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96)
제 888화
225화. 원치 않은 재회(2)
루나가 무어라 더 대답할 새도 없이, 모트는 순식간에 시리스까지 태워서 백색 차원문 속으로 몸을 던졌다.
진은 차원문이 닫히는 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증폭된 균열 속에서 지옥에 있던 형제가 소환되리라는 강렬한 직감이 오고 있었다.
“우리 얼음공주가 생각보다 눈치가 좋아서 다행이군. 튼튼이가 더 버텼으면 머리 아팠을 것 같단 말이지, 돌아가면 칭찬해줘야겠어.”
“너도 잘 둘러대더라. 이번에 회복하면서 쉬는 동안 머리가 좀 트였나?”
“이 몸은 원래 똑똑해, 꼬마.”
한창 루나, 시리스와 전투를 치르고 있던 진마계의 마족들로서는 얼른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자신들을 공기 취급하며 잠시 자기들끼리 무언가 작당을 했으니 매우 불쾌한 상황이기도 했다.
다만 섣불리 나서서 훼방을 놓을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루나의 괴력에 밀리던 차에 난데없이 바멀 연합의 총수이자 인세제일검에 가장 가깝다는 진과, 그의 수호룡이 등장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네놈들도 눈치가 나쁘지 않더라? 튼튼이 보내기 전에 덤벼댔으면 진짜 잔혹하게 죽였을 텐데, 기특하게도 알아서 잘 찌그러져 있었어. 어?]무라칸이 본모습으로 변신하며 주위의 마족들을 둘러보았다. 세 명의 대장군과 휘하 병력은 잔뜩 긴장한 채 두 사람을 포위하고 있었다.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백경을 보낸 건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마!”
한 대장군이 외치자 무라칸은 코웃음을 쳤다.
[크, 아기자기하게 허세도 부릴 줄 알고. 상으로 되도록 다들 한 방에 보내주마. 조금이라도 희망을 품고 싶다면, 저 균열 속에서 튀어나올 네놈들 상관이 그 파엘리토인지 뭔지 하는 놈이길 빌고. 그놈 상판 엄청 궁금하거든.]이어 무라칸은 말을 끝내기 무섭게 영기를 해방하며 흑쇄를 펼쳤다. 순식간에 거대한 영기 장막이 일대에 어둠을 드리웠고, 방금 전에 소리친 대장군의 등 뒤로부터 한 줄기 검은 사슬이 내리꽂혔다.
이미 루나를 상대하느라 지쳐 있던 대장군은 흑쇄를 피할 수 없었다. 흑쇄는 그 대장군의 등을 관통하며 뿌리처럼 퍼져 그의 주변에 있던 병사들까지 몰살하는 위력을 보였다.
겨우 3초 남짓한 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남은 대장군들은 식겁하며 산개 명령을 내렸으나, 이미 그들의 머리 위에서도 시커먼 사슬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남은 두 대장군은 막 떨어진 사슬을 겨우 피했지만 부하들은 아니었다. 그들의 부관과 조장급 병사들이 영기의 어둠 속으로 맥없이 삼켜지고 있었다.
무라칸의 무자비한 학살이 이어지는 와중, 진은 아직 검을 뽑지도 않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의 등허리를 더욱 오싹하게 만들었다.
진은 계속 증폭 중인 균열을 주시했다.
‘마왕 둘인가, 한 놈은 그간 보고된 다른 마왕들에 비해 특출하지 않은 것 같고. 한 놈은 기운이 꽤 묵직하군.’
증폭된 균열이 열리고 있었다. 살아남은 대장군들은 필사적으로 균열을 향해 달렸는데, 병력은 이미 전멸이나 다름이 없었다. 애초에 진과 무라칸이 오기 전에도 궤멸 직전이었지만 말이다.
대장군들은 흑쇄에 찔려 만신창이가 된 채로 균열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균열에선 막, 새로운 마왕들이 소환되는 모습.
“드루가 님……!”
“시케르 님!”
진은 대장군들이 애타게 외친 이름들을 듣자마자 그들이 누군지를 알아보았다. 비셉스에서 진마계의 마왕과 주요 전력에 대한 정보를 넘겨준 덕분이었다.
‘드루가 킬렛, 시케르 하이타. 그렇다면 묵직한 기운은 드루가 쪽이겠군.’
