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05)
제 888화
200화. 비먼트 황실의 비밀(1)
라키만 호그가 팔찌로 연 차원문은 적명족 성채, 파틀록의 함선 출격장이었다.
일천에 육박하는 함선이 대기 중인 출격장으로, 도망친 적명족과 더불어 업화의 불길이 함께 떨어진 것이다.
복귀와 동시에 적명족들은 아수라장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진의 통제를 벗어난 업화가 바로 사그라들지 않고 마구잡이로 퍼지며 출격장 곳곳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불을 끄고, 흩어져서 함선에 올라 비상 보호막을 발동시켜!”
의식을 잃은 라키만을 대신해 시마트가 지휘를 맡았다. 그 역시 당장이라도 졸도할 듯 만신창이였으나 지금 쓰러지면 파틀록의 붉은 함대는 끝장이었다.
“이미 불이 붙은 함선은 파괴하라, 다른 함선에 옮겨붙지 못하도록. 그리고 앞에 두 동포는 빨리 라키만 동포를 치료실로 모셔!”
투왕급 적명족들이 지치지 않은 상태였다면 업화의 잔불을 끄는 일이 이렇게 벅차지는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적명족들은 업화에 휩싸인 함선들을 파괴하며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업화에 영원화의 특성이 묻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적명족은 약 백 척의 함대를 잃은 다음에야 진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업화의 잔불이 모두 꺼진 후, 시마트와 적명족들은 한동안 바닥에 주저앉아 멍한 눈을 했다.
한 번의 싸움으로 너무 많은 걸 잃은 것이다.
‘왜 거기서 진 룬칸델이…… 나온 것인가. 흉신전 이후 지상의 임시 동맹은 해제됐고, 그들은 다시 적대 관계로 돌아갔다고 하였건만.’
시마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의 연속이었다.
난데없이 킨젤로 지부에 진 룬칸델이 나타난 것도, 라키만이 굳이 그에게 맞서 전투를 감행한 것도.
시마트는 라키만에게 여러 차례 직언을 했던 것이다. 설령 사냥 도중 진 룬칸델이나 다른 초월적 강자를 만나면 일단은 물러나야 한다고. 지금의 자신들은 옛날만큼 강하지 못한 반면, 지상은 온갖 강자들이 넘친다고 말이다.
도망칠 시간이 없던 것도 아니다. 함대를 소환할 수 있다면 킨젤로 지부에 있던 사냥감이나 하위 동포를 희생시켜 충분히 귀환술을 사용할 수 있었을 터였다.
“무능한 벌레 놈…… 이런 일 하나 똑바로 못 해 함대를 잃다니.”
별안간 시마트가 상말을 내뱉자 근처에 있던 안돌린과 오젠이 화들짝 놀라며 그를 쳐다보았다.
“시마트 동포?”
시마트도 자신이 한 말에 놀라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속으로 라키만을 하급자처럼 생각하다가 실언이 튀어나온 것이다.
“……내 자신에게 한 말이다.”
안돌린과 오젠은 찜찜한 마음이 들었으나 더 묻지 않았다.
“일단 진 룬칸델과 킨젤로가 어떻게 된 건지 알아봐야 한다. 단지 모종의 거래가 있던 건지, 아니면 다시 동맹이 된 건지.”
“다음 임무 때 바로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서 다른 대투왕 동포들을 깨워야 해. 라키만 동포의 치료가 끝나는 대로 다른 성채들을 확인해야겠어. 진 룬칸델, 놈의 무력에 대적하려면…… 적어도 대투왕 바카룬 동포와 그 성채, 혹은 투신 동포가 깨어나야 한다.”
“바카룬 동포의 성채는 아마 우리처럼 봉인된 상태일 겁니다. 하지만 투신 동포는…… 우리가 활동하던 때에도 갑자기 잠적을 하셨지 않습니까.”
“요즘 나는 투신 동포께서 잠적한 이유가 이런 봉인 사태를 예견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는군.”
뜬금없는 이야기였으나 안돌린과 오젠은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시마트는 언제나 유능한 모습만 보여왔고, 그가 했던 말은 비웃음을 당하다가도 결국 사실로 판명된 경우가 많았었다.
다만 적명족의 ‘투신’이 봉인이 두려워 동포들을 버리고 홀로 잠적했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다른 대투왕 동포들 중엔 투신 형제의 행방을 아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설령 없다 할지라도, 어차피 대투왕 동포들이 깨어나지 않으면 우린 부흥할 수 없다. 그러니 사냥뿐만이 아니라…… 보다 획기적인 방법이 필요해.”
사냥의 위험성은 이번 일로 차고 넘칠 만큼 입증이 되었다. 오늘 같은 문제가 또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거래…… 우리도 지상과 거래를 하거나 동맹을 맺는 걸 생각해봐야 될 것 같군.”
“생각해둔 지상의 세력이 있으십니까?”
“지플, 혹은 인간의 황족 잔당. 다음 사냥 때는 내가 직접 나가 그들과 접촉을 해보겠다.”
* * *
한편, 지상의 각 수장들은 이번 일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었다.
“적명족이라.”
베라딘은 보고서를 살펴보며 흥미로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명왕족의 아종으로 추정, 일반병조차 명왕군림검에 즉사하지 않을 정도의 전투력, 엄청난 기술력까지. 상당히 매력적인 친구들이군요, 적명족은.”
“더 자세히 알아보지 못해 죄송합니다, 가주님. 망령대와 제 마법사들에게 들은 바, 진 룬칸델과 적명족의 전투가 가장 과격해졌을 때에야 겨우 접근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괜찮습니다. 진의 근처에서 활동하고도 살아 돌아온 데다 대략적인 정보까지 알아 왔으니 상을 내려야 할 일입니다. 망령대와 집정관의 유령단, 어느 쪽의 판단 덕분입니까?”
