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12)
제 888화
203화. 적명족의 결단
알펜과 발라스가 안광을 빛내며 진 쪽으로 쇄도하기 시작했다.
진에게도, 전대 가주들에게도 흡혈이 전혀 적용되지 않으니 드렉은 미칠 노릇이었다.
‘다른 놈들과 동포들에게서라도 최대한 피를 흡수하며 싸워야 한다. 귀환술을 쓸 틈을 벌지 못하면, 끝이다……!’
물론 진은 그렇게 둘 생각이 없었다.
“시마트와 라키만을 원망해라. 그놈들이 내게 교훈을 줬거든, 네놈들은 여차하면 언제든 튈 수 있는 족속들이라고.”
스걱!
브라다만테가 검기를 뿜으며 드렉의 오른발에 거대한 절상을 남겼다. 영원화가 상처로 스미자 드렉은 턱이 부서질 듯 이를 악물었다. 환부에 뇌기를 집중시켜도 영원화는 낙인처럼 미동이 없었다.
“그러니 나도 네놈들에게 한 가지 교훈을 줘야겠어. 기술력만 믿고 함부로 바멀 연합을 건드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려주겠다는 뜻이다. 그러니 귀환술이나 차원 이동으로 도망치는 건 포기하고, 아까 말했듯 조금이라도 명예롭게 죽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라.”
[닥쳐라! 이 몸은 위대한 적명족의 대투왕이다!]“그래, 바로 그런 모습을 보이란 뜻이었다. 이제야 말귀를 알아듣는군. 다만, 자꾸 남의 피를 흡수하는 모습은 썩 좋지 않아. 자리를 좀 옮기자고.”
콰셀 평원엔 민간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조룡성채는 무너졌고, 살아남은 용기사와 조룡들은 모두 단테가 무사히 대피시켰으니 아무 제약 없이 전장을 넓게 쓸 수 있었다.
‘만일 드렉이 보호 대상이 많은 지역을 침공했다면, 대규모 학살이나 인질극은 피할 수 없었을 테지. 민간인들을 지키느라 지금처럼 놈들을 압도하지도 못했을 거고.’
그 모습을 상상하니 진은 일순 아찔해졌다. 특히 드렉은 대량 학살에도, 초인급 무인을 상대하기에도 모두 특화된 고유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교훈을 주겠다는 건 단지 표현이 아니었다. 적명족이 다시는, 바멀 연합을 침공할 생각조차 못 하도록 끔찍한 패배를 안겨줘야만 했다. 드렉이 살아서 돌아간다면 앞으로 바멀 연합은 매 순간 이런 테러를 걱정하며 지낼 수밖에 없었다.
쩌엉, 콰드득!
진이 돌진하며 검을 휘두를 때마다 드렉의 거대한 몸뚱어리가 뒷걸음질을 쳤다. 벌써 좌우로 다가온 전대 가주들이 측면을 압박한 탓에, 드렉은 속절없이 밀리기만 했다. 성채화를 사용하고도 작은 반전조차 일으킬 수 없었다.
때때로 반격을 하기는 했다. 영원화에 당할 걸 각오하며 앞발을 휘둘렀고, 진이 도약하면 그를 씹어 뭉개고자 아가리를 벌렸다. 광심장을 증폭시켜 쉴 새 없이 사방에 적뇌와 적뇌로 빚은 창을 떨궜고, 포효만으로 땅을 분쇄하기도 했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진에게 위해를 가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반격할 때마다 진과 전대 가주들의 검에 몸 어딘가를 베이거나 찔리고만 있었다.
무의미하다고는 하나, 드렉이 그런 반격이라도 할 수 있던 건 순전히 흡혈 능력 덕분이었다.
함대 쪽에서 계속 흡수하는 피로 초재생을 하고 있던 것이다. 적명족뿐만이 아니라 바멀 연합 초인들의 피가 함께 흡수되고 있으니 가능한 재생력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이제 끝이 나고 있었다.
[증손아! 이제 이놈에게 흡수되는 핏방울이 거의 보이지 않는구나.] [이 정도가 한계인 모양이군, 흡혈 능력이 닿는 영역은. 우리처럼 흡혈에 면역이 없다면 상대하기가 극도로 까다로운 놈이었겠소.]발라스와 알펜의 말대로 드렉은 더 이상 함대 쪽에서 피를 빼앗지 못했다. 상처는 이전보다 현저히 늦게 아물었고, 숨에선 쇳소리가 났다.
“헤도 경 한 사람을 상대할 때는 신이 났을 거다. 결국 이런 식으로 하나씩 무너뜨리면 우리가 무너지거나 굴복할 거라고 생각했겠지. 그런데 우린 얼마 전 네놈들 따윈 비교도 되지 않는 강적을 꺾었다.”
