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80)
제 999화
243화. 붉은 왕의 기습(1)
중간세계.
적명족은 메이실 전투 이후 계속 중간세계를 탐색하고 있었다.
피빌록을 비롯한 4개의 도시엔 최소한의 경계 병력만 남긴 채, ‘투신의 땅’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피빌, 파틀, 리탈, 베슬.
엘로나가 탈취한 우스를 제외한 4기의 공중요새가 모두 가동되고 있었다. 피빌과 파틀은 전투로 인해 약간의 손상이 있었으나 이미 복구가 끝났다.
‘시마트 동포가 아니었다면, 우리 적명족은 끝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다.’
엘로나가 우스록을 습격한 직후, 오직 시마트만이 모든 걸 걸고 황실을 공격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었다.
덕분에 적명족은 단숨에 옛 위엄 일부를 되찾아 황실의 통제를 벗어났다.
그 과정에 바멀 연합과 태양신교라는 변수가 있었지만,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그리고 시마트 동포는……. 어쩌면, 우리의 투신일지도 모른다. 시마트 동포가 이야기를 할 때, 종종 알 수 없는 위엄이 느껴졌었다.’
이번 작전으로 시마트는 이미 모든 동포들로부터 대투왕에 버금가는 인정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바카룬과 본래 시마트의 상관인 라키만은 그로부터 특히 더 묘한 느낌을 받는 중이다.
그의 말을 거역하면 안 될 것 같은 직감을.
“바카룬 동포! 방금 닐롯을 탐색 중인 베슬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닐롯 인근 황실의 은신처로 추정되는 곳에서 투신 동포의 검과 인장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적명족 투신의 검과 인장.
그 두 가지 요소는, 적명족이 최초에 황실의 주장을 믿은 근거였다.
너희들의 투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는.
“당장 전송하라 전하라.”
“적명!”
“그리고, 파틀에 있는 시마트 동포를 호출해라.”
“알겠습니다.”
함교 가운데엔 원판 형태의 아티팩트가 놓여 있었다.
그 아티팩트는 창을 띄워 영상 통신을 하거나, 지금처럼 물건을 전송할 때 사용했다.
아티팩트 위로 붉은 기운이 떠오르며 자그마한 차원문이 열렸다.
차원문 안에서부터 한 자루의 검과 금색 허리띠가 빠져나오자, 지켜보던 적명족들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붉은 왕의 검과 인장……. 정녕, 투신 동포의 물건이다!”
눈물을 흘리는 적명족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마침내 잃어버린 신의 흔적을 발견한 신도들처럼 굴었다.
바카룬이 시마트를 부른 건, 그가 혹시 검과 인장에 반응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의 예견대로, 시마트는 피빌 함내로 들어서자마자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중하급 투왕과 평전사들도 시마트의 변화를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시마트가 성큼성큼 아티팩트로 다가가 검과 인장을 매만져도 제지하지 않았다.
“아…….”
검을 쥐자마자, 시마트의 머릿속으로 잊고 있던 기억들이 흐르는 물처럼 넘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왜 대봉인 이전에 종적을 감추고 ‘시마트’가 되었는지.
그리고 이제부터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역시,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었군.”
시마트가 그렇게 말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릎 꿇고 있던 이들은 이제 시마트에게 절을 하고 있었다.
통신병들만이 자리에 앉은 채 전 요새와 함대로 투신이 돌아왔음을 알렸다.
붉은 하늘의 왕이 돌아왔다.
통신문이 전달되자마자 피빌의 사방에 거대한 차원문들이 열리기도 했다.
모든 공중요새와 함대가 돌아온 투신을 알현하기 위해 달려오고 있었다.
“투신……. 투신 동포, 전 언제나 당신이 돌아오리라는 사실을 믿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가까이에 계셨군요…….”
바카룬이 시마트의 손등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이어 바카룬은 직접 시마트에게 검과 허리띠를 매주었다.
