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48)
제 999화
234화. 지옥으로(9)
무라칸 일행은 본래 비셉스를 찾기 위해 진과 따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비셉스는 태양로로 이동하기 전, 켈리악과 레일라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 정찰대를 독마성으로 보냈었다.
당연히 무라칸은 발레리아의 기록 마법으로 비셉스의 기록을 찾아 움직였으니, 그 과정에 우연히 발견한 비셉스 정찰대의 흔적을 쫓다가 독마성에 닿은 것이다.
[뭐야 이 새끼들 주둥이가 막혔어? 여기서 뭐 하고 있었느냐 묻잖냐, 이 무라칸 님이.] [좀 이상한 상황이긴 하네. 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군. 그냥 다 죽여야 하나?] [오, 우리 무불멸이 세게 나오네. 역시 무불멸이자 필천적이야?] [작게 말해, 이 자식아…… 적들에게까지 웃음거리가 되고 싶지는 않다고. 흠흠! 아무튼, 발레리아. 어떻게 생각해? 여기선 네가 가장 똑똑한 것 같으니 판단 좀.]발레리아가 대답하려는 찰나, 아래쪽에서 먼저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와줘!
베라딘이었다.
지플의 가주로서 한없이 냉정하고 위엄 가득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그는 마치 진과 함께 놀던 그 시절 소년처럼 마구 손을 흔들며 뻔뻔한 얼굴로 도와달라는 말을 외치고 있었다.
발레리아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녀가 놀란 건 베라딘의 언행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기 자신에게 놀라고 있었다. 베라딘이 도와달라고 말하자마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내면에 말이다.
회색부엉이 용병단이 참살된 뒤로, 지금껏 지플이라는 두 글자는 발레리아에게 단 한 번도 퇴색된 적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였다.
그러나 지금 발레리아는 자신의 복수심보다 진의 감정을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
진이 아끼는 사람을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이 복수심을 앞지르고 있었다.
‘돌아보면, 그 시끄러운 산드라 지플과도 어느샌가 나름 잘 어울리고 있었지…… 내가 많이 무뎌졌어.’
하지만 그 사실이 싫지는 않았다.
여전히 지플에 대한 복수를 포기할 계획은 없다. 다만 지플 중에서도 진이 살려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 몇 정도는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었다. 하물며 진이 그토록 아끼는 사람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이제 발레리아에게 진은 그만큼 소중한 사람이었다.
“들었지? 무라칸.”
[들었지? 무불멸.] [들었…… 하, 진짜.] [우리 무불멸이가 할 일은 간단하다. 내가 켈리악과 조무래기들을 조지는 동안, 너는 역사쟁이와 베라딘을 보호한다. 보아하니 베라딘은 제대로 못 싸우는 상황 같으니까. 그리고 행여 베라딘이 뒤통수를 칠 것 같으면, 그때는 그냥 샥.]“안 돼, 그때도 죽이지는 말고 제압만 해. 어떤 이유에서든 베라딘이 죽으면 진이 괴로워할 테니까.”
[들었지? 필천적.] [망할, 들었다고!]후우우웅-!
무라칸이 두 쌍의 날개를 펼치며 숨결을 모았다. 이내 숨결이 토해지자, 하늘을 붉게 물들인 거대한 화염 사슬들이 끊어지며 순식간에 길이 열렸다.
‘켈리악 친구의 화염을…… 이렇게 쉽게 끊어버린다고!?’
화염 사슬뿐만이 아니라 근처에 있던 라갈의 독기도 무라칸의 숨결에 휩쓸려 맥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진이 창성에 오른 후.
무라칸은 문자 그대로 전성기와 ‘똑같은’ 힘을 쓸 수 있게 되었다. 파손된 심장 때문에 부작용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현재 전장엔 발레리아가 있으니 심각해질 일은 없었다.
[어이, 켈리악 지플. 그러고 보니 네놈과는 검황성전 이후 처음이로구나. 그때 네놈은 감히 솔더렛의 계약자를 위협했었지.]“무라칸…….”
켈리악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라갈은 켈리악이 이만큼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이제 그때 네가 끝장내지 못한 꼬마는 너조차 닿지 못한 거인의 영역에 들어섰고, 이 몸은 옛 힘을 전부 되찾았다. 한마디로, 네놈은 이제 뒤졌다는 뜻이다.]“내 아들은 운도 좋군. 보아하니 그대는 그저 우연히 이곳에 다다른 것 같은데…… 맞는가?”