시케르 하이타는 라갈 펀의 독마 등극 축하 연회에 참석한 마왕이고, 킬렛가는 펀가의 오래된 동맹이었다.
‘지옥에 있던 형제들을 이용해야 하니, 그 라갈이란 놈이 자신의 사람으로만 채워서 보낸 건가.’
프직-!
균열을 빠져나온 드루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손톱으로 자신을 찾아온 두 대장군들의 목을 꿰뚫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무라칸은 인상을 구겼고, 진은 드루가와 시케르 사이에 소환된 검은 관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 관 속에 형제가 있을 터였다.
“다행히 너희 둘이 살아 있었군. 너희의 남은 힘은 유용하게 써주마.”
드루가는 그렇게 말하며 대장군들의 시체를 방패처럼 사용해 무라칸의 흑쇄들을 막아냈다.
[너희 마족이란 새끼들은 동료애라는 게 없는 거냐?]마왕들은 대답하지 않고 진과 무라칸을 쳐다보았다. 왜 백경이 아니라 너희가 여기에 있냐는 듯.
“……시케르, 나는 복귀하겠다.”
“그래, 알았…… 뭐? 뭐라고?”
시케르가 더 따지기도 전에 드루가가 방금 죽인 대장군들의 시체를 제물로 차원문을 연 것이다. 그로쉬에 성으로 이어지는 차원문이었다.
“야, 드루가! 미친, 이봐!”
“원망하려거든 대장군들을 원망해라. 두 놈 정도 더 살아 있었다면, 2인용 차원문을 열 수 있었을 테지…….”
그렇게 드루가는 바로 전장에서 이탈을 해버렸다.
마기에 오염된 오켄 사막에 남은 건 이제 시케르와 몇 안 남은 하급 마족들, 그리고 드루가가 두고 간 검은 관뿐이었다.
드루가가 자리를 떠난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 루나가 아니라 진과 무라칸이 있다는 건, 라갈이 말한 대로 독마성에 ‘비셉스의 첩자’가 있다는 뜻.
그리고 비셉스가 룬칸델과 손을 잡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 사실을 확인했으니 쓸데없이 여기서 개죽음을 당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드루가는 마왕 중에서도 강한 편이나, 자신이 진과 무라칸을 상대로는 어림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물며 지토의 살점조차 없는 상태라면 더더욱.
잠시 정적이 흘렀다. 시케르는 눈 깜짝할 새에 닫힌 차원문을 보며 부드득 이를 갈았다.
“이 쓰레기 새끼……!”
[동료애가 없냐고 물었더니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대답을 해주는구만. 이야, 너네 진짜 뭐냐? 어? 영생에 가까운 놈들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품격들이 없을 수가 있지?]진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시케르가 황급히 관을 열었다.
드루가가 혼자 도주했으니 시케르가 기대할 수 있는 희망은 단 하나, 인질극뿐이었다.
“오지 마! 더 다가오면 이놈을 소멸시킬 거다!”
철컥-!
관이 열렸다. 그 속에서 나온 사람을 보자 진은 흠칫하며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앤이었나.’
앤 룬칸델.
그녀는 시케르의 손아귀에 붙잡힌 채 흐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세대의 룬칸델 중엔, 그녀와의 관계가 어떠했든 앤 룬칸델이 이처럼 비참하게 우는 모습을 상상해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비록 룬칸델의 검귀로서 다른 상위 기수들만큼 이름을 드높인 적 없고, 늘 가문의 포식자들에게 차별받다가 별 볼 일 없이 타락하여 허망한 최후를 맞이했으나.
앤은 룬칸델이다. 그녀는 증오와 광기로 얼룩진 괴물이었지, 인간으로서의 슬픔에 무너지는 부류가 아니었다. 진의 전생에서 미친 살인귀로 불렸던 토나 형제들보다 더 뒤틀린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런 앤이 마치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괴로워하고 있으니, 진조차 이상한 기분이 들 지경이었다.
그리고 진은 확신할 수 있었다. 만일 루나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이 모습을 보자마자 극심한 죄책감을 느꼈으리라고 말이다. 앤은 영혼 상태가 아니라,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진…… 미안해. 나는 죽어서도 가문에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네.”
심지어 앤은 갈라진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 이게 뭔…… 저게 진짜 앤이라고? 지옥에서 대체 무슨 일을 겪은 거야?]“오지 말라고 했…… 그래. 그래야지, 피붙이가 이렇게 괴로워하는데.”
