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0)
제 99화
32화. 코스모스의 각축장(2)
“제 생각보다 위험하다고요?”
진이 납검하며 묻자 카시미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보통의 무투 대회처럼 살인 금지 같은 최소한의 규정도 없으니 위험한 대회죠. 참가자들의 전반적인 수준이 낮은 건 사실이나, 일방적인 학살을 즐기기 위해 찾아오는 실력자도 꽤 됩니다.”
코스모스의 각축장은 해적이 펼치는 대회답게 아무런 규정이 없었다.
상대를 죽이는 건 물론이고, 특수 물품 허용에도 아무런 제재가 없다. 심지어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상대를 암살, 독살하는 것도 허용되는 미친 대회가 바로 코스모스의 각축장이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상대를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겁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상대의 가족을 인질로 잡아 협박해서 승리한 미친놈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죠.”
때문에 코스모스의 각축장에선 상대가 2성, 3성이라 할지라도 늘 ‘더러운 술수’를 의식하며 싸워야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참가한 4, 5성 풋내기들이 참가자들의 주 먹잇감입니다. 세상의 어두운 면을 모른 채 정도만 걷다가, 속임수와 술수가 난무하는 대회에서 좌절을 맞이하는 거죠. 아, 공자가 그렇다는 말은 아닙니다. 공자는 뭐…… 그런 과와는 거리가 멀죠.”
매일 열심히 수련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진은 정도와 아주 먼 인간이었다.
“그리고 상대가 술수를 쓰든 말든, 압도적인 무위로 찍어 누르는 6성 이상의 참가자들이 그 대회의 포식자죠. 대부분은 그냥 자극을 느끼고 싶어서 찾아오는 변태들입니다만.”
“자극이요?”
“예, 그런 놈들 있잖습니까. 모든 수를 동원해 필사적으로 맞서는 상대를 짓밟으며 쾌감을 얻는 부류…… 가장 위험한 놈들이죠.”
“허, 그게 무슨 무투 대회란 말입니까?”
카시미르의 설명대로라면 저열하다 못해 끔찍하기까지 한 대회였다. 그저 자극적인 경기로 도박과 놀음을 유도하는 게 전부인.
“뭐, 정식 명칭은 무투 대회가 아닌 각축장이니까요. 솔직히 단테가 아니었다면 공자에게 참가해 보라고 권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확실히 그 대회와 안 어울리는 인물이로군요. 우승 상품으로 어마어마한 보물 같은 거라도 걸려 있답니까?”
“우승자는 모종의 상품과 금화 1천 중 하나를 골라 받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기준에선 꽤 큰돈이지만, 하이란가의 차기 가주에겐 푼돈도 안 되겠군요.”
“그럼 거기 숙적이라도 있답니까?”
“현재로선 단테가 왜 그 대회에 참가했는지는 파악된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엔.”
잠시 뜸을 들이는 카시미르.
“그냥 본인의 검을 시험하고 싶은 게 아닐까 싶군요. 과연 자신의 검이 악의와 술수 앞에서도 빛을 발할지 궁금한 거겠죠. 그것도 아니라면, 세상 물정 모르고 똥통에 빠진 거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단테가 본인의 검을 시험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그 불쾌한 대회에 참가한 게 사실이라면 말이다.
‘어쨌거나 나도 구미가 당기는 건 사실이야. 단테 하이란이라…… 그자도 전생에선 감히 꿈꿀 수도 없는 상대였지.’
회귀 전, 진이 룬칸델에서 막 추방당한 무렵.
세인들은 툭하면 검술의 단테와 마법의 베라딘 중, 누가 더 뛰어난 인물인지를 토론하곤 했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기 때문이었다.
약관의 나이에 7성을 넘어서고, 서른에 9성이 된 거대 가문의 차기 가주들. 두 사람이 공식 석상에서 마주할 때마다 온 소식지가 도배되는 건 당연한 일. 심지어 둘은 나이도 같았다.
‘그땐 룬칸델의 자녀들보다 그 두 사람이 더 많은 주목을 받았었지. 루나 누님은 세상에 워낙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차기 가주였던 첫째 형님도 그들보다는 좀 떨어졌으니.’
