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86)
제 777화
194화. 뜻밖의 만남(1)
제트에게 불의 인장을 보여준 켈리악의 심부름꾼은 자신의 이름을 ‘파이’라 밝혔는데, 용이었다.
겨우 백 살을 넘긴, 용들의 입장에선 아기나 다름이 없을 정도로 어린 용. 인간으로 변신한 파이는 라트리보다도 앳된 모습이었다.
또한 무척 추레한 행색을 하고 있기도 했다. 온몸을 가린 후드는 그야말로 넝마였으며 얼굴엔 온통 검댕이 묻어 있었다.
허겁지겁.
일행은 게걸스럽게 음식을 욱여넣고 있는 파이를 바라보았다.
영락없이 며칠 굶은 거지꼴을 하고 있으나, 파이의 행색은 단지 어려운 사정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진과 동료들은 그에게서 나는 탄내와 피 냄새를 느끼고 있었다. 갓 만든 따끈따끈한 수프와 라트리 쿠키 특유의 향긋한 냄새로도 가릴 수 없는, 진한 전장의 냄새.
이상한 일이었다.
파이 나이대의 용들은 그다지 높지 않은 전투력을 지니고 있다. 사람에 빗대면 갓난애나 다름이 없기에 다른 용들의 보호를 받지 않고는 생존이 어려운 나이였다.
때문에 퀴칸텔과 라트리는 파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적이라고는 하나, 그들 입장에선 당연히 보호받아야 할 어린 용이 위험한 명령을 수행하는 중이니 말이다.
“후아, 자, 잘 먹었습니다! 이제 좀 살 것 같아요……!”
마지막 접시를 깨끗이 비우며 파이가 말했다.
“부족하면 얘기해라, 음식을 더 내어주마.”
진은 퀴칸텔과 라트리를 의식해 고압적이지 않은 태도로 파이를 대하고 있었다.
“아닙니다, 충분해요. 이렇게 환대를 해주실 줄 몰랐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티칸의 일원들이 약한 마음이 들도록 일부러 착하고 어린 용을 보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파이는 저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자, 그럼 이제 네가 우릴 찾아온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
유리아가 앞으로 나섰다.
“나는 지금부터 네가 하는 모든 말을 눈동자의 힘으로 진실인지 검증을 할 거야.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
“그럼요, 물론입니다. 우선 저는, 쉬누 님과 켈리악 경의 뜻을 따라 여러분과 협상을 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초장부터 뜻밖의 이름이 나왔다.
“……쉬누라고?”
“예, 진 경. 쉬누 님께선 진 경이 지금 켈리악 경을 도와주길 바라고 계십니다.”
“도움이라,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듣기 전에 일단 사정을 알아야겠군. 이야기의 탑에서 켈리악이 베라딘에게 공격당한 이유가 무엇이지?”
“반역입니다. 켈리악 경은 지금 억울하게 흉신의 힘을 탐낸 것으로 몰려 숙청을 당한 겁니다. 베라딘 지플이 가문을 삼키기 위해 반역을 저지른 거예요.”
파이와 유리아의 시선 사이에 푸른 끈이 떠올랐다. 진실이었다.
“베라딘은 왜 반역을 저지른 건데?”
“쉬누 님과 켈리악 경은 정신 조작 실험의 부작용이라 추정하고 계십니다.”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군. 켈리악이 그간 베라딘에게 정신 조작을 한 이유와, 그를 통해 얻으려던 결과는 무엇이냐?”
그 질문이 나오리라 예상했다는 듯 파이는 당황하지 않았다.
“켈리악 경은 베라딘 지플을 통해 본인이 새로운 불의 신이 되고자 하셨습니다.”
“……뭐라고?”
“모종의 이유로 인해, 쉬누 님은 천천히 소멸하고 계십니다. 때문에 쉬누 님은 켈리악 님에게 2대 불의 신이 되라는 임무를 주셨고, 베라딘 지플에게 행해진 실험은 모두 그것을 실현하기 위함이었죠.”
