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1)
제 99화
32화. 코스모스의 각축장(3)
낭만과 사랑이 가득한…… 각축장의 내부는 여러모로 감옥과 비슷한 구조였다.
길고 어두운 복도가 있고, 그 양옆으로 다닥다닥 붙은 한 칸짜리 방들은, 일반 가정집에서 볼 수 있는 문 대신 쇠창살로 막혀 있는 모습.
감옥과 다른 것이 있다면, 참가자들이 마음대로 쇠창살을 여닫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안내역을 맡은 코스모스의 부하 해적들이 의외로 꽤 친절하다는 점도.
“뭐야. 핏덩이 참가자가 들어왔네? 크하하, 올해 각축장은 애들이 풍년이구만. 이리 내 봐. 어디 보자…… 뭐야, 13조? 어어, 게다가 선장을 두들겨 팼다고? 물건이네, 이 친구.”
안내역이 신기하다는 듯 진을 훑어보았다.
“요즘 애들은 겁이 없나 봐. 너 말고도 우리 선장 팬 애가 하나 더 있는데, 둘이 붙으면 꽤 볼만하겠는데? 조가 다른 게 아쉽군.”
굳이 그 애가 누구냐고 물을 필요가 없었다. 단테 하이란이 아니면 이 미친 섬에서 그런 짓을 할 만한 청소년은 없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어느 방을 쓰면 되지?”
진이 시큰둥하게 묻자 안내역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 데나 골라서 들어가! 13조 경기는 내일부터 진행되니까, 오늘은 심심하면 이따 다른 조 싸울 때 구경이나 하든지. 죽기 전에 재밌는 기억을 하나라도 더 갖고 가야 하지 않겠어?”
안내역은 진이 당연히 금방 죽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다행히 빈정거리는 투는 아니었기에 진도 그냥 그를 지나쳐 방을 고르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찬찬히 걸으며 방들을 살펴보니,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게 실감되었다.
구석에 앉아 기도를 읊조리는 사람, 뭔지 모를 물건들을 꺼내 놓고 점검하는 사람, 벌써 패거리를 만들어 저들끼리 떠들고 있는 이들도 다수.
어떤 면에선 마미트 무법 지대보다도 야만적인 느낌이 강했다.
‘그나저나 그 코스모스라는 해적, 쉽게 볼 만한 인물이 아니다. 왜 이런 데서 해적질이나 하고 있는 건지.’
진이 어깨를 으쓱하며 마저 방을 골랐다. 벌써 10분쯤 복도를 돌아다녔지만, 특별히 더 낫거나 깨끗한 방은 없었다. 하나같이 낡고 더러운 방뿐.
‘심지어 참가자에 비해 방이 부족하다. 방마다 둘, 셋이 함께해야 하는 건 기본이로군. 일부러 이렇게 다 수용하지 못하도록 해 놓은 의도가 너무 뻔해서 불쾌할 지경이야.’
코스모스의 각축장은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상대를 죽이는 것조차 허용되는 무투 대회다. 사실상 무투 대회보다 생존 게임에 더 가깝다.
그러니 일부러 이렇게 비좁은 방에 참가자들이 함께 지내도록 설계한 것이다. 이 좁고 허름한 방에서 기회가 될 때마다 서로 치고받고 싸우라는 의미로.
심지어 참가를 등록한 이상, 어떤 경우에도 철회는 불가능했다. 입구엔 코스모스의 부하들이 쫙 깔려 있었고, 다른 참가자들 역시 도망자를 가만히 내버려 둘 만큼 선하지 않았다.
어설프게 도망을 시도하는 이가 있다면, 부하들에게 잡히기 전에 다른 참가자들이 먼저 그를 육포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코스모스가 ‘오늘 밤을 못 넘기면 상어 밥’ 운운을 한 것도, 안내역이 어차피 죽을 거라는 뉘앙스로 말한 것도 전부 이런 이유에서였다.
아직 소년티 폴폴 나는 진이 이런 상황 속에서 살아남는 걸 예상하긴 어려울 테니까. 해적들은 설령 진이 4성 이상의 실력을 갖춘 천재라 할지라도 죽을 확률이 더 높다고 판단한 상태였다.