드렉으로서는 더 이상 저항할 수단이 존재치 않았다. 이미 진 한 사람을 상대하면서도 넘을 수 없는 벽을 느꼈는데, 전대 가주들까지 있으니 그의 무력은 한없이 초라해지고 있었다.
츠아아악-!
검기가 드렉의 가슴팍을 지나가자 피 분수가 튀었다. 그는 성채화를 유지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리며 변신을 해제했다.
다시 적명족의 모습으로 돌아온 드렉은 창을 쥐며 진의 등 뒤 저 멀리에 있는 자신의 함대를 바라보았다. 아까 발라스와 알펜이 전장을 이탈하였음에도 함대 쪽에 남은 바멀 연합의 일원들은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다.
만일 드렉의 고유 능력이 계속 전장에 영향을 줬다면 조금은 상황이 달랐을 테지만, 함대 쪽에도 희망은 없는 듯 보였다. 베일이 태양력을 증폭시키며 함대 전체를 압박했고, 다시 전장에 합류한 헤도는 울분을 풀듯이 처음처럼 함대를 마구잡이로 찢어버리고 있었다.
승리는 이미 초장에 포기했고, 이제 드렉은 도주를 포기할 차례였다. 자신은 물론이고 동포들 중 누구 하나라도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크흐흐흐. 이래서…… 태양은 다시 수복되어야 한다. 네놈들이 가진 힘이 과연 인간이라는 하등 종족에게 가당키나 한 것이냐? 태양신이 죽은 이후로, 이 세상은 분명히 길을 잃고 말았다.”
“하긴, 네놈들도 태양신교라고 할 수 있겠군. 이제 희망이 모조리 사라졌으니 네가 믿는 신을 찾는 건가.”
“아니. 나는 아직 모든 가능성이 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 룬칸델. 거래를 하자. 나를 그냥 보내준다면, 우리 적명의 지식을.”
스걱!
드렉은 제 말이 끝나는 순간보다 방금까지 붙어있던 오른팔이 땅에 떨어지는 모습을 먼저 맞이했다.
“거래, 좋지. 그러나 나와 거래가 하고 싶었다면 이런 짓을 벌이기 전에 찾아왔어야 해. 바멀 연합은 지금도, 앞으로도 네놈들과 그 어떤 작은 협상도 하지 않는다.”
드렉은 떨어진 팔을 내려다보지 않고 진과 눈을 맞췄다. 지금 그의 시선을 피하면 다음엔 팔이 아니라 목이 떨어질 것 같았다.
“……나에 대한 분노 때문에 너희 기술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버리겠다는 말인가? 신뢰 때문이라면, 기술을 먼저 건네주겠다. 심지어 너는 그 기술을 받은 다음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입장인 것 같다만. 내가 제안한 건 너로서는 잃을 게 없는 거래다.”
“그건 생각하기 나름이지.”
“네 등 뒤에서 싸우고 있는 우리 함대도 모두 주겠다. 내 명령이 없으면, 너흰 저 함대를 결코 온전히 소유할 수 없다. 기술 유출을 방지한 자폭 장치가 내장되어 있으니까. 잔해만으로 기술을 분석하는 건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어.”
진이 한 번 더 검을 휘둘러 드렉의 왼팔을 떨궜다. 툭, 드렉은 이번에도 감히 진의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무엇을 원하나, 진 룬칸델. 너도 거래를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을 테니 나를 바로 죽이지 않는 것일 터. 알려다오, 내가 이행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다.”
적명족의 기술이 정말로 탐나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진은 드렉을 살려두면 반드시 그가 술수를 벌일 것이라 확신했다. 적명족의 기술력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으니, 드렉은 어떤 식으로든 바멀 연합을 돕는 척하며 탈출을 도모할 가능성이 높았다.
“내가 지금 너를 바로 죽이지 않는 건, 간단해. 저 함대에 있는 놈들 중 지금 이 모습을 기록하는 놈들이 있을 것 같거든. 글이든, 영상이든.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온전히 네놈들의 본진으로 전달되는 일뿐이다. 네놈들이 나를 더 두려워하도록.”
진이 드렉에게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섰다. 드렉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마치 라키만이 수인들을 상대로 절대적인 공포를 심어 주듯이, 진은 적명족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있었다.
적명족이 절대로 싸워선 안 될 ‘천적’이라는 인식을.
“이제 네가 마지막으로 남겨야 할 말이 무엇인지 알겠지, 드렉 혼. 네가 동포라 부르는 놈들을 진짜로 아끼는 마음이 있다면 말이다.”