계속 진실을 알리는 푸른 끈이 형성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이야기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당황스러우실 거예요. 하지만 모두 사실입니다. 그간 켈리악 경을 제외한 다른 이들이 쉬누 님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던 것도, 소멸에 파편화된 쉬누 님의 권능이 그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베라딘 지플이나 미도르 엘너 같은 자들이죠.”
“켈리악이 베라딘을 통해 어떻게 불의 신이 될 수 있다는 거지?”
“죄송해요, 방법은 저도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다만, 베라딘을 마신석의 그릇으로 사용하면 가능한 일이라는 것만…….”
마신석의 그릇.
그 말을 듣자마자 진은 베라딘이 ‘두 명의 신’과 계약한 사실이 떠올랐다. 물의 신 이텔미온과 대지의 신 릭타.
한 인간이 두 신의 계약을 받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마법학계의 정설이다.
진은 예비 기수 막바지 무렵에 베라딘이 두 신과 계약한 걸 알고 의문을 가졌으나, 그를 추궁하지는 않았었다.
-그나저나, 안 물어보네?
-뭘.
-내가 어떻게 두 명의 신과 계약했는지.
-네가 가진 잠재력이 그만큼 뛰어난 것이겠지. 그리고 그런 걸 묻게 생겼냐, 지금 이 상황에.
당시 상황이 급박하기도 했고, 베라딘도 이유를 모르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베라딘이 자신이 두 신과 계약할 수 있던 이유를 알았다면 알아서 말해줬을 터였다.
‘마신석은 모든 신의 힘을 담는 물건…… 그리고 켈리악은 베라딘이 마신석의 핵심 재료가 될 수 있도록 실험을 해왔다는 건가!’
베라딘이 마신석의 속성을 갖게 되었다면, 이텔미온과 릭타와 동시 계약을 한 일은 얼마든지 설명이 된다.
“……쉬누, 켈리악, 그리고 지플. 아무리 생각해도 모두 미친놈들이군. 너같이 어린 용조차 이런 끔찍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할 정도라니. 파이, 넌 지금 인간이 인간을, 아비가 자식을 실험체로 사용했다는 걸 말하고 있다. 그런데 아무것도 느끼는 바가 없는 것이냐?”
퀴칸텔이 분개하며 말했다. 그녀는 끔찍한 이야기를 말하면서 무감한 얼굴을 한 어린 용을 보는 게 괴로웠다.
“어떤 걸 느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그게 문제가 되는 건가요?”
“미치겠군.”
“어쨌거나 파이, 네 말을 종합하면 이것이로군. 쉬누와 켈리악은 베라딘을 통해 마신석과 새로운 불의 신을 만들고자 했고, 베라딘은 어느 순간부터 순순히 따르지 않고 오히려 켈리악을 숙청했다.”
“맞습니다.”
“네 말에 의하면 쉬누와 켈리악은 베라딘의 배신을 실험의 부작용, 혹은 개인적인 복수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산나의 이야기가 빠졌군.”
“아, 태양의 무녀 말씀이시죠.”
“이야기의 탑에서 전사할 위기에 놓인 켈리악을 구한 건, 쉬누인가?”
산나가 조작한 기록상으로는 로키아 가네스토가 켈리악을 구했다.
파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쉬누 님이 구하셨습니다.”
진은 산나가 기록을 조작한 사실을 파이에게 알리지 않았다. 산나가 쉬누, 켈리악과 협력 관계일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자는 언제부터 지플과 함께했나? 지금은 베라딘과 협력을 하는 듯 보였는데, 쉬누와 켈리악이 뒤통수를 맞은 건가? 네가 처음에 말했듯이, 산나는 켈리악이 흉신의 힘을 탐냈다고 하였다.”
“보신 그대로입니다. 태양의 무녀가 가문과 협력하기 시작한 건 흉신전이 끝난 이후라고 들었습니다. 무녀는 켈리악 경을 자신이 치료해줄 수 있다며 가문에 접근했어요.”