청명족과 달리, 적명족에게 투신이란 태양신을 대리하는 존재로서 신앙의 주체다.
그들에게 투신은 단지 최강의 전사나 최고사령관을 뛰어넘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바카룬, 내가 시마트로 지낼 때 너는 늘 그런대로 옳은 판단을 내렸지. 네가 내게 힘을 실어준 공이 크다.”
“보다 잘 해내지 못해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투, 투신 동포……! 이 라키만이 어리석어 동포를 알아뵙지 못했습니다.”
라키만은 시마트를 부하로 부리는 동안 수차례나 실망스러운 선택을 했었다.
시마트는 그가 저지른 실책들을 떠올리며 피식 웃음을 내뱉었다.
“이제부터 잘하면 된다. 애초에 내가 너희에게 말도 없이 모습과 신분을 바꾸었으니, 탓하지 않겠다.”
적명족의 대투왕들은 성채, 즉 공중요새와 연결되어 있다.
그들은 그 힘을 이용해 성채화라는 전투형 변신을 할 수 있으며, 투신이 각 성채에 부여한 고유한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투신은 대투왕들과 달리 검과 연결되어 있다.
태양신의 육신 조각을 빚어 만든 검, ‘테탈론’이 붉은빛을 뿜었다. 그 기운이 시마트에게 스미며 그를 본모습으로 돌려놓고 있었다.
머리칼이 한층 더 붉어지며 길어졌고, 투신을 상징하는 룬 문자들이 몸 위로 떠올랐다.
화등처럼 타오르는 눈동자, 피를 뭉친 듯 진한 광심장.
함교 밖 중간세계 특유의 어둑한 하늘도 온통 붉게 물들고 있었다. 발현된 투신의 힘에 중간세계 전체가 그와 공명하는 것 같았다.
“내가 왜 종적을 감추고 시마트로서 너희와 함께했던 것인지는, 추후 찬찬히 설명해주겠다. 일단 지금은 나의 땅, 크리틸을 찾으러 가야겠군.”
크리틸.
고대 적명족의 수도, 투신의 땅.
지금 그곳엔 적명족 최강의 공중요새가 숨겨져 있었다.
적명족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 내내 그곳을 찾고자 노력해왔다. 그러나 봉인된 다른 도시들과 달리 크리틸은 기존과 전혀 다른 지역에 매장되어 있었다.
투신이 잠적하기 전 직접 감춘 도시인 만큼 단서도 전혀 없었다.
적명족으로서는 황실이 그 위치를 알고 있으리라고만 예상해온 것이다.
시마트가 직접 아티팩트 위로 좌표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투신 동포, 이곳은…….”
바카룬이 좌표를 보며 말했다.
그 좌표는 지상을 가리키고 있었다.
일반적인 지상의 기준에선 지하라 부를 수 있지만, ‘아메리스의 경계’ 기준에선 중간세계조차 아니었다.
지플의 수도 드락카.
크리틸은 그 지하에 감춰져 있었다.
“그래, 경계 밖이다. 그리고 지플의 수도 아래지. 나도 최초에 이런 걸 기대하고 위치를 정한 것은 아니나, 태양신이 우리를 굽어살핀 모양이군…….”
인세 역사에 지플이 등장한 이래, 드락카는 단 한 번도 그들의 땅이 아니었던 적이 없다.
또한 지플이 나타나기 전에도 드락카가 위치한 땅은 그 시대의 패권을 지닌 이들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보상이라 할 수 있었다.
크리틸은 그 땅의 지각 안에 놓여 있었다.
다른 대부분의 지역과 마찬가지로, 드락카는 지각이 다 무너질 만큼 강렬한 충격에 노출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껏 아무도 크리틸을 찾지 못한 것이다.
크리틸은 문자 그대로 땅 아래 온전히 남아있는 초고대문명의 유산이나 다름이 없었다.
“동포들이여, 크리틸은 큰 뱀에게 봉인된 적 없다. 크리틸엔 그 시절 우리가 취한 전리품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적들을 옥죌 강력한 병기들 또한 건재하지.”
