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47)
제 999화
234화. 지옥으로(8)
실책.
차원문으로 들어온 건 평소의 냉정한 베라딘이라면 절대로 저지르지 않았을 중대한 실책이었다.
진마계는 미지의 위험으로 가득하고, 그 안엔 지토뿐만이 아니라 켈리악도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런 상황에 단지 킨젤로를 뒤쫓는다는 이유만으로 달리 정보도 없는 차원문을 넘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진 룬칸델이 남긴 황금빛 기운…… 그걸 피하느라 판단력이 너무 흐려졌다.’
게다가 그걸 피하고자 사트린과 피니아까지 이탈시켰다.
방금 들어온 차원문도 닫혔으니 도망칠 길도 없었다. 베라딘과 베티, 투얀 셋이서 켈리악과 마왕들, 그 휘하 병력을 모조리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반역자, 켈리악 지플…….”
“후후, 여기서까지 내게 반역자라는 오명을 씌우려 하느냐? 어차피 투얀은 계약 때문에 네게 종속된 용이고, 그 가련한 생체 골렘의 충성심은 절대적일 테지. 무엇보다도 반역은 네가 저지르지 않았느냐, 베라딘.”
“설마 오르갈까지 포섭을 해두었을지는 몰랐군. 그에게 무엇을 약속했나?”
켈리악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오르갈과 제피린이 너를 내게 넘겼다고 생각하는구나.”
“아니란 말인가?”
“그래서 너는 아직 가주가 되기엔 부족한 것이다, 아들아. 나는 그들을 이용하기만 했을 뿐, 그들에게 보상을 약속하며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사실이었다.
켈리악은 그저 모든 걸 예측했을 뿐이다. 인세 세력의 지옥 정벌이 시작되면 오르갈과 제피린은 당연히 먼저 이 근방을 찾아올 것이고, 베라딘은 반드시 그들을 쫓을 것이라고.
“네가 내 예상을 깨고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나는 그들을 먼저 처리했을 것이다. 이 세상엔 지플을 제외한 그 어떤 권력도 필요치 않으니 말이다. 알지 않느냐? 가문의 목적은 단순하다. 이 세상의 유일신이 되는 것이지. 그러니 킨젤로는 여전히 우리의 적이다.”
베라딘과 베티는 긴장한 채 켈리악과 그의 뒤에 태양처럼 떠 있는 거대한 화염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나저나, 이 아비가 보낸 선물은 어땠느냐? 길 잃은 선조께서 너를 돕지 않았다면, 지금쯤 너와 나는 더 아름다운 재회를 하였을 텐데.”
“그 더러운 입으로 엘로나 님을 들먹이지 마라.”
“크하하…… 재미있는 답변이로군. 베라딘, 아들아. 너는 어째서 나를 더럽다고 생각하느냐?”
“갑자기 무슨 소리냐.”
“이상하지 않더냐. 네가 나를 그토록 경멸한다면, 너는 지금껏 곁에서 너를 보좌하는 중인 가문의 수뇌들도 모두 경멸해야 한다. 옥타비아라든가, 사트린이라든가, 로닐이라든가.”
“……뭐라고?”
“네가 나를 증오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잘 생각해봐라.”
자신이 켈리악을 증오하는 이유.
베라딘은 가주가 된 후 사실 그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생각할 이유가 없기도 했다. 쇠약하고 혼돈에 무너져가는 당시의 켈리악을 끌어내리고 자신이 가주가 되는 건 그저 순리에 가까웠다.
그러나 사실 그때부터 베라딘은 줄곧 마음속 깊이 켈리악을 증오해왔다. 하루라도 빨리 가문에서 그의 이름을 지워버리려 했었다. 그렇기에 유독 켈리악과 관련한 문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베라딘은 돌연 머리가 멍해지는 감각에 휩싸였다.
정신 조작.
그리고 그 고통에 대한 복수심.
베라딘이 켈리악에게 품은 원한은 모두 정신 조작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당시 베라딘의 정신 조작에 참여한 건, 켈리악뿐만이 아니다.