“진! 나 같은 건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이자를 죽여!”
“닥쳐 좀!”
“난 소멸해도 괜찮아. 아니, 차라리 소멸하고 싶어. 지옥에서 그간 내가 저지른 잘못들을 깨우칠 수 있었어. 더는 고문받고 싶지 않아. 더는, 그러니까 제발…… 이자를 죽이고, 나도 끝내줘……!”
앤의 이런 태도를 예상치 못한 건 진과 무라칸뿐만이 아니었다.
‘분명 조정이 다 끝났다고 들었는데, 애가 왜 이딴 식이지? 드루가 이 새끼도 그렇고 라갈도 그렇고. 뭐야? 나만 모르는 뭔가 있는 건가? 나 이용당하고 버려진 건가? 빌어먹을, 이대로라면 살아서 돌아가긴 틀린 것 같은데, 진 룬칸델이 이 인간에게 각별한 애정이 있지 않는 한……!’
앤은 계속 처절한 목소리로 자신을 소멸시켜 달라고 소리쳤다.
“무라칸, 놈을 맡아줘. 앤과 이야기를 해봐야겠어.”
크직! 무라칸이 숨겨둔 흑쇄 한 줄기가 앤을 붙잡고 있는 시케르의 오른팔을 관통했다.
“큭!”
[미친놈이냐? 이딴 인질극이 나랑 꼬마한테 먹히겠냐고, 말이 되는 짓을 해라, 기가 차서 원. 넌 나한테 좀 뚜드려 맞고 있자.]무라칸은 단숨에 시케르로부터 앤을 떼어냈다. 애초에 진이 앤에게 진짜로 애틋한 마음이 있었다 한들, 시케르만의 능력으로는 인질극이 성립될 수 없었다.
무라칸이 시케르를 몰아붙이기 시작했고 진은 앤에게 다가갔다. 앤은 진이 앞에 왔는데도 쓰러진 채 제 몸을 쥐어뜯으며 오열할 뿐이었다. 제 손톱에 할퀴어진 온몸에서 시뻘건 핏물이 흘러내렸다.
아무리 진이라 할지라도 착잡한 마음이 전혀 들지 않을 수는 없었다.
“……앤. 솔직히 생도 시절부터, 네 최후가 썩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은 있었지. 하지만 넌 내 생각보다 더 끔찍한 짓들을 저질렀고, 지금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최후로군.”
착잡한 건 사실이지만 동정심이 들지는 않았다. 굳이 고르자면, 지금 진이 느끼는 마음은 아쉬움이었다.
그래도 룬칸델인데, 그래도 같은 피가 흐르는 형제인데, 이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는 없던 건가.
악인이라면 차라리 나름의 긍지와 야망을 품은 멋진 악역이었으면, 혹은 토나 형제처럼 선을 넘기 전에 갱생해서 그간의 죄를 뉘우치고 가문의 한 축이 되었다면, 하다못해 적당한 사고만 치다가 평범하게 저물었다면.
지금처럼 동정조차 할 가치가 없는 재회를 할 일은 없었을 텐데.
진은 가만히 앤을 내려다보았다.
“연민도, 동정도 할 수가 없다. 악연보다 못한 혈연이었으니까.”
“미안해, 아무것도 할 말이 없어.”
“다른 형제들도 다 너와 똑같은 용도로 이용이 될 테지. 루나 누님을 괴롭게 만들기 위해서. 그들은 어디에 있나?”
“모르겠어……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 전부 다른 감옥에 있었으니까. 그냥, 날 이만 끝내줘. 앤 룬칸델이라는 버러지를 이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줘…….”
진은 한 차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룬칸델의 소가주로서, 해야 할 일을 할 때였다.
“윤회의 길이라는 게 있다. 너는 그곳에 오르지 못할 테니, 다음 생엔 부디 더 나은 삶을 택하길 바란다는 말조차 해줄 수 없겠군. 잘 가라, 앤.”
검을 뽑으려는 찰나.
진은, 별안간 불쾌하게 감각이 곤두서는 걸 느끼며 홱 몸을 빼냈다. 진이 서 있던 자리로 날카로운 검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앤이 쏜 검기였다.
“아, 역시. 막내, 이런 게 너한테는 전혀 통하질 않네. 큰언니였다면 지금쯤 심란한 얼굴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건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