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83)
제 888화
220화. 지치지 않는(6)
난데없이 평원이 심해로 변했으나, 루나와 시리스가 꼼짝없이 갇혀 숨조차 쉬지 못하는 일은 없었다.
루나는 물이 차오르자마자 오러로 구체 형태의 보호막을 펼쳐 몸을 감쌌고, 시리스도 만빙의 힘으로 비슷한 보호막을 형성했다.
“이계설원의 차원문이 열리질 않습니다, 1기수.”
“공간 이동 방해. 그런 능력이 있는 모양이지, 엘로나 지플처럼.”
루나는 차분한 시선으로 적들을 쳐다보았다. 지토의 살점으로 강해진 적들은 자신감에 찬 채 이죽거리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사태.
그러나 루나는 흑해에서 지낼 때, 늘 이보다 더 심각하고 위험한 변수들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었다.
“그럼 싸우는 수밖에 없겠군……. 뭐, 변수 대처도 중요한 능력이니 수련의 일환으로 이해하자고. 소궁주는 일단 나를 보조하면서 최대한 몸을 사려.”
“알겠습니다.”
“큭큭, 물속에서 싸우는 건 처음일 테지. 진마계 심해지대의 위용을 보여…….”
콰아아아아아-!
바이스가 거기까지 말한 순간, 별안간 평원을 가득 채운 물이 반으로 갈라지며 거대한 붉은 검기가 치솟았다.
검기는 순식간에 바이스가 형성한 물 대부분을 증발시키는 모습이었다. 구름이 그대로 내려앉은 듯 전장 전역에 퍼진 수증기가 잠시 시야를 가렸다.
“다들 조심해라! 붉은 검기다!”
바이스가 호들갑을 떨며 소리를 지르자 루나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강하긴 하지만 무게감이 부족한 느낌이군. 지칼로에 비하면, 힘도 머리도 약간 모자란 녀석들 같은데.’
바이스는 삼류 악당처럼 꽥꽥 소리를 질러대고, 쿠칸은 계속 죽은 시칸의 복수를 하겠다며 마구잡이로 검기를 쏟았다. 그나마 틸리아스는 마왕다운 무게감이 느껴졌으나 멍청하게 나대는 동료들을 제어할 권력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번 무리는 ‘멍청하다’는 루나의 평가에 확실히 못을 박아주는 마족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미솔 휴완이었다.
“미소오올!”
그는 루나의 검기에 성채가 파괴되자마자 자신의 이름을 울부짖으며 전장으로 난입했다. 다른 마왕들에 비해 세 배는 큰 체구, 그 덩치에 딱 어울리는 거대한 철퇴도 함께였다.
쩌엉-!
루나는 그의 철퇴를 받아치며 일순 흠칫했다. 마치 헤도가 떠오르는 괴력이 무기를 타고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미솔, 미솔, 미솔미솔!”
“크하하, 내가 말했지? 우리 미솔이 말은 좀 어눌해도 자기 성이 무너지는 건 절대 가만히 못 본다고!”
“미솔!”
“조금 어눌한 게 아닌 것 같은데?”
마왕들 모두 힘과 전투력은 진짜배기였다. 증발한 물은 순식간에 다시 차오르며 소용돌이를 일으켰고, 시리스는 잠시 그 인력에 휘둘려 중심을 잃었다.
그 틈을 파고들어 온 쿠칸의 검이 시리스의 머리칼을 지났다. 대장군들과의 전투에서 얻은 감각이 무뎌진 상태였다면, 머리칼이 아니라 뺨을 찔렸을 것이다.
마왕들은 바이스의 물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있었다. 물을 계속 증발시키며 싸워야 하는 두 사람보다 마왕들이 훨씬 유리한 위치일 수밖에 없었다.
‘길게 끌면 진짜로 위험하겠어. 이계설원의 차원문뿐만이 아니라 통신기도 먹통이군.’
루나는 아낌없이 붉은 검기를 난사하고 있었다. 심지어 심검을 펼칠 때뿐만이 아니라 유성우 같은 결전기를 사용할 때에도 붉은 검기를 더했다.