“당시 네 정신 조작엔 가문의 중책을 맡은 모든 일원이 참여하였다. 그런데 어째서 너의 원한은 내게만 향하느냐? 지금 네가 가진 힘이라면 얼마든지 그들을 찢어 죽여 복수할 수 있었을 터.”
“그건……!”
“그들을 처리하면 가문이 그만큼 약해지기 때문이라고? 그건 나를 배신한 시점에 이미 틀린 말이다. 너는 누구보다도 잘 알았을 테지. 네가 나를 배신할 게 아니라, 나와 융화하기를 선택했다면. 가문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강대했으리라는 사실을.”
“큭!”
베라딘이 머리를 붙잡으며 휘청였다. 머릿속에서 뇌가 찢어지는 듯 극심한 고통이 엄습하고 있었다.
“가주!”
베티는 뒤를 돌아볼 수 없어 소리만 질렀다. 베티가 베라딘을 그렇게라도 걱정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켈리악이 아직 그와 좀 더 대화를 나누고 싶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지금 너를 등에 태우고 있는 수호룡, 투얀마저 정신 조작에 가담했었지. 그 불편한 진실을 너는 지금껏 외면해온 것이다, 아들아.”
“크…… 하아.”
“한데, 네가 그렇게밖에 할 수 없던 이유는 무엇일까? 너는 어째서 정신 조작에 가담한 다른 이들에 대한 분노를 외면하고, 오로지 이 아비에게 집착하였을까.”
베라딘은 대답하지 못하고 켈리악을 노려보았다.
고통 때문에 벌써 시야가 흐려지고 있었다. 흔들리는 두 다리가 언제든 꺾여버릴 것 같았다.
“잘 모르는 것 같으니, 내가 지금 그 이유를 알려주마. 잘 들어라, 그건…….”
네가 실패작이기 때문이다, 아들아.
마치 진미를 탐미하듯, 켈리악이 천천히 뒷말을 이었다.
“닥쳐라!”
“다른 이유는 없다. 단지 너는 실패작이기 때문에 이상하게 행동하고 있을 뿐이다.”
“닥치라고!”
베라딘이 이를 악물며 흐로티를 앞으로 뻗었다.
‘하……!’
그러나 흐로티에 마력이 맺히지 않았다. 무언가 단단한 벽이 사방을 가로막은 듯, 마력이 전혀 흘러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네가 가진 모든 것은 본래 나의 소유다. 네 마법, 네 지위, 네 목숨…… 내 허락이 없이는 무엇 하나 너의 뜻대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 순리이고 이치지. 이렇게 되기까지, 쓸데없이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구나.”
베라딘은 재차 마력을 끌어모았으나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마력을 사용하려 할 때마다 밧줄에 온몸이 옥죄는 것 같았다.
켈리악은 베라딘에게 남은 자신의 ‘육신 일부’와 정신 조작을 시작하기 전에 걸어둔 저주를 이용해 그의 마력을 제어하고 있었다.
정신 조작은 언제나 대상의 폭주에 대비해야 한다. 당연히 켈리악은 그에 대한 안전장치를 만들어둔 채 실험을 이어갔었다.
베라딘이 자신을 배신한 당시엔 그 안전장치를 이용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을 뿐이다. 그러니 그토록 허무하게 베라딘에게 왕좌를 빼앗긴 것이고.
지금은 그렇지 않다. 켈리악은 너무나 손쉽게 베라딘의 마력을 묶어버릴 수 있었다.
“이제 알겠느냐, 베라딘. 너는 나의 예비 육신에 불과했다. 네가 만든 그 수많은 생체 골렘들과 마찬가지로…… 너의 삶은 단 한 번도 너의 소유였던 적이 없는 것이야.”
스릉-!
베라딘이 비틀거리며 검을 뽑았다. 오러는 무녀와 성지에 의해 육신이 개조된 후 새로이 얻은 힘인 만큼 켈리악이 뜻대로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오러마저 원하는 만큼 차오르지 않았다.
“어이, 켈리악 친구 아들내미. 네 괴물 친구들만큼 강한 게 아니면 오러는 꺼내지도 않는 게 좋을 거다. 우리 극독지대의 독기를 우습게 보면 안 되지?”
라갈이 말했다.
