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46)
제 999화
234화. 지옥으로(7)
처음 그로쉬에 성의 통로를 이용할 때 무라칸이 예상한 대로, 킨젤로와 지플의 함대가 그 아공간을 다 넘어가기까진 족히 이틀이 필요할 것 같았다.
“집정관, 마령대장.”
베라딘의 부름에 사트린과 베티가 다가왔다.
“예, 가주. 말씀하십시오.”
“방금 정찰대로부터 킨젤로의 악마룡이 따로 빠져나와 본대를 앞질러 가기 시작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제피린이… 그렇다면 우리보다 먼저 지옥에 도달하려는 생각이겠군요.”
“그렇겠지. 내 생각엔 제피린 혼자 움직였을 것 같지 않군.”
“오르갈이 제피린과 함께 내려갔을 것이란 말씀이십니까?”
베라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르갈은 아마 진마계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힘, 혹은 자신을 완성시켜 줄 특별한 물건 같은 것이겠지. 마신석 또한 그렇게 예측을 했었고.”
당연히 오르갈, 그리고 킨젤로가 강해지는 건 룬칸델뿐만이 아니라 지플도 원치 않는 일이었다.
그는 여전히 비밀에 싸인 존재다.
특히 진마계와는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베라딘으로서는 그가 지옥에서 다른 세력들의 뒤통수를 치는 걸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그자를 쫓아가야겠다. 어차피 계속 함대 전체의 속도에 맞추면 진 룬칸델의 동선을 확인하는 것도 늦어질 것이다. 그는 우리보다 몇 배는 빠르게 지옥에 도착했을 테니까.”
진은 지플과 킨젤로를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있었다.
애초에 배려를 할 만한 관계도 아니긴 하나, 진은 마치 거대 세력들 없이도 얼마든지 지토를 혼자 상대할 수 있는 듯 행동했다.
그러나 베라딘은 계속해서 진이 신경 쓰였다.
가능하면 그가 지토와 싸우다 죽기를 바라거나,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오면 반드시 붙잡아야 하는 입장임에도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베라딘, 적당히 하고 이제 그만 예전처럼 돌아와라. 너한텐 그런 대사가 정말 안 어울리거든.
그로쉬에 성의 진입로를 이용하기 전 진에게 그 말을 들은 직후부터 더욱 급격히 내면이 복잡해진 상태였다.
그런 면에서 지금 오르갈을 쫓겠다고 말한 건 일종의 구실이었다. 사트린과 베티는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알겠습니다, 가주. 즉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투얀과 피니아를 타고 내려갈 것이다. 함대 지휘는 알마티아에게 위임하겠다.”
베라딘이 함교 밖으로 나서자 두 수호룡이 코젝의 갑판 위에 착지했다.
[제피린 때문에 나온 모양이군, 베라딘.]“그래. 우릴 태우고 놈을 쫓아.”
[알겠다. 하지만 놈은 이 아공간에 익숙하니 우리가 따라잡기 쉽지는 않을 것이다.]“일단 진마계 아래로 내려가서 흔적을 찾아보자고.”
용들이 세 사람을 태우고 하강하기 시작했다.
함대를 제외하니 확실히 아공간을 넘는 속도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빨라졌다.
베라딘 일행은 약 한 시간이 지난 후 진마계의 암흑 지대에 닿을 수 있었다.
광활한 암흑 지대, 그리고 수천만 구의 시체가 이룬 산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세에서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규모의 죽음이었다.
“진 룬칸델이 죽인 게 아니다. 이들은 서로 싸우다 죽었어.”
“그런 것 같습니다, 가주. 흉신이 과거 타인의 절망을 자신의 권능으로 사용했듯이, 지토는 고통을 사용하는 모양입니다.”
“성국과 마찬가지로, 진 룬칸델이 무언가 이 시체들에 권능을 남겼습니다.”
다만 진이 처음 도착했을 때와 달리 베라딘 일행은 그 수많은 시체를 휘감은 황금빛 기운도 함께 보았다.
