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smanship Genius of the Knight School RAW novel - Chapter 128
“어…… 전 괜찮습니다.”
노아가 목말을 사양하자 동해용왕은 얌전히 티우를 내려놓았다.
“그럼 이번에는 레지나 님을 데리러 가죠.”
보통은 나이트레이에 도착해서 상급자인 레지나를 먼저 만나러 가겠지만, 수인인 동해용왕은 그런 인간의 예절에 얽매이지 않았다.
마인 판별을 위해 노아를 데려가려고 온 동해용왕은 오자마자 검은 달 기숙스승터 찾았던 것.
그리하여 노아까지 합류한 일행은 어색한 침묵 속에 본관으로 이동했다.
-야, 방금 그건…….
-묻지 마.
-아니 너 방금 목말…….
-묻지 마.
티우는 입을 닫아버렸으나, 동해용왕이 대신 그 사정을 밝혀버렸다.
“뿔을 보고 있기에 만져보고 싶은가 해서요.”
“……그런 이유로 목말을 태워요?”
“인간들은 아무한테나 고개를 숙이지 말라고들 하지요? 그럼 뿔을 만져보려면 제가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니라 티우 양이 제게 올라타야죠.”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다른 이들을 돌아보니 수행원인 두 사람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젓고 있었다.
“동해용왕님은 상식과 편견에 얽매이지 않는 분이시랍니다.”
포장하긴 했지만 본인도 잘 모르겠다는 분위기가 풀풀 풍겼다.
아무래도 원래 이런 사람인 듯 했다.
이유를 알고 나자 노아의 관심은 자신에게 말을 건 수행원 쪽으로 옮겨갔다.
거북이 수인.
‘오러의 양만 봤을 때는 대충 상위 랭커 급인가.’
추가로 옆에는 토끼 수인도 있었다.
‘경호원은 아닌 것 같고. 제자들인가?’
동해용왕의 제자들이라면 실력은 확실하리라.
노아는 더더욱 관심을 갖고 그들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토끼 수인이 노아의 시선을 읽고 인사해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나루, 이쪽의 거북이는 한별이라고 해요.”
“아, 나는 노아라고 해.”
노아는 나루가 내민 손을 잡고 악수했다.
나루가 악수를 위해 내민 손은 인간의 손과 똑같았다.
‘수인들은 세대를 거쳐 갈수록 인간에 닮아간다고 했으니, 어린애들인 거겠지?’
유니아와 또래로 보이는 외모였으나, 종족이 다른 만큼 그걸로 나이를 짐작하긴 힘들었다.
“너희도 뿔이 있네? 용, 그러니까 인간으로 치면 기사인 거지?”
한별과 나루에게는 자그마한 뿔이 나 있었다.
한별은 앞쪽으로 두 개의 돌기가 나서 앞머리와 옆머리의 경계를 가르고 있었고, 나루는 이마의 중앙에서 5 대 5 가르마를 만들고 있었다.
“정확히 매치되는 건 아니지만 일단은 맞아요. 저랑 한별이는 얼마 전 용이 되어서 용왕님 밑에서 공부를 하고 있거든요.”
“으음?”
“저희들의 선술은 기사들의 검술과 달리 자기수양을 위한 거예요. 때문에 몸이 변화하는 중요한 시기에는 대스승인 용왕님께 가르침을 받는 게 전통이죠.”
용왕의 제자라는 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선술을 수행하는 자라면 한 번씩 거쳐 가는 구간이라는 뜻이었다.
‘어라? 그럼 별로 강하지는 않나?’
오러를 수련한 결과 강해진 것과, 처음부터 전투 기술을 익히는 건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응?”
“한별이는 처음부터 선술이 아닌 검술을 배우고 싶어 했지만요.”
노아는 그 말에 한별을 돌아보았다.
한별과 나루는 등이 푹 파인 수인족 전통 복장을 입고 있었다.
앞섶만 목에 걸듯 고정하고, 어깨와 등을 모두 드러낸 이 복장은 고슴도치나 낙타 같은 종족은 물론 꼬리가 있는 종족들도 입을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모노키니에 가까운 그 형태 덕분에 노아는 한별과 나루의 몸을 살펴볼 수 있었다.
거북이 수인인 한별은 등껍질 대신 갑피를 두른 모습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등을 중심으로 문신을 한 것 같은 형태.
외견만 보면 그냥 등에 문신을 한 젊은 여성이었다.
한편 나루는 토끼의 귀와 꼬리를 가지고 있어, 수인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꼬리…….”
노아의 눈길을 끈 것은 그중에서도 꼬리였다.
‘하지만 꼬리는 인간에게 없는 기관이지.’
‘꼬리도 싸움에 쓰나? 토끼랑 거북이 꼬리는 전투에 써먹기엔 좀 짧아 보이긴 한데.’
동물들은 꼬리를 다양한 용도로 사용한다.
수인이라고 다를 리는 만무.
실력이 같은 수준이라면 꼬리의 존재는 팔이 하나 더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뒤에서 오는 공격도 돌아보지 않고 상대할 수 있을 테니 전법 자체가 달라질 수 있었다.
