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04)
제 888화
199화. 명왕족 13투왕의 위엄(2)
‘붉은 함대의 포격을…… 이토록 쉽게 무마하다니.’
함대 포격에 맞서 빗발치는 푸른 유성우를 보며, 라키만은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함대가 소환되면 즉시 승기를 가져올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포격이 시작되자 진은 오히려 더욱 사납게 날뛰면서 기운을 방출하고 있었다. 당황하거나 기가 죽는 기색조차 없이 말이다.
쓰러진 이들과 함대의 승무원들도 제 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라키만 동포께선 패배한 듯 보이고, 우리 함대마저 놈에게 타격을 줄 수 없다고?’
‘지상에 임무를 나갔던 투왕 동포들이 미리 알려주긴 했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인간과 달라도 너무 다른 것 아닌가……!’
전장의 모든 적명족들이 충격에 휩싸인 와중 단 한 사람.
함대 지휘관, 시마트만이 이런 결과를 예상한 듯 침착하게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진의 유성우는 벌써 포격을 밀어내며 전장을 잠식하고 있었다.
게다가 공간이 뒤틀릴 정도로 끔찍한 폭발 속에서도 진은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머리로 떨어지는 포격을 검으로 튕겨내고, 사각에서 날아든 파편을 피하고, 시야가 없을 텐데도 라키만을 찾아 전진하는 중이었다.
라키만은 쓰러진 동포들을 챙기느라 빠르게 움직이지 못했다.
‘진 룬칸델이 갑자기 등장한 시점에 동포들이 했어야 할 일은…… 라키만 동포가 시간을 버는 동안 귀환술을 쓰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작전지에 내가 있었다면 라키만 동포께 함대를 소환하면 안 된다는 직언을 올렸을 텐데……!’
함대 소환은 현재 적명족이 가진 최고이자 최후의 수단.
아직 적명족의 부활은 극초기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깨어난 적명족은 다 합쳐봐야 몇백조차 되지 않고, 그마저도 힘을 온전히 되찾은 이들은 그중 3할 수준이었다.
그러니 라키만 휘하의 붉은 함대를 운용할 승무원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 함대는 물론이고 라키만 역시 본래의 위력을 낼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동포들, 다들 정신 차려라! 라키만 동포를 구해야 한다. 포격 목적을 수정해! 진 룬칸델 사살이 아니라, 라키만 동포를 구출하는 방향으로 전환한다!”
시마트의 목소리가 전 함선의 함내로 퍼졌다.
“하지만 시마트 동포! 아직 라키만 동포의 명령 수정이 있지 않았습니다. 시마트 동포의 뜻대로 명령을 바꾸는 건.”
“월권이라고? 저 아래를 봐라! 지금 라키만 동포가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인가? 이대로 라키만 동포가 전사하면 다른 대투왕 동포들은 깨울 수 없게 된다.”
적명족의 계급 간 명령 체계는 절대적이다.
지금 시마트는 그 절대적인 규율을 어기고 있었다. 이하 투왕들과 평전사들은 잠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 기함 라비에트, 하강 태세 돌입. 직접 내려가서 라키만 동포를 모실 것이다. 각 함대 승선 중인 투왕들은 전원 라비에트로 집결하라! 나머지 함대는 라키만 동포와 기함을 엄호하되, 신호를 주면 모든 동력을 라비에트로 모으도록.”
결국 적명족들은 시마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가 탑승한 적명 4함대의 기함, 라비에트가 붉은 보호막을 형성하며 차원문을 빠져나왔다. 투왕들은 자신의 함선 속에서 라비에트로 공간 이동을 했다.
‘기함으로 보이는 함선만 차원문 밖으로 빠져나오는군. 게다가 포격도 내게 직접 내리꽂히는 것보다 진행을 방해하려는 흐름으로 바뀌었어. 라키만을 구출하려는 것인가?’
라비에트를 제외한 함선들은 차원문 안쪽에서 포격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진의 눈동자에 푸른 광휘가 맺혔다. 투신 오의의 다음 장을 개방한 건 아니지만, 개를 한층 더 폭발시킨 것이다.
