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88)
제 999화
245화. 킨젤로의 묘수(2)
그날 밤, 란케와 샤갈, 비앙카와 베락트, 바드레이가 미트라 대사막을 찾았다. 대사막은 여전히 글리엑이 소멸하며 남긴 혼기와 흉신전 당시 인세의 각 세력들이 내다 버린 혼돈 폐기물로 어지러운 상태였다.
킨젤로의 구 본부가 있던 지역과 오염된 수인들의 땅은 과거 진이 라프라로사에서 나온 날 흔적도 없이 파괴해 버렸다.
미트라는 말 그대로 버려진 땅처럼 보였다. 혼기의 잔재들이 하늘을 가려 대낮에도 해가 제대로 들지 않았고, 때때로 무언가의 살점 덩어리 같은 게 검게 변한 모래 위를 꾸물거렸다.
“쳇, 내 원대한 강령 계획이 성공했다면 지금쯤 마계의 전설적인 대공들이 나름 든든하게 버텨주고 있을 텐데.”
란케가 말했다.
“란케 공은 아직도 그 허무맹랑한 계획이 진 룬칸델이 없었다면 그 성공했으리라 믿고 있군?”
“허무맹랑? 말을 가려라, 샤갈. 피롭스 님을 믿고 이리 까부는 것이냐?”
“난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이네, 란케 공. 이미 실패한 일에 미련을 갖는 모습이 썩 안타깝기도 하고.”
“샤갈…… 란케…… 놀리지 마. 나름…… 열심히, 노력했어.”
“넌 뭔데 나를 감싸!”
“하하, 이런 거 보면 마족들은 나이만 많지 다들 정신은 유소년기에 멈춰있는 것 같단 말이야. 안 그러냐, 베락트? 그래도 비앙카는 맹한 게 귀엽기라도 하지.”
“나…… 맹하지, 않아.”
“크하하핫!”
“바드레이, 너라도 사태의 무게를 제대로 인지해라. 우린 지금 킨젤로의 존망을 건 도박을 하러 온 것이다.”
“알지, 베락트. 그러니 긴장 좀 풀자고 이러는 거야. 막말로 우리가 여기서 깽판을 치고 있다가, 갑자기 적명족이 공중요새를 이끌고 오거나, 바멀 연합이 출동해서 우릴 족치려 들면, 지금 이 인원으로는 답이 없잖냐?”
지금 대사막을 찾은 다섯 명은 하나하나가 킨젤로의 핵심 전력이었다. 만약 일이 틀어져서 전부 사막에 묻히게 되면, 킨젤로의 미래는 사라지는 것이다.
“그럴 일이 없게 만들고자 우리가 다 온 것이다. 그리고 유인이 시작되면 제피린 님도 근처에서 대기할 테니, 우린 적들의 동향만 잘 살피면 된다.”
일반 단원들이 방호복을 입은 채 그르닐 안에서 각종 장비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전부 과거 란케가 강령술을 시도할 때 사용한 장비들이었다. 거기에 더해 아무 기능이 없는, 그저 신호탄 이상으로 요란한 빛을 사방으로 발산할 뿐인 부바르의 발명품도(그는 이걸 ‘난장등’이라 명명했다) 있었다.
란케는 단원들이 옮긴 장비를 하나씩 능숙하게 설치해 갔다. 나머지 간부들은 뒷짐을 진 채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래서 샤갈이 혼자 낑낑거리는 란케를 돕고자 장비 하나에 손을 댔는데, 그 순간 란케는 빽 소리를 질렀다.
“그거 함부로 만지지 마! 전부 다 예민한 장치들이란 말이다.”
“……아니 란케 공. 그게 무슨 소리요?”
“네가 우악스럽게 들어 올린 그 장치를 내려놓으란 뜻이다.”
“하? 우린 그저 무언가 대단한 걸 꾸미는 척을 하기로 했잖소? 설마, 란케 공은 진짜로 강령술을 다시 시도해 보려는 것이오?”
“당연하지!”
“대체 왜 그런 무의미한 짓을?”
