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26)
제 999화
230화. 침공과 습격(8)
화르륵……!
진의 몸에 새겨진 사라의 룬 문자가 빛나며 붉은 화염이 치솟았다.
중압의 권능은 더해지지 못했으나 맹렬히 피어오른 불길은 순식간에 진에게 몰려든 마기를 태워 버렸다.
권능이 차단되었어도 진은 진이며, 불은 불이다.
진이 계승한 염제의 불은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빛나고 있었다.
진은 업화와 더불어 왼손에 섬광포를 숨긴 채 다가오는 파엘리토를 향해 쇄도했다.
결국 밀리게 되더라도 먼저 달려들어야 했다.
조금이라도 주도권을 가져야만 변수를 만들 수 있었다.
그래야만 생존 시간을 늘릴 수 있었다.
몸의 기억과 반응을 믿으며 전투를 재개해야 했다.
화염에 휘감긴 칼날이 자줏빛 마기의 너울을 갈랐다.
파엘리토는 브라다만테를 아래로 쳐냈고, 진은 검이 바닥에 꽂히기 전에 몸을 회전시키며 공격을 이어갔다.
종과 횡, 두 자루 검이 십자로 교차되며 굉음이 터졌다.
찰나의 순간, 진은 파엘리토에게서 나는 피 냄새를 놓치지 않았다.
‘피 냄새…… 아율라 님의 보호막을 깨부순 그 거대한 검기를 펼쳤을 때, 놈도 내상을 입은 건가. 아마 미약한 역류였겠지.’
사람이 아니라 마족 특유의 진한 피 냄새고, 방금 막 새로 쏟은 피가 분명했다.
벨리엄 대평원에서 싸우는 마족은 파엘리토밖에 없으니 그의 피였다.
그 내상이 파엘리토의 검을 둔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그저 철옹성에 난 작은 흠집 정도였다.
하지만 진에겐 그 사실이 희망으로 다가왔다.
‘역류가 생긴 이유는 여럿일 것이다. 세뇌되어 능력이 떨어진 채로 무리하게 큰 힘을 사용한 것, 사키엘의 죽음으로 인해 증오에 휩싸인 내면, 그리고…… 마성화.’
마성화.
창성에 오른 이들이 겪는 숙명.
지금 파엘리토의 역류와 내상은 마성화의 여파일 가능성이 높았다.
마성화를 가속하는 건 ‘감정’이다.
증오, 공포, 애착, 집념…… 그 모든 감정은 언제든 창성에 오른 사람을 괴물로 만들 수 있었다.
‘파엘리토는, 심마에 빠지고 있다……!’
그런 확신이 생기자마자 진은 생각했다.
지금 파엘리토가 죽는 유일한 수는, 그가 심마에 취해 자멸하는 것이라고.
동료들과 함께 파엘리토가 자멸할 때까지 버티는 것이라고 말이다.
“진!”
마침내 단테와 헤도가 파엘리토의 마기를 뚫고 다시 전장의 중심으로 도달했다.
네 자루의 검이 쉴 새 없이 섞이며 섬광을 일으켰다.
하지만 허공에 튀어 산화하는 핏방울은 모두 붉었다.
세 사람의 검은 파엘리토를 스치지 못하는 반면, 바스칼라는 자주 그들을 긋고 지나갔다.
끈질기다.
사키엘을 죽인 자들이, 계속 끈질기게 검을 휘두르고 있다.
그 사실이 파엘리토의 내면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그간, 얼마나 많은 이들이 너를 위기에서 구해 주었나?”
“셀 수 없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기대하고 있겠군.”
화아아……!
진이 섬광포를 터뜨리며 파엘리토의 허리를 찔렀다.
‘큭!’
분명, 섬광포를 터뜨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파엘리토는 진이 팔을 뻗은 순간 이미 그의 왼 주먹을 움켜쥐고 있었다.
파가각-!
섬광포를 품고 있던 왼손이 통째로 으스러졌다.
그 순간 진이 조금이라도 당황하며 몸을 빼내려 했다면 그대로 팔이 뜯겼을 것이다.
진은 뒤로 빠지는 대신 오히려 파엘리토에게 더 밀착해 그의 목으로 브라다만테를 찔렀다.
