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62)
제 999화
237화. 태양은 사라졌어도 빛은
1804년 4월 12일.
지토 토벌전이 끝나고 한 달이 흘렀다. 바멀 연합은 세인들에게 토벌전에 참전한 모든 세력 중 가장 많은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러니 휴페스터 백성들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완벽한 승전이었다. 휴페스터에선 연일 마족의 근절을 기념하는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전선에서 마족과 사투를 벌여온 이들은 웃을 수 없었다. 승전의 이면에는 일반인들이 알 수 없는 수많은 슬픔과 세뇌되고 이용된 자들의 고통이 남아 있었다.
평화롭던 한 세계의 멸망이 있기도 했다.
켈리악이 남긴 멸망의 불은 종전 한 달이 넘은 지금까지도 다 꺼지지 않은 채 진마계를 잠식하고 있었다.
“왔군.”
밀라 왕국, 장막.
진은 막 들어선 마족들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그들은 축제와 어울리지 않는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우리가 늦은 것 같군.”
“미안많이기다렸니진룬칸델.”
“아니, 나도 방금 도착했으니 신경 쓰지 마라.”
틸리아스와 미솔이었다.
그들은 무라칸 덕분에 멸망의 불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다. 당시 미솔은 멸망의 불이 시작된 독마성에 있지 않았으나, 불은 결국 진마계 전체로 퍼졌으니 미솔 역시 운 좋은 생존자였다.
“보름 만이로군. 진마계 복구를 할 때는 거의 매일 붙어 있었는데.”
“그래…… 네 덕분에 우리 마족들은 절멸을 피할 수 있었지.”
그 말에 진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의 회귀가 아니었다면 진마계가 과연 이런 비극을 겪었을까, 그런 생각을 떨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건 회귀자로서 세상의 수많은 역사를 바꿀 때마다 늘 진을 괴롭힌 고민이지만, 이번엔 차원이 달랐다. 한 세계의 인구가 9할 이상 줄어들었으니 말이다.
“진은꼭이런말을들으면 표정이안좋아지더라. 그러지마, 우린너아니었으면다죽었어. 지토그새끼한테죽거나 켈리악한테죽었겠지.”
“……그때, 바셋이 자신을 희생하지 않았다면 아마 미솔은 지금 여기에 없었을 거다.”
바셋 비셉스.
멸망의 불이 시작되기 전 그는 틸리아스와 함께 독마성을 찾았었다. 그리고 멸망의 불이 극에 달하기 직전,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차단의 권능’을 발현시켜 잠시 화마를 흩어놓았었다.
기적이라 부를 만한 일이었다. 바셋은 리돌로스로 인해 지쳐서 쇠약해진 상태였으니까.
지금 진마계엔 약 백오십만의 마족이 살아남았다. 결코 적지 않은 수이나, 본래 수백억에 달했던 인구를 생각하면 작을 수밖에 없었다.
그중 90만은 비셉스의 난민들, 나머지는 비셉스가 구조하고 있는 화마의 생존자들이었다.
“그리고 실키아 아르시아가 없었다면, 지금 비셉스의 피난처에 남은 이들도 대부분 사망했겠지.”
-실키아.
-예, 바셋 경.
-이제부터는 네가 비셉스의 단장이다. 남은 이들을 잘 보살펴다오. 너는, 신이 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명심하도록.
바셋이 마지막으로 실키아에게 남긴 말.
진은 그 이야기를 틸리아스와 미솔에게 전해들었다. 과연 바셋의 말처럼 실키아는 신이 될 수 있는 존재였다.
아니, 그녀가 가진 ‘차원 이동’ 능력은 이미 신이라 표현해도 손색이 없었다. 멸망의 불이 번진 그때, 비셉스 단원들이 살아남을 수 있던 건 순전히 그녀의 차원문 덕분이었다. 백만에 육박하는 이들이 이동할 수 있는 차원문을 개방한 것이다.
