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72)
제 999화
241화. 구출(2)
* * *
그 시각, 진은 루나와 티칸궁의 훈련장에 마주 앉아 정좌하고 있었다.
“마음의 눈으로 보십시오, 누님.”
진이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하자 루나의 이마에 핏대가 솟았다.
“하? 뭐라고?”
“화내실 때가 아닙니다, 누님. 마음의 눈으로 보시면 답을 찾게 될 겁니다.”
“이 자식이 진짜. 설마 이 누이가 너 생도 시절 그렇게 정성 들여서 해준 심안 훈련의 보답을 이런 식으로 돌려받을 줄은 몰랐군.”
진은 루나의 반응이 만족스러운 듯 큭큭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두 사람이 훈련장에 있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추신 : 루나는 한 번쯤 가혹한 패배를 경험해도 좋을 것 같군. 막내 네가 도와주거라.)
이번에 칸이 가져온 편지. 시론은 편지에서 진이 루나를 도와 그녀가 ‘가혹한 패배’를 경험하게 하라고 전했다.
그러나 지금은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인 만큼 진짜로 검을 섞을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은 명상을 통해 대련하는 중이었다.
둘 다 창성이거나 그에 준한 만큼 그것만으로도 마치 실제 대련과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는 있으나,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뭔가 투명하고 얇은 벽 하나만 뚫으면 나도 다다를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마 생사의 갈림길 같은 걸 넘어야 할 테지. 하지만 명상에 아무리 몰입해도, 실제 전투의 위기감을 구현하는 건 어렵군.”
그간 진이 그 순간을 ‘직접’ 목격하거나 경험한 창성은 모두 같은 특징을 공유했다.
론과 진, 둘 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며 창성에 다다른 것이다.
“누님, 제 생각엔 위기감에 너무 집착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론 경과 저는 위기를 통해 창성에 다다르긴 했으나, 아버지나 반 형제는 그렇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볼 때 누님은 저나 론 경보다 그분들을 더 닮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나 네 명왕족 형제분도 그런 위기를 수차례 넘으셨을 거야. 생각해보면, 난 태어나서 그런 위기를 겪어본 적이 거의 없다.”
심각한 생명의 위협을 느껴본 적이 없다.
정말이었다. 루나는 그간 천적이 없는 맹수로서만 살아왔다. 대개는 그런 이들도 결국 언젠가는 거대한 벽을 맞닥뜨리고 하늘이 넓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루나에겐 그런 일조차 없었다.
주변에 있는 ‘더 강한 사람’들, 이를테면 시론조차 막연히 살면서 언젠가는 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느낀 것이다. 지금 눈앞에 있는 막냇동생을 생각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흑해에선 나름 사선을 넘나드는 시기를 보냈다고 할 수 있으나, 그조차 시론과 전대 흑기사들이 늘 곁에 있었다. 루나는 그때에서야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보호를 받았었다.
“아버지를 따라 흑해 탐사를 가기 전까진 위기라는 걸 거의 느껴본 적도 없고, 흑해에서도 상황이 정말 나쁘긴 했으나 다 왠지 이겨낼 수 있는 위기로만 느껴졌어. 얼마 전까지 진마계와 전쟁을 치르는 동안엔 아예 조금도 위험한 순간이 없었을 정도고.”
“음, 그건 그렇네요.”
“내가 생각할 때, 내 생에 가장 큰 위기가 언제였는지 아니? 그건 안드레이 지플에게서 너를 구한 날이다, 막내. 그땐 마신석을 베느라 약간 무리해서 마지막엔 네 도움을 받았지.”
진은 잠시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 말씀을 듣고 돌아보니, 그것도 누님께는 별일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누님은 제가 마지막에 돕지 않았어도 무난하게 생존하셨을 겁니다.”
“맞아. 물론 네가 없었다면 조금 다치긴 했을 거야.”
이러니 시론이 루나에게 가혹한 패배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이다. 패배 없이 창성에 오르는 건, 엘로나처럼 거대한 신격을 가진 경우만 가능했다.
