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63)
제 999화
238화. 속죄와 편지(1)
티칸궁.
“우리 라딘이 드디어 얼굴이 좀 폈네. 쯧, 이 불쌍한 녀석.”
산드라가 베라딘의 머리를 헝클며 말했다.
지난 한 달 동안, 산드라의 말대로 베라딘은 대부분 어둡고 생기 없는 얼굴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당연히 엘로나와 생체 골렘들 때문이었다.
성수관으로 인해 엘로나는 말 그대로 켈리악을 위한 괴물이 되었다. 켈리악에게 반기를 든 기존의 친베라딘파 인원을 엘로나가 단 하루 만에 처리한 소문은 이제 휴페스터의 일반인들도 알고 있을 정도였다.
더불어 베티처럼 함께 구출되지 못한 다른 생체 골렘들, 알마티아와 쿤 역시 켈리악의 전쟁병기가 된 상태였다.
베라딘을 본떠 만든 그 생체 골렘들은 본래 오로지 베라딘에게만 충성하도록 설계되어 있으나, 켈리악이 모종의 능력으로 그들까지 엘로나처럼 만든 것이다. 티칸은 현재 그 이유가 성수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리라 추정하고 있었다.
베라딘을 괴롭게 만드는 건 그뿐만이 아니다.
정신 조작의 부작용으로 성격이 변한 동안 자신이 지플에서 저지른 모든 행위.
학살이나 다름없던 숙청, 민간인들을 배제한 전쟁, 생체 골렘 양산, 끝까지 자신을 포기하지 않은 친구들에게 칼을 겨누기까지.
그 모든 일들은 사실 한 사람을 미치게 만들기에, 심연에 빠뜨리기에 충분한 이유였다.
“좌절한 채 찌그러져 있기엔 바로잡아야 할 일이 너무 많으니까요.”
“그래, 그래. 나는 뭐 그런 대의를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지만, 지플에서 지낼 때에 비하면 여기에서의 나는 거의 천사지. 아무래도 지플에선 숨만 쉬고 있어도 나쁜 짓에 가담하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야. 티칸에 오고 나서는 좀 평범한 사람들처럼 생각하는 법도 익히고 그랬다니까?”
“평범한 사람들처럼……? 누님이? 대체 어디가?”
“같은 정신 조작 피해자들끼리 왜 이러실까?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음, 알겠습니다.”
베라딘은 산드라에게 많은 영향을 받고 있었다.
정신 조작의 부작용이 끝난 베라딘은 사실 본인이 미쳤던 시절 저지른 과오를 제외하면, 예전과 똑같은 성정을 지닌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산드라는 지플을 벗어난 후에도 여전히 생체 골렘 실험 흔적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는 날 때부터 생체 골렘 실험의 피해자였으니 사실 티칸에 오기 전까지는 정상적인 삶을 영위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산드라는 그런 일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지금의 산드라는 오직 티칸의 일원으로서 자신이 맡은 일에 충실하는 것과, 진을 사로잡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우울한 베라딘을 매일 보러 온 것도 그런 이유였다. 산드라는 똑같이 실험 피해자인 자신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베라딘에게 힘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녀의 선택은 옳았다.
“베라딘, 아니. 이제 도련님이라 불려야겠군요.”
“하, 산드라 하나로도 벅찬데 이제 이 녀석까지 모셔야 하는 건가?”
헤도와 베일이 베라딘의 방을 찾았다.
“도련님이라…… 그냥 이름으로 편하게 부르셔도 됩니다, 헤도 경. 제가 뭘 잘했다고 도련님 소리를.”
“전 혼자니 자식 하나 더 들인 셈으로 치지요. 산드라 아가씨께 가까운 형제가 없는 게 아쉽기도 했으니.”
“어, 네가 모셔야 해. 무불멸. 앞으로 라딘이 말도 잘 듣는 거야. 명령 우선권은 1등이 나, 2등이 우리 자기, 3등이 라딘이인 거지. 아 물론 1, 2등은 그냥 편의를 위해 나눈 것일 뿐 차이는 없어. 알지?”
