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11)
제 888화
202화. 드렉 혼의 위기(2)
치이이이잉-!
이계설원의 차원문이 닫히자마자 전장의 하늘로 순식간에 금빛 권능이 퍼졌다. 태양신의 파편, 베일이 펼친 권능이었다.
적명족들은 오랜만에 마주한 태양신의 권능을 확인하며 흠칫했다. 태양신의 이름을 딴 킨젤로라는 놈들도 저런 권능을 보인 일이 없는데, 베일은 일대의 하늘을 모두 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물론 그들이 봉인된 당시에도 태양신의 힘을 사용하는 존재들이 있기는 했다. 자신들 또한 태양신의 지식을 통해 기술을 발전시켜 왔고.
다만 적명족들은 베일처럼 특별하게 강한 태양력을 가진 존재들을 ‘원석’이라 불렀는데, 이 정도로 대단한 원석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런 원석이 진의 휘하에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아! 짜증 나. 네놈들 때문에 길리랑 잘 놀다가 끌려왔잖아!]말은 애처럼 하지만 베일의 권능은 순식간에 함대의 보호막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틈에 전대 가주들은 내기에 열을 올리며 가문의 비기와 결전기들을 준비했고, 단테는 아까 죽은 부하와 조룡들을 생각하며 검을 다잡았다.
영약으로 급히 회복했으니 본래 무위가 제대로 나오진 않았다. 다만 동료들이 있으니 복수가 실패할 일은 없었다.
“후우, 이제 좀 살겠군. 고맙소.”
헤도가 자신에게 붙은 치유사들을 보며 말했다.
[성왕은 무척 바쁜 것 같아서 데려올 수 없었느니라. 치료를 받다 다시 싸울 수 있을 것 같으면 참전하거라. 네 몫이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다만.]“예, 아메리스 님.”
[그리고 산드라가 네 걱정을 많이 하더군. 울 것 같은 표정이더구나.]헤도의 눈동자가 커졌다.
“……정말입니까? 아가씨께서 저를?”
[그래. 뭘 그렇게 놀라느냐? 옛 적들이 기다리는군. 먼저 가마.]지금껏 산드라를 모시면서 헤도는 단 한 번도 그녀가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모습을 상상한 적이 없었다.
바란 적도 없고, 그런 일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막상 울먹이는 산드라를 상상하니 무언가 가슴 속을 쾅쾅 두들기는 것 같았다.
시리스는 아메리스를 뒤따라 이동하려다 헤도를 쳐다보았다.
“……이게 필요할 것 같군요, 참모총장.”
그러고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헤도에게 내밀었다.
“난 우는 법을 알지 못한다오, 소궁주. 마음은 감사히 받겠소.”
“부담스러울 정도로 촉촉해진 눈이나 닦고 그런 말을 하시길. 그럼 이만.”
시리스가 떠나자 타샤는 큭큭 웃으며 헤도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헤도로부터 고지식하면서도 어딘가 어수룩한 자신의 아버지가 보여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료하는 동안 내가 지켜주도록 하죠, 헤도.”
“흠흠, 고맙소.”
“난 우는 법을 알지 못한다오. 풋!”
“타샤 경, 그러지 마시오…….”
타샤와 헤도, 치유사들을 뒤로한 채 전진을 시작한 동료들로 인해 온갖 결전기와 권능의 향연이 이어지고 있었다.
발라스와 알펜이 과격하게 치고 들어가면 나머지가 그들을 받쳐주었다. 태양력과 만빙, 룬칸델과 하이란의 검, 아메리스의 권능이 한데 어우러지며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콰셀 평원을 지워버릴 듯 맹렬하게 빗발치던 붉은 함대의 포격은 그 앞에서 빠르게 작아지는 모습이었다.
헤도 혼자서도 지금껏 버텨낸 포격이었다. 그런데 비슷한 초인들이 대거 참전했으니 함대의 위용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
무엇보다 드렉이 지상으로 내려온 탓에 기함 바리온이 그의 광심장으로부터 동력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최대 출력을 내는 기함이 중심을 잡아줘야 함대의 화력이 배가되는 것이다.
지상에서도 동력을 공급하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나, 지금 드렉에겐 그럴 여유가 전혀 없었다.
‘도대체 왜 능력이 발현되지 않는 것이냐……!’
창이 진의 몸을 긁어서 낸 잔상처에서 흐르는 피조차 흡수가 되지 않았다.
대투왕이 되어 성채로부터 흡혈의 힘을 얻은 이래, 드렉은 단 한 번도 이런 경우를 겪은 적이 없었다.