“쉬누와 켈리악은 순순히 그 말을 믿고 받아들였다는 말인가?”
“저도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이 되네요. 어쨌거나 무녀는 베라딘이 켈리악 경을 공격할 때 방관했습니다. 어쩌면 베라딘의 배신이 무녀가 부추긴 결과일 수도 있겠죠.”
쉬누나 켈리악과 직접 대화하는 게 아닌 만큼 파이에게 들을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었다.
또한 진실의 권능으로 파이의 이야기를 검증한다 할지라도, 전부 다 믿을 수는 없었다. 유리아가 확인하는 건 파이의 거짓말 여부이기 때문이다.
‘파이는 분명 자신이 아는 대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쉬누와 켈리악이 파이에게 알려준 정보들 중엔 가짜가 섞여 있을 거다.’
베라딘이 켈리악에게 누명을 씌웠다는 내용과 쉬누가 소멸하고 있다는 사실은 진짜일 가능성이 높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협상을 위해 지금 파이가 티칸을 찾아올 이유가 없었다. 바멀 연합을 방심시키기 위한 연극이라기에, 켈리악을 폭주시키고 숙청하는 건 지나친 일이다.
또한, 진은 지금 쉬누와 켈리악이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 직감했다.
“이제 쉬누와 켈리악이 내게 원하는 걸 말해봐.”
“네, 진 경. 두 분께서는 진 경이 켈리악 경을 치유해주길 바라고 계십니다.”
“대가는?”
“진 경께서 궁금할 만한 지플의 여러 비밀들을 알려준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천 년 전 지플과 룬칸델이 맺은 맹약을 제거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피식.
그 말에 진은 웃음을 흘렸다.
“막 던지는군. 설마 진짜로 내가 그 제안에 응하리라 생각해서 한 말은 아닐 것 같은데. 그렇지 않나? 게다가 그의 혼돈은 내가 가진 정화기로 어찌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지.”
“쉬누 님께선 정화기가 언젠가 개량되면 가능한 일일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내가 켈리악을 치유할 이유는 없어. 티칸을 찾아와 이런 협상을 제안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은 모양인데, 나로서는 오히려 경사지. 가만히 내버려두면 켈리악은 끝장이 날 테니.”
“하지만 맹약을 파기하고 지플의 비밀을 알게 되는 건 분명 진 경께도 큰 도움이…….”
“맹약은 이미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중이고, 지플의 비밀 따윈 관심 없어. 오히려 산나나 태양신교, 로키아 가네스토에 대한 정보라면 모를까.”
파이는 더 말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어떤 걸 내어주더라도 켈리악을 도울 생각이 없다. 쉬누와 켈리악도 내 대답은 당연히 예상했을 것 같은데. 그는 지금 어디에 있나?”
“불의 땅, 쉬누 님의 영역에 계십니다.”
“그렇다면 쉬누와 켈리악, 둘 중 한 사람을 직접 내 앞으로 데려오거나 우리가 그곳을 찾아갈 수 있도록 조치를 해라. 대화는 그때 다시 하겠다. 만일 단지 나를 떠보기 위해 또 너를 대신 보낸다면, 그때는 아예 이야기를 들어주지도 않겠다고 전해라. 이만 돌아가.”
“자, 잠시만요! 진 경. 으아아.”
다급하게 진을 부른 파이의 눈동자에, 별안간 불꽃이 맺혔다.
그리고 동료들은 별안간 엄청난 기운이 장내에 퍼지는 걸 느꼈다. 단지 ‘강자’가 아닌, 어떤 초월적인 존재의 기운이 퍼지고 있었다.
동료들은 움찔하며 뒷걸음질을 쳤고, 진은 씨익 웃으며 허공에 떠오른 파이를 올려다보았다.
“역시. 다 듣고 있었군, 쉬누. 내게 원하는 바가 있다면, 진작 이렇게 직접 행차를 하셨어야지.”
불의 신 쉬누가, 파이를 통해 화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