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40)
제 999화
234화. 지옥으로(1)
1804년 3월 10일.
성국방어전이 끝나고 보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진은 그 기간 동안 내내 아율라의 곁을 지키며 죽은 신민들의 영혼을 다시 성국의 영토 위로 깨워주었다.
아율라는 그들이 모두 깨어난 후 십여 분이 지나자 지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의 유언은, 언제나 신민들이 가슴에 새기고 사는 아율라 경전의 한 구절이었다.
-선을 행함에 있어 보상을 바라지 말라, 신념을 지킴에 있어 인정을 바라지 말라, 희생을 결심함에 있어 계산을 하지 말라.
신의 유언은 성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깊은 울림을 전했다.
그 울림은 자연스레 믿음으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성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신자들을 받게 되었다.
멸망 혹은 그에 준하는 상태가 되었다, 라고 평가되는 성국으로 아율라의 결단에 감화된 신자들이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이 마주하는 건 온통 부서지고 찢긴 성국 곳곳의 풍경과, 그 위에 서 있는 신민들의 영혼체였다.
[환영합니다, 아율라의 빛을 따라 성국으로 오신 형제들이여.] [비록 지금은 이 땅 위에 멀쩡한 것이 별로 없고, 또 우린 영혼체인지라 그대들의 복구 작업을 도울 수도 없으나. 우리가 늘 곁에서 기도를 올리겠습니다. 형제들이 성국에 해준 일을, 우리가 모두 보고 듣고 기억하겠습니다.]폐허가 된 땅들은 놀라울 만큼 빠르게 옛 모습을 찾아갔다.
휴페스터는 물론이고 루테로 연방, 심지어 수인들의 땅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성국으로 이주를 결정하고 있었다.
“묘한 일이오. 아율라가 죽고 나서야 아율라교는 그 어느 때보다 거대한 부흥을 이루었군.”
수도 광장의 인파에 섞인 한 남자가 말했다.
루크, 태양신교의 대사제였다. 그는 금설족 화장품을 써서 인간처럼 변장하고 있었는데, 기운을 억누른 탓에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의 옆에는 마찬가지로 변장한 무녀 산나가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우리 태양신교 또한 그와 비슷한 역설을 겪었지요. 우리 태양신교가 가장 부흥한 때는 그분께서 사라진 다음이니.”
산나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루크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과거 페이텔을 붙잡으려던 일을 실패한 일과, 그때 루크와 나눈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바멀 연합, 루테로 연방, 킨젤로, 적명족, 진마계. 우리가 그중 어느 쪽과 가장 먼저 싸우게 될지 궁금한 마음이 드는군.
-그들 중 가장 먼저 승기를 잡는 세력과 싸우게 될 겁니다. 당장은 기도의 응답이 흐려져서 알 수 없으나, 제 생각엔 진마계 쪽이 가장 가능성이 높을 것 같군요.
-아마 그럴 테지만, 나는 바멀 연합 쪽이 결국 태양신교의 숙원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 확신하오.
-시론 룬칸델 때문인가요?
-아니, 진 룬칸델. 그는 인간의 몸으로 명왕족 투왕이 되었고, 현 투신의 후계자가 된 인물이지. 게다가 솔더렛의 권능까지 가지고 있으니…… 그가 만약 이번 전쟁을 통해 완성이 된다면, 모든 세력이 그를 올려다보는 입장이 될 것이오. 우리 태양신교조차.
“솔직히, 상황이 정말 루크 사제님의 예상대로 흘러갈 줄은 몰랐습니다. 진 룬칸델, 그가 창성에 오르다니…… 그때 하신 말씀처럼, 이제 우리는 그를 올려보아야 하는 입장이 되었나요?”
루크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아니오.”
“아직은?”
“그가 얻은 힘은 현 투신이나 시론 룬칸델, 혹은 나처럼 오롯이 패도와 파괴의 특성만을 가지고 있지 않소. 그 힘이 없는 것은 아니나, 나나 그들에 비해 다소 떨어지지. 그건 진 룬칸델이 우리만큼 잔인하고 차갑지 않기 때문이오.”
시론은 목적을 위해 모든 것을 등지고 흑해로 갈 수 있는 인물이다. 그에게 개인의 삶은 중요치 않으며, 그건 자신뿐만이 아니라 부하와 적들 모두에게도 적용되는 내용이었다.
