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49)
제 999화
234화. 지옥으로(10)
‘함께 가겠다고, 처음부터 가주께 더 강경하게 말씀드렸어야 했다. 창성에 오른 진 룬칸델에 켈리악 지플까지 있건만, 나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가주를 혼자……!’
엘로나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이야기의 탑이 진동했다. 탑은 그녀의 분노에 공명하고 있었다.
탑에 상주하는 대부분의 인원들은 감히 고개를 들어 엘로나를 쳐다볼 수조차 없었다. 일대의 모든 마력이 응축되는 압박감 때문이었다.
“……엘로나 님, 저 또한 가주가 걱정됩니다. 하지만 일단 기운을 거둬주십시오.”
수뇌 중 유일하게 로닐만이 엘로나의 앞을 가로막으며 입을 열었다.
“로닐 경.”
“가문의 마법사들이 쓰러지고 있습니다. 엘로나 님이 떠나시면, 저들은 모두 적명족을 비롯한 다른 세력의 습격에 대비해야 할 인물들입니다.”
로닐은 지극히 옳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엘로나는 로닐의 사무적인 태도에 왠지 모를 실망감을 느꼈다. 베라딘은 그를 심복으로서 아끼지만, 로닐에게 가장 중요한 건 ‘지플’이지 베라딘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당연하게도, 가문의 모두가 그랬다.
“……확실해지는군요.”
엘로나가 기운을 거두며 말했다.
“무엇이 확실해졌다는 말씀이신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내게 가문은 소중합니다. 하지만 가주는, 그보다 더 소중합니다. 내가 미숙한 인간이라는 걸 잘 압니다. 미안해요, 저는 가야겠습니다.”
로닐이 고개를 숙였다.
“저희에게 미안해하실 것 없습니다. 게다가 엘로나 님의 독단도 아니고, 가주께서 직접 흐로티로 신호를 보내시지 않았습니까. 본토는 저희가 잘 방어하고 있겠습니다. 마침 살리온 님이 여기 계시니 그로쉬에 성까지는 살리온 님과 가십시오.”
“알겠습니다.”
엘로나가 탑 최상층으로 올라가자 풍룡 살리온은 이미 본모습으로 변한 채 비행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행여 이런 일이 있을까 봐 옥타비아가 나를 여기에 대기시킨 것이다.]살리온이 하늘로 날아오르며 말했다.
“그렇군요.”
[옥타비아는 다른 녀석들과 달리, 지금의 지플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베라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그리고 네게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옥타비아는 인간적으로도 베라딘을 매우 아낀다. 너처럼.]살리온은 엘로나의 심리를 정확히 읽고 있었다. 엘로나는 속마음을 들켜 다소 민망했으나 듣기 싫지는 않았다.
“다행이군요. 난…… 잘 모르겠습니다, 살리온. 가끔 가주가 지플의 지배자가 아니라, 단지 지배자처럼 보이는 꼭두각시가 아닐까, 그렇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지플은 원래 그런 가문이다. 가주가 모두를 꼭두각시로 만들거나, 모두 가주를 꼭두각시로 만들거나. 사실 지플만의 문제도 아니지. 세상의 모든 권력 집단은 그렇게 구성된다.]“그렇긴 하죠.”
[게다가 베라딘은 가주가 된 후 철권을 휘두르며 숙청을 벌여왔지. 다들 그를 두려워하는데, 그런 그가 어떻게 꼭두각시일 수 있겠나?]엘로나가 베라딘을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지금 베라딘의 모습이, 그가 스스로 원해서 다다른 결과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최측근으로서 베라딘을 보좌하는 사람들이 그의 정신 조작에 가장 깊이 관여했던 것이다.
다만 엘로나는 정신 조작 실험의 상세한 내용을 알지 못했다.
베라딘은 엘로나가 수뇌들을 경멸하지 않도록 일부러 정신 조작에 대한 말을 아껴왔다. 엘로나와 그들의 사이가 틀어지는 건 가문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었다.
