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9)
제 99화
32화. 코스모스의 각축장(1)
‘이세계’에 대해선 아직 세상에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지금까지 다른 차원의 존재는.
흑해 등의 ‘미보호 구역’처럼 마물들이 생성되는 지역이나, 불사조를 비롯한 각종 환수를 통해 어렴풋이 증명되고 있을 뿐이었다.
전생에서 마법학이라면 아카데미의 웬만한 교수들만큼이나 꿰고 있는 진조차, ‘화염계’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 본 것이다.
“화염계. 이건 꽤 고급 지식인데, 하찮은 미물들은 알 필요가 없거든 원래. 용들 중에서도 화염계가 어떤 곳인지 명확히 아는 놈은 드물고, 직접 가 본 녀석들은 손에 꼽아.”
“불사조들이 이세계의 환수라는 건 흔한 상식인데, 그 이세계에 화염계라는 정확한 명칭이 있다는 건 처음 듣는군.”
진이 턱을 괴며 말하자 무라칸이 고개를 저었다.
“화염계라는 이름은 어디까지나 우리 차원에서 부르기 편하게 명칭을 만든 거지. 거긴 온통 불과 불사조밖에 없는 차원이거든. 그 세계의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는 최상위계 신들도 몰라.”
모든 사람들이 신기하다는 듯 집중해서 무라칸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특히 마법학도인 엔야는 당사자인 진보다도 더 흥분한 모습이었다.
“신들도 모른다고? 그럼 화염계는 신들의 권역 밖이란 뜻인가?”
“딩동, 정답이다. 불의 신 쉬누조차 화염계의 불을 마음대로 다룰 순 없어. 대신 화염계의 주인인 테스 역시 쉬누의 불을 뜻대로 할 수 없지.”
“허… 그럼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도련님의 소환수가 되었다는 뜻이네요? 무라칸 님. 경사스러운 일 아닌가요?”
“딸기파이도 정답. 하지만 경사스러운 일이라…… 오히려 그 반대라고 봐야지. 나쁜 일이야.”
무라칸이 급격히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혀를 찼다. 옆에 있는 퀴칸텔은 그때까지도 테스를 만난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듯, 다소 굳은 얼굴이었다.
1초, 2초, 3초…….
무라칸의 정적이 길어지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꼴깍 침을 삼켰다. 동료들은 테스의 소환자에게 혹시 특별한 저주라도 걸리는 게 아닌가 생각될 지경이었다.
“아, 뜸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왜 나쁜 일인데?”
참다못한 진이 신경질을 내자, 무라칸이 푹 고개를 숙였다.
“너한테만… 경사란 말이다. 빌어먹을, 나는 그 양반이 불편하다고! 왜 하필 테스야? 다른 좋은 불사조도 많잖아? 마니에르라든가, 생키쉬라든가!”
이어 무라칸이 허공에 주먹을 내지르며 분통을 터뜨리자, 곳곳에서 안도의 한숨이 나왔고. 진은 이 흑룡이 철들 날은 앞으로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뭐, 나는 짜증나지만 심심한 축하는 전하도록 하마, 꼬마. 아직은 네 마력이 부족해 그 양반의 힘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겠지만, 어쨌건 다른 허접한 불사조보다야 더 낫지.”
“나중에 테스의 힘을 다 개방할 수 있게 되면 얼마나 강해지는데?”
“전력을 다 개방할 순 없어, 절대로. 전력이라면 중위계 신쯤은 호흡 한 번에 소멸시켜 버리는 게 네 소환수다.”
퀴칸텔이 흠칫하며 잠시 몸을 떨었다.
과거 올타와 함께 화염계에 갔을 때 겪은 악몽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퀴칸텔은 그날, 눈앞에서 순식간에 다섯의 신이 소멸하는 모습을 직접 지켜본 것이다.
물론 그 자리엔 무라칸도 함께 있었다. 두 용들의 신인 솔더렛과 올타 역시.
“뭐……? 그렇게 엄청나다고?”
진이 심상찮은 퀴칸텔의 반응을 살피며 물었다.
“화염계 바깥에선 그 힘을 다 낼 수 없다더군. 내 입장에선 천만다행인 일이지. 그래서 까불어 볼 수도 있는 거고. 마찬가지로 우리 세계의 신들도 화염계로 넘어가면 권능을 제대로 쓸 수 없고…… 일종의 페널티다.”