진이 드렉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그가 느끼고 있는 공포가 손바닥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드렉은, 마침내 단념한 채 이렇게 소리쳤다.
동포들이여!
다시는 진 룬칸델과 바멀 연합에 도전하지 마라, 우리는, 절대로 그들을 이길 수 없다……!
우리의 투신께서 돌아오지 않는 한.
드렉은 그 뒷말을 삼킨 채, 두 눈에서 시뻘건 피눈물을 흘렸다. 전투 내내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적명족들의 피를 흡수하고, 귀환술의 촉매로 사용하려던 드렉이었으나.
그는 진심으로 동포들이 또 이런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투신이 돌아오기 전까진, 바멀 연합 근처엔 얼씬조차 해선 안 된다고 말이다.
드렉이 전투 중 동포들을 소모품처럼 사용한 건 어디까지나 ‘적명족’을 위한 행위였던 것이다. 적명족은 극단적인 전체주의 집단이고, 드렉은 그중에서도 특히 지독한 전체주의자였다.
“정답이로군. 이제 그만 굴욕에서 벗어나게 해주마.”
화아아앗……!
드렉의 전신에 스며 있던 영원화가 돌연 사납게 타오르고 있었다. 드렉은 그렇게 푸른 화염에 휩싸인 채 최후를 맞이했다.
“이제 잔당들을 정리하러 가도록 하죠, 선조님들. 어차피 함대 쪽에서 기록한 드렉의 모습은 귀환술로 도망치는 놈들이 전달할 테니, 붉은 함대는 단 한 대도 남김없이 파괴하도록 하겠습니다.”
[크, 우리 증손. 아주 그냥 내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구나!] [57대의 젊은 시절은 소가주와 전혀 다른 느낌이었을 것 같소만.] [20대, 방금 내기에서 진 주제에 잘도 그런 소리를.] [저기 남은 함선들 안 보이시오? 나보다 한 대 더 많이 파괴한 채로 끝내고 싶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승부는 아직이오.] [컬컬컬! 좋소, 어차피 결과는 같을 테니 열심히 해보시오. 갑시다!]그렇게, 적명족은 바멀 연합을 친 단 한 번의 침공으로 한 사람의 대투왕과 그의 함대를 모두 잃어야만 했다.
* * *
{동포들이여! 다시는 진 룬칸델과 바멀 연합에 도전하지 마라, 우리는, 절대로 그들을 이길 수 없다……!}
봉인이 풀린 적명족의 모든 성채로 드렉의 최후를 담은 영상이 전달되고 있었다. 영상을 지켜보는 적명족들은 부르르 몸을 떨며 굴욕과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설마 드렉 혼과 붉은 함대가 전멸한 것도 모자라, 이런 영상까지 남을 줄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대체 이게…… 드렉 동포께서 저렇게까지…….”
“조작이다! 놈들에겐 기록 마법사라는 인간이 존재하지. 기록 마법이라는 술수로 조작된 영상인 거다……!”
여러 말들이 오가는 와중, 시마트는 이를 악물며 동포들을 쳐다보았다.
“귀환술로 돌아온 동포들의 증언을 못 들었나, 저건 드렉 동포의 진심이 담긴 유언이다. 우린…… 앞으로 드렉 동포의 유언을 따라야 한다. 다시는, 두 번 다시는! 바멀 연합을 건드려서는 안 돼. 그건, 우리 적명족이 멸망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란 사실이 증명된 거다.”
앞으로 우리 적명족은 지플과 킨젤로만을 노린다. 투신께서 돌아오고, 모든 대투왕들이 그 힘을 완벽하게 되찾을 때까지.
시마트는 그렇게 뒷말을 이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오만한 대투왕들이 자꾸 동포들을 개죽음으로 몰아넣으며 적명의 부흥을 가로막고 있었다.
‘어쩌면,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이번 일로 남은 대투왕 동포들도 진 룬칸델과 바멀 연합의 위험성을 절실하게 깨달았을 테지. 내 말이 모두 옳았음이 증명되기도 했으니, 이젠 정말로 그 괴물들을 배제한 채 사냥에 집중할 때다.’
시마트는 즉시 대투왕들에게 통신을 요청하며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래, 시마트 동포의 말이 옳다. 당분간 바멀 연합은 침공 대상에서 완전히 제외하겠다.}
{와…… 그 드렉 동포가 설마 그렇게까지 깨질 줄은 몰랐는데. 나도 찬성, 이대로 놈들한테 계속 덤비다간 남아나는 동포가 없겠어. 라키만 동포가 살아있는 게 의아할 지경인걸.}
대투왕들은 잠시도 고민하지 않고 결단을 내렸다. 대승과 대패, 바멀 연합과 적명족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