그는 베라딘이 오러를 사용하려는 낌새를 보이자마자 극독지대 전역에 숨겨둔 독기를 일시에 활성화했다.
지금 베라딘보다 훨씬 상태가 좋은 베티 역시 그 독기의 영향을 받아 호흡이 불안정해지고 있었다. 베티는 그래도 평소와 비슷한 수준으로 싸울 수 있지만, 베라딘은 이제 서 있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확 이대로 내가 잡아먹고 싶지만, 켈리악 친구 얼굴을 봐서 이 정도로 멈춰줄게. 암, 남의 자식은 함부로 혼내는 거 아니지.”
결국 베라딘은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곳에서 자신이 살아 나갈 길은, 없다는 사실을.
과거 켈리악이 정신 조작의 변수라는 단 한 번의 실수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듯, 지금은 자신이 차원문을 넘은 단 한 번의 실수로 인해 추락할 차례였다.
“베티…… 베티 지플.”
“가주, 말씀하십시오……!”
“도망쳐라…… 나를 버리고.”
“안 됩니다!”
당연히 베티는 거부했다.
하지만 베라딘은 마치 지금 켈리악이 자신에게 행한 것처럼, 베티에게 걸어둔 마법의 시동어를 외우기 시작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베티가 아무리 강한 자아를 가지게 되었어도 반드시 베라딘의 명령을 수행하도록 설계된 일종의 안전장치인 것이다.
“가주, 제발!”
“흐로티를 가져가라. 흐로티의 신호를 발동시켜서 엘로나 님께 이 사실을 알려. 만일 살아남아 그 일을 완수해낸다면, 그때부터는 네 인생을 살아라. 미안하다, 베티.”
“가주!”
시동어가 다 외워졌다.
별안간 베티는 멍한 눈이 되어 베라딘의 마지막 명령을 읊었다. 그러곤 바로 흐로티를 받아 투얀에서 뛰어내리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베티가 도망칠 곳은 없다.
다만 베라딘은 그게 베티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라는 판단이었을 뿐이다. 아마 베티는 지금 이곳에서 자신과 함께 죽게 될 터였다.
따라서 엘로나는 나중에야 소식을 듣게 될 것이며, 그녀는 분명 복수를 하고자 켈리악을 찾을 테지만…….
베라딘은 엘로나 또한 그냥 다 잊어버리고 어디론가 떠나길 바라고 있었다. 그 마음까지 전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크! 켈리악 친구, 나 눈물겨워서 못 보겠잖아. 친구 아주 아들을 잘 키웠구먼!”
“걱정 마라, 아들아. 너도, 네가 아끼는 생체 골렘도 오늘 여기서 죽어서 소멸할 일은 없다. 그저 너는 다시 내 예비품으로서 내게 복속될 것이며, 생체 골렘도 개조해서 필요한 일에 사용할 것이니. 투얀, 너는 네 신의 태도에 따라 처분이 정해질 것이다.”
이내 켈리악이 지팡이를 치켜들자, 화염구가 번뜩이며 사방으로 수천 갈래의 불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베라딘은 투얀의 보호막 너머를 가득 채우는 화염을 바라보며 잠시 지난날들을 돌아보았다.
가장 먼저 엘로나 지플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시 자신의 삶에 의미를 새겨주어 고맙다고 말하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생체 골렘들이 떠올랐다. 자신이 그들을 만든 것은, 사실 켈리악이 자신에게 한 짓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치가 떨렸다. 정신 조작에 내면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결코 없을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떠오른 건, 친구들.
진과 단테의 뒷모습이 보였다. 이제야 정신이 맑아져 그들이 자신의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고 있건만, 때는 너무 늦고 말았다.
‘작별 인사도 제대로 못 하는군. 미안하다, 다들. 지플의 가주가 되어 끔찍했던 내 모습만 기억하게 되겠어.’
[어 뭐야, 저거.]그런데 돌연, 전혀 생각지 못한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기 전 이 짧은 시간 동안 추억하기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저거 베라딘 지플 아니냐? 엥? 이 새끼들 여기서 뭐 하는 거야?]그 목소리는 베라딘이 속으로 떠올린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전장을 울리고 있었다.
무라칸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