“음, 이해했다.”
그런 사기적인 수준이 아니더라도.
문헌상에 적힌 테스의 전투력 정도라면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점은, 테스의 불꽃이 쉬누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언젠가 룬칸델과 지플이 전면전을 펼치는 건 필연.
그때 만약 진이 켈리악을 상대하게 된다면, 테스의 힘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일반적인 화염 마법은 아무리 등급이 높아도 쉬누의 계약자인 켈리악에겐 절대 통하지 않으니까.
“아, 그나저나 테스가 내게 전해 주라던 말은 뭐야? 그리고 너는 대체 테스랑 어떻게 말하는 거냐. 나는 못해?”
“못해. 영적인 대화야. 네게 전해 주라던 말은, 뭐 별건 아니고… 네가 무척 마음에 든단다. 자길 그렇게 무심히 소환한 인간은 처음이라나? 하여간 성격 독특한 양반이야. 나중에 성장하면 화염계에 놀러 오래.”
“어, 나도 거기 갈 수 있어?”
“얼추 10성 정도의 위력을 품고 있는 화염 속에서 자연스레 숨을 쉴 수 있는 경지가 된다면. 그 동네가 좀 그래.”
무라칸의 설명이 대충 일단락된 후, 동료들은 파티가 끝날 때까지 진의 승리와 테스에 대한 이야기로 밤을 지새웠다.
파티가 끝나자마자, 카시미르는 목욕을 재계하고 집무실에 바른 자세로 앉아 편지를 작성했고 말이다.
* * *
1796년 1월 1일.
새해가 밝았다.
무릇 새해의 첫날은 온 가족이 모여 서로의 한 해가 무탈하기를 빌어 주고, 가족애를 새로이 다지거나 연인, 친구 등과 아름다운 앞날을 기원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이 남자, 수호기사 칸은 애석하게도 흑해 한복판에서 시커먼 마물의 피와 내장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의 품 안엔 곱게 밀봉된 한 장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그의 새해 첫 임무는 우편배달인 것이다.
‘이번엔 3개월 만이로군. 도련님께서 설마 알리사 뱃저를 꺾은 건가? 이젠 나도 이 편지를 조금씩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칸도 내용이 궁금했다. 그래서인지 이번엔 평소보다 빨리 시론이 있는 흑해의 중심에 도착했다.
“가주님, 수호기사 칸입…….”
“이리 내라.”
“옛!”
근엄한 얼굴로 편지를 받아, 매우 빠른 속도로 밀봉을 뜯는 시론. 마치 유학길에 자녀를 보내 놓은 여느 아버지와 다를 게 없는 모습이었다.
(존경하고 또 존경하는 위대한 기사, 시론 룬칸델 경께.
아아, 두 번째 편지로군요. 저는 지금 막 떠오르는 태양을 등진 채, 그 어느 때보다도 정갈한 마음으로 이 편지를 작성하고 있습…….)
“짧게.”
“예?”
“앞으로 카시미르에게 되도록 짧게 쓰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가주님.”
이번에도 두툼한 편지 종이는 7할 이상이 쓸데없는 미사여구였다.
하지만 네 번째 장에 이르자, 시론의 입가가 서서히 둥글게 변하기 시작했다.
“진 도련님이 알리사 뱃저를 꺾은 모양이로군요.”
눈치를 살피던 칸이 먼저 운을 뗐다. 그러자 시론이 빙긋 웃으며 칸을 내려다보았다.
“흐흐, 등 뒤를 잡아 이겼다더군. 게다가 테스라는 불사조를 얻은 모양이야. 너도 그게 뭔지 알고 있을 테지?”
“죄송합니다, 가주님. 저는 모르는 사항입니다.”
“푸른 불꽃을 내는 불사조인데, 이걸 소환한 자는 늘 당대 최고의 마법사가 되었다더군.”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난 불사조 따위엔 흥미가 돋지 않아. 오늘 편지엔 불사조 이야기뿐이다. 녀석의 검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는 단 한 줄밖에 적혀 있지 않지.”
(검술은 매우 좋아지셨습니다. 아주 훌륭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시론은 그 사실이 못마땅했다.