‘동물의 특징이 강한 애들이랑 싸워보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노아가 검술적인 욕심으로 눈을 빛내는 동안 티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역시 남자들은 노출이 좋은가?’
노아의 시선은 합류한 뒤로 계속 나루의 엉덩이에 꽂혀 있었다.
꼬리를 꺼내기 위해 과감하게 등을 파낸 전통 복장은 상당한 노출도를 자랑했다.
그런 복장인 상대의 둔부(꼬리)를 계속 주시하고 있으니 티우가 보기엔 노출 때문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것.
‘내가 가진 옷 중에 노출이라고 할 만 한 건…….’
빠르게 옷장의 옷들을 떠올려 본 티우는 운동복이 대부분인 자신의 옷장 구성에 절망했다.
고향에 있는 옷까지 합쳐도 그나마 노출이라고 할 만한 건 오프숄더 원피스 한 벌뿐.
지금까지 열심히 검술을 단련하며 살아온 것이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한편 당사자인 한별과 나루는 다른 문제로 정신이 팔린 상태였다.
-나루나루나루나루! 들어봐, 내가 알아봤더니 저 노아라는 사람 나이트레이 랭킹 13위래!
-아, 그래.
용궁에서 책으로 바깥에 대해 접한 한별은 중증의 기사 활극 마니아였다.
그런 한별에게 이번 외출은 성지순례나 마찬가지.
거기에 나이트레이의 학생이면서, 최상위 랭커인 노아와의 만남은 자신이 읽어왔던 책 속 등장인물이 현실로 튀어나온 것과 비슷한 감각이었다.
-혹시 속성변환도 쓸 수 있을까? 그건 힘드려나? 그래도 엄청 강하겠지? 검기 보고 싶다! 무슨 색일까?
한때 선술은 싫다며 검술을 가르쳐 달라고 때를 쓰던 한별은 용궁 밖에 나가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선술을 수련해 용이 되었다.
선술의 재능은 바닥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노력만으로 용이 된 것.
덕분에 진지하게 선술을 배우고 있던 나루로서는 소꿉친구의 저런 반응을 마냥 좋게 볼 수가 없었다.
-내가 나이트레이를 직접 둘러보는 날이 올 줄이야, 용이 되길 잘했어!
-그래그래, 잘됐네. 축하해.
나루가 이번 일에 따라 나온 이유는 순진한 한별이 나쁜 인간에게 넘어가 잘못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한별이는 내가 지킬 거야.’
* * *
“다 모였으니 바로 출발하지.”
레지나는 동해용왕이 노아와 티우를 데리고 들어왔음에도 예상했다는 듯이 시원하게 반응했다.
“응? 그러고 보니 생사령님께 학교를 맡기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만나는 거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 녀석이라면 이미 도착했다.”
“예?”
“쿠이나가 안 보이는 게 그 증거지.”
목소리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들려왔다.
-시끄럽다. 아무렇지도 않게 남의 장사밑천 떠들고 다니지 마.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전음이 울려 퍼진다.
놀라운 것은 오러를 이용한 전음을 사용했음에도 노아는 생사령의 기척을 전혀 느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생사령은 원래 대체로 안 보이는 녀석이다. 심지어 심안으로도 안 보이니 그렇게 두리번거려도 못 찾을걸.”
“심안으로도 안 보인다고요?”
“심안은 결국 육감이 극한에 달한 형태니까 피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예를 들어 오러를 비워 버린다거나.”
이능으로 가리거나 별의 파편을 쓰는 방법도 있었다.
결국엔 오러를 통한 감지이기 때문에 그게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기만 하면 되는 것.
“저놈이 구체적으로 무슨 방법을 쓰고 있는 건진 모르지만 평범한 방식으론 볼 수조차 없는 것이 바로 생사령이다.”
-그러니까 남의 장사밑천 떠들고 다니지 말라고.
“참고로 회의 때 내보이는 청년 모습도 가짜다. 역체변용술을 쓴 거야. 실제로는 어릴 때 이런저런 약을 잘못 먹고 성장이 멈춰서 꼬맹이 모습이지.”
“야!”
그렇게 외치며 튀어나온 것은 백발에 백안을 가진 병약해 보이는 소년이었다.
소녀는 레지나의 목을 노리려고 하였으나 이내 자리에서 멈췄다.
“진짜냐.”
더 접근하면 죽는다.
자신의 공격보다 시공단열의 발동이 빠르리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봤지? 이렇게 생긴 녀석이니까 기억하렴.”
“이 녀석한테 내 모습을 보여주려고 날 협박한 거냐? 안 나오면 계속해서 더 중요한 정보들을 말해 버릴 거라고?”
“네 성격이라면 어차피 몰래 들어와서 애들 뒷조사를 다 마쳐놓고 쿠이나를 데려간 걸 테지? 이 정도는 되어야 공평하다고 보는데.”
“나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험해질 수도 있…….”
노아는 이미 그보다 위험한 정보도 많이 알고 있었다.
그 사실에 생각이 미쳤는지 생사령은 화내기를 포기했다.
