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41)
제 999화
234화. 지옥으로(2)
집무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집사장 페트로의 발소리였다.
“소가주님, 준비가 모두 끝났습니다.”
“알았다, 나가지.”
진과 루나가 일어서자 페트로가 고개를 숙였다. 일행은 복도를 지나 검들이 꽂혀 있는 정원을 가로질렀다.
걸음을 멈췄을 때, 진은 도열하고 있는 삼천여 명의 기사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루나는 대열 중앙으로 섞여 기사에게 깃발을 건네받았다. 다른 기수들도 그에 맞춰 깃발을 쥐었다.
“기를 올려라!”
루나의 구호에 맞춰 기수들이 일제히 깃발을 치켜들었다.
가문의 기사들이 모인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창성에 닿은 소가주의 성취를 기념하기 위함이었다.
진은 자신의 성취를 기념하는 것보다, 가문과 연합의 임무에 빈틈이 생기지 않는 게 더 중하다고 여겼다.
때문에 본래는 아예 기념식을 열 생각도 없었고, 연다 할지라도 극소수 인원으로 조촐하게 진행할 생각이었으나, 르엣과 원로들이 극구 반대했다. 가문의 일원들에게도 이 순간을 기념할 권리가 있다며.
“충!”
기사들이 검례를 올렸다.
시론이 창성에 올랐을 땐,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가문의 기사들이 검례를 올렸었다.
게다가 동맹 가문들에서 보낸 수많은 사절단은 물론이고, 제국과 루테로 연방에서마저 사절단을 보냈었다.
지금은 그때에 비해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다. 흉신전 이후 가문의 기사들은 그 수가 절반 이하로 줄었고, 진은 바멀 연합 외 세력의 사절을 허용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지금 이 광경을 보는 이들은, 이 자리에 서 있는 이들은. 아무도 지금이 그때보다 더 초라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더 빛나고 압도적인 분위기가 가득하다고 여겼다. 비록 보이는 숫자는 줄었어도, 결코 지금의 룬칸델이 그 시절보다 약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진은 한동안 찬찬히 기사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깃발을 들고 있는 형제들의 빛나는 눈동자, 지금도 가문을 지탱하는 선조들, 마법 기사 부대의 가장 앞 열에서 뭉클한 얼굴로 서 있는 막내 사단, 자랑스러워하는 기사들.
‘하지 말자고 했지만, 막상 이 모습을 마주하니…… 새삼 가슴이 벅차긴 하군.’
씨익, 진이 미소를 지었다.
“가문의 기사들이 이렇게 전부 모인 건 실로 오랜만에 보는군. 그간 여러 임무들 때문에 검의 정원엔 늘 최소 인원만이 남아 있었지.”
그럼에도 그 최소 인원들은 언제나 바쁘게 뛰어다니느라 검의 정원이 휑한 분위기인 적은 없었다.
“그대들이 이렇게 본인을 축하해 주고자 검의 정원에 모인 것은, 그만큼 우리가 잘 해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모든 기사와 기수들이 검의 정원에 모였으니, 연합의 영토를 지키는 일에 빈틈이 생기긴 할 것이다.
그러나 아주 작은 빈틈이었다. 적명족은 여전히 바멀 연합을 건들지 않는 중이고, 진마계의 전이 균열은 거의 다 사라진 상태였다. 이들이 잠시 기념식을 위해 빠진다 할지라도 갑자기 방어 병력이 턱없이 부족해질 수는 없었다.
애초에 황금함을 비롯한 연합의 군대는 지금도 감각을 곤두세운 채 적들의 침입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러니 나는 내 성취보다도 그 사실을 더욱 기념하고 싶군. 다들 고생 많았다, 앞으로도 계속 고생해야겠지만. 어쩌겠나? 그것이 기사의 삶이고, 투쟁의 삶이며, 룬칸델이다.”
룬칸델, 진이 발음한 그 이름을 듣자 기사들은 가슴 속에 북이 울리는 것 같았다.
시론이 세계제일검이 되자마자 흑해로 떠났을 때, 적들은 이제 룬칸델이 약해지리라 판단했다.
루나가 왕좌를 포기했을 때, 적들은 이제 룬칸델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고 생각했다.
로사가 흉신이 되었을 때, 적들은 이제 룬칸델이 끝났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룬칸델은 그 모든 혼란한 시대를, 괴물 같은 시대를 이겨냈다.