“그놈의 무불멸 진짜, 금제 때문에 때려치울 수도 없고, 널 때릴 수도 없네. 참 내 신세 초라하다, 초라해.”
“금제가 없더라도 아가씨를 때린다면 자네는 내 손에 끝장이 난다네, 베일.”
당연히 티칸의 일원들은 베라딘의 이적을 환영해주었다.
룬칸델 내에서도 별다른 반발은 없었다. 베라딘이 진의 오랜 친구라는 사실은 이제 비밀도 아니며, 있을 수 없는 일도 아니었다.
“흠, 그나저나 나는 사실 진 씨 보려고 아침부터 여기 죽치고 있던 건데, 에잇. 아무래도 잘못 짚은 것 같네. 야 무불멸, 빨간 머리 지금 티칸에 있지?”
“있는데. 곧 검의 정원으로 간다더라. 붉은부엉이 타고. 뭐 보고할 게 있다는 것 같던데.”
“하? 그 요망한 것이 나 빼고 우리 자기를 만나러 갈 작정이었구나? 안 되겠어, 거기 껴서 나도 검의 정원으로 가야겠다.”
“야, 설마 나도 따라가는 건 아니지?”
“어, 데이트할 건데 네가 뭐하러 따라와? 베일 너는 알아서 놀고 있어. 그럼 나 다녀올게!”
산드라는 갑자기 눈에 불을 켜며 쏜살같이 방을 떠났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녀가 떠나고 채 10분도 되지 않아 진과 단테, 그리고 베티가 베라딘의 방을 찾았다. 그 모습에 베일은 배를 잡고 웃었다.
“베라딘 공!”
“베라딘.”
“가주!”
단테는 베라딘을 만날 때마다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는 중이었다. 섭정 업무와 진마계 복구가 너무 바쁜 탓에 지토 토벌전 후 겨우 세 번째 만남이었다.
진은 그보다는 베라딘을 훨씬 더 많이 만났으나 오늘처럼 밝은 분위기는 처음이었다.
“왔어? 베티, 이제 날 가주라고 부르는 건 그만두자. 난 가주도 아닐뿐더러, 너희에게 못할 짓만 했잖아.”
“그럼 오라버니라고 부르지 뭐. 아버지나 창조주 같은 말은 오라버니 나이에 좀 안 어울리잖아.”
베티는 의외로 바로 수긍하며 반말까지 더했다.
“그래, 훨씬 낫네.”
“이제 오라버니랑 나는 같이 지플에서 우리 사람들을 되찾아야 해. 엘로나 경, 그리고 알마티아와 쿤. 그들이 정신 조작으로 인해 이미 선을 넘었다 할지라도, 우리한테는 가족이니까.”
알마티아와 쿤은 몰라도, 엘로나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녀가 켈리악에게 붙잡힌 후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친베라딘 세력 척살, 그 과정에 사라진 도시가 셋이었다.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지토에게 세뇌된 마족들처럼, 그녀는 무고한 민간인들을 죽이는 일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추후 모든 사실이 밝혀지고, 엘로나가 다시 성수관으로부터 자유를 되찾게 되더라도 그 사실은 없던 일이 되지 않는다.
“가족…….”
“세뇌든, 조작이든, 어떤 이유든. 사람을 죽인 일에 대해선 벌을 받아야겠지. 제정신이 돌아온 다음엔…… 다만, 우린 가족이니 그래도 그들의 곁을 지켜줘야 하는 거고. 모두가 외면하고 손가락질해도.”
베티의 말에 베라딘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울러 켈리악의 폭정에 짓밟히는 사람들 모두를 구해야 하는 거야, 오라버니. 일반인뿐만이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채 이용되는 연방의 말단들도 마찬가지고. 우리 속죄는, 연방을 다시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만든 다음에야 조금이나마 청산되는 것이겠지.”
“그 일을 다 끝낸 다음엔 죽을 사람처럼 말하는군, 베티.”
“우리가 살아서 무엇을 할까요? 진 경. 나는 베라딘 오라버니와 의식이 일부 연결된 생체 골렘입니다. 그러니 지금 내가 하는 말은 모두 오라버니의 뜻이기도 합니다. 너무 많은 잘못이 있었어요.”