“제 부하들의 판단이었다고 합니다.”
사트린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유령단이 상을 받아야겠군요. 유령단 전원에게 가문 2급 비전을 익힐 수 있는 기회를 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가주님. 다만, 상을 받기 전에 한 가지 더 보고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뭡니까?”
“확실하진 않으나, 우리 마법사들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전장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른 무언가?”
“예, 기척을 읽기가 극히 어려웠다고 하였으니 아마 요나 룬칸델이나 무명의 암살자들이리라 생각되지만…… 확인은 불가했다고 합니다.”
“흠, 어차피 둘 중 하나겠군요. 바멀 연합이거나, 황실 잔당이 보낸 사람이거나.”
“황실 잔당에 그 정도의 능력자가 있습니까?”
“그들에 대해선 나도 아는 바가 많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황실 잔당은 늘 염두에 둘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은 힘이 없으니 웅크리고 있는 것이지만, 언제든 부상할 수 있다고 가정해야 합니다.”
“예, 이해하였습니다.”
“만약 황실 잔당이라면, 놈들도 분명 적명족과 접촉을 하려 할 테니 신경을 써야겠군요. 황실 잔당이 내놓은 제국 영토들에도 사람을 보내도록 하세요. 거기 남아 있는 황실 고위직들에게 손을 써봐야겠으니.”
“예, 가주님.”
“그리고 망령대에겐 3급 비전을 익힐 기회를 주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카둔에게 했던 것처럼, 베라딘은 의도적으로 옥타비아의 기를 죽이는 중이었다. 켈리악의 주요 인사였던 이들 모두가 비슷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옥타비아를 비롯한 이들은 감히 불만을 표출하지 못했다. 납작 엎드려서 충성을 보이는 것만이 가문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었다.
“그들과 접촉해서 대화를 해봐야겠습니다. 망령대장과 집정관은 계속 마법사들을 보내 그들의 출몰 위치를 파악하십시오.”
“알겠습니다.”
“휘하 필진들에겐 즉시 후속 기사를 쓰라는 명령을 전달하십시오. 진과 킨젤로로 인해 적명족이 부활했고, 인세를 위협하고 있다는 내용 정도면 알맞겠군요.”
“예, 오늘 내로 연방 전체에 소식이 퍼질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좋습니다. 나는 성지로 가서 무녀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적명족의 기술력을 얻을 수만 있다면, 적들을 칠 시기를 앞당길 수 있을 겁니다.”
지플의 회의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같은 시각, 비먼트 황실도 비슷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루테로 연방 북해에 위치한 한 무인도, 비먼트 황가 잔당은 흉신전 이후 이곳에 숨은 채 활동을 멈추고 있었다.
“라키만 호그…… 정말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로군. 놈은 여전히 오만해서 일을 그르치고 있구나. 시마트의 속이 답답하겠어.”
그는 마치 라키만 호그를 알고 있는 듯이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그의 옆에 앉은 황족들도 라키만을 아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란 비먼트, 전 황제 아미르 비먼트가 처형당한 후 지금껏 남은 황족과 추종자들을 이끌어온 인물.
그는 흉신전 이전에 조슈아로부터 요나의 혼기를 받아 단테를 암살하려 했으며, 흉신전 도중에도 라츠를 비롯한 마인들을 보내 바멀 연합의 주요 인물들을 죽이려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란에 대해선 세상에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아미르가 황좌에 오르기 전엔 계승 서열이 30위권에 불과해 조명될 일이 없었고, 애초에 비먼트 황실의 신비주의로 인해 스스로를 드러낸 적도 없으니까.
그러나 비먼트 황실의 가장 ‘오래된’ 존재들.
말하자면 수천 년간 존속된 비먼트 황실을 시작부터 지금껏 지켜본 황족들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아이란 비먼트를 진짜 황제로 여겨왔다.
오직 아이란만이 비먼트 제국의 유일한 황제이며, 대외적으로 알려진 수백 명의 황제들은 전부 비밀을 감추기 위한 연막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이란과 곁에 앉은 황족들은 오랜 세월 이름과 모습을 바꾸며 늘 황실에 숨어 있었다. 제국 황실 신비주의의 시초가 바로 그들이었다.
“비볼, 수고 많았다. 수확이 아주 커.”
비볼이라 불린 황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바로 지플의 마법사들과 더불어 몰래 진의 전투를 지켜본 인물이었다.
“감사합니다, 폐하.”
“드디어 우리의 제국을 되찾아 부흥시킬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군. 적명족을 포함한 지하 세력은 여전히 태양신의 부활에 미쳐 있을 테니, 그 사실을 이용해 우리의 적들과 놈들이 공멸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야 한다.”
아이란의 말에 황족들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신비주의라는 명목으로 숨어서 사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적명족이 힘을 되찾을 수 있도록, 우리가 도움을 줄 필요가 있겠지……. 비볼, 지금 즉시 놈들의 성채로 가 거래를 제안해라. 대량의 영양분을 제공하겠다는 내용으로. 파틀록 성채의 위치는 기억하고 있을 테지?”
“예, 폐하.”
“좋아. 놈들은 분명 거래를 받아들일 거다. 하지만 적명족 특성상 배가 부르면 또 정신을 못 차리고 뒤통수를 칠 준비를 할 테니, 그러지 못하도록 더 달콤한 미끼도 꺼낼 필요가 있겠어.”
“적명족들에게 어떤 내용을 더 전달하면 되겠습니까?”
그 말에 아이란은 씨익 웃으며 이렇게 뒷말을 이었다.
“우리를 끝까지 배신하지 않을 시, 때가 되면 적명족 투신의 행방을 알려주겠다고 전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