인세를 더럽히는 그 무엇과도 결탁하지 않고 그 무엇도 이용하지 않았다. 그 어떤 위기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투쟁해왔으며, 지금도 투쟁하고 있다.
그 중심엔 분명, 진이 있었다.
“날 때부터 룬칸델이었든, 룬칸델이 되고자 검의 정원을 찾아왔든. 우리의 영혼은 모두 같은 형태일 것이다. 우린 그 형태를 어떻게든 망치려는 자들을 베고 찌르고 쓰러뜨린다. 내가 창성이 된 것은 오로지 그 일을 더 잘 해내기 위함이니, 진정한 기념은 그들을 모두 끝장낸 다음이다. 그러니 오늘은 이만하고 짧게 끝내지. 이상! 각자 자리로 복귀하도록.”
“충!”
“충!”
소가주 임명식 때와 마찬가지로 기사들은 진의 해산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방금 진에게 ‘지상 수호’ 명령을 받은 루나 역시 회의실로 향했다. 자리에 남은 건 르엣과 원로들뿐이었다.
채 10분도 되지 않는 짧은 연설이었으나 오늘을 잊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크하하하! 우리 증손, 이번에도 짧고 굵게 행사를 끝냈구나. 시국이 좀 괜찮았다면 외나무다리 연회라도 열고, 낭만을 즐겼을 텐데 말이다.]“지토, 지플, 킨젤로, 황실, 적명족, 태양신교, 가네스토가. 그 모두를 정리하고 나면 연회를 열 수 있을 겁니다, 증조부님.”
[이 증조부가 한 번 더 저세상으로 가기 전엔 그 연회를 볼 수 있을 테지?]“물론입니다. 그러니 우선은 지토를 먼저 끝장내야겠군요.”
[그래, 그 괴물 놈을 족쳐야 뭐든 정리가 될 테지. 인세의 거대 세력끼리만 힘을 겨루던 내 시대와는 세상이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어.] [소가주,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면 되겠나?]“선조들께선 제가 지옥을 치는 동안 인세의 세력들을 견제해 주십시오.”
[알았…… 잠깐, 설마 지옥에는 혼자 갈 생각인가? 그로쉬에 성에 연합의 병력을 집결시켰잖나?]“무라칸, 발레리아, 베일을 데려갈 겁니다. 집결한 병력 중 황금함과 일부 초인들은 계속 대기시킬 생각입니다. 전투의 여파가 인세까지 올라오거나, 만약에라도 제가 패배할 경우를 대비해서.”
선별한 동료들 중 지토와 직접 전투를 펼칠 건 무라칸뿐이다.
물론 베일 또한 충분히 함께 싸울 수 있을 만큼 강하나, 그의 역할은 지옥에서 발레리아를 보호하는 것이다. 발레리아는 지옥의 마족들에게 진실의 기록을 깨우쳐주고, 행여 무라칸의 ‘기억’에 문제가 발생할 시 그 일을 해결하는 역할이었다.
무라칸의 힘은 단지 부서진 심장을 회복시키는 것뿐만이 아니라, 진의 성취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진의 영기가 강해지면 그의 힘 또한 상승하는 것이다. 따라서 무라칸은 현재 천 년 전의 위용을 전부 되찾은 상태지만, 심장의 상처 때문에 부작용이 있었다.
전성기와 똑같은 힘을 사용하다 보면 간혹 기억이 뒤틀리는 것이다. 케이탐의 그림에서 확인한 진실을 잊어버리고, 폭주 전조 증상을 보이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 빈도가 잦거나 심각하지는 않았다. 발레리아가 기록 마법으로 가볍게 잡아주기만 해도 다시 괜찮아지는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면 완벽하게 해결될 문제이기도 했다. 진이 창성에 도달하자마자 강해진 영기가 천 년 묵은 심장의 상처를 서서히 회복시키는 중이었다.
[패배라니! 증손아, 너는 이제 무적이나 다름이 없다.]“어디까지나 만약입니다. 이미 창성 검객 한 명이 놈에게 당한 전적이 있으니,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습니다.”
[으음, 그건 그렇지. 사실 이 증조부는 네가 혼자 가든 넷이 가든 별로 걱정은 안 된다.] [말씀과 표정이 따로 노시네요, 59대.] [아니 뭐, 창성이어도 증손은 증손이니까 그럴 수 있잖소, 21대.]“선조님들께선 제가 돌아올 때까지 다른 적들에 대한 정보를 알아봐 주십시오. 특히 가네스토가…… 놈들은 켈리악 지플과 연계 중이죠. 하지만 로키아의 세계라는 놈들의 본거지 외엔 아직 밝혀진 게 없습니다.”