[그게 뭐 중요하냐?]“후우, 그래…… 그저 우연일 리는 없겠지. 스스로 운명을 초월한 자의 영향력이라는 것인가.”
켈리악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는 무라칸이 하필 절체절명에 몰린 베라딘을 구하러 오게 된 것이, 마냥 우연이 아니리라 생각했다.
우연처럼 보일지라도 그 근원에는 반드시 진이 소유한 ‘존재의 힘’이 작용한 결과이리라 확신하는 것이다.
‘아마 본인도 인지하지 못했겠지. 자신의 의지를 반영하고자 때때로 세계 전체가 움직여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게 켈리악을 찝찝하게 만들고 있었다.
앞으로도 진을 상대하며 이런 결코 계산할 수 없는 일들이 또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것이다.
“라갈, 레일라. 자네들은 베라딘과 생체 골렘을 쫓게. 일이 틀어졌어도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해야 하지 않겠나.”
“어, 알겠어 친구.”
라갈이 움직이려는 찰나, 별안간 그들의 등 뒤로 흑쇄가 형성되었다. 이미 소리 없이 퍼진 영기가 사방에 장막을 펼치고 있었다.
[아아, 잠깐 잠깐. 이 몸이 허락한 적 없는데 가긴 어딜 가. 하긴, 마족들은 나를 잘 모를 테니 이렇게 개념이 없을 수 있겠어.]시잇-!
레일라가 영기 장막을 찢으며 무라칸에게 세검을 찔렀다. 레일라는 켈리악의 명을 수행하고자 검기를 쏜 게 아니었다. 그녀는 지금 이 자리에서 무라칸과 끝장을 보려는 마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넌 유독 내게 살의를 품는군. 아마 레일라 벨가시움일 텐데, 오라비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냐?]쩌엉! 무라칸이 자신의 머리로 쇄도한 레일라를 날개로 쳐냈다. 레일라는 다시 켈리악의 근처로 튕긴 후 자세를 다잡았다.
“……이번만큼은 경의 의견을 따를 수 없겠소. 난 저 흑룡과 싸워야 하오. 오라버니를 죽이는 일에 직접 관여한 존재이니.”
[잘못 짚었다. 난 파엘리토와의 전투에선 초반부터 거의 빠져 있었거든. 마지막에 진이 그 녀석을 벨 때 근처에 있긴 했지만 말이지. 그리고 파엘리토에게 죽음은, 차라리 구원에 가까웠을 것이다.]“닥쳐라…… 네놈들이 오라버니를 죽이지 않았다면, 오라버니는 얼마든지 돌아올 수 있었다.”
[거참, 속없는 동생이로군. 뭐, 내 알 바는 아니지. 그렇게 파엘리토를 따라가고 싶다면 말리진 않으마. 어차피 켈리악 밑에서 네가 할 일이라곤 세상에 해악을 끼치는 것밖에 없지 않겠냐. 그리고, 모르나 보네? 네 오라버니를 그렇게 만든 진범 중 하나가 누구인지.]“큭!”
말하는 사이 무라칸의 흑쇄가 계속 레일라를 난타하고 있었다. 레일라는 대부분의 흑쇄를 완벽하게 쳐냈으나 다시 무라칸에게 접근할 여력은 없는 듯 보였다.
켈리악은 계산을 하고 있었다.
지금 독마성에 있는 전력으로 무라칸을 상대하는 것이 가능한지, 그를 죽일 수 있는지.
‘지금 무라칸을 죽이는 건 어렵다. 나 역시 아직 융화가 완벽하게 끝나지 않았고, 세뇌에 약해진 레일라와 라갈의 힘을 지금 완전히 개방하는 것도 아까운 일이다. 일단은 적당한 때에 레일라의 의식을 끊어야겠군.’
켈리악 자신의 안위를 위해 가장 좋은 수는, 독마성의 모든 전력을 시간을 벌기 위한 방패로 사용하고 빠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어떻게든 지금 무라칸을 다치게 만들어야 했다. 다소 무리를 하게 되더라도.
켈리악의 눈엔 보였다.