피짓! 즈즈즈즉……!
고도를 낮춘 라비에트의 보호막과 명왕군림검의 영역이 맞닿고 있었다. 남은 투왕들 전원의 뇌기가 더해지며 증폭된 덕에 라비에트는 서서히 명왕군림검의 내부로 침범할 수 있었다.
‘확실히, 인세의 함선들보다 훨씬 성능이 좋은 듯 보이는군. 불빛조차 다 켜지지 않은 걸 보니 전체 동력을 다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일 텐데 이 뇌기를 뚫고 들어오다니.’
적명족을 만난 이후 진은 계속 그들의 기술력에 감탄하고 있었다.
탐이 나기도 했다. 저들의 기술력을 제대로 분석할 수만 있다면 보라스가 준 ‘황금함대’의 설계도를 실현하는 것도 마냥 요원한 일이 아니게 될 터였다.
‘이것도 버틸 수 있나 볼까.’
패왕검 유성 부수기.
이번엔 지상에서 시작된 하이란의 비기가 함선을 향해 시퍼런 검기를 쏘아 올렸다. 마찬가지로 명왕군림검의 뇌기로 강화된 유성 부수기는 과거 론 하이란이 펼쳤던 원본에 견줘도 손색이 없을 위력을 품고 있었다.
차원문을 둘러싼 거대한 보호막에 곧바로 균열이 일었다. 붉은 함대는 산개하며 보호막을 찢고 들어오는 유성 부수기를 간신히 피하고 있었다. 하나씩 암초에 걸린 듯 중심을 잃는 함선들이 보였다.
시마트는 그 광경을 보며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진 룬칸델은 기함이 아니라 함대 쪽을 타격하기로 결정한 건가. 다행이군, 저 정도 위력이라면 기함이 라키만 동포를 확보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명왕군림검에 이어 유성우와 유성 부수기까지.
진은 벌써 초월적인 검을 세 가지나 연달아 펼치고 있었다. 시마트는 아무리 진이라 할지라도 이 이상 힘을 끌어올리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착각이라는 걸 깨달은 건 겨우 3초 뒤였다.
‘왜 갑자기 검을 땅에 꽂는 거지? 설마…… 하! 아직도 이런 힘이 남아 있다고……!’
룬칸델 제1결전기, 쇄천.
땅에 꽂힌 검으로부터 지상과 하늘을 양분하는 거대한 검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 검기가 노린 것은, 기함 라비에트였다.
“보호막 최대 전개! 동력 집중 신호탄을 터뜨려라!”
시마트의 다급한 목소리가 퍼지자 라비에트와 전 함대가 붉게 빛나며 공명을 시작했다. 진은 적명족의 기술을 알지 못하나, 순간적으로 라비에트로 함대의 뇌기가 집중되는 걸 인지했다.
‘뭔지는 몰라도 기술력 하나는 알아줘야겠어.’
쇄천의 검기가 라비에트의 하부를 강타하고 있었다. 보호막이 찢어지진 않았으나 충격에 고도가 상승하며 라비에트와 라키만의 거리가 멀어졌다.
진은 라비에트의 견고한 보호막에 일순 감탄하고 말았다. 인세에 존재하는 함선 중 초인의 도움 없이 명왕군림검과 쇄천을 견딜 수 있는 물건은 없는 것이다.
다만 라비에트의 보호막이 단단해진 만큼 포격의 강도가 현저히 낮아지기는 했다. 때문에 진은 이전보다 수월하게 라키만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진과 라비에트.
둘 중 누가 먼저 라키만에 닿느냐가 관건이었다. 진은 옅어진 포격을 그냥 피하지도 않으며 전방으로 쇄도했고, 라비에트도 하강 속도를 높였다.
당연히 명왕군림검의 중심에 가까워질수록 라비에트가 견뎌야 할 뇌기는 늘어난다. 라키만과 가까워질 때마다 라비에트의 보호막에 미친 듯이 균열이 번지고 있었다.
“라키만! 함대를 소환하고 자신만만하더니, 계속 숨어만 있을 것인가?”
실로 오랜만에.