당시 룬칸델의 2세 중엔 단테보다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인물이 루나 하나뿐이었다. 물론 단테가 나머지 형제들보다 명백히 강했다고 볼 순 없지만, 세간의 평은 그랬다.
‘궁금한 인물이긴 했어. 한번 만나 봐서 나쁠 건 없다. 설마 그놈도 베라딘처럼 확 깨는 성격을 갖고 있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아까부터 카시미르의 과장된 태도가 조금 신경 쓰였다. 그냥 자연스럽게 한번 나가 보라고 권유하면 될 것을, 꼭 장사꾼이 약을 팔듯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요즘 칠색조는 단테 하이란의 뒷조사를 하고 다닐 여유가 없을 텐데? 최고 인력은 모두 지플과 알루, 킨젤로에 붙어 있으니까. 우연히 얻어 걸린 정보라기엔 미심쩍은 구석이…….’
거기까지 생각한 진이 무언가 떠오른 듯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가 시켰군. 단테에 대한 정보는 룬칸델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아. 그러고 보니 함께 서재를 찾았을 때, 아버지가 카시미르 경에게 할 말이 있다며 나를 먼저 내보내기도 했고.’
그때 이후, 카시미르가 자신에 대해 시론에게 보고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의문이 들었으나,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진의 입장에선 나쁠 게 하나도 없는 일이니까.
대신 조금 장난기가 돋았다.
“음…… 카시미르 경, 그거 꼭 나가야 합니까?”
“어, 예?”
“그런 추접한 대회에 별로 나가고 싶지 않아서요. 단테 하이란이야 앞으로 얼마든지 마주칠 일이 많은 친구고요.”
“흠, 흠! 진 공자, 잘 생각해 보세요. 공자는 룬칸델이니까 단테랑 마주칠 일이 당연히 많겠죠! 하지만 한판 붙어 볼 날도 많을까요?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일 수도…….”
“하하, 제가 무슨 싸움광도 아니고. 요 근래 세 달을 내리 알리사 님과 붙었더니 피곤하기도 하고요.”
“고, 공자, 그러지 말고…… 그냥 절 믿고 한번 나가 보세요. 다, 단테 하이란의 무위를 점검할 수 있는 큰 기회 아닙니까? 하하하, 갑자기 혀가 꼬이는군요. 더위를 먹었나…….”
진이 창문을 가리키며 웃었다. 창밖에 펑펑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1월 초순의 한파가 한창인 것이다.
“더위요?”
“이런, 또 실언을. 아무튼 공자! 참가 지원서는 다 써 두었습니다. 그냥 절 한번 믿고 나가 보시는 겁니다? 공자에게 분명 큰 경험이 될 거라는 직감이 왔습니다!”
“뭐…… 카시미르 경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죠. 나가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진 공자! 아, 참고로 내일 당장 출발해야 합니다. 기한이 빠듯하거든요, 그럼 이만!”
“내일요? 잠깐, 카시미르 경!”
호다닥, 뒤돌아보지도 않고 십년감수한 얼굴로 훈련장을 빠져나가는 카시미르.
그리고 진의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아버지에게 나에 대한 보고를 하고 있군. 그리고 이번엔 아마 처음으로 직접 명령이 내려온 것이겠지. 단테 하이란과 한번 붙여 보라고.’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버지가 자신을 신경 쓰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노골적인 관심은 생각하지 못했다.
아마 다른 형제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난리가 날 것이다.
‘그나저나 카시미르 경은 연기에 정말 재능이 없네… 나한테만 유독 그런 건가? 자유국 티칸의 왕이 되었을 땐 정치를 엄청 잘했다고 들었는데.’
진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 * *
코스모스의 각축장이 주최되는 곳은, 벨라도 제후국 남쪽의 한 섬이었다. 묘하게 벨라도의 영해를 벗어나 있어, 인근 해역에서 활동하는 해적들의 놀이터나 다름없는 버려진 섬.
그 섬으로, 진은 동료를 단 한 사람도 대동하지 않은 채 홀로 왔다.
‘아버지가 직접 내린 임무나 다름이 없는데,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릴 순 없지.’
누군가를 데려왔다면 분명 감점으로 작용했을 터.