적명족들의 눈동자가 커졌다.
방금까진 그들도 크리틸이 당연히 중간세계나 지하 어딘가에 존재하리라 믿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우린 언제든 지플의 심부를 공격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 베키오스 동포. 그러나 드락카가 지플의 심장이라 할 수는 없겠군. 상징적으론 분명 루테로 연방 전체의 수도지만, 놈들의 진짜 심부는 이야기의 탑이다.”
그렇게 말한 시마트는 한동안 이야기의 탑에 대한 정보를 떠올렸다.
“역사를 조작하는 힘이라……. 어리석은 자들이지. 태양신에게도 불가한 일을 자신들이 해낼 수 있다 믿고 있으니. 그런 게 가능하다면, 어째서 태양신이 죽기 전에 역사를 수정하지 않았겠느냐?”
시마트가 설정한 좌표를 향해 공중요새들이 차원문을 열고 있었다.
“고향 땅을 밟고, 그 오만한 인간들에게 한 방 먹일 때가 되었다. 이동하라!”
“적명!”
공중요새와 함대가 차원문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잠시 후, 적명족은 수도 크리틸에 다다를 수 있었다. 과연 크리틸은 시마트의 말대로 고대의 모습 그대로 보존된 모습이었다.
“오오……!”
“크리틸이!”
인류의 역사보다도 긴 세월 동안, 크리틸엔 먼지조차 슬지 않았다. 도시는 수정처럼 투명한 막에 싸인 채 번쩍번쩍 광이 나고 있었다.
적명족들은 함대에서 내려 시마트를 따라 직접 도시를 살펴보았다.
유지 장치에 보존된 동포들은 피를 주입하면 당장이라도 깨어날 것 같았는데, 그 옆으로 청명족과 마족들의 피를 저장한 단지가 셀 수 없이 놓여 있었다.
그 피를 사용하면 도시는 순식간에 부활할 것이다.
적명족들은 벅차는 가슴을 진정할 수 없어 연신 소리를 질렀다.
“기뻐하기엔 아직 이르다, 동포들이여. 지금부터 나는 드락카에 피의 축제를 열 것이다. 동포들 모두가 마음껏 즐기고도 남을 것이다.”
엘티엇의 말대로 시마트는 단지 창성의 무력만 보유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의 최대 강점은 통솔력과 지략, 그리고 과감한 결단이었다.
“지금쯤 엘로나 지플은 탈취한 우스를 분석하느라 이야기의 탑에 있을 것이다. 수도엔 켈리악과 떨거지들만 가득할 테지. 설령 엘로나가 대기 중이라 할지라도 상관은 없다. 공중요새 네 기와 크리틸이 한 번에 기습하면, 그 괴물도 도망칠 수밖에 없다.”
우스록이 엘로나 한 명의 기습에 순식간에 함락되는 걸 보았는데도, 적명족들은 시마트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애초에 우스록도 충분히 대비가 된 채로 엘로나를 맞닥뜨렸다면 그렇게 처참하게 패배하진 않았을 것이다.
현재 적명족 함대의 전력은, 흉신전의 람 그 이상이었다.
이내 시마트가 크리틸의 내성으로 가 옥좌에 앉았다.
옥좌 앞의 원판 아티팩트에 기운을 불어넣자 도시 전체가 전투 태세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투신의 공중요새, ‘크리’의 동력원이 가동되자 온 땅과 하늘이 진동하고 있었다.
“주포 사정거리까지 상승한 후, 땅 아래에서부터 포격을 가해 놈들의 도시를 잿더미로 만들겠다. 오늘, 드락카는 우리 적명족의 땅이 될 것이다.”
“적명!”
적명족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자, 시마트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뒷말을 이었다.
“그리고 엘티엇과 아메리스, 내 오랜 벗들과 진 룬칸델도 내가 돌아온 사실을 알게 되겠군. 그들이 어떤 표정을 할지 궁금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