딱 한 번 다른 대투왕들과 청명족 투신을 상대했을 때에도 그의 피를 흡수할 수 있던 것이다. 격의 차이로 인해 능력이 잘 통해도 도망쳐야 했지만.
“네 능력이 통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한 모양인데, 지금 고민해야 할 건 다른 문제이지 않겠나. 가령, 죽더라도 최대한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든가.”
핏-!
드렉의 뺨에서 핏방울이 튀었다. 조금만 반응이 늦었어도 머리통이 가로로 나뉘었을 터.
‘처음에 거리를 주지 말았어야 했다. 오히려 헤도에게 빼앗은 피만 더 빠르게 소진되는 꼴이 되었어.’
결국 드렉은 흡혈을 포기한 채 공방에 정신을 집중했다. 평정을 되찾자 창은 더 예리하고 유연하게 움직였으나, 무기술조차 진이 몇 수는 더 앞서고 있었다.
과거 드렉이 적명족 대투왕으로서 적들을 공포에 빠뜨릴 수 있던 원천은 창이 아니라 흡혈이라는 고유 능력이었다.
그의 창술은 초인의 범주에선 평범한 수준이었다. 심지어 헤도를 상대할 때처럼 포격 지원도 받을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하필 상대는 그 초인들 사이에서 가장 정점에 가까운 진, 승산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귀환술이나 대규모 공간 도약을 준비해야겠다는 판단이 든 순간.
별안간 진의 손아귀에 맺힌 새하얀 구체가 보였다. 섬광포, 경지에 이른 후 진은 실로 오랜만에 그 마법을 쓰고 있었다.
화아아앗-!
드렉은 본능적으로 섬광포로부터 시선을 돌리며 창을 뻗었다. 과연 초인다운 반응이었으나, 애초에 진은 그의 눈을 노리고 섬광포를 터뜨린 게 아니다.
그가 섬광포를 피하느라 움찔하는 틈에 ‘팔찌’를 박살 낼 심산이었다. 찰나의 틈이면 충분한 일이었다.
쩔그럭! 오른팔에 걸린 금빛 팔찌가 끊어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왼팔에 한 짝이 남아있기는 했으나, 이대로라면 머잖아 그마저 끊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차원 이동은 불가능해진다. 지금도 왔던 병력이 모두 온전히 되돌아가는 건 불가능해졌다. 드렉은 눈에 띄게 하나 남은 팔찌를 지키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헤도 경을 몰아붙인 건 흡혈과 함대 지원 덕분이었군, 드렉. 수인 형태에선 볼 장 다 본 것 같은데, 밑천이 남은 게 있다면 빠르게 꺼내라. 무슨 짓을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상공에서도 하나씩 함선들이 추락하고 있었다. 헤도와 단테만 있을 때는 고전을 면할 수 없었으나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드렉은 이제 어떤 의도를 가진 게 아닌, 단지 생존을 위한 방어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진은 그가 잠시도 숨을 돌리지 못하도록 압박을 이어갔다.
모든 일격에 평식 압제가 적용되었고, 참격과 찌르기 사이에 엇박자로 투신기가 섞여 있었다. 눈을 찔러 들어온 검을 피하면 별안간 옆에서 투신기 9검 멸절의 날개 형태 뇌기가 몸통을 후려쳤고, 창대로 횡베기를 막으면 3검 단죄의 송곳이 가슴팍을 내리찍었다.
그렇게 움츠러들 때마다 날아드는 칼날은 항상 급소를 정확히 노렸다. 한순간이라도 실수하는 순간 끝이었다.
‘오히려 큰 기술로 발을 묶고 평범한 공격으로 내 숨통을 끊을 요량이로군.’
체력 안배 따윈 안중에도 없는 듯 거친 공격, 드렉은 진이라는 인간에게 질리고 있었다.
진 룬칸델을 경계하십시오, 그자는 청명족 투신을 대하듯 해야 합니다.
왜 시마트가 그렇게까지 강조를 했는지 절실히 이해가 되었다. 이 끔찍한 절기들을 난사하면서도 도무지 지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진 룬칸델은 아직 명왕군림검이라는 오의를 꺼내지도 않았다. 지금껏 사용한 검들은 분명 파틀록의 동포들이 말한 것과 달라.’
밀리는 와중 드렉은 계속 명왕군림검을 경계하고 있었다. 명왕군림검이 시작되면 빠져나갈 수 있도록 힘을 아끼고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진은 그 속을 훤히 알고 있었다.
‘분명 라키만에게 명왕군림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테지. 하지만 네놈이 겪을 고통은 따로 있다.’
별안간 진이 시그문드를 땅에 꽂았다. 어느새, 진과 드렉의 주위로 뇌기로 빚어진 기둥들이 놓여 있었다.