파엘리토는 진의 팔을 포기하며 보법을 밟았다. 브라다만테는 파엘리토의 뺨을 스쳤다.
동시에 단테와 헤도도 각각 그의 허벅지와 옆구리에 절상을 남겼으나, 진의 왼손이 부서진 대가라기엔 너무나 옅은 상처였다.
우그러진 손가락 사이로 섬광포를 이루던 마력이 흘러내렸다.
진은 그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지도 않은 채 왼손에 새로운 마력을 일으켰다.
어차피 검을 양손으로 쥐어야 할 땐 빙결계 마력을 일으켜 손잡이에 강제로 고정하면 그만이고, 지금처럼 마법을 사용해야 할 땐 악력이 필요치 않았다.
물론 타격이 전혀 없는 건 아니나, 그 순간 파엘리토가 선택한 최선이 왼손에 그쳤다는 게 다행이기도 했다.
한 뼘만 더 가까웠다면 심장이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아니다. 너는 반드시 내게 죽는다. 방금처럼 육체를 하나씩, 천천히 유린하다가…… 마지막에 심장을 꿰뚫을 것이다.”
검마류 오의
천멸참 2식
일행의 눈동자가 커졌다.
아까와 똑같이 파엘리토는 몸을 웅크리며 기운을 폭발시켰다.
그는 잠시 무방비한 상태가 된 듯 보이나 사방에 칼날처럼 마기가 뻗쳐 일행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 천멸참이 향할 방향은 하늘이 아니다.
일행은 파엘리토가 정면, 진이 서 있는 곳으로 천멸참을 펼치리라 예상했다. 자세부터가 그랬다.
천멸참을 이룰 만큼 거대한 힘을 한 번에 방출할 때는 창성이라 할지라도 미리 정한 경로를 쉽사리 변경할 수 없다.
특히 지금 파엘리토처럼 심마가 진행 중인 상태라면 더더욱 그랬다.
“지이인!”
단테와 헤도가 황급히 검기를 쏘았다.
어떻게든 충격을 줘서 조금이라도 천멸참의 궤도가 어긋나게 만들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다음 순간, 진은 깨닫고 있었다.
“나를 노린 게 아니……! 안 돼!”
파엘리토는 작은 속임수를 썼을 뿐이다.
자세는 진을 향해 취했으나, 그는 처음부터 진을 노리지 않았다.
천멸참은 헤도를 향하고 있었다.
스아아아아! 삐……!
파엘리토의 기운이 폭발하며 진 일행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머리를 찢는 이명이 엄습했고, 겹겹이 터지는 충격파 속에 일행은 순식간에 흩어지고 말았다.
헤도 경! 헤도 경……!
소리를 질러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물이 찬 듯 목이 막히고 눈앞은 캄캄해졌다.
몸이 늪처럼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진과 동료들은 또 한 번 잠시 의식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진과 단테가 가장 먼저 마주한 풍경은 지평선처럼 끝없이 뻗어진 천멸참의 궤적이었다.
천멸참 1식이 두 번의 검격으로 하늘을 찢었다면, 2식은 단 일검에 벨리엄 대평원을 양단했다.
대평원뿐만이 아니라 그 뒤로 직선상에 놓여 있을 모든 사물과 지형과 생명을 반으로 가르고 있었다.
흉측하게 벌어진 땅은 더 이상 대평원이라 부를 수 없는 모습이 되었다.
사선으로 끝도 없이 날카롭게 찢어진 하식곡처럼 변해 있었다.
그 사이에선 천멸참이 품고 있던 마기와 용암이 뒤섞여 분출되고 있었다.
그것들은 하늘까지 솟구쳐서 사방으로 뿌려졌는데, 천멸참에 약해진 땅들은 그 무게조차 견디지 못하고 속절없이 허물어졌다.
그리고 그 끔찍한 풍경 어디에도, 헤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런 흔적조차 없었다.
목소리도 들리지 않고 특유의 강대한 기운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천멸참이 그를 집어삼켰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 내 말을 제대로 듣지 않은 모양이군. 너는 분명 마지막에 심장을 거둔다고 했다. 이렇게 먼지처럼 흩어지는 건 너무 편한 일이지.”
정신을 다잡아야 했다.
