[잘 안 되는 것 같은데? 르엣 녀석을 꺼낼 수 없게 되는 건 아니지? 뭔가 더 필요한 건가?]“부정타는 소리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봐. 발레리아 집중 중이니까.”
십여 분이 지나도록 기록창에 떠오르는 문장엔 변함이 없었다. 발레리아는 벌써 온몸이 땀에 젖은 채 몸이 뜨거웠다.
[이러다 얘가 먼저 나가 떨어지겠다.] [맞아, 진. 발레리아 다치겠어. 뭔가 단서를 더 구해서 다시 오는 게 낫지 않을까?]묘인족들도 발레리아를 걱정하는 말을 덧붙인 찰나.
발레리아가 눈을 뜨며 진을 돌아보았다.
“진, 지금 르엣 님의 기운과 내 마력이 공명하는 중이야.”
“그래?”
진의 눈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으나 토를 달지 않았다. 발레리아가 헛소리를 할 리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촉매가 더 필요해. 네루 님, 가서 쉴라 님의 기운을 계속 이쪽으로 옮겨주세요.”
[응!] [알았어! 거봐, 쉴라 님 기운이 더 필요하다고 했잖아!]“베일 경도 가서 돕고, 진은 여기 남아서 나를 살펴봐 줘. 혹 내가 마력 폭주를 일으키려는 조짐이 보이면 네가 도와줘야 하니까.”
진이 발레리아와 마주 앉아 가좌를 틀었다.
“내 통제를 잃고 빠져나가는 마력들을 영기로 덮어줘. 쉴라 님의 기운은 가져올 때마다 이 중앙에 놔주고. 이제 일이 끝날 때까지, 난 말을 할 수 없어.”
발레리아는 매우 위험한 행동을 하고 있었으나, 진은 그녀를 믿기로 했다.
“그래, 걱정하지 말고 집중해.”
그때부터 베일과 묘인족은 통로를 오가며 쉴라의 기운을 가져왔고, 진은 발레리아를 지켜주었다.
장작을 더 넣듯이, 5분 간격으로 쉴라의 기운이 발레리아의 마력과 르엣의 권능 위로 더해졌다.
그 모습은 꼭 불이 조금씩 더 커지는 것처럼 보였다.
때때로 발레리아는 미간을 좁히며 괴로운 듯 신음을 냈고, 진은 차분하게 영기로 그녀의 마력을 덮어주었다.
언젠가부터.
발레리아는 이런 일이 있을 때 진에게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지금처럼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는 경우에도.
발레리아는 지금 단지 자신의 기록 마법을 완성하기 위해서만 위험을 자처한 게 아니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그렇게 천천히, 전생처럼 가까워지고 있었다.
발레리아와 르엣의 공명은 밤이 다 지나가도록 계속되었다. 그간 발레리아는 단 한 번도 눈을 뜨지 않은 채 마력을 펼치는 일에만 집중했다.
진도 슬슬 지치고 있었다. 그 또한 발레리아만큼이나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자정이 되었을 무렵.
화아아아……!
내내 모닥불처럼 작게 빛나던 발레리아의 마력과 르엣의 권능이, 돌연 단번에 증폭되며 거대한 빛의 기둥을 일으켰다.
[오오오!] [와! 엇, 발레리아!]동시에 발레리아가 진의 품으로 쓰러졌다.
다행히 기절한 게 아니라 탈력감 때문에 일시적으로 온몸에 힘이 풀린 것이었다. 진은 불덩이처럼 뜨거운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후우, 전 괜찮으니 걱정 마세요. 잠깐만 쉬었다 들어가면 되겠군요.”
[성공한 거야?]“네, 기둥을 잘 살펴보면 입구가 있을 겁니다. 진의 영기를 갖다 대면 열릴 거라고, 르엣 님이 그러더군요.”
발레리아는 르엣과 공명하는 과정에 그녀와 몇 차례 내면의 대화를 나눈 상태였다.
[정말로 입구가 있네!]진은 발레리아가 편히 쉴 수 있도록 자세를 고쳐주었고, 발레리아는 굳이 품을 빠져나오지 않았다. 그 모습에 베일과 묘인족들이 눈짓을 주고받으며 속닥거렸다.
“이만하면 됐어, 가자.”
진이 발레리아와 함께 일어서며 기둥의 입구에 섰다. 손바닥에 한 움큼 영기를 일으켜 갖다 대자, 곧장 문이 열리는 모습이 이어졌다.
그 안에는, 발레리아와 마찬가지로 한껏 지친 채 주저앉아 호흡을 고르고 있는 르엣의 모습이 보였다.
[정말로…… 잊지 않고 다시 나를, 찾으러 왔군요.]르엣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