기둥들이 일제히 바닥이 내리꽂히며 일대에 뇌전 지대가 형성되었다. 드렉은 순간적으로 명왕군림검이라 착각했으나, 실제로 진이 펼친 건 투신기 4검 침식이었다.
눈 깜짝할 새에, 뇌전 지대로 수백 갈래의 뇌전이 빗발치는 모습이 이어졌다. 드렉은 그간 비축한 적뇌를 폭발시키며 그럭저럭 침식을 잘 받아쳤다.
‘저건 또 무슨……!’
그러나 침식의 뇌전에 숨어 소환된 불사조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가아아아악-!
테스가 시퍼런 화염을 토하며 포효하고 있었다. 중압, 오직 테스만이 다룰 수 있는 권능이 드렉을 무겁게 짓밟았다.
‘예비 기수 시절 바네사 경의 시험을 치를 때 사용한 연계, 오랜만이군. 나는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이 강해졌으나, 왠지 바네사 경은 지금도 이걸 모조리 쳐내실 수 있을 것 같군.’
드렉에겐 버거운 일이었다. 그는 눈에 띄게 움직임이 둔해진 채 밀려드는 뇌기와 청화를 간신히 버텨내고 있었다.
그리고 진은 땅에 꽂힌 시그문드를 그대로 둔 채 브라다만테를 뽑았다.
미약하고 흐릿한, 그러나 결코 꺼지지 않는 위대한 불이 새하얀 칼날을 휘감고 있었다. 룬칸델 마검 비기, 영원화.
적이 동료에게 피가 빨리는 고통을 줬으니, 불에 타는 고통으로 갚아줘야 했다. 뇌전 속을 쇄도하는 진을 보며 드렉은 어떻게든 광심장을 보호하고자 적뇌를 끌어올렸다.
스아악!
중압도 충분히 부당하건만, 상처로 파고드는 영원화는 한층 더 끔찍한 속성을 품고 있었다. 적뇌로 밀어내는 것조차 불가능한 불, 그건 그간 드렉이 늘 즐겨온 흡혈의 권능과 닮은 점이 있었다.
지독하게 일방적인 것이다. 남은 팔찌는 벌써 중압과 뇌전에 터져버렸고, 함대는 어느새 3할이 줄어 있었다.
이제 드렉으로서 남은 수는 단 하나.
어떻게든 귀환술을 펼치는 것.
그러려면 우선 진으로부터 벗어나 남은 동포들을 촉매로 사용해야 하기에, 드렉은 제 광심장을 뜯을 듯이 움켜쥐었다.
[크오오오오!]대투왕만의 전투 변신을 펼친 것이다.
‘성채화인가, 무식하게 크군.’
변신을 끝낸 드렉은 한 마리의 거대한 붉은 사자처럼 보였다. 포효에 천지가 송두리째 진동했으나 진의 눈엔 그저 영원화로 불태우기 좋게 몸뚱어리가 더 커졌다는 느낌이었다.
물론 드렉의 능력과 무위에 전혀 변화가 없는 건 아니었다. 가장 도드라진 변화로, 흡혈의 권역이 대폭 상승하고 있었다.
적명족의 함대로부터도, 함대를 밀어내며 싸우는 동료들로부터도 피가 빠져나와 드렉에게 향하고 있었다. 같은 적명족들의 피까지 서슴없이 흡수하는 것이다.
“헤도 경이 말한 능력입니다! 모두 거리를 벌리는 게 좋겠습니다.”
단테가 외치자 아메리스와 시리스, 베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모두 몸에서 핏방울이 빠져나가는 기괴한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다행히 헤도와 타샤가 있는 곳까지는 흡혈이 닿지 않는 듯 보였다. 물론, 성채화로 강화된 흡혈 역시 진에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거리가 먼 헤도와 타샤뿐만이 아니라, 어째서인지 발라스와 알펜으로부터도 전혀 피가 빠져나오지 않는 모습이었다.
[흡혈? 나랑 20대는 멀쩡하다만, 흠!] [……57대, 아무래도 우린 근본적으로 망자인지라 피가 없는 것 같소.] [크핫핫! 그거였군! 그럼 우린 이쯤에서 내기를 종료하고 소가주 쪽에 합세해서 저 대왕 모기를 최대한 빨리 끝장내는 게 좋겠소. 동료들이 피곤해질 수도 있으니. 증손아! 나와 20대가 그쪽으로 가도 되겠느냐아!]진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죽일 수 있지만, 동료들의 소중한 피를 한 방울이라도 더 아껴야 하는 것이다.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내 검만 감당하다 죽었을 텐데, 졸지에 내 선조들의 검까지 받게 생겼군, 드렉.”
드렉은, 절망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