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43)
제 999화
234화. 지옥으로(4)
* * *
이틀 전, 진마계 나락 벨가시움 제7성 인근 영혼나무 숲.
“하아, 하……!”
바셋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사흘 전 갑작스럽게 진마계엔 대전쟁이 시작되었다. 그 때문에 지토와의 결전을 준비하느라 은신처를 빠져나온 비셉스의 결사대원들도 전쟁에 휘말려 연일 고전을 치르는 중이었다.
“괜찮으십니까, 형님.”
“바셋경내상이심각해요. 실키아에게치료를받는게.”
틸리아스와 미솔이 바셋의 옆에 서며 말했다.
바셋은 이주 중인 비전투원들을 지키다가 부상을 당한 상태였다. 백만에 육박하는 인원을 거의 바셋 혼자 보호한 것이다. 열 명의 마왕과 오십여 명에 달하는 대장군,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병사들로부터.
그 많은 적들을 바셋 혼자 감당할 수 있던 건 그들이 예전처럼 비셉스만을 노리지 않은 덕이었다.
지토의 수하들은. 아니, 정확히 수하였던 마족들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죽이려는 모습을 보였다. 적은 물론이고, 같은 부대에 소속된 아군끼리도 살육전을 벌인 것이다.
근처의 단원들이 미안한 마음과 존경을 담아 멀리서 바셋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셋은 그들을 지토로부터 지켜주는 일이야말로 자신의 존재 의의라 생각했다.
“실키아는 안 돼. 그 아이의 힘은 이런 일에 낭비되어선 안 된다.”
“하지만바셋경.”
“안 된다고 하였다. 어차피 몇 시간은 여유가 생겼으니, 그때까지 잘 추스르면 된다…….”
단원들은 바셋에게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근처에 끝도 없이 널린 시체들을 향해 침을 뱉거나 욕을 퍼붓기도 했다.
지금껏 비셉스에게 진마계군은 모조리 잔인한 억압자였기 때문이었다. 비셉스의 단원들은 늘 생존을 위해 쫓기는 삶을 살았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지토의 부하들에게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경험이 있었다.
그러니 증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증오하지 않으면, 망각 주기가 올 때마다 누적된 증오를 조금이라도 잊지 않으면, 미칠 수밖에 없는 삶이었다.
바셋은 시체를 짓밟고 욕하는 단원들을 보며 참담한 마음을 겨우 억눌렀다.
“틸리아스. 저들에게 어떻게 진실을 말해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형님…….”
“우리도 진 룬칸델에게 들은 이야기를 쉽게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토는 세상에 다시 없을 끔찍한 살육의 장을 열었고, 지금껏 우리가 적이라 믿었던 이들은…… 모두 지토의 또 다른 피해자에 불과하였다.”
세뇌는 마왕과 대장군을 비롯한 고위 마족들에게만 적용된 게 아니다.
지토는 진마계군 ‘전원’을 세뇌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발레리아의 기록 마법에 그 사실이 드러나지 않은 이유는, 지토가 처음 세뇌한 평범한 마족들은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
현 진마계군의 일반 병사는 전부 날 때부터 세뇌된 부모, 세뇌된 상관들의 아래에서 성장했다.
때문에 따로 세뇌할 이유가 없었다. 그 절대적인 환경 속에서, 마족들은 전부 지토의 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오로지 비셉스만이 지토에게 세뇌되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껏 억압자들에게 저항해온 것이고.
“하아.”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은 우리 모두 종종 했었다. 어쩌면 지토는 가장 충실한 권속들마저 결국 자신의 쾌락을 위해 소모품처럼 쓸 것이라고.”
하지만 설마 파엘리토와 사키엘 같은 최심복들까지 그렇게 사용하리라곤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통치’라는 건 당연히 관리자들이 필요한 법이며, 그보다도 먼저 백성들이 있어야 성립 가능한 개념이다.