반은 신들과 전쟁을 치르고자 셀 수 없이 많은 형제들을 죽음으로 내몰 수 있는 인물이었으며, 루크 또한 라프라로사에 살던 시절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피를 뒤집어쓸 수 있었다. 누구의 피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말하자면 그들 셋은 목적을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부류다. 혹은 그런 부류였다.
그러나 진은 그들처럼 할 수 없는 인간이다.
그렇기에 진이 얻은 또 다른 창성의 특성, 패도는 그들만큼 강하고 완벽하지 않았다. 론이 추구하던 정도와 유사한 특성이 섞여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위험한 것이오. 완전하지 않다는 건 달리 말하면 더 채울 수 있다는 뜻이니까. 그에겐, 아직 오를 수 있는 길이 남았소.”
“으음, 루크 사제님 말씀을 들으니 진 룬칸델을 너무 견제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최근 켈리악과 쉬누까지 놓쳤으니…… 우리 태양신교의 위신이 말이 아닙니다.”
“차라리 그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는 방향도 고민을 해보는 게 좋겠소.”
“……진 룬칸델을 우리 편으로요? 그 인간이 우리와 함께하는 모습은 잘 상상이 되지 않네요. 태양께서 제 기도에 가장 깊이 응해주시던 그때라 하더라도 말이에요.”
“당연히 그대의 기도로는 불가한 일이오. 태양신께서 부활했을 때나 가능한 일이겠지.”
“그래도 그런 의견을 주신 이유가 있겠죠?”
“그가 창성에 올라 얻은 권능은 태양신과 관련이 있는 것 같소.”
“저는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어떤 부분에서요?”
“재생에 대한 의지. 무녀가 나보다 더 잘 알겠지만, 태양신은 여러 의지로 나뉘었소. 그중 세상을 재생시키려는 의지가 진 룬칸델이 창성에 오른 순간 품은 의지와 일치하고 있소.”
루크가 무녀보다 그 사실을 더 잘 알아본 건 그가 창성인 데다 태양신의 비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진 룬칸델은 완성되어가며 태양신의 의지와 점점 밀접해질 수 있소.”
“아! 아예 태양신의 의지에 더 가까워져서, 태양신의 일부 그 자체가 될 수도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일부가 된다는 표현은 부적절한 것 같군. 잡아먹힌다, 혹은 파묻힌다는 쪽이 더 어울리지 않겠소. 그가 태양신께 잡아먹히면, 그때부터 그는 우리와 함께할 수밖에 없소. 설령 그와 우리 모두가 원치 않는다 할지라도.”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오…… 그건 분명 태양신교의 부흥에 도움이 되는 일이에요.”
* * *
그 시각, 진은 검의 정원 집무실에서 귀를 후비고 있었다.
“누가 내 얘기를 하나, 이상하게 귀가 간지럽군요.”
“당연히 온 세상이 네 얘기를 하고 있지 않겠느냐, 막내야. 넌 창성에 올라 성국을 지켰다. 게다가 성국에서 죽은 이들을 모두 영혼체로 부활시키기까지 했지. 지금 성국으로 모이는 이들은, 물론 아율라께 감화된 것도 있지만 너를 새로운 신으로 여기는 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신이라니, 듣기만 해도 거북합니다.”
“입신의 영역에 들어섰고, 재생의 권능까지 생겼으니 틀린 말은 아니지.”
“아뇨, 루나 누님. 틀린 말입니다.”
루크와 산나가 기대하는 바와 달리 진은 절대로 신, 혹은 신의 일부가 될 생각이 없었다.
진은 그게 어떤 면에선 끝내 적들에게 패배해 쓰러지는 것보다도 어두운 미래라고 확신했다. 신이 될 기회가 오거든, 진은 반드시 그로부터 벗어날 것이다.
“입신이란 건 단지 제가 이룬 경지를 표현하는 말일 뿐, 저는 신이 되는 게 그 무엇보다도 나쁜 미래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아메리스 님 같은 불멸자들을 만나며 그 생각은 더 확고해졌죠. 신, 불멸자가 된다는 건 곧 운명에 속박되어 한정된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니까요.”
