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42)
제 999화
234화. 지옥으로(3)
베라딘이 미간을 좁혔다.
“……뭐라고?”
“넌 지금 네가 아주 잘하고 있다 생각하고 있겠지. 켈리악을 끌어내리고, 가주로서 새로운 지플을 더 강하고 견고하게 만드는 중이라고. 어쩌면 일부는 사실일지도 몰라. 하지만, 넌 결국 이용되고 있을 뿐이다.”
“뜬금없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정신 조작 때문에 자아를 잃고 괴물이 되어가는 중이라고. 너는 네가 원해서 지금처럼 차가운 인간이 된 게 아니야.”
“동맹은 아니지만 지토를 같이 쳐야 하니 인사나 나누고자 찾아온 건데, 이따위 소리를 듣게 될 줄은 몰랐군. 창성이 되더니 벌써 마성화가 진행된 거냐? 말을 가려라, 진 룬칸델.”
“마성화, 그래. 너는 그것과 비슷한 상태다. 그러니 내가 도와주마. 더는 널 그 상태로 계속 둘 수가 없다.”
“거절하지.”
“거절은 거절이다.”
“……지금 나랑 말장난을 하자는 건가?”
“아니, 진심인데.”
베라딘은 말문이 막혀 진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겨우 이 정도 도발에 분노를 느끼는 자신이 신기하기도 했다. 진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전혀 신경 쓰지 않았을 터였다.
‘묘하게, 나를 보는 진 룬칸델의 눈이 엘로나 님과 닮은 것 같아서 불쾌하군…….’
얼마 전 베라딘을 잠식하려는 저주의 불을 풀어줄 때, 엘로나는 그의 불안을 엿보았었다.
그건 켈리악에 대한 두려움, 친구들에 대한 걱정 같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엘로나는 언젠가 베라딘이 반드시 그 마음을 직시하게 만들고자 결심했었다. 베라딘이 지금 진에게 그녀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됐다, 말을 말지. 내려가서 행여 지토에게 당해 죽지 마라. 너를 꺾는 건 우리 지플이다.”
“그냥 걱정된다고 말을 해라. 어디 덧나냐?”
베라딘은 대답을 하려다 한숨을 푹 내쉬며 지플의 대열로 돌아갔다.
“저 녀석, 뭔가 상태가 조금 나아진 것 같은데? 내 착각이냐?”
“나도 느꼈어, 무라칸. 정신 조작이 완벽하지 않았으니 계속 내면에 문제가 생기고 있겠지.”
“나중에 베라딘 지플과 엘로나 지플의 기록을 조사하면 뭐든 실마리가 잡힐 거야.”
“그래…… 비궁에 남은 엘로나 지플의 기록들을 보면, 과거 엘로나도 지플에게 이용되어 학살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지.”
비궁에 남은 기록에 의하면 엘로나는 깨어나자마자 살인을 피하려 했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혼란을 겪었다. 결코 온 세상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죽이던 학살자 같은 성격이 아닌 듯 보였다.
“정말 엘로나도 베라딘 지플처럼 이용된 것이라면, 그래서 그들이 그 사실을 깨닫고 지플에 반기를 든다면. 지플은 세계제일가의 위치를 내려놓게 될 수밖에 없겠군.”
“마신석의 완성이 무산되는 경우까지 포함해야 그렇게 되겠지, 베일. 어쨌거나 발레리아가 두 사람의 기록을 살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해. 그리고 이번 원정은 그 상황을 만들기에 꽤 좋은 무대지.”
지옥에서 싸우는 도중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전투 내내 진과 베라딘은 멀리 떨어진 지역에 위치할 수도 있었다.
다만 지토 토벌이 끝나면 진이 베라딘과 이토록 가까이 있는 날은 거의 없을 터였다.
또 다른 공공의 적이 등장하거나, 룬칸델과 지플이 마침내 전면전을 치를 때가 아니면 당연히 마주할 일이 없는 것이다.
