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81)
제 888화
220화. 지치지 않는(4)
* * *
진마계, 독왕성.
바이스 스칼로, 쿠칸 텐, 시케르 하이타, 미솔 휴완, 틸리아스 비셉스, 다일러스 클라우피노, 레일라 벨가시움.
일곱 명의 마왕들이 라갈의 독마성을 찾았다.
독마성은 며칠 전까지 독왕성이었으나, 라갈은 지토로부터 ‘마’라는 칭호를 받자마자 가장 먼저 성의 이름을 변경했다.
“크하핫, 다들 이렇게 자리를 해주니 정말로 내가 왕이 됐다는 실감이 나는군. 못 오거나 안 온 친구들도 좀 있는 것 같아서 서운하긴 하지만 말이야.”
라갈이 만찬장에 앉은 왕들을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자네가 가진 능력에 비해 대장군에 너무 오래 머무르긴 했지.”
“아, 쿠칸,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큭큭!”
“게다가 지토 님께 파엘리토 님과 같은 격을 가진 이명까지 받다니. 부러워서 미치겠군그래.”
“그래서 내가 그 이름에 걸맞게 인세 최강 중 하나인 엘로나 지플이란 녀석을 반쯤 죽여놓고 왔다는 것 아니냐, 시케르.”
“미솔, 미솔.”
“아, 미솔 이 친구는 여전히 말을 못 하는군. 그래, 그래 정도로 알아들으면 되겠지?”
“미솔.”
“……축하드립니다, 라갈 님.”
“우리 불쌍한 틸리아스 비셉스! 너도 우리랑 똑같은 왕인데, 너무 그렇게 눈치 보지 마. 지토 님 뒤통수를 노리고 있는 건 빌어먹을 바셋 놈이지 네가 아니잖아?”
틸리아스 비셉스, 그는 현재 진마계에 유일하게 지토에게 저항하고 있는 세력인 ‘비셉스’가 출신 마왕이었다. 그럼에도 지토에게 충성심과 능력을 인정받아 마왕이 되었으나, 대부분의 마족들이 그를 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헤아려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보다는 네 옆에 앉은 다일러스에게 더 감사해야지. 다일러스가 매일 눈을 부라리며 그 미친놈을 쫓고 있으니 말이다. 이봐, 다일러스. 지난번에 바셋 놈이 습격해서 때려 부순 성은 다 복원했나?”
“네놈이 신경 쓸 일이 아니다.”
라갈은 다일러스의 뻣뻣한 태도에도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래? 거 새끼 걱정돼서 물어봤더니 까칠하게 굴긴. 내가 독마가 된 게 부러우면 부럽다고 말하지 그래. 시케르처럼 솔직하게.”
다일러스는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라갈은 독마가 됐으니 기분이 좋기만 했다.
“라갈 펀. 이게 무슨 짓이지?”
하지만 아무리 기분이 좋아도, 레일라의 고압적인 말투까지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라갈이 평소 그토록 시기하고 질투하던 파엘리토의 동생이니 말이다.
“아, 이건 초대를 하는 게 아니었는데. 왜? 뭐가 문젠데?”
“이 만찬장에 깔린 영혼주들. 검마 님의 명을 듣지 못했나? 당분간 분명 영혼주 생산을 중단하라고 하셨을 텐데.”
“X랄, 원래 그런 규제 명령은 아랫것들만 착실하게 따르면 되는 거야. 그놈 한 마디 때문에 우리 같은 마왕들이 마음대로 술도 마음대로 못 먹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레일라.”
“천 년 전부터 이미 왕이었던 이들조차 검마 님의 명령을 따르고 있거늘…… 왕이 되고 마라는 칭호를 얻더니 점점 더 미쳐가는구나.”
“듣자 듣자 하니까 이게.”
스릉!
레일라의 세검이 순식간에 라갈의 목젖에 닿았다.
“한 번만 더 명령을 어기고, 검마 님을 모욕하면 지금처럼 내 검이 멈출 일은 없을 것이다. 라갈 펀, 주제를 알고 살아라. 내가 검마 님처럼 자비로운 성격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아, 왜들 이러나! 좋은 자리에.”
“그래, 라갈이 작은 실수를 좀 한 것으로 너무 그러지 말자고, 레일라. 우리가 축하해주러 왔으니 영혼주를 조금 담근 것뿐 아니겠나, 그렇지. 라갈?”
“미솔, 미솔, 미솔.”
