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8)
제 88화
31화. 불사조, 테스
6성 이상의 마법사라면 누구든 단 한 마리의 불사조와 계약을 맺을 수 있다.
그리고 모든 마법사들은 당연하게도 자신이 ‘특별한’ 불사조의 주인이 되길 원했다.
켈리악 지플과 계약한 ‘벨롯’이나 과거의 대마법사 오 헨서크의 불사조 ‘마니에르’ 정도는 아니더라도.
이름을 대면 모든 마법사가 부러워할 만한 불사조의 주인이 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마법사에겐 선택권이 없다.
6성에 다다르고 불의 세계로 이어지는 차원문을 열었을 때. 그 안에서 어떤 불사조가 자신에게로 다가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카시미르가 얼떨떨한 얼굴로 진의 불사조를 올려다보았다.
온통 신비로운 푸른 화염에 뒤덮인 불사조가 날개를 펄럭일 때마다, 저 멀리 떨어진 카시미르에게까지 훈기가 번졌다.
현재까지 마법 학회에 정보가 등록된 불사조는 1만 마리가 넘지만, 그중에서도 ‘푸른 불꽃’을 자랑하는 불사조는 단 하나뿐.
“테스……! 이럴 수가, 진 공자!”
진이 소환한 불사조의 이름은 테스, ‘가장 고귀한 불사조’라고 불리는 환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테스를 소환한 마법사는.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 시대 최고의 마법사가 되었다.
-먼 훗날에도, 그대에게 내가 좋은 대련 상대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어요. 세상의 정점에 오른 순간에도 말이에요.
카시미르는 테스를 보자마자 알리사가 그렇게 말한 이유를 깨달았다.
알리사는 더 이상 진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스르릉…….
진이 천천히 브라다만테를 뽑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시작할까요? 알리사 님.”
가만히 서서 알리사에게 검을 겨누고 있는 진. 얼마 전까지는 도전자였지만, 이제는 입장이 바뀌었다.
“갑니다, 진 공자.”
오늘 도전자의 입장에 선 쪽은 알리사인 것이다.
새하얀 오러가 두 주먹을 물들인 순간, 알리사가 쏜살같이 돌격해 거리를 좁혔다.
현재 진의 동체 시력으로는 그녀의 최대 속도를 온전히 따라갈 수 없다. 어느 정도는 예측해서 반격하는 게 평소 진의 패턴이지만.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테스가 서슬 퍼런 불꽃을 뿜어 알리사의 접근을 저지하기 때문이었다.
화륵! 화르륵-!
불사조의 불꽃은 가장 작은 것이라도 5성 화염 마법 수준의 위력을 담고 있다. 7성 무인의 단련된 몸이라 할지라도, 오러로 보호막을 치지 않으면 중상을 입을 수밖에 없는 위력.
게다가 테스의 불꽃엔 ‘중압’이라 불리는 특수한 힘이 더해져 있었다.
‘저게 들러붙으면 체력 소모가 너무 막심해진다. 속전으로 끝내야 해!’
중압이란, 이름 그대로 짓누르는 힘.
테스의 불꽃엔 무게가 있었다. 자연법칙을 벗어난 영적인 무게가. 때문에 오러 보호막 위에 붙는다 할지라도 평범한 불꽃처럼 무시하거나 쉽게 꺼뜨릴 수 없었다.
몸이 물에 빠진 것처럼 무거워지니까.
알리사가 불꽃을 피해 기교를 부리듯 이리저리 몸을 놀리자, 순식간에 주도권이 진에게로 넘어왔다.
‘테스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3분 남짓. 그 안에 알리사 님에게 유의미한 부상을 입혀야 여유롭게 끝낼 수 있다.’
비록 대련이라 할지라도.
진은 지난 109번의 대련에서 늘 죽음의 위협을 느꼈다. 그리고 오늘은 자신이 알리사에게 그 감정을 느끼게 해 줄 차례였다.
그게 지난 3개월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성실히 자신을 성장시켜 준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보상일 테니 말이다.
쉬이익!
불꽃을 피하다가 잠시 몸이 허공에 뜬 알리사의 등허리로, 날카로운 횡베기가 날아들었다.
“큿!”
급히 몸을 회전시켰지만 검끝이 알리사의 등을 훑고 지나갔다. 경미한 열상이 남았을 뿐이지만, 알리사의 긴장감을 조이기엔 충분한 공격이었다.
이어 그녀가 착지해 다시 중심을 잡기 전에, 진의 왼손에 한 덩이의 둥근 마력이 뭉쳤다.
‘바람 칼날! 이걸로 알리사 님이 한 번 더 물러서게 만들고.’
알리사의 발목으로 바람 칼날이 쏘아졌고, 그녀는 진의 예상대로 다시 한번 보법을 밟아야 했다.
‘알리사 님이 주도권을 빼앗고자 조급해지도록 유도해서…… 끝낸다!’