‘본토 방어 때문에 엘로나가 없는 게 아쉽군. 하지만 만약 베라딘이 위험에 처하게 되면, 그자는 즉시 지옥으로 지원을 올 거다. 그때 운이 좋다면 이야기를 해보거나, 기록을 살펴볼 수 있겠지.’
거기까지 생각한 찰나 이번엔 오르갈이 일행을 찾아왔다.
[진.]그를 보자마자 환마장 피롭스 바흐마의 ‘꿈 능력’이 떠올랐다. 특히 발레리아는 꿈 능력 때문에 매일 연합 주요 인원의 기록을 살핀 것을 떠올리며 속으로 치를 떨었다.
[그로쉬에 성의 통로에 대해 설명해 주고자 찾아왔다.]“그래. 말해 봐라, 오르갈.”
“그리고?”
[그곳에서 북쪽으로 쭉 나아가면 안 가문의 성이 나온다. 비궁주가 죽인 비델루체의 성이지. 전투는 그곳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안 성에서 지토의 거처로 이어지는 길도 알고 있나?”
오르갈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에 기억을 좀 더 찾은 덕에. 하지만 지토의 거처는 길을 안다고 하여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열쇠가 필요하지.]“이 검을 말하는 모양이군.”
진이 황금함에서 챙겨온 검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바스칼라, 파엘리토의 검은 그가 죽고도 파괴되지 않은 채 멀쩡한 모습으로 전장에 남아 있었다.
[……호오, 어떻게 알았나?]“파엘리토에게 들었다.”
파엘리토는 미처 그 정보를 알려주지 못하고 죽었다. 진에게 바스칼라가 열쇠라는 사실을 알려준 건 비셉스였다.
진은 지금 오르갈이 말하는 모든 정보를 비셉스에게 미리 들은 상태였다. 진은 오르갈과 비셉스의 말이 일치하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아, 그렇겠군. 그 검을 열쇠처럼 사용하면, 검에 봉인된 마신들이 한 번에 깨어날 것이다. 일종의 수호자인 셈이지.]“그럼 그냥 진이 바스칼라를 열쇠로 안 쓰고 문을 통째로 부숴버리면 되는 것 아닌가?”
베일이 말하자 오르갈은 고개를 저었다.
[물론 진은 이제 창성에 올랐으니 세상에 베지 못할 사물이 없을 것이다, 아마도. 하지만 그 문은 진마계 내의 또 다른 아공간으로 이어져 있어. 정확한 방법으로 열지 않으면, 지토를 찾기까진 아주 멀리 돌아가야 한다.]“그럼 바스칼라에 봉인된 마신들을 모두 죽여야 지토를 만날 수 있다는 뜻이군?”
[그뿐만이 아니라 문에 도달하기 전까지 우리를 가로막는 진마계의 군대들도 있겠지.]진마계의 군대.
진에겐 이제 그들도 지토의 피해자로 보였다. 파엘리토처럼 지토에게 세뇌되어 원치 않는 전쟁을 치르는 것이다.
그렇기에 진은 그들을 상대하더라도 성국의 신민들처럼 추후 죽음을 유예해 줄 의향이 있었다. 누메루스의 의지가 없으니 자아가 있는 영혼 형태로 깨워 줄 수는 없을 테지만 말이다.
“알겠다, 오르갈.”
진은 킨젤로의 대열로 돌아가는 오르갈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지토는 저놈이 자신의 후계가 되길 원한다고 했어.”
오르갈은 그 이유를 모르는 듯 말했었으나, 진은 그로 인해 생긴 한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니 어쩌면 지토는 상황이 나빠지면 오르갈에게 자신의 힘, 혹은 어떤 유산을 남길 수도 있겠지. 행여 그런 낌새가 보이거든 반드시 막아야 하니 놈을 예의주시하자고.”
“일단 당장은 우릴 전혀 속이지 않았군. 비셉스가 말한 정보와 전부 일치한다, 꼬마.”
일행이 천천히 통로로 걸음을 옮겼다.