그 차원문은 비셉스 단원들을 즉시 진마계의 끝에 있는 비셉스의 마지막 피난처로 이동시켰다. 발레리아는 그 기록을 확인한 순간 제 눈을 의심했고 말이다.
“그러니 내가 한 것이라고는 그저 진마계에서 전쟁을 벌인 것뿐이다. 내게 고마움을 느낄 필요 없어.”
“네가 지토를 죽인 건 사실이다, 진.”
“그래. 놈을 죽였더니 사실 진짜 거악은 따로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말이야.”
켈리악 지플.
그와 엘로나의 최근 행보를 떠올린 진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그들은 그날 이후 순식간에 지플을 장악했고, 현재 루테로 연방은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하고 암울한 땅이 되었다.
“게다가 넌 네 숙적을 눈앞에 두고도 그전까지 너와 아무 상관도 없던 지옥을 구하려고 했다. 형님의 희생도, 실키아의 능력도 대단했으나 네가 진마계를 돕지 않았다면. 우린 지금도 어둠 속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비셉스 단원들은 애초에 대부분 세뇌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 외 생존자들은 아니다. 그들은 세뇌되어 제 손으로 가족과 벗과 연인을 죽인 일에 절망하고 있었다.
심지어 인공태양이 사라졌으니, 진마계는 지토를 몰아내고도 빛 한 점 없는 어둠의 땅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속에서 생존자들이 희망을 찾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비셉스가 아니었던 생존자들은 끊임없이 삶을 포기하려고 했지.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지토 때문에 내 손으로 이미 소중한 모든 것을 부쉈는데, 살아서 무엇하겠나. 그러나 빛이. 네가 남긴 빛이…… 그들을 살게 만들고 있어.”
리돌로스는 인공태양이 사라지면 진마계가 어둠에 잠기리라 예견했다.
그건 비셉스 단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빛을 잃더라도 지토를 몰아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을 뿐. 리돌로스와 달리 비셉스는 어둠 속에서도 서로를 어떻게든 보듬으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예상치 못한 요소가 있었다.
재생의 권능, 진이 가진 그 묘한 힘은 진마계 곳곳에 꽃처럼, 반딧불이 떼처럼 피어나 길을 밝히고 있었다.
인공태양은 사라졌으나 땅에서부터 올라오는 그 황금색 빛은 오히려 진마계를 이전보다 환하게 밝히는 중이었다.
고통과 슬픔에 삶의 의지를 잃은 마족들은 그 빛을 마주하며 강렬한 희망을 느꼈다.
무고하게 죽은 이들이 그 빛을 따라 언젠가 돌아올 것만 같은, 그런 확신에 휩싸이는 것이다.
생존자들은 그 빛을 보며 삶을 놓지 않았고, 그 빛을 따라 생존자들을 찾아다녔다. 그건 진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맞아맞아. 너도봤잖아, 지금진마계는 오히려예전보다아름다워졌어. 멸망의불만다사라지면, 말그대로빛나는땅이될거야. 지상보다도더빛나는.”
미솔이 앞에 놓인 술잔을 들어 진에게 내밀었다. 틸리아스도 잔을 들었다.
진은 그 모습을 응시하다가 건배를 받아주었다.
“설마 마족들이 모두 세뇌되었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밝히지 않은 일도 신경을 쓰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러지 마라, 진. 애초에 그건 우리가 요청한 일이니까.”
틸리아스의 말대로, 바멀 연합은 비셉스의 요청에 따라 일반인들에게 ‘세뇌’를 완전히 공개하지 않고 있었다.
일부 공개된 내용이 있기는 하나, 지금으로서 마족이 모두 무고한 피해자였다는 사실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분명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였다.
마족들에게 희망이 필요하듯이 인세의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검황성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중인 대전쟁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에겐 분명 저마다의 승리가 필요했다.
