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94)
제 777화
196화. 큰 뱀, 아메리스(4)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발레리아가 말하자 진은 한동안 아메리스와 나눈 이야기들을 그녀에게 설명해주었다.
“……아, 그렇다면 제게도 태양신의 사념이 깃들어 있다는 겁니까?”
[그렇다. 이 몸이 지금까지 본 태양신의 사념은 항상 두 종류였지. 죽음을 부정하려는 사념과 유지하려는 사념. 그러나 너의 경우는…… 좀 더 복잡한 의지가 스며있군. 꼭 무언가를 관찰하고 기록하겠다는, 그런 의지야.]불현듯, 진은 과거 오르갈이 성지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 지플의 성지. 개방이 거의 완료된 완전 마력체들은, 그 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한 반 불사나 다름이 없다. 성지에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모든 상처를 회복할 수 있지.]
-완전 마력체만 잔존 기운이 반응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가?
-[글쎄, 나도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그 존재의 어떤 의지가 완전 마력체의 소유자들 사이에 깃들어있기 때문이라고 추정만 하고 있을 뿐. 어쩌면 완전 마력체란 애초에 그 의지가 스민 존재들에게만 허락된 축복일 수도 있겠지.]
발레리아 또한 지플의 ‘성지’로 가서 치명상을 회복한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관찰과 기록…….”
그건 히스터로서 발레리아에게 주어진 사명을 의미하는 단어들이다.
[그래, 발레리아 히스터. 너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테지만, 내게는 지금 너를 만나 그 특이한 사념을 확인한 일이 너무나 큰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제 사명과 아메리스 님의 운명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 건가요?”
[나는 줄곧 태양신의 사념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가 왜 죽음을 맞이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지.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그를 죽일 수 있는 자는 세상에 존재치 않았다. 그렇다면 그는 스스로 죽음을 자처했을 터인데, 왜 죽음을 부정하고자 하는 미련이 사념으로 남았는가.]그건 아메리스가 가장 오랜 시간 고민한 문제였다.
그녀는 태양신이 죽었을 때 가장 괴로워한 존재였으나, 새로운 ‘불완전한 질서’를 수호하는 역할을 맡아야만 했다.
원치 않은 운명의 무게를 견디는 그녀는 늘 태양신의 죽음을, 그의 뜻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태양신이 스스로 존재하기를 그만두었다면 왜 사념이 남은 것이며, 누군가 그를 죽였다면 그게 어떻게 가능했나.
전자라면 죽음을 유지하려는 사념만, 후자라면 죽음을 부정하는 사념만 남아야 하는 것이다.
아메리스는 해답을 찾지 못한 채 버거운 싸움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 아메리스는 발레리아를 통해 실마리를 얻고 있었다.
[이 몸은 지금도 태양신이 죽은 전말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네게 남은 특별한 사념이 뜻하는 바는 명확하지. 그는 너를 통해 이 세상을 지켜보고 싶은 것이다. 완전성을 잃은 세상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어떤 바람이 부는지, 어떤 생명들이 태어나는지.]“아.”
[또한 그건 광기나 원한이 아니라, 피조물들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시선일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 존재를 살펴보기 위한 의지라기에, 네가 가진 사념은 무엇이든 비칠 듯이 투명하고 찬란한 느낌이 충만하구나.]아메리스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토록 고통스럽던 오랜 고민이 마침내 끝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저는 태양신이라는 존재의 의지를 느낀 적이 없습니다. 그의 잔존 기운이 남았다는 지플의 성지에서 상처를 회복한 적은 있지만…….”
[그가 너를 통해 바라는 건 피조물들을 굽어보는 일이지, 이 세상을 바꾸는 일이 아닐 테니까. 태양신은 이 세상에서 퇴장한 채 무언의 관찰자로 남고자 한 것이야. 피조물들에게 자유를 부여한 거다…… 나 같은 불멸자들처럼 운명에 묶이지만은 않도록.]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준 이유가 무엇인가, 라는 주제는 지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교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화두였다. 아메리스는 그 문제에 대해 나름의 답을 얻은 듯 보였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흠! 어쨌거나 빨간 머리에게 무언가 대단한 존재의 의지가 깃들었다는 거죠? 왜 이런 재수 없는 애한테 맡긴 건지 모르겠네.”
[이 몸조차 알 수 없는 그의 뜻을 필멸자인 네가 다 알 필요는 없다, 산드라 지플.]“아, 그런데 이상하긴 하잖아요. 좋아, 빨간 머리를 선택한 건 그렇다 쳐. 혹은 요정족과 빨간 머리의 가문 전체를 선택한 걸 수도 있겠죠. 기록 마법은 요정족과 히스터가만 사용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죽음을 부정하려는 사념은 왜 존재하는 건데요?”
[그건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태양신이 남긴 사념들 중 이 세상을 유지하려는 쪽이 더 크다는 사실이지.]“태양신은 상당히 애매한 성격을 가진 신이었나 보군요. 유지면 유지, 파멸이면 파멸이지. 아니면 간을 보는 것 아니에요? 빨간 머리네 가문을 통해 세상을 지켜보다가, 영 아니다 싶으면 부활해서 다시 완전한 세상을 만들려는 거지. 여긴 다 멸망시키고.”
거침없는 산드라의 발언에 아메리스는 잠시 할말 을 잃고 말았다.
[듣기에 거친 이야기로군. 그러나 일리가 없지는 않다. 네 말대로라면 태양신은 원치 않는 죽음을 맞이했고, 그 과정에 선한 의지들을…….]“그것도 이상해요! 그럼 죽음을 유지하려는 사념들이 설명이 안 되거든요. 그리고 태양신을 죽일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면서요.”