“쳇. 본모습을 보였다는 생각에 너무 흥분했군.”
이어서 생사령은 다시 모습을 숨겼다.
레지나는 그것을 보며 노아에게 말했다.
“저런 녀석이니까 밉보이지 않도록 조심해라. 속은 밴댕이 소갈딱지만큼 작아가지고 잘 때 칼 들고 찾아오면 무섭거든.”
“방금 충분히 밉보인 것 같은데요.”
“진짜로 밉보였으면 얼굴도 안 보여줬어.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너희들의 눈부터 뽑아놨겠지. 물론 그런 건 내가 막았겠지만.”
어설픈 모습만 보여주긴 했지만 그건 결국 이미지를 위한 연기.
생사령은 처음부터 노아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알기 때문에 일부러 그런 모습을 보인 것이었다.
“허어…….”
그런 분위기를 일신시킨 것은 잠자코 있던 동해용왕이었다.
“이제 출발할까요?”
* * *
용궁까지의 여정은 또 대부분 철도 여행이었다.
수인이 끼어 있는 터라 엄청나게 눈길을 끄는 인원이었지만, 레지나 덕분에 아예 전세칸을 따로 빌릴 수 있어 별문제는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이쪽이겠지.’
아무리 호화로운 차량이라도 열차 안의 통로는 좁다.
그 좁은 통로에서 노아는 자신의 앞을 막아선 한별을 내려다보았다.
“뭔가 할 말이라도?”
“저기 혹시 저랑…….”
“한별아, 용왕님께 이거 가져다드려.”
“어? 어어, 응.”
노아에게 무언가 말을 하려던 한별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나루의 부탁에 도망치듯 사라졌다.
나루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고민하고 있는 노아에게 한마디 쏘아주고 자신도 도망쳤다.
“……변태.”
졸지에 변태 소리를 들은 노아는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사춘긴가?”
자신은 용궁에 부탁을 하기 위해 손님으로 가고 있는 입장.
괜한 소란을 만드는 것은 싫었지만…….
“이유 정도는 알아두는 게 좋겠지.”
노아는 오러를 숨기고 은신 상태에 들어갔다.
* * *
한별은 검술을 배우고 싶어 하는 것치곤 검술에 대해 잘 몰랐다.
그야 책으로만, 그것도 검술서가 아닌 소설로 배웠으니 당연한 일.
하지만 그런 한별이 보기에도 여행 도중 보이는 노아의 연습은 범상치 않았다.
‘오러를 저런 식으로도 다룰 수 있다고?’
오러의 양은 그렇다 치자.
마스터 나이트나 받아가는 재해급 영약을 먹었다니 비슷한 연배에선 따라갈 이가 없는 것도 당연했다.
그보다는 그걸 다루는 방식이 무지막지했다.
저런 사람이 정식 기사가 아니라 학생이라는 게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
“역시 저만큼 대단한 실력이라면 검술을 가르쳐 주기 싫어할지도…….”
책에서는 강력할수록 자신의 검술을 숨기기 마련이라고 했다.
아직 정식 기사가 아니라는 소리에 혹시 자신을 제자로 받아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한별이었으나, 노아의 실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아갈수록 자신감이 사라졌다.
나루는 그런 그녀를 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검술 따위가 뭐가 좋아서 그래? 애초에 인간에게 맞춰져 있어서 너는 제대로 쓰지도 못할 텐데.”
“그야 그렇지만…….”
“바보 같은 일에는 얼른 손 떼고 수인이면 수인답게 선술에 집중해.”
이 정도면 상황을 파악하기에 충분했다.
“그런 거였구나?”
“히얏!?”
“수인이라도 사용할 수 있는 검술이라면 얼마든지 있지. 검술을 배우고 싶다면 내가 가르쳐 줄게.”
“다, 당신 숨어서 엿듣고 있었던 거예요?!”
나루가 따지고 들었지만 노아는 시원하게 무시했다.
검술 따위라고 말하던 것에 대한 소소한 복수였다.
“검술도 선술도 결국 오러를 다루는 기술이라면, 검술로도 자기 수양이 가능하겠지? 레지나 님처럼 말이야.”
“그런…….”
레지나를 들먹인 이상 아니라곤 할 수 없었다.
“내가 한별이에게 검술을 가르쳐서 한별이가 널 뛰어넘으면 나루 너도 인정하는 거야. 어때?”
“하? 비슷한 시기에 용이 되었다고 같은 실력인 건 아니거든요?”
“나도 알아.”
한별이 상위 랭커 정도의 오러를 가진 데 비해 나루의 오러는 하이 랭커급.
고작 며칠 만에 따라잡을 수준이 아니긴 했다.
‘평범한 경우라면 말이지.’
“그거 재미있겠구나.”
“읏, 동해용왕 님? 레지나 님까지……?”
판이 벌어지자 옆 칸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레지나와 동해용왕이 끼어들었다.
“나도 예전부터 수인이 검술을 익히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긴 했거든.”
“수양에 도움이 된다면 검술을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무료함을 이기지 못한 두 마스터 나이트에 의해 순식간에 멍석이 깔렸다.
나루는 울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