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81)
제 999화
243화. 붉은 왕의 기습(2)
* * *
그때, 켈리악은 라갈과 차를 마시며 엘로나의 보고서를 살펴보고 있었다.
탈취한 적명족의 공중요새, 우스에 대한 기록들이었다. 그녀는 시마트의 예상대로 성수관의 능력을 이용해 가일라를 취조하며 우스를 분석하고 있었다.
“피가 부족했기 때문인가. 이런 대단한 물건을 몇이나 보유하고도, 황실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다니. 나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군.”
“내가 보기에도 그래, 켈리악 친구. 봉마벽이 생기기 전까지, 적명족과 청명족 놈들은 진짜 끔찍했다고.”
라갈이 대답한 순간, 켈리악은 흠칫하며 오감을 끌어올렸다.
아주 먼 곳 어딘가에서부터 엄청난 힘이 드락카로 가까워지는 게 느껴졌다. 드락카에 있는 모든 사람 중, 켈리악만이 변화를 알아보고 있었다.
“잠깐, 라갈.”
“왜 그래? 켈리악 친구.”
“무언가가 강대한 것이 드락카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방향을 파악하기가 어렵군…….”
“엥? 진짜로? 설마 연합의 기습인가? 그쪽에 보내둔 첩자들한테 별다른 보고는 없지 않았나?”
켈리악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 병력, 1급 방어 태세에 돌입하라. 적습이다.”
“예!”
근처에 있던 마법사들이 신속하게 켈리악의 명령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이어 켈리악은 밖으로 나가 적습을 알리는 불의 인장을 한 번 더 띄웠다.
도시 외벽들은 한층 더 높게 치솟아 철옹성을 구축했고, 상공에서부터 지플 본가까지 겹겹이 이어지는 거대한 보호막이 구성되었다.
이 모든 과정이 완료되기까지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연방의 수도이자 지플의 본가인 만큼, 드락카의 방위력은 가히 세계 최고라 할 만했다.
만일 적들이 일반적인 습격, 즉 외부에서 공격과 침투를 시도했다면 드락카는 성공적으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하’에서부터의 기습은, 켈리악도 전혀 예상치 못한 수였다.
쿠드드드……!
가장 먼저 진동을 느낀 건, 드락카 남부의 민간인들이었다.
“지, 지진인가!?”
“으아아악!”
집으로 돌아가려던 민간인 둘이 소리를 지른 순간, 일대 지반이 무너지며 거대하고 붉은 빛기둥이 치솟았다.
적명족 함대, 기함 라비에트의 주포였다. 근처에 있던 민간인 수십 명이 그 포에 휘말려 흔적도 없이 녹아 사라졌다.
말 그대로 땅과 건물이 마치 액체처럼 뒤집어지고 있었다.
비상사태 선포를 확인하고 급히 본가로 돌아가던 마법사들도 이어진 포격에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과거 지플에 선전 포고를 했을 때.
적명족은 전쟁 중 민간인 피해를 절대로 배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적명족은 무차별적으로 눈에 보이는 모든 인간을 죽이고 있었다.
“살려줘!”
“도와, 도와주세요……! 아악!”
지상에서, 그리고 막 지상으로 올라와 상공에 자리를 잡은 함대로부터 쉴 새 없이 포격이 빗발치고 있었다.
한 번 발사될 때마다 건물을 몇 채씩 집어삼키는 거대한 붉은 광파 앞에, 사람들은 핏자국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갔다.
살점과 뼛조각도 자리에 남지 않았다. 건물의 잔해 또한 마찬가지였다. 잘 다져지고 포장된 땅들은 순식간에 용암이 흐르는 화산지대처럼 변했고, 건물은 저층과 고층을 가리지 않고 전부 고운 입자가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드락카의 시민들은 단 한 번도 이런 지옥도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
이미 적명족이 수차례 드락카와 인근 자치구들을 기습한 이력이 있으나, 그때마다 치명적인 민간 피해는 한 번도 발생하지 않은 것이다.