암투와 술수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순수한 무력보다 관록과 경험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적들의 상식 속에서, 그건 결코 소년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뭘 잘 모르시는군요. 이건 생각보다 위험한 무투 대회랍니다.
문득 카시미르가 한 말을 떠올리는 진. 직접 와서 실상을 살펴보니 대번에 그의 말이 이해되었다.
‘뭐, 나름 신선하긴 하네.’
진이 복도 중앙 부근 방의 쇠창살을 잡아당겼다. 철컥, 끼익…… 기분 나쁜 마찰음이 울리자, 안에 있던 참가자 셋이 동시에 진을 노려보았다.
“여기 세 명인 거 안 보여? 다른 방으로 꺼져라, 꼬마야.”
“나 원, 아무리 밑바닥 대회라지만 하다하다 저런 애새끼들까지 참가를 시켜?”
“왜 멀뚱멀뚱 가만히 서 있냐, 빨리 가라.”
셋 다 이십 대 중반에서 후반의 남성. 껄렁한 말투로 보나, 삐딱하게 앉아 있는 자세로 보나 별 볼 일 없는 잡배들이었다.
‘이런 친구들을 다룰 땐 매가 약이라고 누가 그랬더라? 가물가물하네. 옛 스승이었나, 메리 누님이었나.’
그래도 두들겨 패기 전에 기회는 줘야지. 그렇게 생각한 진이 세 사람과 한 번씩 눈을 마주쳤다.
“오늘부터 이 방은 나 혼자 쓴다. 지금부터 셋을 셀 거야. 몇 걸음 옮겨서 이 방을 나가기엔 충분한 시간이지?”
다른 누군가와 방을 같이 쓸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언제 뒤통수를 치거나 등을 찌를지 모르는 이들을 곁에 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당연히 잡배들은 제 귀를 의심한 채 눈동자만 끔벅거렸다.
“하나 둘 셋.”
빠각! 퍽! 투드득!
주먹질 두 번에 관절기 한 번. 결과는 각각 안와 골절, 광대 함몰, 어깨 탈골.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폭행에 잡배들은 반응조차 할 수 없었다.
자지러지는 비명 소리가 이어지자 근처 다른 방에서 환호성이 퍼졌다. 이내 진이 허리춤에 손을 올리자, 세 잡배가 헐레벌떡 방을 빠져나갔다. 사소한 욕설조차 한 마디 내뱉지 않고 말이다.
방 정리는 끝.
하지만 진짜 시작은 이제부터다.
‘이 방에 나 혼자 있는 걸 보고 덤비는 놈들이 한둘이 아닐 테니…… 오늘부터 당분간 잠은 다 잤군.’
정확한 예상이었다.
채 10분이 지나기도 전에, 방을 차지하기 위한 새로운 도전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니까.
“어이, 방 좀 같이 쓰자.”
이렇듯 호기롭게 말하며 들어와서는.
“커헉! 크헉!”
두어 대 두들겨 맞고 도망치는 이들은 차라리 귀엽기라도 했지만.
복도를 지나가는 척하며 독액을 뿌리려고 하거나, 서넛씩 몰려와 석궁 난사를 하고 도망치는 경우는 도저히 예쁘게 봐 줄 수가 없었다.
때문에 그런 놈들은 손가락을 몽땅 자르거나, 손목을 베어서 돌려보냈다. 죽이는 것보다 다른 참가자들에게 더 좋은 메시지가 될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진이 방을 접수한 후 가장 신경 쓰이는 부류는 이것이었다.
은근히 살펴보기만 하고 지나가는 놈들.
‘그것들은 분명 나중에 제대로 기회가 왔을 때 날 칠 거다. 내가 지금처럼 정면만 신경 써서는 놈들의 헛짓거리를 막기 어려울 때.’
그게 딱히 두렵지는 않으나 거슬리는 건 사실이었다. 지금은 마법과 영기를 사용할 수 없으니까.
‘어떤 상황에 처하든, 오직 검으로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건 확실히 부담스럽군. 늘 세 가지 힘을 동시에 사용했었으니.’