‘최근의 가주는 분명 달라지고 있었어. 무언가에 흔들리고,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
엘로나는 베라딘의 그런 인간적인 모습들이 더 많이 드러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만약 그것들을 계속 외면한다면, 언젠가 베라딘은 결국 과거의 자신처럼 오로지 지플을 위해 존재하는 괴물이 될 것 같다는 예감 때문이었다.
‘가주가 천 년 전의 나처럼 되는 것만큼은,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을 것입니다. 설령 그것이 가문의 번영에 방해가 되는 일이 된다 할지라도.’
속이 바싹바싹 탔다. 살리온이 호흡이 거칠어질 정도로 속도를 내는 중인데도 그로쉬에 성이 멀게만 느껴졌다.
좋지 않은 생각이 자꾸 떠올랐다. 어쩌면 베라딘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해 질 무렵, 그로쉬에 성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로쉬에 성에 대기하던 각 세력의 함대와 병력은 대부분 지옥으로 들어선 상태지만, 황금함과 룬칸델의 일부 함대는 아직 남아 있었다.
황금함은 대열을 갖춘 채 지옥의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연합은 살리온이 이야기의 탑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명의 보고를 받아 엘로나의 이동을 알고 있었다.
[엘로나, 놈들이 우리가 올 걸 알고 있었다.]살리온이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문득 만일 연합이 루테로 연방을 공격할 생각이라면 지금이 적기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지플은 가주와 가문 최중요 함대가 모두 지옥으로 원정을 간 반면, 연합에선 진 일행만 빠진 상태다.
물론 지플 최강의 창성 마법사인 엘로나가 있기는 하나, 지금으로서는 연합이 전체적으로 전력 우위였다.
게다가 만약 연합이 적명족과 모종의 거래까지 한 상태라면? 엘로나 혼자서 그 모든 걸 감당할 수는 없었다.
“……일단 대화를 해보죠.”
황금함의 선두로 한 여인이 나타났다.
“엘로나 지플, 풍룡 살리온. 잠시 멈추시오, 할 이야기가 있으니.”
룬티아였다. 그녀의 뒤로 전대 흑기사들과 헤도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나와 싸우고 싶은 건가요?”
엘로나가 노기를 드러내자 성 인근의 해역이 술렁였다.
“귀가 어두우신가,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잖소?”
룬티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엘로나의 살의를 직시했다. 아직 창성은 아닐지라도 그녀 또한 엘로나와 싸움다운 싸움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실력이며, 이곳엔 그만한 실력자들이 많았다.
게다가 연합은 붉은부엉이와 모트라는 공간 도약 수단까지 보유하고 있으니, 순식간에 추가 전력을 데려오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싸우고 싶다면 뭐, 피하지는 않겠소. 하지만 보아하니 어떤 급한 일이 생겨 이곳을 찾은 것 같은데, 그 일을 그르치고 싶지 않다면 순순히 대화에 응하는 게 좋을 것이오.”
“……좋아요, 들어보죠.”
“그래야지. 우리 소가주께서 말씀하기를, 만일 경이 지옥문을 찾아온다면 그 이유는 오로지 베라딘 지플이 위험하기 때문일 것이라 하셨지. 맞소?”
당연히 가주의 신변이나 상태에 대한 정보는 어느 가문이나 극비다.
하지만 엘로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씨름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요. 나는 가주의 지원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신을 들여보낼 이유가 없소. 지옥에서 지플의 가주가 전사하는 것보다 우리 룬칸델에 좋은 일은 없을 테니.”
“지금 나랑 말장난을…….”
“본래라면 그랬을 것이오. 하지만, 우리 소가주께선 그가 지금 죽길 바라지 않는 눈치더군. 경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 소가주와 그쪽 가주는 과거 막역한 사이였소. 이상한 일이기는 하지만, 여긴 어차피 듣는 귀가 우리뿐이지.”