“무의미한지 아닌지는 결과가 나오면 알게 되겠지. 어차피 뭔가 하는 척을 하거나, 실제로 뭔가를 하거나. 작전에만 문제없으면 되는 것 아니냐?”
란케는 이 작전을 강령술을 시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여기고 있었다.
“이봐 란케, 너 포기를 잘 모르는 놈이었구나? 푸핫, 갈수록 태산이군! 안 그러냐, 베락트?”
“흥! 어차피 우린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되는 상황이라고. 이러다 만약 강령술이 성공하면? 바로 우리 킨젤로에 상당한 전력이 추가되는 거다. 그러니 다들 쓸데없다며 날 말리지 마.”
“란케, 꿈…… 커. 응원, 할게…….”
아이나스는 그를 응원했고, 샤갈은 어깨를 으쓱이며 란케를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베락트는 란케의 의견이 일리가 없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따로 품이 들어가는 일도 아니고, 성공하면 좋고 실패해도 상관이 없었다.
“마음대로 해라. 단, 강령술에 집착하다가 작전에 조금이라도 차질이 생기면 그땐 각오하도록.”
그렇게 란케는 혼자 두 시간이 넘도록 수십 가지의 장치를 설치했다. 그리고 사이사이에 난장등이 설치되었다.
“후, 다 됐다. 이제부터 난 강령술에 몰두할 테니까, 너흰 부바르 놈 발명품 싹 켜고 춤이라도 추든지, 고대의 연환 저주 마법 같은 걸 부리는 척 난리를 치든지 마음대로 해.”
우우웅-!
란케가 장비를 가동하자 사막 한가운데 묵직한 진동음이 퍼지기 시작했다. 란케는 악귀가 씌인 것처럼 주문을 중얼거리며 사방에 마법진을 그려댔다.
그 모습이 제법 위험하게 보여서, 일행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 이만하면 누가 보든, 좀 소름이 돋기는 하겠다. 내가 바멀 연합이나 적명족이라면 무조건 뭔 짓거리를 하는지 파악하려고 할 것 같아.”
“확실히 그런 느낌이기는 하군.”
“란케 공은 분명 어린 시절 상처를 많이 받았을 것이오.”
“뭔가, 신나…….”
거기에 난장등까지 모두 점등되니, 그야말로 혼돈 가운데 열린 사악한 축제가 따로 없었다.
난장등은 쉴 새 없이 사방으로 빛줄기를 쏘아댔다. 혼기 때문에 사막 전체가 안개 낀 듯 뿌옇다고는 하나, 이만한 빛이라면 충분히 초장거리에서도 관측될 수준이었다.
“열화의 대공 카르마슈여, 오오 그 잔인한 화염이 다시금 세상을 불태울지어다! 마녀의 오랜 추종자 슬픔의 마살룬이여! 이 란케가 간곡히 그대를 부르노니, 어서 내 앞에 나타나 적들을 저주하소서! 오오, 오오오! 테칸 산의 대악마 스리비여……!”
란케의 귀기 서린 목소리가 황량한 대사막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었다.
이제 킨젤로가 할 일은, 적들이 미끼를 물고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태양신에게 간절히 기도하며 말이다.
* * *
가장 먼저 킨젤로의 괴이한 행위를 확인한 건 바멀 연합도, 적명족도 아닌, 지플이었다.
이야기의 탑.
엘로나는 탑 중앙부의 투명하고 둥근 장치에 들어간 채 마신석을 사용하고 있었다.
다행히 탑은 그녀가, 정확히는 켈리악이 원하던 ‘기록’을 내어주었다. 킨젤로의 동향을 알리는 기록을 말이다.
“마신석 작동 종료. 연결 해제.”
터걱! 푸시익, 취이이익……!
엘로나가 말하자 유리관 안에서 그녀의 등허리 전체에 연결된 굵직한 관들이 해제되었다. 열기 때문에 그녀의 등은 거의 녹은 듯 보였고, 관이 찔린 구멍들에선 한동안 끓는 피가 흘러내렸다.
