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74)
제 999화
241화. 구출(4)
‘방금, 형제라고 했나?’
진은 문득 아메리스를 처음 만난 날이 떠올랐다.
적명과 청명, 그들은 같은 명왕족임에도 지향하는 바가 전혀 달랐다. 청명족은 적명족보다는 현재의 명왕족과 비슷한 지휘 체계를 가지고 있었고, 적명족은 태양신을 부활시키려 하나 청명족은 그를 막는 입장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엘티엇은 첫인상부터 진에게 그리 나쁜 느낌을 주지 않았다.
츠아악-!
시그문드가 금빛 벼락을 토했다. 엘티엇에게 내리꽂히던 포격이 일제히 벼락에 부딪혀 사라졌다.
이어 연속으로 쏜 광속 찌르기가 상공에서 엘티엇을 짓누르던 함대를 격추시켰다. 함선의 잔해가 비처럼 쏟아졌는데, 진은 파편 하나가 지상에 닿기도 전에 벌써 엘티엇과 거리를 좁혔다.
‘나를 형제로 착각하고, 내가 올 때까지 억지로 버티고 있던 건가.’
맥은 희미하고 호흡도 미약했다. 진이 조금만 늦었어도 엘티엇은 죽거나, 적명족에게 붙잡혀 살아 있는 피 공장이 되었을 것이다.
진은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함대를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한동안 엘티엇의 상태를 살폈다. 포격이 계속 이어지긴 했으나 단 한 발도 황금 벼락과 보호막을 뚫지 못했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인데, 광심장에서 유난히 마력이 느껴지는군. 아메리스 님에게 청명족이 마력도 사용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그렇다면 외부의 마력이 분명했다. 자세히 보니 광심장 안에서 무언가 벌레 같은 검은 기운이 꿈틀거렸다.
조금 전에 루테로 연방 무인도의 은신처에서 청명족 매몰자들의 시신을 발견한 게 떠올랐다.
‘황실이 이자에게 수작을 부려서 이용하고 있었군. 형태를 보아하니 조악하지만 강력한 저주다.’
진의 손바닥 위에 한 줌 빛나는 마력이 떠올랐다.
지금 당장 저주를 풀 수는 없지만 일시적으로 멈추게 만들 수는 있었다. 진이 광심장에 손을 대 마력을 주입하자 속에 있던 시커먼 기운이 얼음처럼 굳었다.
[커헉……!]엘티엇이 핏물을 뱉으며 눈을 떴다.
“정신이 드시오?”
“말하기도 힘들 테니 하나만 묻겠소. 그대의 이름과 신분을 말해주시오.”
[형제…… 그게 무슨, 날 모르는 것처럼…….]“아직 덜 깬 모양이군.”
[저쪽에 형제만큼 강력한 놈이 있어…… 하지만 그자는…… 우리의 형제가 아니다.]루크를 뜻했다.
진은 그 순간 왠지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루크는 자신보다 청명족이나 현재 명왕족과 더 유사한 뇌기를 사용하는데 형제가 아닌 것이다.
“나는 형제고, 저자는 형제가 아닌 이유가 궁금하군.”
[태양신교…… 태양의 부활을 꿈꾸는…… 미련한 자들.]“아, 이해했소. 그럼 이제 걱정 말고 푹 쉬시오.”
엘티엇이 다시 눈을 감았다. 저주가 멈춘 덕에 방금보다는 안정적인 숨소리가 들렸다.
진은 쥐고 있던 시그문드를 엘티엇의 옆에 꽂았다. 명왕검 투신기 4검 침식, 그 검으로 싸우는 동안 엘티엇을 보호할 요량이었다.
프츠즈즉……!
시그문드를 중심으로 뇌전 지대가 형성되고 있었다. 눈 깜짝할 새에 수천 갈래의 우레가 몰아쳤고, 때문에 적명족은 더 이상 엘티엇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순간 이동은 아니다, 그저 강력한 보호막일 뿐이야! 엘티엇은 여전히 저 안에 있으니, 화력을 집중해서 어떻게든 죽여라! 피빌이 우릴 지원할 것이다!”
적명족으로서는 엘티엇의 생포를 일단 포기해야만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죽여서라도 그 육신과 남은 피를 흡수하면 되니까.