지난번 앤을 처리한 이후, 연합은 아직 가네스토가의 소재와 동향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진마계가 난동을 피우니 그들을 추적할 여유가 거의 없던 까닭이다.
[알겠습니다, 소가주. 최근 페트로가 많이 성장했으니, 잠시 내정 관리를 그에게 위임하고 제가 직접 인세를 돌아다니며 그들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겠습니다.]르엣이 말했다.
“오, 페트로가 이제 집사장의 인정을 받은 겁니까?”
[예비 기수 시절부터 소가주를 전담한 집사입니다. 가끔 호들갑을 떠는 경향이 있긴 하나 소가주께 걸맞은 훌륭한 집사임은 분명합니다. 용돈이랍시고 소소한 횡령조차 한 적이 없더군요.]진은 페트로가 호들갑을 떨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돌아보면 페트로는 늘 묵묵히 자신을 보좌해왔었다.
“내가 인복이 좀 있기는 합니다. 집사장께서 대행을 맡기며 적당한 포상을 내리십시오.”
[예, 소가주. 그럼 진마계론 언제 가실 생각입니까?]“지금 바로 출발할 생각입니다.”
[지금 바로!?]“예, 증조부님. 본래 더 빨리 출발하고 싶었는데, 성국의 영혼들을 깨우느라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비셉스와는 이미 이야기가 끝났으니 저만 움직이면 됩니다.”
비셉스, 진마계에 남은 유일한 저항군. 그들은 현재 진을 기다리며 진마계 해방을 위한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르엣과 원로들은 진의 결정에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소가주가 남긴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었다.
“그럼 다녀와서 뵙도록 하죠.”
진은 곧장 붉은 부엉이를 세워둔 뒤뜰로 걸음을 옮겼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소가주.] [진마계에 룬칸델의 위엄을 보여주고 돌아오거라.]붉은 부엉이는 진을 순식간에 그로쉬에 성의 집결지로 보내주었다.
그로쉬에 성엔 여전히 방벽을 형성하던 때처럼 각 세력의 함대가 모여 있었다. 지플과 킨젤로 둘 다 진마계 본토로 이어지는 통로로 섣불리 진입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진은 잠시 황금함에 들러 연합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연합원들은 티칸에서 전달을 받아 진이 지금 지옥으로 내려간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플과 킨젤로의 수뇌들도 붉은 부엉이가 그로쉬에 성에 나타나자마자 움직일 기미를 보였다. 적들도 진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왔냐, 꼬마?”
“그래, 무라칸.”
“지토랑 싸우기 전, 마지막으로 역사쟁이의 기억 보호 마법을 받는다고 네놈 기념식도 참석하지 못했구만.”
“역…… 역사쟁이?”
“내가 매번 너를 역사의 수호자님이라고 부를 순 없잖냐.”
“그냥 발레리아라고 이름을 부르면 되는데?”
“이쪽이 좀 더 입에 붙어. 아무튼 꼬마 왔으니까 이제 출발하자, 거기 무적이자 불멸, 필멸자들의 천적 위대한 베일 경도.”
“아 좀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이내 일행이 황금함을 나서서 그로쉬에 성의 통로로 다가가자, 한 사람이 다가왔다.
“진 룬칸델.”
베라딘 지플이었다. 그의 뒤로 베티와 알마티아, 쿤이 서 있었다.
“오, 베라딘. 그로쉬에 성 공략전엔 아랫것들만 보내더니. 이번엔 직접 지옥으로 가려는 모양이지?”
내용과 달리 비꼬는 어조가 아니었다. 오히려 진의 목소리엔 반가운 기색이 묻어나고 있었다.
“저 아래엔 지토뿐만이 아니라 우리 지플의 배신자도 있거든. 내가 직접 가서 그 구차한 삶을 끝내주어야지.”
켈리악에 대한 이야기였다.
진은 베라딘이 켈리악을 죽이고 더 타락하는 모습이 떠올라 잠시 씁쓸했으나, 웃는 얼굴로 이렇게 답을 해주었다.
“베라딘, 적당히 하고 이제 그만 예전처럼 돌아와라. 너한텐 그런 대사가 정말 안 어울리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