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2)
제 99화
32화. 코스모스의 각축장(4)
흠칫.
‘어우 씨, 깜짝이야. 뭐 이렇게 갑자기 훅 들어와?’
관객석에 도착하자마자 이런 소문을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은근슬쩍 그들 근처에 자리를 잡고 귀를 활짝 여는 진.
“룬칸델의 예비 기수? 하하, 이 사람아. 그런 대단한 유망주가 뭐가 아쉽다고 각축장엘 나온단 말인가? 밑바닥도 이런 밑바닥인 곳이 없건만.”
“나도 엊그제쯤 코스모스 해적단 간부들과 술을 마시다 들은 얘기야. 참가자 중에 엄청난 소년 하나가 있다는데, 룬칸델 예비 기수가 틀림없다더군.”
“흐음, 그래? 어디 보자…… 지금 룬칸델에서 예비 기수 활동을 할 만한 인물이. 데이토나, 헤이토나 룬칸델과 진 룬칸델. 셋이로군.”
“진 룬칸델은 작년에 한창 떠들썩했지. 온 소식지가 그 소년의 5성 달성을 다뤘으니. 어쨌거나 그 간부 녀석이 아주 확신을 했다고. 그 셋 중 하나가 참가한 게 분명하다며 말이야.”
진은 자신이 이런 뜬소문을 바로 옆에서 듣고 있다는 사실이 꽤 흥미로웠다.
‘룬칸델의 위세가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이군. 나는 소식지에 소식이 많이 알려졌다지만, 토나 형님들의 이름까지 알고 있다니.’
토나 형제도 슬슬 예비 기수가 될 시기이기는 했다. 회귀 전에 두 사람 역시 1796, 7년쯤에 예비 기수 활동을 시작했었으니까.
또한 이 ‘코스모스의 각축장’이라는 대회의 성격을 곰곰이 되짚어 보니.
전생에 ‘악질 살인광’으로 이름을 떨쳤던 토나 형제가 참가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경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번 생의 토나 형제는 어린 시절부터 진에게 당하고 살았기 때문인지, 전생에 비해 상당히 순해졌지만 말이다.
‘만약 형님들이 참가한 거라면 내 입장에선 완전 좋지. 조용히 데려와서 대회 끝날 때까지 내 방 지킴이로 쓰면 되니까. 기타 피곤한 일도 다 형님들한테 떠넘기고.’
이후 귀족들은 과연 어떤 참가자가 룬칸델 예비 기수일지 짧은 토론을 벌였다.
그뿐만 아니라, 근처에 있는 다른 귀족들 역시 저들끼리 속닥거리며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관객들 대부분이 귀족이로군. 하긴, 돈 많은 녀석들이야 언제나 자극적인 걸 찾기 마련이니까.’
끼이이익!
원형 경기장 한쪽에 있는 거대한 철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자 경기장 가운데로 나서는 한 남자, 해적 코스모스. 그가 등장하자마자 관객들이 일제히 환호를 내질렀는데, 그들에게 코스모스의 인기가 상당한 듯 보였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코스모스!”
“코스모스으!”
귀족들이 상기된 얼굴로 코스모스의 이름을 연호하는 것은 꽤 기묘한 풍경이었다. 평소 평민을 얕잡아 보는 그들이 한낱 범죄자에게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각축장을 찾아 주신 신사, 숙녀 여러분. 이 해적왕 코스모스, 다시 한번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흐하하! 이번엔 예년보다 더 많은 분들이 찾아 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딱!
코스모스가 박수를 한 번 치자, 돌연 사방에서 폭죽이 쏘아졌다. 하늘이 휘황찬란하게 물들고, 폭음이 이어지자 공기가 순식간에 후끈해지는 느낌이었다.
“자자, 그럼 곧바로 시작하겠습니다! 흐흐, 얘들아! 1조 두 놈 꺼내라! 나팔을 불어라아아!”
뿌우우우-! 뿌우!
경기장 가장자리에 있는 해적들이 나팔을 불어 대기 시작하자, 양쪽 철문이 올라가며 참가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각 조 참가자는 14명.