다만 그건 현실적인 계획 수정이라기보다는, 마지막까지 희미한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판단에 가까웠다.
피빌의 주포를 뚫고 그를 지키려던 바카룬까지 밀어낸 괴물이 엘티엇을 지키고 있으니 말이다.
진은 상공에 친 보호막을 해제하며 브라다만테를 뽑았다. 그리고 발검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한 줄기 시커먼 검기가 하늘을 횡으로 가로질렀다.
영혼베기, 함선 기동 능력으로는 결코 반응할 수 없는 창성의 일섬. 검은 검기가 소리 없이 함대를 지나치자, 뒤늦은 굉음이 울렸다. 함선들이 파괴되는 소리였다.
진은 피빌과 함대 쪽보다 오히려 루크를 의식하고 있었다.
‘놈도 무언가를 지키면서 싸우고 있다. 황실 잔당, 그리고 태양신교의 세력인 것 같은데…… 누님이 오는 대로 직접 확인하러 가야겠군.’
루나는 아직 피빌의 주포가 터뜨린 붉은 뇌전 안에 있었다.
바카룬의 부관이 진보다 루나에 집중하기로 결정한 까닭이었다. 이미 창성에 도달한 진은 어쩔 수 없다 해도, 루나만 노리면 큰 타격을 줄 수 있으리라는 판단.
“아직 누님이 얼마나 튼튼한 사람인지 모르기에 할 수 있는 판단이지.”
진이 그렇게 말한 순간, 피빌의 주포가 토한 해일 같은 뇌전의 한쪽이 일그러지며 루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의 한계까지 기운을 끌어올린 탓에 오러가 그녀의 주변에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 힘은 피빌이 쏜 붉은 뇌기의 궤도를 조금 틀어버릴 정도였다.
“우리를 아주 우습게 보고 있구나…… 화력을 낮춰? 룬칸델의 소가주와 1기수를 앞에 두고도 뒷일을 생각하고 몸을 사려가며 싸우겠다는 것이냐?”
분노한 루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전장을 흔들었다. 그녀는 허공에 무지막지한 검기를 난사해 그 추진력으로 피빌에 다가서고 있었다.
그때쯤 바카룬도 뇌전 속을 빠져나와 기운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 역시 루나처럼 별다른 피해를 받지는 않았으나,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결투’ 능력이 이토록 쉽게 파해되었다는 사실도, 피빌의 집중 포격을 받은 루나가 잔상처 몇 개만 난 채 멀쩡하다는 사실도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과연 드렉 동포의 유언과 시마트 동포의 의견이 옳았어…… 만약 우리가 루테로가 아니라 바멀과 계속 전쟁을 했다면, 지금 이 세상엔 적명의 이름이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쩌엉-!
크란텔이 바카룬을 내리찍었다. 바카룬은 침착하게 응수했으나 어서 다시 함교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이대로 루나에게 발이 묶여버리면 엘티엇을 통해 얻는 이득보다도 더 큰 손실을 안게 되리라는 확신이 찾아들고 있었다.
“하? 뭐 하는 짓이냐, 바카룬. 아까 그 이상한 아공간으로 나를 끌어드렸을 땐 당당하더니, 왜 뒷걸음질을 치는 것이야?”
“너흰 어째서 엘티엇, 청명족의 투신을 돕는 것이냐? 게다가 황실과도 싸우지 않고 있군. 한패인가?”
“지금 그딴 게 왜 중요하지? 그리고 황실 놈들은 네놈들부터 처리한 다음 알아서 족칠 것이니 헛소리 집어치워라. 다시 한번 저 벌레만도 못한 것들과 우리 룬칸델이 한패가 아니냐고 지껄이면 그다지 재미가 없을 거다.”
“그렇다면 네놈들은 네놈들 실리나 챙겨서 떠나라. 오늘은 우리에게 마냥 운수 좋은 날이 아니었던 모양이군.”
“저 끔찍한 무기로 우릴 죽이려 해놓고 이제 와서 각자 갈 길 가자? 난 그렇게 못 하겠군, 바카룬. 자신이 없는 모양인데, 뭣하면 내가 막내에게 얘기를 해주마. 너와 일대일로 붙을 테니 끼지 말라고 말이다. 넌 공중요새든 함대든 다 사용해도 좋다.”