두 사람은 심장에 차오르는 불안감을 지우며 파엘리토에게 검을 겨눴다.
“아, 주검을 직접 보지 못했으니 그가 죽지 않았으리라 생각하나? 그렇다면 계속 부정해 봐라. 그 또한 내게는 나쁘지 않은 일이니.”
파엘리토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처음 천멸참을 사용한 직후와 달리 역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억지로 감춘 것인지, 진짜로 없는 것인지 진과 단테는 구분할 수 없었다.
“너를 어떻게 죽일지 결정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진 룬칸델.”
진은 다시 업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업화로 육체를 강화하지 않고는 제대로 공방을 이어갈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지금껏 누적된 충격이 문제였다.
진은 불사신이 아니다.
무적도 아니며, 파엘리토보다 강하지도 않다. 영기와 뇌기라는 권능까지 전부 차단됐으니 그 격차는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명백히 보다 강한 인물을 상대로 계속 한계까지 힘을 유지하는 건 당연히 부작용이 따랐다. 마력도 역류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입과 코로 피가 차오르고 있었다.
업화의 위력은 처음과 똑같이 유지되고 있으나, 이대로라면 언제 갑자기 마력 해방이 깨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단테가 진의 옆에 섰다.
이제 단테가 파엘리토의 측후방을 교란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어떻게든 진과 붙어서 전투를 버텨야 했다.
“진, 내가 어떻게든 시간을 벌 테니 떠나라는 소리는 못 하겠소. 알겠지만, 그건 이제 불가능하기 때문이오. 이미 우리 둘 다 몸이 꽤 상했으니.”
“또한 내가 그걸 원하지도 않지. 그만큼 죽음에 대비하고 싶었다면 애초에 무라칸을 보내지도 않았어.”
투지와 집념.
두 사람이 파엘리토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건 오직 그뿐이었다.
그리고 단테는 불현듯, 땀에 젖은 진의 옆얼굴에서 무언가 초월적인 기운이 쏟아지는 듯 묘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조부가 창성에 다다른 그날처럼.
실제로 지금 진에겐 그런 기운이 없었다.
다만 과거 시론과 론, 탈라리스, 켈리악 같은 시대의 거인들은 루나로부터, 그리고 본격적으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진으로부터 한 가지 똑같은 잠재력을 확인했었다.
루나 룬칸델, 진 룬칸델은 세상에 존재하는 그 누구와 싸워도 승리할 가능성을 지닌 인물이다. 그 상대가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단테가 지금 어렴풋이 느낀 건 바로 그것이었다. 그들처럼 정확히 인지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단테, 왼쪽이다. 헤도 경은 안 죽었어.”
진은 단테가 헤도 경 때문에 잠시 집중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단테는 고개를 끄덕이며 오른편으로 날아든 파엘리토의 검기를 받아냈다.
“나도 그렇게 믿고 있소. 한데, 오른편이었소만.”
“정신 차렸나 확인해 봤다. 너답지 않게 갑자기 멍해졌길래.”
시선을 어디에 둬도 온통 마기와 용암뿐이었다. 두 사람은 등을 맞댄 채 파엘리토가 쇄도할 방향을 가늠했다.
독처럼 몰려드는 마기를 다 쳐낼 수는 없었다.
마기를 밀어내느라 검을 휘두르면 그 순간 파엘리토가 직접 공격할 테니 그건 보호막으로만 막아야 했다.
‘……갑자기 마기의 흐름이, 마법진을 형성하듯 변하기 시작했다.’
진은 그 사실을 곧바로 알아보았다.
“보호막 밖으로 나가!”
진이 소리치자마자 마기는 순식간에 두 사람의 보호막 위로 마법진을 덮었다.
얼핏 확인한 그 마법진의 형태는, 어둠계.
그중에서도 ‘저주’를 의미하는 룬 문자들이 짙은 자줏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 저주가 완전히 형성되기 전에 보호막을 빠져나갔으나, 마지막 순간 각각 왼쪽 어깨와 오른쪽 발목이 저주의 파동에 걸리고 말았다.
그 저주의 이름은 ‘비사로의 조롱’. 효과는 대상의 강제 노화였다.
진은, 회귀 후 처음으로 저주가 몸을 파고드는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