[방금도 말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어느 쪽이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태양신의 부활을 막아 이 세상을 유지하는 것이다.]“뭐, 그건 동의.”
태양신의 죽음이 자살인지, 타살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산드라의 논리처럼 남은 사념들이 상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아메리스는 그 속에서 자신의 부당한 운명에 위로가 될 만한 단서를 찾았을 뿐.
[산드라 지플이라 하였나, 넌 맹랑하다 못해 귀엽기까지 한 필멸자구나.]“칭찬으로 들을게요.”
[헤도가 아주 고생이 많았겠어.]“그럼, 아메리스 님.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진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오테리엄은 그야말로 박살이 나 있었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머잖아 적들도 이 풍경을 발견할 테고, 자연스레 이곳을 조사할 것이다. 아메리스도 그걸 의식하고 있었다.
진과 헤도가 굴착을 하는 동안 벌어진 폭발은 아주 먼 거리에서도 충분히 관측할 수 있는 규모였다.
진은 이미 적들이 ‘오테리엄에서 무언가 일이 벌어졌다’는 걸 인식하는 경우를 상정했다.
“미봉책이긴 할 겁니다. 언제든 냄새를 맡고 찾아올 수 있습니다. 특히 베라딘 지플은 기록 마법과 유사한 권능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산나의 알려지지 않은 능력도 있고.”
[너는 어찌할 생각이었느냐?]“솔직히 반신반의한 상태로 굴착을 시작하긴 했습니다. 그러나 적들이 찾아온다면, 그들을 모두 처치할 생각이었습니다. 당분간 이곳에 계속 사람을 대기시켜야겠죠.”
[후후, 그럴 필요 없다. 이 몸은 계속 여기에 있을 것이다. 최대한 적들을 교란하도록 하마. 그러다 발각되거나 적들이 정보를 습득한 채 도주할 수 있는 상황이 나오면, 즉시 네게 지원을 요청하면 된다.]“순간 이동이 가능하십니까?”
[아니, 그 권능은 머리와 함께 잃어버렸다.]“그럼 제가 사람과 함께 붉은 부엉이를 대기시킬 수밖에 없겠군요.”
[그럴 필요 없다. 내 분신이 너희를 따라가 앞으로 함께 생활할 것이니. 아무래도 인간 형태가 여러모로 편리할 테지?]“분신이라 하셨습니까?”
[그래. 후후, 필멸자들과 섞여 지내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로구나. 경계 수호의 운명에 묶인 나로서는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유희라 할 수 있지. 기대되는구나. 지금 이 모습을 그대로 분신으로 만들면 되겠어.]아메리스가 정좌하며 진과 동료들을 올려다보았다.
[참고로, 이 몸은 분신을 만들 때 가장 약해진다. 그러니 만에 하나라도 내가 분신을 만드는 도중 적이 찾아온다면 나를 지켜야 할 것이다. 반대로 만약 나를 죽이고 싶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것이야…….]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아메리스는 진과 동료들을 완전히 신뢰하고 있었다. 그들의 내면이 위험하지 않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저흴 신뢰하는 의미로 비밀을 하나 알려주신 것이라 받아들이겠습니다. 안심하고 만드십시오.”
[그러마. 오랜만이라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 같군. 분신을 만드는 동안에도 대화를 하는 건 가능하니, 목석처럼 있을 필요는 없다.]“알겠습니다.”
아메리스가 눈을 감자 그녀의 주변으로 묘한 회색의 기운이 번졌다.
‘회색을 띤 권능은 처음 보는군.’
회색 권능은 이내 아메리스를 둥글게 감싸며 물처럼 출렁였다.
[분신을 만들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내가 뱀은 뱀인 것 같구나. 뱀들 또한 탈피할 때가 가장 취약하지. 일종의 움직이는 허물을 만드는 것이다.]출렁이는 회색 기운 사이로 아메리스의 몸에 비늘이 돋는 모습이 보였다. 일행은 그 모습을 신기하게 지켜보며 아메리스와 이야기를 나눴다.
“뱀은 허물을 벗다 죽는 일이 많다던데요.”
[산드라 지플, 그건 그토록 천진난만한 얼굴로 하기에 어울리는 말이 아니다. 함께 지내는 동안 네게는 이 몸이 알려줄 것이 많을 것 같군.]분신 생성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딱 10분이 지나자마자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지만 말이다.
진과 아메리스, 헤도 세 사람은 동시에 지하 어딘가에서부터 올라오는 명백한 살기를 느끼고 있었다.
“아메리스 님, 아무래도 지하에 뭔가가 더 있던 모양입니다.”
헤도가 말한 사이, 진은 한 번 더 막 느껴지기 시작한 살기를 다시 집중해서 읽었다.
‘이 기운은…….’
그 살기에서 묘하게 익숙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었다.
[아, 이런…… 설마 정말로 습격을 받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건만. 아무래도 이 몸이 잠들기 전에 싸우던 녀석들인 것 같구나.]크드득, 파아아악-!
별안간 아메리스가 앉아 있던 자리로부터 한 줄기 붉은 섬광이 치솟았다. 진이 재빠르게 아메리스를 옆으로 옮긴 덕에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리고 섬광과 함께 나타난 적들의 가슴엔, 붉게 빛나는 광심장이 있었다. 겉모습도 전체적으로 명왕족과 유사한 형태였다.
“아메리스…… 우리를 잊고 있었나? 겁도 없이 이 자리에서 분신을 만들 줄은 몰랐군.”
진과 동료들은 한눈에 그들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고대 명왕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