13조까지 있으니 총 182명의 무인이 이 끔찍한 대회에 출전한 것이다. 그리고 이만한 인원이 출전하는 무투 대회는 세상에 그리 많지 않았다.
“여어어엉광-! 스러운 첫 경기의 주인공은…… 전년도 16강 진출자이자 상어 해적단의 귀염둥이! 멘티스! 그 상대는!”
거기까지 말한 코스모스가 미간을 좁히며 대진표에 얼굴을 더 가까이 가져다 댔다. 표정이 영 떫은 것이 아무래도 문제가 있는 모양이었다.
“하아, 이런. 나중에 상어 녀석들 선장에게 제가 하소연을 좀 듣게 될 것 같군요. 그리고 저는 대진표 짠 부하 녀석을 수장시킬 생각이고요. 어쨌든 소개합니다! 그 이름은, 폴 믹!”
“폴 믹이 누구야?”
“처음 듣는 이름인데, 코스모스의 반응을 보니 뭔가 있는 친구 같군.”
귀족들이 의아한 듯 이야기하는 사이, 멘티스가 먼저 경기장으로 나섰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등짝에 상어 문신을 한 그는 두 자루의 곡검을 쥔 채 껄렁이며 걸었는데, 영락없는 해적의 모습이었다.
“허허, 코스모스 형님. 폴인지 믹인지 하는 놈이 뭐 하는 놈이오? 이 동생 겁을 다 주시고. 섭섭하려고 그럽니다, 모양 빠지게.”
코스모스는 애써 너스레를 떠는 멘티스의 시선을 외면하는 모습.
그리고 폴 믹이 대기실을 빠져나오자 관객석이 빠르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어린애잖아?”
“뭐야, 이번 대회엔 꼬마들이 많이 참가했다고 듣긴 했지만. 이건 좀 심한데?”
“무릎을 조금만 굽히면 등에 걸고 있는 장검이 바닥에 쓸리겠어. 허허.”
진 역시 조금 당황스러웠다.
폴 믹이라 불린 소년은 한눈에 보기에도 열다섯을 넘지 않을 것 같았다.
‘열셋? 열넷? 세상에, 저런 어린애를 대회에 참가시켰다고? 미쳤군!’
하마터면 경기장으로 뛰어 들어갈 뻔했다. 눈앞에서 저만한 아이가 죽는 걸 가만히 보고 있을 순 없다는 마음에.
아마 코스모스의 반응이 묘하지만 않았다면 그랬을 것이다.
‘설마 저 아이가 단테 하이란인가? 아냐, 단테는 나보다 세 살이나 많…….’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코스모스는 경기 시작을 알리며 한쪽으로 빠질 준비를 하고, 멘티스는 어깨를 으쓱해 어이없는 마음을 표출하려는 찰나.
스걱!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일이었다.
멘티스의 목이 잘린 것은.
“아?”
“방금…… 뭐야?”
“똑바로 본 사람?”
관객들은 대부분 멘티스의 목이 떨어진 순간을 정확히 인지하지도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곧 6성을 바라보는 진조차 하마터면 놓칠 뻔한 움직임이었으니까.
‘검기였다. 순간적으로 거리를 좁히고, 다섯 걸음쯤 남았을 때 검기를 이용해 목을 베었어. 미친, 설마 저 녀석이.’
아니, 설마가 아니다.
이 대회 출전자 중, 단테 하이란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저런 묘기를 부릴 수는 없을 테니까.
관객석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방금까지 떠들어 대던 이들 모두가 입을 떡 벌린 채 할 말을 잊은 것이다.
털썩!
멘티스의 몸이 땅바닥에 엎어지는 소리가 관객석까지 들릴 지경.
코스모스는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난감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 거 참, 멘티스는 전년도 16강 진출자라 뽑아 먹을 게 많은 놈이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가 버리네…… 어쨌거나, 폴 믹의 승리입니다!”
코스모스가 승자를 발표했지만, 객석은 여전히 조용했다. 다들 충격에 빠져 넋이 나간 와중, 돌연 진의 건너편 특급 객석에서 한 남자가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난 앞으로 폴 믹에게 다 걸겠어! 폴 믹! 폴 믹! 훌륭하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남자는 진이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이런 미친, 베라딘 지플!? 저놈이 왜 여기 있어!?’