진이 보기에 아버지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혼자, 오로지 검 한 자루로만 이 쓰레기 같은 대회를 재패하는 일.
눈이 이렇게 많은 곳에서 마법과 영기를 사용하는 건 미친 짓이었다.
‘마미트 이후 혼자 뭔가를 하는 건 처음이군.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무법자들 소굴이 무대고.’
이동 관문으로 벨라도 제후국을 거쳐, 어선에 두둑한 사례금을 쥐여 주고 도착한 이 섬의 첫인상은.
썩 좋지 않았다.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는 밑바닥들이 한데 모여 와글거리는 느낌이랄까. 악취가 진동하는 길거리 곳곳에 말라붙은 핏자국이 선명했다.
툭하면 사람을 찌르는 동네인 것이다. 외딴 섬인 데다, 방문자라곤 해적이나 인생 쓴맛 단맛 다 본 하류 무인들이 대부분인데 치안을 유지하는 방편마저 아무것도 없으니 당연했다.
“켈켈켈켈.”
약에 취해 이렇게 웃으며 일없이 거리를 배회하는 미친 인간도 다섯 걸음에 한 번씩은 마주할 수 있었다.
물론 전원이 그 모양인 것은 아니다.
가끔 호위를 대동한 있는 집 자식들도 보였고, 꽤 그럴듯하게 갑옷을 챙겨 입은 기사들도 보였다. 각축장 참가자거나, 구경거리를 즐기기 위해 찾아온 경우였다.
진이 그중 하나를 뒤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들을 따라가면 접수처에 무난히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30분쯤 걸었을까, 예상대로 진이 닿은 곳은 접수장이었다. 돼지우리를 연상시키는 낡고 더러운 경기장 앞에 그냥 탁자 하나를 세워 둔 게 전부였지만.
“각축장 참가를 신청하러 왔소.”
카시미르가 미리 써 둔 지원서를 내밀자, 접수장에 앉아 있던 사내가 눈을 치켜떴다. 거구에 털이 가득하고, 팔뚝 곳곳에 유치한 문신이 가득한 전형적인 해적이었다.
“뭐야, 신청 기간 지났어. 꺼져. 돌아가다 뒈지면 더 좋고.”
“지났다고? 분명 오늘 해가 질 때까지 받는다고 들었는데.”
“아, 그냥 내가 지금 접수장 받고 싶은 기분이 아니라고. 말귀를 못 알아듣네?”
그러면서 슬쩍 검지와 엄지로 동그라미를 그리는 남자. 명백히 돈을 달라는 의미였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그냥 돈을 주고 끝낸다는 게 평소 진의 지론이었다.
물론, 한 대 쥐어박는 것을 포함해서.
빠악!
진이 낡은 탁자를 냅다 걷어차며 일어서려는 남자의 머리통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주먹 안엔 구겨진 참가 지원서가 들어 있었고.
“어윽! 아이고, 이 새끼가.”
“접수시켜. 돈은 주겠다.”
그리고 금화 몇 개를 탁자 위에 던지자, 남자가 만면에 화색을 띠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은 그 대목에서 잠시 흠칫할 수밖에 없었는데, 꽤 힘을 담아 날린 주먹이었던 것이다. 어지간히 단련된 4성쯤 무인이라 할지라도 정신이 아찔할 수밖에 없는 위력.
그런데 남자는 그걸 정통으로 맞고도 돈을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웃고 있었다.
“접수 완료! 크하하, 화끈한 꼬마로군. 마음에 들어. 네 녀석은 13조에서 싸우게 될 거다. 이거 받아서 들어가면 안에 있는 놈들이 안내해 줄 거다.”
그리고 작은 종이에 뭔가를 적어 진에게 내미는 남자.
13조, 진 그레이.
다짜고짜 날 때린 놈이니 괜찮은 놈들로 붙여 줄 것. 아, 이 꼬마가 혹시라도 오늘 밤을 버티지 못하면 지체 없이 잘 구워서 상어들 밥으로 줄 것.
-해적왕 코스모스
“으하하, 낭만과 사랑이 가득한 코스모스의 각축장에 온 걸 환영한다. 한번 잘해 보라고.”
남자가 온통 금으로 덮인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가 이 대회의 주최자인, 해적 코스모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