“삶의 의미나 죽음 같은 무거운 문제는 일단 잘못을 바로잡은 뒤에 생각해도 늦지 않아. 그러니 너무 압박감에 시달리지 마라, 베티.”
“하지만 제가 압박감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저보다는 오라버니의 의식이 중요한데요.”
“알았어, 알았어. 안 그럴게. 정신 차리고 힘을 내겠습니다, 베티 양. 애초에 오늘부터 그럴 생각이었다고.”
“잘 생각했소, 베라딘 공. 우울하게 있어도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오. 어둡게 지내는 건 끝내 그대를 놓지 않은 나와 진을 속상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지.”
“언젠가 일이 다 끝난 뒤에도 베티 말처럼 삶을 끝낼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 베라딘. 그러면 룬칸델 지하 감옥에 갇혀서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신세가 될 거다.”
진이 웃으며 한 말에 베라딘은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어으, 무섭네. 그나저나, 자. 여기. 한번 살펴봐, 진.”
베라딘이 두꺼운 노트를 한 권 내밀었다.
그 노트엔 베라딘이 정리한 지플의 기밀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오직 가주만 알 수 있는 정보부터 시작해, ‘성지’에 관한 내용도 빼곡했다.
바멀 연합은 성지와 엘로나의 관계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파악을 한 상태였다. 멸망의 불이 일으킨 폭발이 잦아든 후, 발레리아가 그곳에서 켈리악과 엘로나의 기록을 확인한 덕분이었다.
엘로나가 성지로부터 탄생한 괴물이었다는 사실까지 알아낸 건 아니나, 성수관의 강제력과 재질은 확인한 것이다.
“미쳐 있던 시절 기억이 완전한 건 아니라서 중간중간 빠진 대목이 있기는 해. 하지만 성지의 위치와 구조는 명확히 기억이 난다.”
“성지에 관한 정보는 엘로나 경을 구출하기 위한 핵심이 될 테지.”
문제는 성수관을 사용한 그녀의 전투력이었다.
지토와 싸울 당시 직접 본 엘로나의 무위는 창성인 진조차 충격을 받을 정도였다. 지금의 엘로나는 그보다도 더 강해진 상태고 말이다.
게다가 진의 목적은 엘로나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제압해서 성수관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니, 지금으로서는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엘로나 경을 제거하는 것이라면 지금도 어떻게든 가능은 할 거다……. 하지만 제압은, 라프라로사의 형제들이 돌아오지 않는 한 무리일 것 같군. 혹은 루나 누님도 창성에 다다르거나.’
어떻게든 제압에 성공하더라도 성수관을 부작용 없이 제거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하지만 켈리악도 바보는 아닐 테니 내가 지플의 내부 정보를 네게 넘기는 건 예상했겠지. 내 생각엔, 이야기의 탑을 성지로 옮기지 않을까 싶은데.”
“그게 가능한 일인가?”
“지금 지플의 기술력과 마신석이 가진 힘이라면 충분히 가능해. 애초에 내가 가주로 있을 때도 비밀리에 진행되던 일이니까. 그때 나는 엘로나 경과 성지의 관계를 알지 못했지만…… 켈리악은 아마 쉬누로부터 그 정보를 얻었을 것 같다.”
“쉬누가 아니라 가네스토가나 마녀일 가능성도 있어. 일단 노트는 다 검토해서 당장 쓸 수 있는 정보가 있나 확인하면 되겠군.”
진이 그렇게 대답한 찰나, 제트의 발소리가 들렸다.
“나리! 방금 검의 정원에서 중요한 통신이 왔습니다요.”
“중요한 통신?”
“예, 나리. 시론 경께서 검의 정원으로 편지를 보내셨다고 합니다.”
방에 있던 모두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건 시론이 약 한 달 전에 보낸 편지였다.
“나리께서 직접 개봉하기 전엔 내용을 알 수 없다고 하는데, 편지를 이쪽으로 보내라고 할까요?”
“아니, 내가 지금 바로 검의 정원으로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