지금 지토 토벌 기념 축제가 휴페스터 곳곳에서 열리는 건, 오롯이 기쁨이 아니다.
축제는 이제 곧 시작될 또 다른 전쟁의 공포에 대한 반증이기도 했다. 켈리악이 돌아오고 시작된, 루테로 연방의 일방적인 내전은 인세 전체를 압박하고 있었다.
비셉스는 인세의 그런 정세를 정확히 읽었기에 바멀 연합에 마족의 진실을 나중에 밝히라고 요청했다. 세뇌 때문이라고는 하나 마족들이 인세를 침공한 건 분명한 사실이기도 했다.
“……알았다, 틸리아스. 하지만 언젠가 세상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올 때쯤엔, 반드시 마족들의 속사정을 완벽하게 공개할 것이다.”
“역시 의식하고 있었군. 처음에 너를 찾아와 동맹을 제의했을 땐, 사실 이렇게 연한 면이 있을 줄 상상도 하지 못했지. 우리가 이용만 당하다 버림받는 경우를 끊임없이 상정했었는데, 부끄럽군.”
“그래서인공태양이라는패를 끝까지안까기도했잖아. 지금에서는 민망한일이됐지만.”
“우리가 서로를 아직 잘 모를 때니 그랬을 수밖에. 너희도 그런 일은 마음에 담아두지 마라.”
“그렇게말해주니고맙네.”
틸리아스가 빈 술잔들을 채웠다.
오늘 이들이 장막에 모인 건 셋이서라도 조촐하게 진마계의 해방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때때로 틸리아스와 미솔은 남는 잔들에 바셋과 죽은 동료들의 몫을 채우고 대신 비우기도 했다.
“진. 너는 이제 켈리악 지플과 싸우게 되겠지.”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켈리악은 지플을 장악한 후 아직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진은 그의 동향을 주시하며 일단 아군과 진마계의 피해를 복구하는 중이었다.
“그밖에도 수많은 적들이 더 있다고 들었다. 황실, 적명족, 태양신교, 킨젤로…… 그리고 가네스토. 네가 그들과 전쟁을 치를 때, 실키아는 너희를 도와야 한다고 말하더군.”
“실키아가?”
“그래. 그리고 나를 비롯한 단원들도 모두 그 말에 찬성했다. 물론 우린 남은 전투 인원이 인세에 비해 대단치 않고, 그마저도 모두 진마계 피해 복구에 힘을 쓰고 있으니 무력을 지원할 수는 없어.”
“하지만실키아의능력이있지. 지금은한번에 큰힘을써서 회복이필요하지만, 실키아의권능은 분명네게 큰도움이될거야.”
“이를테면, 예상치 못한 큰 전투가 있을 때 그 자리에 있던 무고한 사람들을 대피시킨다든지…… 그런 방식으로 도움을 줄 수 있겠더군. 역으로 대량의 병력을 적진에 투입해야 할 때도 실키아가 활약할 수 있을 테지.”
“그밖에도실키아에겐 능력이더있어. 바셋경은그녀스스로도 아직자신의힘을 다깨우치지못했다고말했지. 그러니시간이좀지난후, 그녀의힘이필요할땐 언제든우리에게연락해. 아니면실키아가먼저 연락을할지도?”
술병이 비워지고 있었다.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실키아의 능력이라면 그럴 때 무고한 이들의 죽음을 최대한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재생의 권능이 있다 할지라도, 그건 여전히 진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마족들의 믿음처럼, 아율라의 말처럼 설령 재생의 빛이 언젠가 그들을 정말 되살린다 할지라도.
“마지막으로 건배하지.”
“이제우리도 필요한물자를챙겨서 돌아가야겠어.”
틸리아스가 남은 술을 모두 따랐다.
“빛나는 미래를 위해.”
“빛나는미래를위해.”
“빛나는 미래를 위해.”
잔들이 부딪혔다. 술잔 속에 금빛으로 물든 진마계의 대지가 출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