아니면 동료들이 있었다. 얼마 전까진 세상 그 누굴 만나더라도 무조건 한 번은 살아남을 수 있게 해 줄 목걸이도 지녔었고.
‘아버지가 날 여기 보낸 이유를 알겠어. 단테와 겨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검술에 자만하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했던 것 같군.’
신경을 잔뜩 곤두세운 채 복도를 노려보고 있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바깥에서 안내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자, 지금부터 1조와 2조의 경기가 있을 예정이다! 구경할 거면 관객석으로 놀러들 가라고. 아, 그리고 관객석에선 살인 금지인 거 다들 알지? 사고 치면 뭣 되는 수가 있으니, 신경들 쓰라고.”
철컥, 철컹!
복도에 늘어선 거의 모든 쇠창살이 하나둘씩 열리기 시작했다. 모두 1, 2조의 경기를 구경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관객석은 살인이나 공격 행위가 금지된 만큼, 참가자들이 유일하게 긴장을 풀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한 암묵적인 룰이 있는 것인지 관객석으로 이동할 때에도 참가자들은 서로 공격하지 않았다. 그래서 진도 자연스레 이동 행렬에 섞이려는 찰나.
‘아까 날 살펴보기만 하고 그냥 지나간 놈들. 내가 그놈들이라면, 저 행렬 속에서 날 찌를 거다. 그게 가장 성공률이 높을 테니까.’
진이 아무리 뛰어나도 인파 속에서 난데없이 날아드는 칼날까지 정확히 캐치하고, 피하는 건 무리였다.
관객석 이동 시 서로 공격하지 않는 건 어디까지나 ‘암묵적인 룰’일 뿐.
주최 측에서 직접 제시한 룰은 아니었다. 참가 지원서 뒷면에 적힌 룰을 오는 길에 수십 번 읽었지만, 분명 그런 내용은 없었다.
물론 그 속에서 진을 공격한 놈들은 다른 참가자들에게 눈총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혼자 방 하나를 차지한 건방진 꼬마를 잘 죽였다며 반길 이들도 적지 않았다.
‘천천히 나간다고 손해 볼 게 없다. 복도가 좀 한적해졌을 때 나가는 게 좋겠어.’
정확한 판단이었다.
아까 진을 살펴보고 그냥 지나친 몇몇 참가자들은 따로 움직였으나 한 패거리였다. 그리고 그들은 진을 4성 정도의 실력자로 보았고, 지금 제거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들이 진을 제거하려는 것엔 달리 이유가 없었다. 단지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사냥감 중에서, 진이 가장 재미있어 보였을 뿐.
어쨌거나 그들은 진이 신중하게 행동한 탓에 계획을 실행하지 못했고,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안내역이 낮게 감탄사를 뱉었다.
“마냥 실력만 믿고 겁대가리를 상실한 꼬마인 줄 알았더니, 눈치도 좋군. 선장이 특별히 쓸 만한 녀석들로 대진 상대를 붙여 주라던 이유를 알겠어.”
대꾸하지 않고 방을 나서는 진.
경기장이 가까워질수록 서서히 함성 소리가 선명해지고 있었다. 관객석에 도착한 진은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관객 규모에 잠시간 할 말을 잊고 말았다.
‘미친, 이걸 보러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온단 말이야?’
참가자를 제외한 일반 관객만 얼추 천 명은 넘을 듯 보였다.
일순 자신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있진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룬칸델 외나무다리 파티에 참석할 수 있는 거물이 이런 곳을 찾아올 것 같진 않았다.
‘단테 하이란 역시 아직 제국 귀족들을 제외하면 얼굴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참가한 거겠지.’
그래도 이렇게까지 관객이 많은 대회인 줄 알았다면, 변장에 조금 더 신경을 썼을 텐데.
괜히 입맛을 다시며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자, 자연스레 앞자리에 앉은 관객들의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그들은 매년 이 대회를 구경하는 벨라도 제후국의 부유층인 듯 보였다.
“자네 그 소문 들었어?”
“어떤 것 말인가?”
“룬칸델의 예비 기수가 이번 각축장에 가명으로 참가한다는 이야기가 있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