애초에 엘로나는 딱히 다른 명칭이 없기에 창성이라 일러질 뿐, 그녀는 그 자체로 태양신의 의지 하나를 품은 신에 더 가까웠다.
‘확실히…… 누님이 창성에 다다르기 위해선 그런 종류의 경험치가 필요하겠어. 생사의 갈림길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그러나 그런 수련을 하겠다고 진짜 대련을 할 수도 없고, 루나를 일부러 홀로 적진으로 밀어 넣어 위험에 빠뜨릴 수도 없다.
“일단 붉은 기운의 횟수 제한, 그것부터 더 완벽하게 파악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붉은 힘을 다루는 수련은 꼭 대련 상대가 없어도 할 수 있으니까요.”
“나도 그쪽을 생각하고 있기는 해. 아무래도 붉은 기운의 폭주가 그나마 위기라면 위기라고 할 수 있을 테니…… 윽, 하지만 이조차 통제가 절대 불가능한 건 또 아니란 말이지. 젠장, 답답해!”
루나가 그렇게 소리친 찰나, 훈련장으로 아메리스가 찾아왔다.
“배부른 소리를 하는구나, 루나.”
“아메리스 님. 하하…… 그렇긴 하죠.”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거라. 이 몸은 옛 힘을 그만큼 잃고도 조급하게 굴지 않으니, 본받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메리스 님. 한데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진에게 알려야 할 내용이 생긴 것 같아 찾아왔다. 루나, 너도 괜히 힘 빼지 말고 들어보거라.”
“아메리스 님, 무슨 내용입니까?”
“아무래도 지금 봉마벽 인근에서 어떤 강대한 존재들이 전투를 벌이는 중인 모양이다.”
“예?”
“지하라고요? 설마 진마계에 지토의 잔당들이 남았었나? 그럴 리가 없는데.”
아메리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다. 완전한 지하가 아니라 중간층에서 벌어진 전투야. 처음엔 긴가민가했는데, 조금 전에 확실해졌다.”
비록 지상과 지하 전체에 퍼져있던 전성기의 감각 대부분이 소실되기는 했으나, 현재 중간층 메이실에 번진 전투는 지금의 아메리스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만큼 큰 전투였다.
“……그렇다면, 적명족이겠군요.”
“이 몸도 그렇게 생각한다, 진. 다만 지금도 계속 집중해서 전황을 읽으려고 노력 중인데, 적명족의 기운만 있는 건 아닌 것 같더군. 지플의 강자인지, 킨젤로인지, 다른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직접 가서 확인해봐야겠습니다. 적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래, 큰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위험이 될 수도 있을 테지. 지상은 잠시 무라칸에게 맡기고, 둘이 같이 다녀오면 되겠군.”
진은 즉시 상황을 수뇌들에게 알리고 붉은부엉이로 향했다. 아메리스는 계속 봉마벽 인근의 감각에 집중하며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했다. 발레리아는 아메리스의 설명을 들으며 해당 위치의 좌표를 찾아냈다.
“아메리스 님의 설명대로 좌표를 설정하면, 루테로 연방 북해의 한 무인도가 나오네요.”
루테로 연방 북해에 존재하는 무인도. 그곳은 바로 황실이 망하기 전까지 은신처로 사용하던 공간이었다.
무인도 아래로는 고대 청명족이 사용하던 여러 ‘지하 통로’가 존재하고, 황실은 그를 통해 지금껏 인세의 거대 세력들로부터 숨어왔다.
“루테로 연방이라…… 민감한 문제긴 하군. 나랑 막내가 거길 갔다가 행여 다른 놈들과 엮이면 그대로 전쟁이 시작될 수도 있어.”
“괜찮습니다, 누님. 어차피 이 무인도에 병력이 배치되어 있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있다면 전부 제거하면 그만이고?”