그러나 지금 지토가 벌인 짓은 전혀 그에 부합하지 않았다. 백성은 미치게 만들어서 서로가 서로를 죽이게 하고, 관리자가 되어야 할 부하들은 쓰레기처럼 버리고 있으니 말이다.
“이건, 이건 아니야. 우린 지금껏 그 개자식이 세상을 지배하길 바라는 줄 알았다. 하지만 놈이 원했던 건, 그저…… 멸망이었어. 혹은 지토가 선택한 극소수만 살아남는 결말일 수도 있겠지. 진마계 전역이 전란에 휩싸였으니, 벌써 몇 억은 죽었을 것이다…….”
이제 비셉스는 단원들뿐만이 아니라 지토의 부하들까지 지켜줘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비셉스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온 건 비셉스에 소속된 자들의 안전과 자유가 아니라, 진마계라는 세상 그 자체의 평화였다.
그러나 단원들은 죽은 지토의 부하들을 저주하고 있고 증오는 멈출 길이 없다.
“진마계 모두가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단원들이, 그리고 저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미 손에 묻은 피는 씻겨지지 않고, 죽은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하는데.”
바셋은 마음이 꺾이고 있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죽인 진마계군은 셀 수도 없고, 틸리아스를 비롯한 첩자들은 기밀 유지를 위해 붙잡힌 단원들을 고문하고 죽여왔다.
이제 어떻게 결말이 나더라도 비셉스는 밝은 미래를 맞이할 수 없었다. 삶보다 더 무거운 잔인한 진실과 결코 아물지 않을 거대한 상처만이 마족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알려야 합니다. 또한, 싸워야 합니다. 결국 우리가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무너지게 된다 할지라도, 앞으로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형님.”
“그래…… 그렇겠지.”
“지금쯤 진 룬칸델이 지토를 치러 진마계에 도착했을 겁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가 지토를 만나기 전에 어떻게든 인공태양을 멈추는 것입니다.”
인공태양, 태양신이 죽고 진마계가 생존을 위해 만든 거대 기관.
그 기관은 진마계 가장 깊숙한 곳에 남은 ‘태양의 땅’으로부터 힘을 받았다. 비셉스는 인공태양이 존재하는 한 창성에 오른 진이라 할지라도 지토를 결코 죽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틸리아스가 진을 처음 만난 날, 연합이 비셉스와 손을 잡지 않으면 지토를 죽일 수 없다고 말한 까닭이었다.
현재 태양의 땅 인근엔 비셉스의 첩자 리돌로스 트리낙이 있었다.
“벨가시움군이 전장을 지나가는 대로 리돌로스를 만나러 가도록 하지. 그에게 과거 파엘리토가 나락안으로 복사한 이 열쇠를 넘기면 인공태양은 파괴되고, 진 룬칸델은 승리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형님. 그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어떻게든, 다시. 그걸 위해 실키아의 힘을 아껴두시는 것 아닙니까. 해방이 코앞입니다, 회복에만 집중하십시오. 단원들은 제가 챙기고 있겠습니다.”
바셋은 다섯 시간 동안 내상을 다스렸다. 정찰대들이 돌아와서 벨가시움군이 전장을 벗어난 사실을 알려오기 시작했다.
“바셋 경, 벨가시움군이 나락 외곽을 빠져나갔습니다.”
“알겠다. 이제 출발 준비를 해야겠군.”
“한데, 바셋 경. 벨가시움군은 다른 부대와 달리 서로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뭐라?”
“그들은 레일라 벨가시움의 지휘를 받아 어디론가 이동만 하고 있었습니다. 중간에 다른 부대와 마찰이 있었는데도, 벨가시움군만이 미치지 않은 듯 멀쩡하게 싸우는 모습이었습니다. 게다가 살인귀처럼 변해 자신들을 공격하는 아군을 보고도 전혀 당황하지 않더군요.”
“그렇다면 레일라 벨가시움은 사태가 이렇게 흘러갈 걸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 군대는 어디로 향했나?”
“그것도 지토의 거처 인근이 아닌 걸로 보였습니다. 저희 추정으로는, 독마성이었습니다.”