바이스와 쿠칸, 시케르와 미솔이 나서자 라갈은 인상을 풀며 어깨를 으쓱였다. 이내 라갈이 손뼉을 치자 하인들이 분주히 만찬장으로 음식을 날랐다.
다일러스와 레일라.
식사는 그 두 사람을 빼면 전체적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다만 라갈을 제외한 다른 마왕들은 그 두 명의 눈치를 살폈다.
식사가 끝날 무렵, 라갈의 부하가 허겁지겁 만찬장을 찾았다. 그는 방금 사키엘이 보낸 영상을 담은 수정구를 들고 있었다.
“라갈 님, 방금 총서기관으로부터 영상을 전달 받았습니다.”
“영상? 뭔데?”
“마왕 지칼로의 전투라고 하더군요.”
“지칼로? 그 녀석은 육상 주둔지를 접수하러 갔을 텐데, 설마 인세가 먼저 지칼로를 친 거냐?”
“그런 모양입니다. 총서기관 쪽 분위기가 좋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래, 수정구 두고 나가라.”
“분위기가 좋지 않다니, 설마 지칼로가 누군가한테 진 건가?”
“설마, 그 지칼로라고. 혹 졌다 할지라도 목숨은 부지했을걸.”
라갈이 영상을 재생시켰다.
당연하게도 그 영상 속엔 지칼로가 루나에게 처참하게 박살 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마왕들은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은 채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끝도 없이 하늘을 물들이는 붉은 검기에 마왕들 대부분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말았다.
심지어 루나는 지칼로를 끝장낸 다음에도 전혀 지친 기색이 없는 모습.
“뭐…… 뭐야, 이게. 이봐, 레일라. 얼마 전 파엘리토 님이 백경의 붉은 기운엔 제약이 따른다고 하지 않았어? 저 인간, 저만큼 붉은 힘을 쓰고도 전혀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미, 미솔…….”
“지칼로를 이렇게 쉽게 소멸시켰다고……? 시론 룬칸델도, 엘로나 지플도 아닌데? 루나 룬칸델이 분명 그들보다는 약하다고 들었건만.”
루나만큼은 아니지만, 이어진 시리스와 대장군들의 전투도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저건 만빙…… 설마 만빙에도 저 붉은 기운처럼, 대장군 급 마족을 소멸시킬 수 있는 힘이 있던 건가.”
“빌어먹을, 시칸이……! 저놈이 감히 내 혈족을!”
시리스가 대장군들을 끝장내는 걸 보며 쿠칸이 울분을 터뜨렸다. 빌라굴과 함께 죽은 시칸은 텐가의 핵심 전력 중 하나였다.
“지칼로와 빌라굴을 다 잃었으니 염화 지대, 라미에르가는 끝장이로군…….”
영상이 끝나자 레일라가 마왕들을 돌아보았다.
그녀와 다일러스는 이미 독마성에 오기 전 영상을 확인한 상태였다.
“이게 바로 마왕들과 대장군들이 해야 할 일이다.”
“레일라?”
“그게 무슨 소리야?”
“지토 님이 인세로 나서기 전에…… 혹은, 인세가 진마계로 쳐들어오기 전에. 마왕과 대장군들은 루나 룬칸델이 가진 붉은 기운을 모두 소진시켜야 한다.”
마왕들의 눈동자가 커졌다.
“저걸 없애라고?”
“파엘리토 님의 명령인가?”
“아니, 파엘리토 님 너무하시네. 지칼로도 저렇게 훅 갔는데 우리더러 저걸 어떻게 하라고? 파엘리토 님께서 직접 나서시는 게 맞지 않나?”
“검마께서 이 자리에 있어도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군, 바이스.”
“윽, 그건.”
“게다가 이건 파엘리토 님이 아니라 지토 님의 명령이다.”
레일라가 손으로 허공을 갈랐다. 허공엔 자그마한 아공간이 열렸고, 레일라는 그 속에 담긴 검은 덩어리들을 꺼냈다.
“알고 있겠지, 이건 지토 님의 육신이다. 하나씩 나눠줄 테니, 루나 룬칸델과 상대할 때 사용하도록. 물론, 지토 님의 육신이 있다 해도 일대일은 절대로 피해야 한다. 적어도 둘, 셋 이상은 함께 행동해야 해.”
“아, 하긴. 꼭 신사처럼 싸워줄 필요는 없겠지. 지칼로가 일대일로 싸웠으니 자연스럽게 착각을 해버렸군. 지토 님의 육신을 가진 마왕 여럿이 한꺼번에 싸운다면, 할 만하겠어.”