지난 109번의 대련에서 파악한 알리사의 패턴은 실로 다양했다. 현재의 자신이 그녀의 변칙을 예상하고, 차단하는 건 아예 불가능할 정도로.
하지만 알리사의 수많은 패턴 속엔 한 가지 공통된 ‘질서’가 있었다.
바로 어떤 상황에서든 주도권을 잡으려고 한다는 점.
‘검술과 마법, 영기가 어우러지기 시작하면 알리사 님도 피로감을 느낄 수밖에 없으니, 줄곧 주도권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지. 하지만 오늘은 그게 패인이 될 겁니다.’
왼쪽으로 한 걸음을 떼 바람 칼날을 피한 알리사. 그녀가 다시 진이 있던 자리로 시선을 옮겼을 땐.
입에 불을 머금고, 브레스를 쏠 준비를 끝낸 테스만이 시야에 들어왔다.
‘후. 마검사란 말이죠, 진 공자!’
알라사가 홱 고개를 돌렸다.
진은 어느새 알리사의 측면에서 검광을 뿌리고 있었고, 테스 역시 브레스를 쏘았다. 측면과 정면에서 동시에 부담스러운 공격이 들어온 것이다.
두 공격을 동시에 피하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그랬다간 한 번 더 진에게 주도권을 넘겨줘야 했다.
‘차라리 브레스는 오러 보호막으로 버티고, 진 공자의 칼날을 붙잡는다!’
그리고 진의 복부에 정타를 먹여 템포를 끊은 다음. 불사조 소환이 해제될 때까지 버텨서 승부를 내는 게 알리사의 계획이었다.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주도권을 잡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흐름을 끊지 못한 채 계속 수세에 몰리면 판도를 뒤집을 기회는 결코 잡을 수 없었다.
화아아악!
테스의 브레스가 알리사를 덮쳤다. 원뿔처럼 점점 넓어지는 푸른 불길이 알리사를 완전히 뒤덮은 듯 보였지만.
불꽃은 알리사가 펼친 오러 보호막을 뚫지 못했다. 불사조의 힘은 소환자의 마력에 따라 정해지는 만큼, 테스라 할지라도 지금은 이 이상의 위력을 낼 수 없었다.
‘잡았다!’
그리고 알리사는 계획대로 진의 칼날을 붙잡았다. 오러로 손바닥을 보호하고 있음에도 선혈이 튀었지만, 손가락이 잘려 나갈 정도는 아니었다.
쿠직!
알리사가 주먹을 내지르기 위해 힘껏 뒷발을 굴리자, 진이 빨려 들어가듯 그녀에게로 당겨졌다.
워어!
기합 소리와 함께 정권이 내질러졌다. 보호막을 치느라 전력을 담을 순 없었으나 진을 물러나게 만들기엔 넘치는 위력.
쩌엉, 하고 통쾌한 타격음이 울려야 하는 찰나. 알리사가 흠칫하며 눈을 치켜떴다.
‘없어? 분명 진 공자를 잡아당기고 주먹을 뻗었는데?’
주먹이 닿은 곳은 허공이었다.
반사적으로 쥐고 있는 브라다만테를 훑어보니, 손잡이를 쥐고 있어야 할 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럼 내가 잡아당긴 건……!’
‘중압’의 무게.
한 덩이의 푸른 불꽃이 브라다만테의 손잡이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진은 칼날이 알리사에게 잡힌 순간부터 이미 브라다만테를 포기하고 자리를 바꾼 상태였다. 대신 브라다만테에 중압의 불꽃을 둘러 그게 자신의 무게라고 착각하게 만든 채.
알리사는 오러 보호막을 뒤덮고 있는 테스의 브레스 때문에 그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그녀는 즉시 그 모든 걸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사태를 되돌리기엔 늦었지만 말이다.
“하하…… 제가 졌군요, 진 공자. 수많은 상대와 싸워 봤지만, 이런 속임수는 상상도 못 해 봤어요.”
테스가 브레스를 거두자.
알리사의 오러 보호막이 허물어지며, 그녀의 등 뒤에 단검을 겨누고 있는 진의 모습이 드러났다.
“기껏 무리해서 오러 보호막을 펼치고 승부수를 띄운 건데, 오히려 독이 되었군요. 세상에, 뒤를 잡혀서 질 줄이야. 조금 충격인데요. 어디서부터 계산한 거죠?”
“알리사 님과 처음 대련한 날부터, 라고 말하면 너무 건방져 보일까요?”
알리사가 졌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아뇨,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네요. 조금 소름도 돋고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알리사 님.”
“나야말로 즐거웠어요, 진 공자. 아마 공자는 내가 지금 얼마나 뿌듯한 마음인지 잘 모를 거예요.”
알리사가 뒤돌아보자 진이 단검을 거뒀다.
잠시 서로를 바라보던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나눴다.
