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87)
제 777화
194화. 뜻밖의 만남(2)
불의 신 쉬누.
솔더렛과 더불어 모든 마법사들이 가장 염원하는 신.
그리고 켈리악 지플은, 역대 불의 계약자들 중 쉬누의 사랑을 가장 크게 받은 마법사였다. 현시대에 그의 실체를 직접 느끼거나 대화를 나눠본 인물 역시 켈리악이 유일했다.
그런 신이 지금 진과 동료들의 앞에 현현하고 있었다.
화신한 쉬누는 불로 이루어진 거대한 인간처럼 보였다.
후우우…….
쉬누가 한 차례 깊이 숨을 내쉬자 동료들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별안간 한낮의 사막에서나 느낄 수 있을 법한 열기와 갈증이 일행을 짓눌러댔다. 쉬누의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기만 해도, 온몸이 불살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진은 다른 동료들과 달리 쉬누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있었다. 위압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어쩐지 그가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진 룬칸델…….]“그렇소. 내가 진 룬칸델이오, 쉬누.”
[그간 네 활약은 익히 들어왔다. 과연, 놀라울 만큼 강하고 건방진 아이로군.]“평가가 겨우 그 정도인가? 박하시군. 내게 부탁을 하러 온 주제에 말이오.”
진은 초장부터 쉬누의 기분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대담한 언행을 보였다. 동료들이 화들짝 놀라며 진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버거운 상대를 마주하더라도 대장이 당당하다면, 무리도 자신감을 되찾기 마련이다.
진의 도발적인 언행은 오히려 동료들의 위축된 마음을 풀어주고 있었다. 하나둘씩, 동료들도 쉬누를 똑바로 마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쉬누는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진은 그사이 쉬누를 더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그에게서 파이와 같은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디서 한바탕 하다 오신 모양이군. 파이라는 어린 용과 똑같은 냄새가 나. 피와 재, 전쟁의 냄새지. 혹시 불의 땅이라는, 당신의 영역이 습격이라도 받은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는 걸.”
[하하, 놀랍구나.]“신의 위엄으로 아무리 감추려 해도 소용없소. 내 눈에 당신은 지금 상당한 부상을 입은 환자처럼 보이거든.”
[그래, 정확히 보았다. 방금 전, 내 영역을 침범한 녀석들을 처리하고 오는 길이다.]“누가 침입했소?”
[그건 네가 나를 돕기로 하면 알려주마.]“그러시오. 어떤 도움을 받고 싶길래 이리 간절하고 다급한 것인지 궁금하군. 파이는 왜 보냈던 거요? 어차피 이렇게 곧장 진짜 패를 꺼내야 했으면서.”
[요행을 바란 것이지. 혹 네가 파이의 협상을 받아들이면 굳이 현현의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쯧, 요행을 바라며 어린 용한테 그런 짓이나 시키는 신이라니. 지플이 그 모양인 이유를 알겠군.”
쉬누는 계속되는 진의 도발에도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진이 흥미로운 듯 연신 미소를 지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나는 네가 태양의 무녀가 하려는 일들을 막고, 나아가 그것을 죽였으면 한다.]“오, 시원하시군. 그런데 그건 굳이 당신이 부탁하지 않아도 내가 해야 할 일인 것 같소만. 내버려두면 알아서 할 일을 굳이 부탁하려고 찾아온 건 아닐 거고, 뭔가 산나에 대한 정보를 주려는 것이군?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산나를 상대하면 효율이 안 나올 테니까.”
[그래, 말이 잘 통하는구나.]“우리가 계속 대화가 잘 통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이오. 산나를 상대하는 게 내 일이기는 하지만, 그자를 처치해 얻는 게 나뿐만이 아니라 당신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면 고민이 좀 필요하겠지.”
[네게 손해가 될 만한 이야기는 없을 것이다. 불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지.]화아아악-!