라키만은 자신이 완전히 압도되었음을 인정하고 있었다. 과거 적명족과 청명족의 투신을 마주했을 때처럼, 혹은 늘 자신을 압도했던 첫 번째 대투왕을 상대할 때처럼.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 사방을 가로막고 있는 듯했다.
특유의 냉정한 성정 때문에 공포에 사로잡히지는 않았으나 다시는 진을 마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동포들이 모두 깨어날 때까지, 앞으로 진 룬칸델과 싸우는 건 최대한 피해야 한다. 오늘…… 살아남아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젠가 다시 싸우려면 생존이 우선이기에, 라키만은 진의 도발을 무시한 채 더 안전한 영역을 찾아 헤맸다. 어떻게든 라비에트와 닿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라키만 동포! 조금만 버티십시오. 구출할 수 있습니다……!’
콰득, 크지지직!
슬슬 라비에트의 방어력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선체 곳곳이 부서지며 파편이 떨어졌고, 내부는 열기로 가득 차 버티지 못하는 평전사들이 속출했다.
시마트는 핏발 선 눈동자를 부릅뜨며 계속 동력원으로 뇌기를 전달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장기가 다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크아아아악! 탑승구를 열어……!”
마침내 시마트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라키만이 탑승 가능한 거리로 들어온 것이다.
탑승구를 연 건 아주 잠깐일 뿐이지만.
그 틈에 라키만을 비롯한 투왕들과 함께 함선 내부로 들어온 명왕군림검의 뇌기가 승무원들을 몰살하고 있었다. 이미 함선에 동력을 공급하느라 지쳐 있던 3급 투왕 이하의 적명족들은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함선에 오른 라키만은 숨을 헐떡이며 연신 핏물을 토했다. 안돌린과 투왕들은 아예 의식을 잃은 채 간헐적으로 경련을 일으켰다.
라키만의 품속엔 방금 지상에서 죽은 동포들의 광심장이 들어 있었다. 아공간 창고를 다시 열 틈조차 없어서 이렇게 챙길 수밖에 없었다.
“복귀! 고도를 높여라!”
라비에트가 차원문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함선이, 반파된 채 겨우 속도를 내고 있었다.
방금 탑승한 라키만이 광심장을 쥐어짜내 동력을 추가로 공급한 덕에 보호막을 수복하기는 했다.
어째서인지 잠시도 쉬지 않고 선체를 두들기던 검기도 잦아들었으나, 전혀 안심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빠르게 불안감이 증폭되었다. 진이 지쳐서 공격을 멈췄을 리는 없으니까.
“라키만 동포! 차원문이 우리가 들어서자마자 닫히도록 조정을 하셔야 합니다!”
적명족들의 예상대로, 진은 도망치는 그들을 타격할 마지막 마검을 준비한 상태였다.
룬칸델 마검 비기, 업화.
명왕군림검의 뇌기와 뒤섞인 사라의 마검이 순식간에 전장을 집어삼켰다. 어느새 소환된 테스는 업화의 불길을 한 곳으로 끌어모으고 있었다. 라비에트, 적명족의 기함을 향해서.
푸른 불길은 눈 깜짝할 새에 차원문 근처까지 올라간 라비에트를 뒤쫓았다.
진은 그때서야 검을 멈추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좁아지는 차원문 아래로, 쫓고 쫓기는 업화와 라비에트의 모습이 보였다.
‘빌어먹을, 진 룬칸델의 불길이 함께 차원문으로 들어왔다……!’
차원문이 닫혔다.
업화는 아슬아슬하게 라비에트와 더불어 차원문 속으로 사라졌고, 진은 한 가지 의문을 가졌다.
‘놓쳤군. 다만 업화의 불이 놈들의 기함과 동시에 차원문 안쪽으로 들어갔는데, 어떻게 되는 거지?’
진은 그 결과를 직접 지켜볼 수 없었으나, 적명족들은 차원문 너머로 도망친 후에도 한동안 업화의 불길을 막느라 많은 희생을 치러야만 했다.
만일 차원문으로 도망치지 못했다면.
적명족의 부활은 오늘로 막을 내렸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