“진격하라! 오늘 이 땅에 살아남을 지플은 한 놈도 없을 것이다!”
라키만이 소리쳤다. 그는 라비에트의 뒤로 막 떠오른 공중요새 파틀에서 함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폐허가 된 이곳은 드락카의 남부.
적명족은 드락카의 사방을 동시에 기습하고 있었다. 북부와 동부, 서부에서도 이미 수만 단위의 민간인과 마법사들이 사망했다.
“케, 켈리악 친구! 적명족이다, 이것들이 지하에서 올라왔어……!”
라갈이 켈리악을 쳐다보며 외쳤다.
켈리악은 평소처럼 냉정한 얼굴을 하고 있으나, 이번만큼은 그에게도 딱히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지하라니. 지토가 정리되었으니 설마 이런 식의 기습을 당할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오판이었군.’
실제로 그랬다.
켈리악이 쉬누와 융합해 신의 권능을 얻고, 지플을 되찾았다 한들. 그 혼자서 이런 기습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엘로나도 자리에 없고, 로닐과 사트린, 옥타비아와 생체 골렘들도 타지에서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가주, 공중요새입니다! 동서남북, 모든 방향에 각각 한 기의 공중요새가 배치된 걸 확인했습니다……!”
마법사의 보고에 켈리악은 처음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한 기라고 해도 불리한 싸움을 할 수밖에 없건만, 네 기는 답이 없었다. 심지어 그중 한 기가, 지플 본가를 감싼 보호막을 벌써 깨뜨리고 있었다.
“큭!”
켈리악에게 보고하던 마법사가 진동에 휘청였다.
단 일격.
제1공중요새 피빌의 최대 출력 주포가 지플 본가의 보호막을 찢어발겼다. 만 단위의 마법사가 온갖 마법 증폭 아티팩트의 힘을 빌려 펼친 보호막이었다.
그런 보호막이 제대로 응전 한 번 해보기도 전에 산산조각 부서졌다. 이격이 시작되면 본가 내부의 인원 5할 이상이 사망할 것이다.
도시 봉쇄와 방어 태세 돌입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지금부터 드락카를 버리고 전군이 퇴각을 시작해도, 이미 진행된 봉쇄 때문에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드락카를 버린다.”
결국 켈리악은 결단을 내렸다. 라갈과 마법사들의 눈동자가 커졌다.
“용들을 전부 소집하라. 이미 본가 외부로 나간 병력은 다 구할 수 없다.”
“가, 가주.”
“놈들이 제대로 허를 찔렀어. 더 설명할 시간이 없으니, 즉시 퇴각 명령을 하달하도록.”
켈리악이 새로 하늘에 후퇴를 알리는 불의 인장을 띄웠다.
함대 포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마법사들에게도, 시민들에게도 절망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인장이었다.
이어 켈리악은 마력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용들이 집결해서 중요 인사들을 대피시킬 때까지는 포격을 견디려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용들이 본가로 하나둘씩 복귀하는 와중, 피빌의 포격은 이어지지 않고 있었다.
피빌뿐만이 아니라 나머지 공중요새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충분히 거리를 좁혔는데도 지플 본가로 주포를 발사하지 않았다.
그건 켈리악이 한 번 더 적명족과의 수싸움에서 패한 증거였다.
콰직-! 쿠드드득!
“윽! 이건 또 뭐야!”
지플 본가의 중앙 정원이 갑자기 쿠키처럼 부서지며 내려앉기 시작했다.
물속에서 대왕고래가 부상하듯, 적명족 투신의 공중요새가 그 땅을 뚫고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켈리악과 라갈, 마법사들은 공중요새 크리가 뿜어내는 적뇌 파장을 피해 벽을 뚫고 무작정 후방으로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크리는 다른 네 기의 공중요새와도 격이 다른, 적명족 최강의 결전병기다. 크기부터 공중요새 네 기를 모두 합친 것보다 거대하며, 요새 안쪽 깊숙이 박힌 동력원이 한 번 출렁일 때마다 끔찍한 적뇌 파장이 쏟아졌다.