별안간 허공에 거대한 불의 인장이 형성되었다. 그간 켈리악이나 베라딘이 보여준 것과는 차원이 다른, 진짜 불의 신이 형성한 인장.
그 인장엔 별다른 내용이 적혀 있지 않으나, 진과 동료들은 절대적인 믿음을 느꼈다. 쉬누가 하는 말엔 거짓이 없으리라는 믿음을. 과거 로사가 처음 예언의 문장을 확인하고 믿음을 느낀 것처럼 말이다.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은 타인에게 신뢰를 주려면, 특히 그게 적이라면 이루 말할 수 없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신에겐 참 간편한 일이군.”
[아무 신에게나 있는 권능은 아니지.]“그런데 하나 궁금한 게 있소. 파이는 산나가 켈리악을 고쳐주겠다며 지플에게 접근했다던데. 정말 그 말에 속아 뒤통수를 맞은 것이오?”
[산나를 받아들인 건 나나 켈리악이 아니라 베라딘이다. 당시 내가 나설 수 있었다면 지금 무녀는 그 자리에 없었을 것이야.]그렇다면 산나는 그가 부재할 수밖에 없던 틈에 재빠르게 지플 내부로 치고 들어간 것이었다.
“베라딘이 산나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뜻인가.”
[친구가 걱정되는 모양이지?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너를 친구로 여기지 않을 텐데 말이다.]“당신들이 그 녀석을 망쳐놨으니. 행여 베라딘에 대한 실언은 하지 않는 게 좋겠소, 쉬누. 그랬다간 그대로 당신을 베어버릴지도 모르겠으니.”
그 말에 쉬누는 처음으로 정색을 했다.
“크하하, 그딴 말에 겁낼 것 같소? 인장이 있으니 그만한 힘이 있다는 건 사실일 테지만,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상황은 분명 아닐 테지. 그러니 역겨운 허세는 그만 부리시오. 갑자기 어린 시절, 내가 아버지께 드렸던 화두가 궁금해지는군. 인간이 신과 싸워 이길 수 있는가, 그런 내용이었지.”
의외로 쉬누는 곧장 어깨를 으쓱이며 한 발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괜한 이야길 했군. 사과하지.]대화를 할수록, 진은 쉬누의 상황이 예상보다도 훨씬 더 좋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좋게 넘어가는 일이 두 번은 없을 거요. 입장을 똑바로 한 채 대화에 임하길 바라오.”
“신에게 경고! 진 공자 너무 멋있고……! 읍, 읍!”
퀴칸텔이 엔야의 입을 틀어막았다. 쉬누는 잠시 엔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진과 눈을 맞췄다.
[베라딘과 산나는 서로 이용하는 관계에 가까울 것이다. 아마 베라딘은 네가 이야기의 탑을 찾아서 산나에 대한 정보도 캐내기를 기대했을 것 같군.]“베라딘이 산나를 이용한다면 아마 당신들을 견제하려는 목적이 가장 크겠군. 겸사겸사 마검사 골렘과 성지에 대한 내용도 진척시키고 싶을 테지. 산나는? 산나는 베라딘과 그의 지플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소?”
그 말에 쉬누는 다소 뜬금없는 답변을 내놓았다.
[진 룬칸델, 너는 마계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나?]“마계?”
[그래, 마족이라 알려진 자들이 기거하는 땅. 인간들에겐 그 땅이 다른 차원에 존재한다 알려져 있지.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산나가 마계와 무슨 관련이 있소?”
[깊은 관련이 있지. 그 마계의 땅 가장 깊숙한 곳에 태양신의 제단이 남아있으니. 그 제단은 태양신을 부활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진의 눈동자가 커졌다.
“계속 이야기해 보시오.”
[산나는 지금 마계를 찾고 있다. 마계로 들어서는 입구를 찾아야 태양신의 제단에도 닿을 수 있으니까. 그걸 위해 지플의 힘이 필요한 것이지.]“마계의 입구가 어디에 있소.”