무라칸의 심장에 난 균열이 마치 비늘과 살과 뼈로 가려지지 않은 듯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 심장에 한 번이라도 불을 지를 수 있다면, 추후 무라칸이 크게 자신의 발목을 잡을 일은 없을 터였다.
치이이익……!
켈리악에게 떨어진 두 줄기의 흑쇄가 화기에 소멸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이어 켈리악은 레일라에게도 화염 보호막을 쳐주며 마안을 발동시켰다.
청화의 마안이 개안되자 켈리악의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 소나기처럼 시퍼런 화염이 쏟아져 내렸다.
[호오, 흑쇄를 녹여?]“아무래도 그대는 다쳐서 돌아가야겠소, 무라칸. 변수는 진 룬칸델 하나로도 충분히 거슬리는군.”
무라칸은 단번에 켈리악의 시야와 그 통찰을 알아차렸다.
[큭큭큭, 내 심장에 난 상처가 보이는 모양인데. 그걸 안다고 해서 찌를 수 있을까? 쉬누의 격을 이어받은 모양인데, 그래서 자신감이 그토록 넘치는 것이군?]다음 순간, 무라칸은 갑자기 가슴을 활짝 열어 보였다.
가슴팍의 비늘들이 영기로 흩어지며 그 속에서 시커멓게 빛나는 심장이 드러난 것이다. 광석처럼 보이는 검은 심장이 두근두근 울리고 있었다.
[검황성전의 굴욕을 갚는 차원에서, 내 약점을 드러내고 싸워주마.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이용해서 이 심장을 찔러봐라. 한 번만 찔러도 나는 다시 재기할 수 없게 될 테니.]거짓말이었다.
심장에 천 년 전 테마르에게 당한 정도의 피해를 받지 않는 한 무라칸은 언제든 재기할 수 있다. 또한 굳이 심장을 보여준 것도, 단지 켈리악에게 굴욕을 주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지금 무라칸은 진을 따라 하고 있었다.
진이 싸움을 유리하게 끌어가기 위해 종종 허세 부리던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다. 켈리악이 심장에 집중하게 만든 후 오히려 역으로 빈틈을 찾을 생각이었다.
그 말은 곧, 켈리악 지플의 힘이 옛 힘을 되찾은 무라칸조차 쉽게 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신격을 얻었다는 게 굉장하긴 하군. 인간으로서 창성에 닿은 적이 없는데도 그와 거의 동일한 기운을 퍼뜨리고 있으니, 내 부작용을 제어해줄 역사쟁이가 없었다면 어떻게든 베라딘만 챙겨서 물러나야 했겠어. 어쩌면 베라딘조차 챙기기 어려웠을 수도 있고.’
씨익, 무라칸이 미소를 지었다.
[들어와라, 켈리악 지플.]켈리악의 지팡이가 재차 화염을 머금었다. 그러자 하늘을 채운 화염구의 형태가 수천 개의 창처럼 변했다. 그 모든 창은 무라칸을 겨누었다.
동시에 무라칸은 진 암흑도래를 펼쳤다. 전장은 순식간에 어둠과 화염에 잠식되었고, 레일라와 라갈은 그 압박감만으로도 이를 악물고 견뎌야 했다.
암흑도래에서 치솟은 날카로운 영기와 화염의 창들이 교차되며 서로에게 쇄도하기 시작했다.
켈리악은 예상대로 무라칸의 심장을 위주로 창을 떨궜고, 무라칸은 아슬아슬하게 창들을 쳐내며 켈리악의 신경을 긁었다.
이내 한 자루의 화염 창이 무라칸의 심장을 찌르려는 찰나, 무라칸은 영기로 흩어져서 창을 피한 후, 순식간에 다시 켈리악의 뒤에 육신을 형성하며 숨결을 토했다.
[이 몸이 힘을 찾은 후 첫 상대로 그리 부족함은 없구나, 켈리악. 마음껏 놀아보자고.]* * *
한창 무라칸과 켈리악의 전투가 격해지던 그때.
엘로나는 지옥으로 향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베티가 발동한 흐로티의 신호가 엘로나에게 닿은 것이다.
“가주를 구하러 가야겠습니다. 만일 가주께 문제가 생겼다면, 내 목숨을 걸고 그자를 죽일 것입니다.”
엘로나의 싸늘한 목소리에 지플의 수뇌들은 차마 그녀를 말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