“바멀 연합 측 소식지들에 따르면, 아율라는 죽기 전 이 황금빛 기운이 죽은 자들을 부활시킬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진 룬칸델이 창성에 올라 재생의 권능을 얻었다며…….”
베티가 말하는 사이 베라딘은 자신의 앞을 스쳐 가는 황금빛 기운으로 손을 뻗었다.
“윽.”
그리고 손에 기운이 닿자마자 강렬한 현기증을 느꼈다.
잊고 있던 장면들이, 소년 시절 진, 단테와 함께했던 순간들이 뇌리에서 점멸하고 있었다.
“가주, 괜찮으십니까?”
“불쾌한 힘이군. 마치 켈리악 지플이 지난번에 남긴 저주의 불처럼.”
그러나 베라딘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은 황금빛 기운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베라딘은 도망치듯 빠르게 암흑 지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계속 이 황금빛 기운을 마주하고 있으면 진마계에서 무언가를 시작하기도 전에 머리가 이상해질 것 같았다.
‘……위험하다.’
이대로라면 머잖아 자신이 무너질 것 같다.
베라딘은 요즘 그런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정신 조작으로 인해 잃어버린 인격이 그의 무의식 속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그 감정은 앞으로 가문을 이끌어가기에 적합하지 않다.
가문 최대 숙적인 룬칸델에선 또 다른 창성 기사가 탄생했고, 킨젤로는 여전히 그 잠재력을 다 알 수 없으며 마신석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엘로나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지금 지플은 세 세력 중 가장 위태로운 나날을 보냈을 터였다.
태양신교와 손을 잡아 얻은 것들이 이제 조금씩 베라딘의 발목을 잡고 있기도 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모든 걸 잃은 줄 알았던 켈리악 지플은 버젓이 살아남아 지옥에서 또 힘을 키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 자신이 혼란에 빠져 흔들릴 수는 없었다. 베라딘에게 그건 곧 패배를 뜻했다.
‘하지만, 나는 어째서 이렇게까지 가문의 승리와 번영에 집착하는가? 나는… 왜 싸우고 있지?’
돌연 베라딘이 흠칫하며 옆을 돌아보았다.
베티가 우물쭈물하며 검을 닦는 마른 천을 꺼내 베라딘에게 내밀고 있었다.
“가주… 입에서 피가 흐르십니다.”
“아.”
그때야 베라딘은 자신이 턱이 아릴 정도로 이를 악물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맙군.”
사트린은 피니아를 타고 있어 이 모습을 보지 못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베티는 완전히 믿을 수 있으나, 사트린은 그렇지 않았다.
엘로나와 베티, 알마티아, 쿤을 제외하면 가문의 모두가 그랬다.
심지어 과거 폭주한 자신을 구하려던 옥타비아조차, 베라딘은 완전히 신뢰할 수 없었다.
‘당장 나조차 켈리악 지플을 끌어내리고 가주가 되었으니, 언제든 내게도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겠지.’
베티는 안절부절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을 본떠 만든 인간이나 다름없는 생체 골렘, 그녀가 가진 다정함은 분명 지금의 자신에겐 존재하지 않는 요소였다.
진의 기운이 남아있는 암흑 지대를 도망치듯 빠져나왔으나, 베라딘 일행은 북쪽으로 이동하는 내내 다른 시체 더미들에 남은 황금빛 기운을 마주해야만 했다.
[지토가 고통을 자신의 힘으로 사용한다는 사트린의 예상이 맞는 것 같군. 어딜 가나 서로 싸우다 죽은 군대들뿐이다, 베라딘. 진 룬칸델은 그 대부분에 자신의 권능을 표식처럼 남겨두었고.]“이만하면 진 룬칸델의 동선은 더 살펴볼 필요 없겠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 사트린과 피얀은 계속 이 황금빛 기운을 따라 진 룬칸델을 추적해라. 나와 베티, 투얀은 오르갈과 악마룡의 흔적을 찾는다.”
이번에도 그럴듯한 구실을 찾은 것이었다. 이 상태로 진이 남긴 기운을 계속 마주하면 또 흔들리는 내면이 바깥으로 드러날 것 같았다.