[그건 나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쉬누가 검지로 아래쪽을 가리켰다.
[지하. 이 세상의 지하 어딘가에 마계로 향하는 문이 있다. 그러나 같은 별에 존재해도 일반적인 방법으론 절대 닿을 수 없는 영역이니, 다른 차원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오르갈은 그 위치를 알고 있겠군.”
[그래, 하지만 위치를 안다 하여 아무나 그 문을 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마신의 축복을 받은 특별한 존재만이 그 문을 열고, 마족을 인세 바깥으로 데려올 수 있지. 지플은 킨젤로에서 그 역할을 하는 인물이, 비슈켈 이블리아노라 추정하고 있다.]-비슈켈 이블리아노! 전부터 킨젤로의 단장이 그대를 특별히 아끼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었지. 오늘 그대의 능력을 엿볼 수 있는 것인가? 그대의 힘을 엿보는 게, 부디 이 치욕에 걸맞은 가치가 있기를 바라지.
-마족이라…… 설마, 문을 연 것인가? 이것이 그대의 능력이었군, 비슈켈 이블리아노!
소타 사막 사건 당시 옥타비아가 아이나스와 함께 있는 비슈켈을 보며 했던 말들.
당시 진은 그 말을 듣지 못했으나, 그날 이후 줄곧 지플은 비슈켈을 마계의 문을 여는 능력자로 추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비슈켈에겐 그런 능력이 존재하지 않고, 쉬누와 지플 모두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비슈켈 이블리아노라. 그자보다는 왠지 그자의 동생, 마르지엘라 쪽이 더 가능성이 높을 것 같군.”
[누구든, 오르갈이 마계의 문을 열 수 있는 존재를 보유한 건 확실하다.]“잠깐, 그럼 오르갈은 태양신의 제단에 현재 가장 근접한 상태이지 않나?”
그러자 쉬누는 조소를 머금었다.
[그자는 현재 마계 아래에 태양신의 제단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그건 쉬누가 ‘소멸의 불’로 오르갈이 제단을 기억하던 때의 역사를 지웠기 때문이다. 쉬누는 진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니 너는 오늘부터 오르갈을 만날 때 입을 조심해야겠구나. 그자가 제단의 존재를 알게 되면, 태양신의 부활은 가속화될 거고…… 그건 너와 나 모두 바라지 않는 일이지.]“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 많긴 하군. 지금 태양신교들이 제단을 가장 빠르게 찾기 위해선 산나와 오르갈이 힘을 합치는 게 최고일 텐데.”
[태양신을 부활시키는 과정과 목적이 모두 다른데 어찌 힘을 합칠 수 있겠나. 태양신교의 교파들은 서로의 신앙이 실현되는 걸 그 무엇보다도 크게 경계한다. 비신자와 힘을 합칠지언정, 타 교파와는 절대로 협력할 수 없을 정도지. 태양신이 부활할 경우, 어떤 교파에서 성공했느냐에 따라 이 세상의 형태는 달라질 것이다. 물론 어느 쪽도 너와 내게 좋은 일은 아니다.]“미친놈들끼리 따지는 것도 많군. 어쨌거나 산나는 지플을 통해 마계의 입구를 찾고 있다는 건데…… 지플을 대신 내세워 오르갈과 협상을 할 생각인가.”
[산나는 그냥 지플의 힘을 이용해 찾으려고 할 가능성이 더 높다. 진 룬칸델, 숲이 하나 있다고 치지. 그리고 그 숲에는 네가 찾아서 부숴야 할 무언가가 있다. 그럴 때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이 무엇이라 생각하나?]“숲을 송두리째 부수는 것이지.”
[정답이다.]이내 쉬누는 굳은 눈동자로 이렇게 뒷말을 이었다.
[산나는, 이 세상을 모조리 파괴해서라도 마계의 문을 찾으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