흑해를 원정할 때에도 이 정도로 많은 양의 붉은 검기를 사용한 적은 없었다. 쓰면 쓸수록, 왠지 몸이 가벼워지고 감각이 깨어났으나 그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불안감도 함께였다.
‘바이스, 물을 다루는 놈이 가장 거슬린다. 어떻게든 놈을 먼저 처리해야 여유가 생기겠어. 그리고 통신기와 공간 도약을 막고 있는 놈이 누구인지 확인해서 죽여야겠군. 어쨌거나 이기기만 하면…… 지토의 살점 네 개를 한 번에 처리하는 셈인가.’
루나를 정면으로 상대하는 건 미솔, 나머지 마왕들은 뱀처럼 사방을 맴돌며 빈틈을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빈틈이 생길 때마다 날아드는 건 무기뿐만이 아니었다. 마법, 진마계의 고위 마족들은 기본적으로 무기와 마법을 둘 다 초인급으로 다루는 마검사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지금 마왕들이 사용하는 마법은 대부분이 어둠계 저주다. 무기는 피하기 어려운 각도로 날아들어도 쳐내면 그만이지만, 저주는 검이라도 닿는 즉시 순식간에 온몸을 잠식할 터였다.
루나는 진처럼 저주 면역이라는 특성이 없기 때문에 특히 까다로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주의 내용을 알 수는 없으나 무엇이든 지토의 힘으로 강화된 저주인 만큼, 반드시 피해야만 했다.
심지어 루나는 시리스까지 지켜야 하는 입장이다.
‘소궁주가 역습의 기회를 먼저 잡아주는 게 최선이다. 그래야 나도 그걸 토대로 바이스까지 돌파할 수 있어. 소궁주가 할 수 있을까?’
시리스에게 직접 묻지는 않았다.
지금 시리스에겐 대화 한 마디를 나눌 여유조차 없어 보이기 때문이었다. 시리스는 루나의 보호를 뚫고 몰려드는 온갖 저주와 쿠칸의 공격을 쳐내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다행히도, 루나는 곧 자신의 걱정이 기우에 불과했음을 깨달았다. 고민이 끝나기 무섭게 시리스가 기회를 만들어 붙잡은 것이다.
만빙검 오의, 백.
시리스는 싸움이 시작된 순간부터 이번 전투의 핵심이 ‘자신’이라는 것을, 루나보다도 빠르게 인지한 상태였다.
자신이 역습을 시작해야만 루나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처음부터 인지한 것이다.
그렇기에 시리스는 계속 만빙검의 오의를 준비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공방으로는 답이 없으니, 일단 마왕들을 잠깐이라도 주춤하게 만들 수 있는 큰 기술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프츠즈즈즉-!
별안간 전장 한가운데 만빙의 빙화가 치솟고 있었다. 내내 달려들던 쿠칸은 잠시 빙화를 피해 몸을 빼냈다. 빙화는 바이스가 펼친 진마계의 심해 전체를 유린했는데, 그러면서도 루나는 전혀 위협하지 않았다.
“가십시오, 1기수!”
“아주 훌륭하다, 소궁주!”
이번에 펼친 백은 대장군들을 죽일 때에 비해 훨씬 규모가 크고, 그 예리함 또한 더욱 깊어졌으나.
그때처럼 적들을 한 번에 침묵시키진 못했다. 마왕들은 빙화를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능숙하게 회피하며 백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미솔은 계속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빙화를 부수는 괴력을 보여줬지만 말이다.
“미솔! 미소올!”
“야, 미솔! 그걸 부수고 있으면 어떻게 하냐, 피해야지……!”
“저 멍청이가!”
미솔의 어마어마한 판단력에 바이스와 쿠칸은 경악하며 소리를 질렀다. 미솔이 둔한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뻔한 수에 걸려주리라고는 그들도 생각을 못 한 것이다.
루나는 빙화에 정신이 팔린 미솔을 그냥 지나치고는 바이스를 향해 시뻘건 크란텔을 휘둘렀다.
“크악!”
바이스는 늦지 않게 반응하며 크란텔을 쳐냈으나, 검을 타고 흐르는 붉은 기운에 온몸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다.