“후후, 다소 과민하게 반응하는구나.”
“정말 싫어서 그렇습니다. 아율라께서도 신이 되는 건 끔찍한 일이라 하셨고…… 창성이 된 후,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기도 합니다. 전 언젠가 땅에 사는 사람으로서 삶을 마무리할 겁니다.”
“하긴. 아버지께서도 마성화를 극복하기 전 신처럼 지내실 땐 정말 어두우셨지. 지금의 아버지가 훨씬 더 보기 좋다. 너도 직접 뵈면 깜짝 놀랄 것이다. 물론 아버지께서도 네가 창성이 된 것에 놀라실 거고. 그 정도일까? 크하하 웃으며 네 등을 팡팡 치실 것 같군. 증조부님처럼.”
두 사람이 킬킬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사실 진은 내심 ‘마성화’를 걱정하고 있었다. 아직은 전혀 기미가 보이지 않으나, 언제든 마성화가 찾아올 것은 분명하다.
때문에 진은 창성이 된 후 오히려 조바심을 느꼈다. 마성화가 찾아오기 전에 모든 일을 끝내야만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것이다.
바로 얼마 전 마성화에 빠져 허망한 최후를 맞이한 파엘리토를 보았으니 더욱 그랬다.
“……파엘리토는, 아마 세뇌되고 마성화에 빠지지 않은 전성기엔 지금의 저보다 더 강했을 겁니다.”
“네가 그렇게 보았다면 분명 그랬을 테지. 물론 승패를 확실히 장담할 수 있는 정도로 차이가 크진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그런 파엘리토도 지토의 마수에 당해 괴물이 되었습니다.”
“하여, 지토와 싸우는 게 두려워졌더냐?”
진은 단번에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런데도 지토가 두렵지 않다는 말을 하려던 참입니다. 파엘리토가 지토에게 패한 건, 사키엘을 비롯해 그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인질로 잡혔기 때문이죠. 그러나 제게는 누님이 있고, 동료들이 있고, 기사들이 있습니다.”
“그래, 우리 룬칸델은 그에게 잡혀 네 발목을 붙잡을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누님께선 이번 지옥 원정에서 빠져주십시오.”
루나의 눈동자가 커졌다.
“……나 없이 지옥 원정을 가겠다는 말이냐?”
“누님뿐만이 아니라 지상 전력의 대부분을 제외한 채 다녀올 생각입니다. 누님께선, 인세의 제 소중한 사람들이 놈에게 다치거나 잡히지 않도록 지켜주십시오.”
전혀 생각지 못한 말에 루나는 한동안 빤히 진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내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루나는 진이 그 일의 총책임을 맡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문제는 지토만이 아니다. 진마계 외에도 적들은 여전히 가문과 바멀 연합을 위협하고 있었다.
“싸우러 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임무를 내리는구나. 명령을 따르마. 하지만 설마, 혼자 갈 생각은 아니겠지?”
“무라칸과 몇 사람을 추려 떠날 생각입니다.”
“지플과 킨젤로는 대규모 병력을 보낼 테니, 우리만 극소수 인원으로 지옥을 침공하게 되겠군.”
“진마계 내부에 비셉스들도 대기하고 있을 테니 그들의 도움도 받을 겁니다. 그리고 저는 지토만큼이나, 지옥에서 일을 꾸미고 있을 켈리악 지플이 신경 쓰입니다.”
“결과적으로 파엘리토를 마지막에 흉신으로 만든 건 켈리악 지플이지. 나도 그자가 걸리는구나. 하지만 지플에게도 그자를 처단해야 할 이유가 있으니, 그자는 지플이 맡게 될지도 모른다.”
진은 베라딘의 모습을 떠올렸다.
왠지 지옥에서 그가 만약 켈리악을 만나게 된다면, 그래서 그를 죽인다면. 그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베라딘 지플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그렇게만 둘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뭐든, 직접 가봐야 확실해질 테지만.”
루나는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룬칸델의 소가주로서 지플의 가주를 걱정하는 건 사실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사람은 나밖에 없고, 다행히도 내게는 너를 벌할 권한이 없군. 오히려 네가 창성이 되고도 그런 감정을 무사히 지키고 있다는 사실은, 이 누이를 안심시키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