통로는 마치 깎아지른 벼랑처럼 보였다. 저 너머의 어둠 아래에서부터 마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가자.”
후우웅-!
무라칸이 본모습으로 변신하며 일행을 등에 태웠다. 무라칸은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가라앉으며 지플과 킨젤로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통로는 끝이 없는 듯 깊었다. 전속으로 한 시간이 넘도록 하강해도 바닥에 닿을 기미가 없었다.
“이 정도면 지플과 킨젤로의 함대가 내려오기까진 시간이 상당히 필요하겠군. 정찰대는 그보다 빠르게 도착하겠지만, 우린 이미 북쪽으로 향하고 있겠어.”
[단지 거리만 먼 게 아니야. 지금 우린 봉마벽의 부서진 틈이 형성하고 있는 아공간을 끊임없이 넘는 중이다. 함대가 이 아공간들을 다 통과하려면 아마 이틀은 필요할 거다, 꼬마.]진마계 암흑지대에 도달하기까지는 총 두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암흑지대는, 오르갈과 비셉스의 설명과 전혀 다른 풍경을 하고 있었다.
“……이건 비셉스에게 듣지 못한 내용인데.”
광활한 어둠의 영역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 어둠 위로 진마계 마족들의 시체가 문자 그대로 산을 이루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수천만을 훌쩍 넘을 시체들이 암흑지대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다. 마치 살처분된 가축들처럼.
그러나 죽은 마족들은 가축이 아니라 사람이다.
비록 진과는 적으로 만났으나 그 이유는 오로지 이들이 지토에게 세뇌되었기 때문이다. 세뇌되기 전까지, 이들은 그저 지옥에서 태어났을 뿐인 사람이었다.
‘마지막으로 비셉스와 연락을 한 건 일주일 전이다. 결전 준비 때문에 전혀 연락할 수 없다고 했었어. 그렇다면 일주일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건가…… 아니, 시체들의 상태를 보아하니 그것도 아니군.’
시체들에서 뜨끈뜨끈한 기운이 올라오고 있었다.
“전부 서로 싸우다가 죽었어…… 그 외엔 다른 기록조차 나오지 않아.”
[비셉스와 지토의 부하들이 싸운 결과도 아닌 것 같군. 애초에 비셉스의 전투 인원은 이렇게까지 많지 않으니까.]진은 직감하고 있었다.
지토가 ‘고통’이라는 자신의 권능을 강화하기 위해 이들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창성의 통찰력이 이곳에서 일어난 일을, 마족들의 원혼이 향한 방향을 어렴풋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지토의 의지가 느껴졌다. 그 의지는 말하고 있었다. 이 모든 마족은, 내가 아니라 네가 죽인 것이라고.
“아무래도 지토는 내가 두려운 모양이군.”
[꼬마?]“그게 아니라면 자신의 권능을 늘리려고 이렇게 마족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지 않았겠지. 아마 놈의 거처에 닿기까지 계속해서 이런 시체의 산을 지나야 할 거야.”
화아아아……!
진이 손바닥 위에 한 덩이의 황금빛 기운을 형성했다.
그러고는 마치 제를 올리듯 바닥에 그 기운을 내려두자, 별안간 시체들 사이로 맥이 퍼지듯 금빛 기운이 번져나갔다.
창성에 올라 재생의 권능을 얻지 못했다면, 진은 지금 이 순간 참기 어려운 분노에 휩싸였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건 곧 마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진은 아율라가 해준 말을 떠올리며 내면을 단단하게 다지고 있었다.
-그러니 죄책감에 짓눌려 쓰러지지 말거라, 진. 너는 저들에게, 이전에 그렇게 죽은 이들에게, 이후에 그렇게 죽을 이들에게 삶을 돌려주기 위해, 결코 쓰러져선 안 된다.
“내가 지토를 처단하고, 너희의 삶을 돌려주마.”
일행은 시체들을 뒤로한 채 북쪽으로 비행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