[이봐 룬티아 룬칸델, 갑자기 그따위 소리를 하는 저의가 무엇이냐?]“풍룡께선 주둥이를 다무시면 좋겠군. 아직 모르겠나? 당신들이 정말 베라딘 지플을 살리고 싶다면, 지금 우리가 무엇을 요구하든 어지간하면 받아들여야 해. 우리와 싸우고, 그다음에 베라딘 지플까지 구하러 갈 자신이 있소? 설령 우리 전부를 이긴다 할지라도, 엘로나 경도 무사하진 못할 게 분명한데 말이오. 싸움이 하루 이틀로 끝날 것 같지도 않고.”
살리온은 반박하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다.
“……무슨 뜻인지 알겠으니, 빨리 원하는 걸 말하세요.”
엘로나는 겨우 담담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사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제발 비켜달라 말하고 싶었다.
룬티아의 말대로 지금 연합과 전투를 했다간 베라딘을 구할 가능성이 영영 사라질 터였다.
“엘로나 지플 경. 그대의 명예를 걸고 우리와 한가지 약속을 해준다면, 우린 바로 길을 비켜줄 것이오.”
“무슨 약속이죠?”
“무사히 지옥으로 가서 베라딘 지플을 구하게 되거든. 한 번은 우리의 기록 마법사를 만나 그대의 과거를 마주하시오.”
“……뭐라고요?”
“룬칸델의 요구 조건은 그게 전부요. 과거 룬칸델과 지플이 귀곡새성에서 비밀회담을 하던 것처럼, 서로 절대로 공격하는 일 없이 느긋하게 경의 과거만 한번 살펴보자는 뜻이오. 이건 경에게도 그리 나쁜 조건이 아닐 것 같은데.”
엘로나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요구였다.
그리고 룬티아의 말대로, 엘로나에게 나쁜 조건도 아니었다. 엘로나는 잊어버린 자신의 과거를 찾고 싶어 했다.
설령 그 어떤 끔찍한 진실이 기다린다 할지라도.
“그게…… 정말 전부인가요?”
“그렇소.”
살리온은 머뭇거렸으나 엘로나는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시원하시군. 약속은 반드시 지켜주리라 믿겠소.”
“나와 가문, 그리고 가주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겠습니다. 나 엘로나 지플은 가주를 구해 지옥에서 무사히 복귀한 후, 발레리아 히스터를 만나 나의 과거를 마주하겠습니다. 다만.”
엘로나가 연합의 병력을 둘러보았다.
“……만일 가주를 위험에 빠뜨린 인물이 마족들이 아니라 진 룬칸델이라면, 나는 지옥에서 반드시 그를 죽일 것입니다. 돌아와서는 당신들도 모두 한 줌 재로 만들 것입니다. 설령 세상이 전부 파괴된다 할지라도.”
“후후, 창성이라 그런가 자신감이 대단하시군. 하지만 경은 우리 소가주를 잘 몰라. 진 룬칸델은 친우를 상대로 그리 비겁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 인간이 아니오. 막내가 마음만 먹었다면, 베라딘 지플은 이미 몇 번이고 죽었소.”
룬티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예전 같은 분위기였다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지. 룬칸델의 소가주가 지플의 가주를 배려하고 생각한다니. 하물며 베라딘을 구하고자 적의 창성 마법사를 소가주가 있는 전장으로 내려보내? 하지만 우리 막내의 룬칸델은 그렇소. 그리고 모두가 막내의 뜻을 존중하지. 법도를 넘어서서 말이오.”
사실 흑해에 계신 아버지도 그런 마음이실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룬티아는 뒷말을 삼키며 엘로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니 이제 가시오. 경이 약속을 잘 지키는지, 룬칸델이 지켜볼 것이오.”
황금함이 상승하며 지옥문을 열어주었다.
엘로나는 그 아래를 지나쳐 지옥문으로 가는 짧은 시간 동안, 룬칸델에 대해 생각했다.
룬칸델이 진을 바라보는 시선과, 지플이 베라딘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분명 큰 차이가 있었다.
때문에 엘로나는 일순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오랜 봉인으로 인해 잊어버렸지만, 천 년 전에도 엘로나는 지금과 똑같은 마음을 품은 적이 있었다.
그건 룬칸델이 부럽다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