크리가 정원을 뚫고 올라온 직후, 그 파장에 휩쓸려 본가에 있던 마법사의 7할 이상이 즉사했다.
포격 등의 공격을 한 게 아니었다. 크리는 그저 적명족의 위용을 나타내며 그 자리에 떠올랐을 뿐이다.
[크하아악……!] [케, 켈리악!]용들도 그 열기를 견디지 못해 하늘에서 그대로 죽처럼 녹아내렸다. 다시 본가 바깥으로 도망치려는 용들도 있었으나, 그들이 비행하는 속도보다 적뇌 파장이 더 빠르게 번졌다.
크리는 마치 팽이와 같은 형태다. 크리의 평평한 상부 위로 도시의 모두가 볼 수 있는 붉은 창이 떠올랐다.
창은 크리의 함교 내 옥좌에 앉아 있는 시마트를 보여주고 있었다.
“참으로 평화롭게도 지내고 있었군, 다들. 오늘 이 땅과 하늘은 모두 붉게 물들어 우리 적명족에게 귀속될 것이다.”
시마트의 차가운 목소리가 도시 전체에 울렸다.
그는 적뇌 파장을 피해 빠지는 중인 켈리악을 정확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뒤로는 드락카 동부 지하에서부터 올라온 공중요새 리탈이 포위망을 좁히는 중이었다.
“켈리악, 직접 보는 건 처음이로군. 나는 적명족의 투신이다. 지금은 시마트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 그대가 투항한다면, 더는 너의 부하들을 죽이지 않겠다.”
시마트는 켈리악이 절대로 응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다만 그는 적명의 위엄을 드높이고자 목격자를 만들고 있을 뿐이다. 전투가 끝나는 대로 전 세계에 적명족의 부활을 알리는 기사가 쏟아질 테니까.
켈리악은 싸울 생각이 아예 없었다. 도주에 집중해야 했다. 이대로 자신이 잡히면, 지플은 사실상 그 길로 끝이었다.
살아남을 자신이 있기도 했다. 이미 카둔이 다른 용들, 그리고 코젝과 연계해 리탈 쪽의 포위망을 뚫고 있었다.
그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시마트는 켈리악을 집요하게 추적할 생각은 없는 듯, 시선을 돌리며 뒷말을 이어갔다.
“또한, 일반인들은 너무 걱정하지 마라. 우린 앞서 선포했듯이 학살자가 아니라 정복자다. 무의미한 반기를 들지만 않는다면, 전부 적명족의 2급 시민으로서 대우해주겠다. 너흰 적명족의 우월한 문명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십만이 넘는 일반인이 죽었다.
그런데도 시마트는 이 학살이 대외적으로는 조명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적명족과 지플, 둘 다 그 사실을 외부에 정확히 알리지 않는 게 나은 까닭이었다.
적명족은 추후 일반인들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지플은 위신을 조금이라도 더 세우기 위해서 말이다.
“투신 동포, 켈리악 지플이 코젝, 카둔과 곧 연계합니다.”
“내버려 둬라. 놈은 창성 수준의 무위를 갖고 있지. 지금 무리하게 잡으려다간 엘로나가 합류할 거고, 자칫하면 득보다 실이 커질 것이다.”
“알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저자는 바멀 연합을 상대하는 일에도 유용하게 써야 할 인물이지. 그러니 지금은 드락카를 우리의 새로운 거점으로 확보하는 것에만 집중한다.”
포격이 빠르게 잦아들고 있었다. 침입자들에게 응전해야 할 드락카의 병력이, 벌써 전멸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놓인 까닭이었다.
시마트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적뇌 파장에 불타는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지금부터 이 땅은, 지플의 소유가 아니었다. 지플의 초대 가주가 드락카를 연맹의 수도로 삼은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