“그렇죠. 만약 병력이 있다면 그건 무인도가 지플의 비밀 기관 중 하나라는 뜻이니, 그것대로 나쁘지 않습니다. 그저 버려진 무인도일 것 같긴 하지만. 지플이 직접 관리하는 중심 지역들과 멀어도 너무 멉니다.”
“맞는 말이군. 가자, 막내.”
진과 루나, 아메리스가 붉은부엉이에 올랐다. 붉은부엉이는 순식간에 세 사람을 루테로 연방 북부의 무인도에 내려주었다.
도착해서 보니 진의 예상대로 정말 버려진 섬처럼 보였다. 연방의 병력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세 사람은 섬 곳곳에 떠다니는 희미한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들만큼 극도로 발달된 감각을 지닌 사람만 맡을 수 있는 냄새였다.
“허, 이건.”
피 냄새를 따라 이동하니 동굴이 드러났고, 그 동굴 안은 비먼트 양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여기가 황실의 은신처였군…….”
“버려진 건가? 피 냄새는 이 방에서 나는 것이군. 이건, 고대 명왕족의 시체인가……?”
루나가 벽면에 붙은 문을 열자 봉인된 청명족 매몰자들의 시신이 나타났다.
동굴엔 진과 루나는 처음 보는 몇 가지 장치와 기관이 구비되어 있기도 했다. 그러나 아메리스는 그것이 고대의 물건이라는 사실을 곧바로 알아보았다.
“루나, 그건 청명족의 시체다. 아, 이것들을 보니 기억이 좀 돌아오는구나. 진, 이건 청명족이 사용하던 통로를 개방하는 장치들이다. 그리고 여기 오자마자 전투가 더 격렬하게 느껴지는군.”
이제는 진과 루나도 지하 중간층에서부터 올라오는 격렬한 진동을 느끼고 있었다.
“이 몸이 여기서 장치들을 조정해주마. 너희 둘은 어서 가보아라.”
아메리스가 동굴 중앙에 놓인 석상을 만지며 말했다. 석상에 각인된 고대 문자들이 그녀의 손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아메리스 님.”
“여기에 서면 장치가 너를 전투가 발생한 곳으로 바로 보내줄 것이다. 보자……. 메이…… 메이실. 그래, 메이실, 이런 도시가 있었지. 아무래도 황실이 적명족의 습격을 받은 모양이군. 황실은 그간 이 청명족 시체들을 이용해 적명족과 거래를 해왔을 것이다.”
이내 진과 루나가 바닥에 그려진 원형의 고대 문자 위에 서자, 장치들이 공명하며 공간 도약이 시작되었다. 고대 문자 아래로 푸른빛 통로가 열렸고, 두 사람은 마치 떨어지듯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두 사람은 곧바로 메이실의 근처에 도달할 수 있었다.
본래라면 인근 평야가 아니라 곧바로 메이실 요새 내부로 이동되었어야 하나, 적명족 공중요새들이 발산하는 적뇌 파장이 공간 도약을 방해하고 있었다.
다만 꽤 멀리 떨어졌어도 메이실이라는 도시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온 하늘에 붉고 푸른 뇌전이 가득하기 때문이었다.
‘붉은 뇌전은 적명족의 공중요새와 함선이 퍼뜨리고 있고, 푸른 뇌기는…….’
진은 푸른 뇌전의 주인을 찾아 시선을 옮겼다. 그는 뒤쪽에 있는 공중요새를 상대하고 있었는데, 처음 보는 것임에도 그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루크…… 명왕족의 옛 투신. 아율라 님이 경계하라던 태양신교의 대사제. 분명 그자입니다.”
“역시, 그놈이로군. 그런데 푸른 뇌기를 쓰는 녀석이 하나 더 있는데, 저건 누구지?”
엘티엇.
그는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채로 피빌의 포격을 견뎌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는데, 루크는 훨씬 여유로운데도 그를 도울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일단 적명족이 죽이려 하고 있으니 놈들의 적인 건 확실하고, 루크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걸 보니 태양신교의 아군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일단 저 친구를 구출하면서 상황을 들어보는 게 좋겠구나.”
“제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누님. 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