그러나 이내 엘로나의 몸이 마력으로 휘감기자 상처들은 빠른 속도로 재생되었다. 근처에 대기하던 생체 골렘들이 건넨 옷을 입는 엘로나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지쳐있었다. 한동안 그녀는 휘청이며 제대로 걷질 못했다.
“이봐, 괜찮나?”
라갈이었다. 엘로나는 그를 보자마자 왠지 분노가 치솟았지만, 꾹 억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무리했을 뿐이다. 마신석의 현 단계에서 이 정도로 순도 높은 기록을 얻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조금 무리했다,’라고 가볍게 표현했으나 사실 엘로나는 방금까지 언제든 죽음에 가까운 피해를 받을 수 있었다.
성수관을 쓴 그녀는 분명 불사라 말할 수 있는 존재지만,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후우, 그래도 기록을 얻었다고 말하는 걸 보니 다행이군. 저번처럼 아무 수확이 없었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어.”
수확이 없었다는 그 시도는 얼마 전 시마트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려 했을 때였다. 그때 엘로나는 지금보다 더 위험한 수준으로 마신석을 작동시켰으나, 달리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마신석이 완전하지 않은 까닭이기도 하고, 그만큼 시마트가 아직 인세에 남긴 기록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에게도 진 룬칸델과 유사한 존재의 힘이 있을지도 모르지. 진 룬칸델에 비하면 작은 수준일 테지만…….’
존재의 힘.
엘로나는 잠시 그 묘한 힘에 대해 생각했다. 그 힘 때문에 지금은, 진과 그 주변인에 대한 기록은 아예 건드릴 수조차 없었다. 진의 기록을 찾아보려고 힘을 불어넣으면 마신석이 작동을 거부할 정도인 것이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지. 존재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탑과 마신석이 아예 작동을 거부할 정도라니. 그런 건 천 년 전 테마르에게도 없던 능력이다. 정말, 진 룬칸델이 가진 존재의 힘만이 마신석 미작동의 이유일까?’
당장 알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엘로나는 그 생각을 지우며 라갈을 쳐다보았다.
“켈리악은 최상층에 있나?”
“그래. 걷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데, 잠깐이라도 쉬었다 가지?”
“아니, 바로 가겠다.”
“허 참 이 친구 하여간 고집은.”
“난 네 친구가 아니다.”
“까칠하기는! 그럼 부축이라도 해주마.”
“거부하지.”
라갈은 어깨를 으쓱이곤 비틀거리는 엘로나와 보폭을 맞췄다. 최상층에 다다르자 켈리악이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엘로나, 왔군. 어떻게 되었나?”
“기록을 확인했다. 킨젤로가 미트라 대사막으로 바멀 연합과 적명족을 유인하고 있어.”
켈리악의 눈동자가 깊어졌다. 엘로나는 그에게 방금 확인한 기록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전달해 주었다.
“적명족에게 1순위 제거 대상으로 찍혀 지금 제일 마음이 급할 작자들이, 왜 우리에게 손을 내밀지 않나 했더니…… 킨젤로가 꽤 괜찮은 수를 뒀군.”
“켈리악 친구, 괜찮은 수라고? 내 보기엔 바멀 연합이랑 적명족, 둘 중 하나만 미트라 대사막에 관심을 보이면 킨젤로만 망하는 수인 것 같은데.”
“라갈, 자네의 지성이 나날이 발전하는 걸 보니 대견한 마음이 드는군. 그 말대로, 한쪽이 미트라 대사막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킨젤로는 아주 위험해질 테지. 그리고 그건 아마 적명족일 가능성이 높다. 진 룬칸델은 라프라로사 때문에 미트라 대사막을 예민하게 주시할 테니.”
“흐흐, 다 켈리악 친구 덕이지.”
“어떻게 할 생각이지? 켈리악.”
엘로나의 질문에 켈리악은 미소를 지었다.
“우리 지플이 킨젤로의 애잔한 노력에 힘을 실어주는 게 좋겠군. 바멀 연합과 적명족, 둘 다 미트라 대사막을 찾지 않고는 배길 수 없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