“열여섯이 되기 전에 비먼트 특임대 출신 무인을 이긴 기분은 어때요?”
“솔직히 좋죠, 아주 좋지만…… 내년쯤엔 전력을 다한 알리사 님과 다시 싸워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알리사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저는 상대를 죽여야 할 때가 아니면 무장을 하지 않아요. 그러니 진 공자는 무장한 나와 싸울 일이 없어야겠지요.”
110번의 대련에서, 알리사는 단 한 번도 건틀릿과 갑옷을 사용하지 않았다. 무장을 끝낸 알리사는 카시미르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대이므로, 진을 성장시키기엔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뭐…… 이 기세가 계속 이어지면 공자가 무장한 저를 넘어설 날도 그리 멀진 않을 것 같네요. 아무튼 축하해요, 진 공자. 저녁에 파티라도 열어야겠어요.”
대련을 지켜보고 있던 카시미르는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사실 6개월도 부족하리라 생각했는데…… 미쳤군, 미쳤어. 시론 경, 이번 편지는 특종입니다!’
카시미르는 솔직히 진이 알리사를 넘어서기까지 넉넉히 1년은 필요하리라 예상했다.
그런데 고작 110일이라니.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도 머릿속이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자기는 이제 정신 차리고 가서 파티 준비 좀 해.”
“아, 어어. 알았어.”
* * *
파티는 당연히 티칸에 있는 모든 동료들이 함께했다.
진은 만찬이 진행되는 동안 알리사를 꺾은 사실과 불사조 테스를 소환한 일을 다른 동료들에게도 알렸다.
“테스라면, 그 푸른 불꽃의 불사조 말이죠? 도련님. 저도 몇 번 들어 본 적 있습니다. 아주 희귀한 불사조라고…….”
“길리 님! 그 정도가 아니에요. 테스를 소환한 마법사는 반드시 최고가 됐다고요. 진 공자! 사인해 줘요, 빨리! 여기 제 셔츠 등짝에.”
엔야가 호다닥 진 옆으로 달려와 눈을 빛냈다.
뒤늦게 알게 된 사람들이 놀라워하는 사이, 무라칸과 퀴칸텔. 두 용은 잠시 할 말을 잊은 모습이었다.
쩔그럭.
심지어 용들은 동시에 포크를 떨어뜨리기까지 했는데, 심히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꼬마. 방금 테스…… 라고 했냐?”
“진, 정말로 그분이 너와 계약을 맺었단 말이냐? 시, 심지어 그분과의 첫 대면을 그 누추한 지하 수련장에서 치렀고, 소환하자마자 전투를 하시게 만들었다고?”
이번엔 진이 당황했다.
이 자존심 강한 용들이 온몸을 파들파들 떨어 가며 테스에게 극존칭까지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무라칸, 퀴칸텔 님. 그게 무슨 문제라도……?”
“야, 일단, 소환해 봐!”
“마력 소모 너무 심해서 힘든데.”
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테스를 소환한 순간.
“화염계의 주인을 뵙습니다!”
퀴칸텔이 넙죽 엎드리며 그렇게 소리쳤고.
“거…… 화염계의 주인… 오랜만… 아… 왜, 왜 또…… 반말 좀 할 수 있지. 나도 짬이…… 그래, 내가 미안합니다. 그래요, 아, 알겠으니까 욕 좀 그만해요.”
무라칸은 어려운 선생님이라도 만난 것처럼 쩔쩔매는 모습을 보였다.
갑작스레 펼쳐진 비현실적인 광경에 사람들은 방금 먹은 음식이 체할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간 테스와 무라칸이 대화를 나누는 듯 보였는데, 인간들은 테스의 목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었다.
“음…… 그래, 그래. 알겠습니다. 그건 내가 진한테 전해 줄 테니까, 아아, 거 참. 욕 좀! 여기 화염계도 아닌데 자꾸 이러시면 나도 화냅니다?”
쿡쿡쿡쿡쿡!
테스가 무지막지한 속도로 무라칸의 정수리를 쪼아 댔으나, 놀랍게도 그 성질 더러운 흑룡은 반격조차 하지 않고 뒷걸음질만 쳤다.
이내 쪼기를 끝낸 테스가 무어라 말하자, 무라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 알겠습니다, 그건 진한테 내가 전해 줄 테니까 좀 가라앉히셔. 하, 진짜 오자마자 이렇게 무안을 주시네. 어어, 또 때리려고. 하여간 성질머리…… 안 되겠다, 꼬마! 이분 다시 화염계로 보내 드려.”
진이 소환을 해제하자 테스가 몸부림을 치다 차원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퀴칸텔은 그제야 일어서서 한숨을 내쉬었다.
“너랑 퀴칸텔 님은 테스가 엄청 어려운 것 같은데…… 신선하다 못해 충격적이다. 대체 무슨 얘길 한 거야?”
진이 묻자 무라칸이 재수 옴 붙었다는 듯 몸서리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