바카룬은 대답하지 않고 계속 함교와 붙으려고 보법을 밟았다.
그건 명백히 적명족의 사기를 꺾는 풍경이었다. 투신을 제외하면 최강인 동포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뒷걸음질을 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전황을 읽을 줄 아는 고위 적명족들은 바카룬이 옳은 판단을 내렸다고 인식했지만, 당장 아랫것들에게 설명할 여유 따윈 없었다.
“카아!”
결국 루나는 크란텔을 올려쳐 바카룬을 허공으로 띄워버렸다.
그리고 다시 도약해서 바카룬에게 제대로 일격을 먹이려는 찰나, 그녀는 바카룬의 팔찌가 빛나는 모습을 확인하며 이를 악물었다.
“승부는 다음에 다시 가르지.”
크란텔이 허공을 갈랐다. 바카룬이 팔찌의 귀환 능력을 통해 함교로 순간 이동한 것이다.
“엘티엇은 포기한다. 파틀을 지원하고 물러나겠다!”
함교로 돌아온 바카룬은 빠르게 명령을 수정했다.
사기가 바닥까지 꺾였다 할지라도 규율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피빌과 함대의 조종사들은 곧바로 파틀을 향해 고속 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루나는 지상으로 내려왔다. 방금까지 악귀처럼 바카룬을 몰아붙인 그 사람이 아닌 듯 평온한 얼굴이었다.
“놈들이 물러나는구나, 어떠냐? 너를 좀 따라 해보았다. 일부러 막 나가는 척 상대를 급하게 만들었더니 전황이 편해졌군.”
루나는 애초에 바카룬과 승부를 낼 생각도, 피빌과 끝장을 볼 생각도 없었다.
엘티엇은 이미 진이 확보했고, 가문 초대 가주의 육신으로 입에 담지도 못할 불경한 짓을 저지른 놈들은 루크의 보호 아래 편하게 있었다. 당연히 그놈들을 더 족쳐야 했다.
“여기서 보는데도 상당히 실감 나더군요. 제가 바카룬이었다면 오늘밤 누님 얼굴이 꿈에 나올까 무서울 겁니다.”
“후후, 이제 우리도 저 루크라는 놈 쪽으로 가자. 그나저나 이자는 청명족의 투신이라더구나. 이름은 엘티엇이고.”
진이 시그문드를 뽑아 침식을 해제했다.
그러자 부서져서 뇌기에 묶여 있던 함선들의 잔해가 하늘에 휘날렸다. 함선이었다고는 믿을 수 없이, 재와 입자만이 가득했다.
루나가 엘티엇을 업었다. 남매는 달려서 전장을 이동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태양신교 무녀 산나는 당황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하게 피빌의 적뇌 파장이 가까워진 탓에 차원문을 열기까지 시간이 더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적뇌 파장과 더불어 갑자기 사방의 마력 농도가 높아지기 시작한 탓에 기도를 변경할 필요까지 생겼다.
‘피빌이 이쪽으로 온 건 그렇다 쳐도, 갑자기 마력 농도까지? 설마, 진 룬칸델이 뭔가 눈치를 챈 건가?’
진은 아직 산나가 차원문을 열려 한다는 사실을 정확히는 모르고 있었다.
다만 루크가 시간만 버는 식으로 싸우는 걸 미루어보아 순간 이동, 혹은 그와 유사한 형태의 탈출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으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그 순간 이동은 붉은부엉이나 모트와 달리 시간적 제약이 있는 게 분명했고, 그렇다는 건 환경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높다는 생각이었다.
때문에 무작정 마력을 퍼뜨려보았다. 그렇게 해서 적들을 곤란하게 만들면 좋고, 아니면 마력을 다시 회수하면 그만이니까.
‘그래도 문제는 없다. 어차피 시간은 루크 사제님이 얼마든지 벌어줄 테니!’
그리고 그 순간, 산나는 위로 별안간 한 줄기의 검기가 떨어지는 모습을 올려다보았다.
룬칸델의 결전기, 유성우의 한 갈래가 루크의 보호막을 뚫고 구덩이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