‘파엘리토 님이 이 힘을 그토록 경계한 이유인가……! 빌어먹을, 무기끼리 부딪친 것만으로 정신이 아득해진다! 미솔 저 멍청이는 이걸 계속 견디고 있던 거야?’
전력.
다시 이런 기회가 또 있을 리는 없을 터였다. 오의 백을 시리스가 연속으로 펼칠 수 있을 리는 만무하니까.
그렇기에 루나는 말 그대로 전력을 다해 바이스를 압박하고 있었다. 쇄천과 전광, 유성우, 광속 찌르기 등의 결전기와 비기가 마치 평범한 일격처럼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물론 모두 붉은 검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토의 살점은, 이런 상황에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는 부분이 있었다. 지토의 기운이 루나의 붉은 힘에 반응해 바이스의 고통을 증가시키는 중이었다.
고통이 증폭됐다는 걸 제외하면 살점을 통한 강화엔 전혀 변화가 없다. 하지만 바이스는 고통을 감내하며 싸우는 일에 내성이 강한 편이 아니었다.
‘미치겠군, 미솔 놈이 이성을 붙잡고 나를 좀 도와야 하는데. 쿠칸은 계속 소궁주에게 눈이 돌아 있는 상태고…… 그럼 틸리아스라도!’
틸리아스!
바이스가 가까스로 그의 이름을 외쳤다. 틸리아스는 빙화를 피해 바이스의 반대편으로 넘어간 상태였는데, 문득 바이스는 위화감을 느꼈다.
‘그런데 틸리아스 이 새낀 왜 내가 부르기 전까지 이쪽으로 합류하지 않았던 거지? 충분히 소궁주의 빙화를 피해서 나를 엄호하러 올 수 있었을 텐데!?’
틸리아스는 바이스의 부름에 상당히 굼뜬 움직임을 보였다. 마치 바이스를 구할 생각이 없다는 듯이.
바이스는 몰아붙여지는 와중 생각이 많은 상태다.
그리고 ‘다른 생각’을 하며 루나를 상대할 수 있는 인물은 인세에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진은 물론이고, 시론조차 루나를 상대해야 한다면 그녀에게만 집중을 할 것이다.
즉, 바이스는 지금 루나를 상대로 목을 빼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죽어라!”
루나가 안광을 희번덕이며 사방에 퍼진 붉은 검기를 크란텔로 집중시켰다. 심검 적월, 바이스는 이미 앞선 결전기와 비기들에 의해 온몸에 구멍이 뚫려 제대로 대응할 수가 없었다.
당연하게도 그의 몸이 회복되는 속도보다, 루나의 전력이 담긴 일격이 수천 배는 빠르다.
결국 무지막지한 속도로 휘둘러진 크란텔은 바이스를 양단한 후, 그의 뒤로 퍼져 있던 성채까지 흔적도 없이 소멸시켜버렸다.
진마계 염화지대의 지배자에 이어, 심해지대의 지배자가 유명을 달리하는 순간이었다. 바이스가 죽자마자 전장을 덮고 있던 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였다.
‘후, 일단 한 놈 잡았군. 그런데 붉은 기운이…… 몸속에서 폭주할 듯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이런 적은 없는데, 설마 아버지가 말씀하신 횟수가 바닥나고 있다는 신호인가? 다만 예전처럼 지치는 느낌은 전혀 없어…….’
어쨌거나 붉은 기운을 아껴가며 싸울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바이스가 죽었어도 나머지 셋은 완전히 건재했다. 특히 미솔은 붉은 기운을 두른 루나를 내내 정면으로 받아낸 후, 빙화까지 파괴하고 있음에도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다.
‘일단 소궁주부터 다시 보호해야 한다. 오의 백을 최대로 펼쳤으니, 이제 쿠칸의 공격을 제대로 막아낼 여력이 없을 거야.’
빙화가 시들고 있었다. 마왕들은 시리스를 압박하고 있었고, 루나는 어느 쪽을 돌파하는 게 좋을지 잠시 가늠했다.
이내 한쪽을 고르려는 찰나, 루나는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렇게 떠야만 했다.
‘어?’
푹-!
틸리아스의 검이, 쿠칸의 등을 관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