진이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베라딘의 얼굴을 재차 확인하는 사이, 관객들이 뒤늦게 환호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참고로 베라딘은 지플 원로들의 명을 받고 각축장에 찾아온 것이다. 하이란의 차기 가주가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으니, 한 번 두 눈으로 직접 살펴보라는 명이었다.
“와아아!”
“어린 녀석이 장난 아니구만!”
“나도 이번 각축장은 폴 믹에게 건다! 몰빵이야!”
그리고 진의 바로 앞에 앉아 있던 벨라도 제후국의 두 귀족은, 확신에 찬 듯 이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이것 보라고, 내 정보가 틀린 적이 있던가? 바로 저 소년이었군. 룬칸델의 예비 기수 말일세!”
“허…… 놀랍군. 하긴, 룬칸델 예비 기수가 아니라면 저 나이에 저럴 수는 없지. 내 생각엔 진 룬칸델일세.”
“내 생각도 그렇다네. 토나 형제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어리지.”
근처의 다른 귀족 관객들도 그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물론 큰 소리로 진의 이름을 외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예비 기수의 이름과 행적을 함부로 떠벌리고 다녔다간 룬칸델의 보복을 당할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저들끼리만 속닥거리는 것이다. 폴 믹이 진 룬칸델이야, 폴 믹이 예비 기수였다고!
그걸 다 듣고 있는 진은 헛웃음이 나왔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단테가 저렇게 동안이었다는 얘긴 처음 듣는군. 전생에 소식지로 본 얼굴은 그냥 곱상하다는 이미지였는데, 도저히 열아홉처럼은 안 보이잖아.’
진이 폴 믹, 아니. 단테와, 아직까지도 박수를 치고 있는 베라딘에게 한 차례씩 시선을 뒀다.
‘베라딘은 아마 가문에서 단테를 한 번 보라고 시켜서 온 거겠지? 저놈도 단테만큼이나 신경 쓰여. 분명 날 알아볼 거고…… 아는 척이라도 하면 여간 귀찮은 게 아닐 텐데.’
불안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하필이면 그 순간 베라딘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진을 발견한 것이다.
“어? 와!”
미친 듯이 진을 향해 손을 흔드는 베라딘.
물론 진은 못 본 체하며 다시 단테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우습게도, 단테는 고개를 돌려 베라딘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저자는… 베라딘 지플. 설마, 나한테 아는 척을 하고 있는 것인가? 우린 저번 지플 연회에서 한 번 본 게 전부이건만, 격하게 반가워하는군. 좋다, 나도 그대를 반가워해 주마, 베라딘이여!’
그렇게 착각한 단테가 베라딘을 향해 손을 흔들자 진은 결국 풋,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단테의 속마음을 읽은 건 아니지만, 대충 어떤 상황인지 알 것 같기 때문이었다.
‘웃긴 놈들이네.’
코스모스의 부하들이 후다닥 달려와 멘티스의 시신을 수습하고 있었다.
“자자, 신사 숙녀 여러분. 어쨌거나 상어 해적단의 멘티스는 이렇게 짧은 생을 마감하였군요. 그럼 승자에게 소감 한 마디 듣고 다음 경기로 넘어갈까요? 폴 믹 군. 기분이 어떻습니까?”
“이렇게 또 세상의 악인을 하나 없앴다는 기분이오. 부디 그가 다음 생엔 해적 따위가 되지 않길 기원하겠소.”
애티가 줄줄 흐르는 겉모습과는 심히 상반되는 걸걸한 목소리. 게다가 해적 소굴인 이곳에서 해적을 무시하기까지.
많은 해적들이 뿌득 이를 갈았으나 단테에게 덤벼드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방금 그 비범한 검술을 봤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코스모스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하하, 해적이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직업이 아니긴 하지. 하지만 어영부영 살다가 시궁창까지 몰린 밑바닥 인생들이 시작하기엔 더없이 좋다는 걸 잊지 말아 주시길.”
단테가 대답하지 않고 대기실로 걸음을 옮기자 코스모스가 다음 경기를 진행했다.
그리고 진은 단테의 뒷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 녀석을…… 내가 이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