“하지만 놈들도 공간도약 능력이 있다. 언제든 지원군이 올 수 있을걸.”
“그래서 인간들이 그렇게 못 하게 만들려고 지토 님이 게속 균열을 생성하고 계시기도 하지. 다행히 우리가 가진 능력들 중엔 공간도약을 제어할 수 있는 종류도 있고.”
“미솔 미솔.”
마왕들이 대화하는 사이, 라갈은 잠자코 머리를 굴렸다.
‘……뭐지? 지토 님은 얼마 전 사키엘이 살점 하나를 사용한 것 때문에 직접 검마성으로 가 파엘리토에게 주의를 주셨었다. 그런데 갑자기 마왕들에게 살점을 나눠준다라?’
물론 당시 지토는 ‘즐거움 있는 손해’라면 얼마든지 괜찮다는 말을 덧붙이긴 했으나, 라갈은 돌아가는 길에 내내 지토가 짜증을 냈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지토 님의 의중을 모르겠군. 지토 님은 아율라 때문에 힘을 다소 잃어서 살점을 잃는 것에 민감한 느낌이었는데. 아니면 설마 파엘리토가 과거 지토 님께 대항할 때 챙긴 살점들인가? 그래서 지토 님 몰래 마왕들을 화살받이로 사용한 후, 그 공을 가로채려는 심산일 수도 있겠어.’
어느 쪽이든 확실하지는 않다. 라갈은 일단 레일라를 더 자극하지 말고, 추후 지토에게 사실을 확인하는 게 좋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지토 님의 명령이라면 당연히 따라야지. 후후, 레일라. 보아하니 넌 이미 지토 님과 독대하고 온 모양인데, 그래서 우리 중 누가 먼저 인세로 가면 되는 거냐?”
“넌 아니다, 라갈.”
“그렇겠지. 이 몸은 엘로나 지플을 족치고 왔으니까, 좀 쉴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여간 우리 지토 님은 가끔 이렇게 섬세하셔.”
“내가 먼저 가겠다! 시칸의 원수를 갚아줘야겠어.”
“가능하다면 저도 가고 싶습니다, 레일라 님.”
틸리아스였다. 당연히 그는 다른 마족들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 계속 공을 올릴 필요가 있는 인물이었다. 레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쿠칸 텐, 바이스 스칼로, 틸리아스 비셉스, 미솔 휴완. 너희 넷이 한 번에 간다. 검마께서 며칠 내로 너희가 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실 것이다.”
“호오, 우리 넷이 지토 님의 육신을 가진 채 한 번에 출전하면, 붉은 기운을 없애는 걸 넘어 루나 룬칸델을 죽일 수도 있겠군.”
“그렇게 된다면 너희 넷도 라갈처럼 지토 님께 새로운 칭호를 받게 될지도 모르지. 하지만 넷이라고 하여 방심하지 마라, 너희 중 살점이 없을 때 지칼로보다 강한 자는 아무도 없으니. 아, 그나마 미솔은 비슷하겠군.”
“미솔솔.”
지칼로보다 약하다는 평가에 마왕들은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지 못했다. 마왕끼리의 위계는 모두가 같으나, 실제 실력에 따른 격차가 큰 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레일라는 여기 모인 마왕 전원이 덤벼도 이길 수 있을지 의문일 정도였다.
“그런데 레일라, 넌 왜 안 가는데? 다일러스야 바셋 때문에 바쁘다고 해도, 이 친구들 넷을 올려보내느니, 너 혼자 가는 게 낫지 않나?”
“아직 검마께서 내가 나갈 정도의 길은 만들 수 없으시다. 나는 따로 할 일이 있기도 하고.”
“그것도 지토 님께서 내린 명령인가?”
“그렇다.”
“뭔지 알려줄 순 없고?”
레일라는 라갈을 무시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이만 돌아가겠다. 명심해라, 마왕과 대장군들은 반드시 루나 룬칸델의 붉은 힘을 없애야 한다.”
만찬은 레일라가 돌아간 후 두 시간이 있다가 끝이 났다.
마왕들이 모두 돌아가자, 라갈은 자신의 부관을 호출했다.
“게로, 영혼 수용소에 그것들이 있었다고 했지?”
“예, 라갈 님. 오늘 아침 우리 극독지대로 빼돌려 잘 숨겨두었습니다. 지금 바로 만나보시겠습니까?”
“그래, 사용하기 전에 한 번씩 조정을 해둬야겠군. 큭큭, 멍청한 레일라 년. 내가 영혼주를 괜히 처마시고 있는 줄 안 모양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