명령에 따라 피니아와 사트린이 황금빛 기운을 따라 떠났다.
[서쪽에서 부는 바람에 이질적인 마기가 섞여 있는 것 같다, 베라딘.]“그럼 그쪽으로 가지. 진 룬칸델이 이정표까지 남겨놨는데 오르갈과 악마룡이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면, 반드시 다른 목적이 있는 거다.”
[알겠다.]서쪽으로 비행을 시작하니 더는 황금빛 기운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베라딘은 진의 기운과 멀어질수록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끼며 평정을 되찾아갔다.
[제피린과 오르갈이 갑자기 우리를 공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베라딘. 물론 지금으로선 우리가 밀릴 것 같지는 않으나, 만약 놈들이 이미 어떤 물건이나 힘을 얻어 강해진 상태라면 머리가 아플 수도 있어.]“어떤 힘을 얻더라도 놈들이 갑자기 창성이 될 일은 없다. 추적을 그만두자는 이야기처럼 들리는군, 투얀.”
[그건 아니다. 다만… 차라리 진 룬칸델과 접선해서 함께 움직이는 게 어떨까 싶은데. 아니면 지금이라도 엘로나를 데려오거나.]“엘로나 님이 진마계로 내려오는 건 최후의 수단이다. 평소와 좀 다르군. 왜 갑자기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그냥, 왠지 모르게 느낌이 좋지 않아서 말이다.]베라딘은 대답하지 않고 일대에서 풍기는 기운에 정신을 집중했다.
서쪽으로 갈수록 투얀이 말한 이질적인 마기가 확실히 짙어지고 있었다.
약 십여 분 뒤, 베라딘 일행은 하늘에 떠 있는 한 개의 거대한 차원문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질적인 마기가 갑자기 끊긴 지점이기도 했다.
“이 차원문을 넘어갔군…….”
[여기까지 오니 확실해지는군. 이 근처에 남은 건 분명 제피린의 기운이다.]“넘어간다. 킨젤로가 무엇을 준비했든 상황이 그들 뜻대로 흘러가게 둘 순 없어. 다 같이 우선 공공의 적부터 처리하자더니, 역시 놈들에게 다른 주머니가 있었군.”
베라딘 일행이 차원문을 넘어섰다.
이내 차원문을 빠져나오자마자 일행의 앞에 펼쳐진 것은, 곳곳에 독물로 이루어진 강이 흐르는 척박한 땅.
진마계의 극독 지대였다.
“……여긴? 이 독기는 분명, 엘로나 님을 위협한!”
극독 지대의 독기를 마주하자마자 베라딘의 눈동자가 살기로 물들었다.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베라딘의 가슴 속에서 폭발하고 있었다.
지금 베라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 할 수 있는, 엘로나 지플을 다치게 한 바로 그 독기였다. 루테로 연방의 시민들을 인질로 잡아서 말이다.
“라갈 펀! 그 개자식의 영역이다. 설마 킨젤로, 그놈들이 라갈과 결탁하고 있던 건가? 엘로나 님이 다친 것도 관련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투얀, 당장 저기 보이는 놈들의 성으로……!”
거기까지 말한 순간, 베라딘은 움찔하며 다시 주위를 살폈다.
땅에는 레일라 벨가시움이 이끄는 진마계 최강의 전투 부대가 진을 치고 있었고, 하늘엔 별안간 태양처럼 거대한 화염구가 떠오르고 있었다.
켈리악의 화염이었다.
방금 그들이 지나쳐온 차원문이, 닫히고 있었다.
‘켈리악 지플……!’
화염구로부터 퍼진 빛이 일그러진 베라딘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켈리악은 화염구를 등진 채 베라딘을 내려다보았다.
“오랜만이구나. 지금의 너라면 분명 진 룬칸델의 기운을 피해 이곳으로 오리라 생각했다.”
베티가 베라딘의 앞으로 나서며 검을 뽑았다. 투얀도 황급히 보호막을 쳤으나, 저 화염을 막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이제, 네가 훔친 이 아비의 모든 것들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시간이다… 베라딘 지플, 내 가장 아끼던 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