“독마성이라. 그렇다면 그자도 켈리악 지플의 아래로 들어간 모양이군. 지토를 배신하고 켈리악에게 붙은 이들은 지토의 정신 지배에 당하지 않고 있는 거다.”
바셋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즉시 독마성으로 가 그쪽의 동향을 파악하라. 라갈은 몰라도 레일라 정도 되는 인물까지 포섭했다면, 벌써 진마계군의 1할 이상을 얻었을 가능성이 높아. 그리고 그자는 지토처럼 또 우리를 억압하고 이용하려 할 것이다.”
켈리악과 결탁한 고위 마족들은 몰라도, 그 아래의 평범한 사람들이 또 영문도 모른 채 누군가의 전쟁 소모품으로 전락하는 일은 막아야 했다.
“알겠습니다, 바셋 경.”
비셉스가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제 약 열 시간만 더 이동하면 태양의 땅 진입로에 도달할 터였다.
어딜 걸어도 시체가 밟혔다. 있어야 할 길 대신 시체가 이룬 산과 그 피로 흐르는 강이 더 많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제 인공태양만 파괴하면 진마계는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때는 가짜 빛조차 없이 어두운 세상일 테지만, 마음은 이미 다 꺾였고 돌이킬 수 없는 슬픔만이 가득할 테지만, 그래도 지토의 치하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형님, 뭔가 이상합니다.”
태양로 근처에 다다르자 틸리아스가 주위를 살피며 말했다.
“무엇이?”
“아까부터, 시체들의 흔적이 달라졌습니다. 일반병들이 서로 싸우다 공멸한 흔적이 없지는 않았습니다만, 어떤 한 강자가 전장에 난입한 듯 보입니다.”
“나도 인지하고 있었다. 부대에 정신 지배로 이성을 잃은 마왕이 섞여 있던 모양이군. 아니면 이미 다른 부대들을 전멸시키고 홀로 살아남은 마왕이 나락을 떠돌다가 또 다른 부대와 마주쳤거나.”
대답은 그렇게 했으나 비셉스의 간부들은 위화감을 느꼈다.
이미 그런 식으로 무차별 살육전에 마왕이 난입한 전장은 여럿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로 한 사람의 흔적이 압도적으로 남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최소 레일라 이상의 초월적인 강자가 남긴 흔적인 것이다.
“잘 봤군, 틸리아스.”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간부들이 흠칫하며 주위를 살폈다. 유난히 긴 한 개의 뿔과 자신의 거구만큼 큰 대검을 어깨에 걸친 마족, 리돌로스 트리낙이었다.
“리돌로스 경?”
“으아아깜짝이야리돌로스경이잖아.”
“리돌로스? 언제 우리 대열에 섞였나. 왜 인기척도 없이…….”
“지나가는 마족들이 너무 많으니 시체 사이에 섞여 있었소. 놀랐다면 미안하군. 자, 열쇠를 주시오. 가서 내 인공태양을 부수고 오리다.”
바셋과 간부들은 한동안 리돌로스가 내민 손을 쳐다보았다.
그 손엔 마족들의 피와 더불어 부서진 뼈와 살점들이 붙어 있었다. 방금 전까지 누군가의 머리를 움켜쥐어 터뜨린 듯이.
“……리돌로스. 설마, 자네가 여기 마족들을 죽였나?”
리돌로스는 숨길 생각이 없었다.
그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열쇠나 주시오. 그리하면 그간의 정을 생각해 간부들에겐 살 수 있는 기회를 줄 테니.”
“리돌로스! 이 무슨……!”
바셋이 소리치자 리돌로스는 우스운 듯 고개를 꺾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바셋 경과 떨거지들 전부가 덤벼도 내게 안 된다는 건 알지 않소? 아무튼 꽤 충격을 받은 모양이군. 곱게 줄 생각이 없는 듯 보이니, 열쇠는 그럼 지금부터 당신들을 전부 몰살하고 가져가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