진이 검과 마법, 영기를 동시에 다루는 건 허락했지만. 룬칸델이라면 당연히 그 셋 중 검에 가장 많은 비중을 쏟길 바라는 게 시론의 바람일 수밖에 없었다.
칸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문제가 있군요. 설마 도련님께서 마법에만 너무 심취하고 있는 건 아닐지, 우려가 되는 대목입니다.”
“그래, 네 말대로다. 어련히 알아서 잘할 것 같긴 하다만, 신경이 쓰인단 말이지…… 흐음.”
한참 동안 정적이 흘렀다.
칸이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와중, 이내 시론이 무언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론 하이란, 그자의 손자. 요즘 뭐 하고 있나 알아봐.”
론 하이란.
비먼트의 검술명가, 하이란가의 가주이자 한때는 시론의 적수였던 인물.
그러나 시론이 창성에 오른 뒤엔 격차가 명확해졌고, 하이란은 2세대마저 룬칸델의 자녀들에게 밀린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런 상황에 하이란에 가문 역사상 최고의 재능을 지닌 한 아이가 태어났으니. 그게 론의 손자였다.
손자임에도 불구하고, 세대를 뛰어넘어 벌써 하이란의 차기 가주로 내정된 초신성.
“단테 하이란 말씀이십니까? 마침 그 소년의 근황에 대해선 이미 파악된 정보가 하나 있습니다.”
“그래?”
“예, 얼마 전 코스모스의 각축장과 관련한 의뢰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해적 하나를 암살해 달라는 의뢰 명단을 보니 단테 하이란이 가명으로 각축장에 참가 등록을 했더군요.”
시론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코스모스의 각축장이라…… 그게 아마, 웬 해적이 주최하는 무투 대회였지? 한 10년쯤 전에 메리가 거기서 준우승을 해서 분통을 터뜨렸던 기억이 나는군.”
“맞습니다, 가주님. 제가 알기로 그게 메리 아가씨의 첫 패배였습니다만. 두 달 후 따로 설욕을 하셨죠.”
가문에 아는 사람이 얼마 없는 비밀 중 하나였다.
“진도 거기로 보내. 단테 하이란과 한판 붙을 수 있도록. 재미있겠군. 거기선 막내 녀석이 마법과 영기를 쓰지 못할 것 아니냐? 오직 검으로만 승부를 봐야 한단 뜻이지.”
진이 영기와 마법, 검술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경우는 ‘목격자가 없을 때’ 혹은 ‘목격자를 모두 살해할 수 있을 때’뿐이었다.
당연히 무투 대회에선 세 가지 힘을 동시에 사용할 수 없었다. 마법사로 참가해 마법만 사용하거나, 무인으로 참가해 검술만 사용해야 했다.
그리고 단테는 아직 진이 순수 검술만으로 상대하기엔 버거운 인물이었다.
시론은 그런 단테에게 진이 자극받길 원하고 있었다. 불사조도, 마법도 좋지만. 언제나 최우선으로 고민해야 할 건 검이니 말이다.
“예, 카시미르에게 가주님의 뜻을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 * *
하지만 시론의 우려가 무색할 만큼, 열여섯 살의 진은 검술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만 번 휘둘러, 처음과 끝이 같게……!’
알리사와의 대련이 끝난 뒤부터는, 매일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오직 심검 훈련에만 몰두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전처럼 조급한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알리사를 꺾은 후 깨달음을 얻은 덕이었다.
“지겹지는 않은가요, 진 공자?”
“예, 재밌기만 합…….”
“지겹다고요!? 그런 진 공자를 위해 준비했습니다! 짜잔!”
카시미르가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진의 눈앞에 흔들어 보였다.
“이게 뭡니까?”
“코스모스의 각축장 참가 지원서입니다. 최근 칠색조 정보원들이 알아본 바, 여기 꽤 재미있는 친구가 참가하더군요. 진 공자가 눈독들일 만한 상대였습니다. 단테 하이란! 하이란가의 차기 가주!”
“단테 하이란? 그만한 인물이 대체 거길 왜…….”
진의 인식 속 코스모스의 각축장은 해적들의 놀음판일 뿐이었다. 실제로 참가자도 대부분 2, 3성 수준에 머무르는 허접한 대회가 맞았다.
“뭘 잘 모르시는군요. 이건 생각보다 위험한 무투 대회랍니다.”
카시미르가 눈을 홉뜨며 뒷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