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smanship Genius of the Knight School RAW novel - Chapter 134
노아는 완전히 집중한 상태로 바둑판의 변화에 빠져들었다.
때문에 노아가 상대의 다음 수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것은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의 일이었다.
‘음?’
정신을 차리자, 레지나와의 대국으로 쓰러졌던 용들을 포함해 수많은 용들이 어느새 일어나 주위를 메우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우장왕은 그런 노아를 보며 말했다.
“내가 졌소.”
일반적인 바둑은 규칙에 위반되는 수를 둠으로써 항복을 표시하지만, 선술바둑은 잘못 두면 상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도 있었다.
때문에 우장왕은 말로 패배를 시인했으나, 극한의 집중 상태였던 노아는 그걸 듣지 못했던 것.
그러한 노아의 집중력에 경도된 모두는 노아가 스스로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 주고 있었다.
“그대의 표정을 보아하니 내 활로가 없진 않았나 보군. 허나 나는 그것을 읽을 수 없었으니 내 패배요.”
“그럼…….”
“대단하구려. 오늘 처음 돌을 잡은 이에게 지는 날이 올 줄이야.”
“스승님!”
우장왕의 패배 선언에 한별이 노아에게 안겨들었다.
대국 진행 도중 정신을 차린 레지나도 멋쩍은 듯이 노아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노아는 이겼다.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대국은 내기가 걸려 있던 대국.
때문에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이 대국은 월식의 반환을 걸고 치러졌던 것. 나는 그대와 영웅의 교대를 인정했으나, 분명 반발하는 이들도 나올 것이오.”
우장왕은 지도자이지 지배자가 아니었다.
월식의 반환은 모든 수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일.
다 이겨놓고 멋대로 규칙을 바꿔 노아에게 진 셈이었으니 월식의 반환은 인정 못 하겠다는 이들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잠깐만요.”
우장왕의 말에 노아는 레지나를 바라보았다.
-월식의 반환이라니 월식이 뭔데요?
막바지에야 도착한 노아는 애초에 이게 뭐가 걸린 대국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엔야의 검집.
-예??
-생전의 엔야가 사용하던 성련검집이다. 검들은 완성되기 전에 그 힘을 버티지 못하고 죄다 부러졌지만, 검집은 직접 쓰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버텼거든.
레지나에게 대략적인 설명을 들은 노아는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 기둥이 고작 검집이었다고?’
진법은 축이 많을수록 안정적이다.
그런데 노아가 살펴본 결과 용궁을 유지하는 이 거대한 진법은 놀랍게도 단일 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통짜 시원석으로 기둥이라도 박았나 생각하고 있던 노아로서는 그게 고작 검집 하나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레비아탄보다 커 보였는데.’
물론 육감으로 인식한 것이니 실제 크기는 다를 수도 있었다.
그래도 고작 검집 하나가 재해급 마수보다 거대하게 느껴진 건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간극이 컸다.
“물론 이대로 입을 씻겠다는 소리는 아니오. 설득을 하는 데 시간이 걸릴 거라는 소리지.”
“몇 년씩 걸리는 것만 아니면 조금 늦어져도 상관없을 듯싶습니다만.”
“그렇진 않을 거요. 적당한 계기라도 있으면 좀 더 빠르게 처리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오.”
“계기?”
“모든 수인이 평생을 용궁 안에 갇혀 살기만 하는 걸 좋아하진 않소. 당신들의 제안이 아니더라도 용궁을 벗어나자는 논의는 계속되어왔다오.”
그것을 가로막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신산이었다.
“처음부터 레지나 님의 요구를 이용하실 생각이었던 겁니까?”
“내 입장에선 월식이야 어찌되든 상관없는 일이긴 했으나, 모두의 동의를 얻어야 하니 결국 승부는 봤어야 했소. 물론 이런 식이 될 줄은 몰랐소만.”
내기를 걸어놓고 일부러 져줘서야 신산을 설득할 명분으로는 쓸 수 없었다.
“계기라…….”
노아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한별을 돌아보았다.
모든 기사들이 검술의 완성을 목표로 하는 것처럼 모든 수인들은 선술의 완성을 목표로 한다.
그 점은 신산도 마찬가지이리라.
‘수인들도 검술을 접해보는 편이 선술에 유리하다는 게 증명되면 되는 거 아닌가?’
노아는 한별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한별의 오러는 검술을 배우며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스승?”
정작 양손을 붙잡힌 한별은 노아가 갑자기 왜 그러는지 몰라 두 눈을 끔뻑일 뿐이었다.
* * *
결국 밤이 되어서야 돌아온 노아를 반긴 것은 고양이 귀와 꼬리를 하고 있는 티우였다.
“……그렇게 되어서 사실 나는 수인혈통이었다고 하나 봐. 익숙해지면 집어넣을 수도 있다는데 아직 그 정도까진 아니어서 이러고 다녀야 할 것 같아.”
“귀.”
“저기, 너무 그렇게 보진 말아줄래? 나도 부끄러움이라는 게 있거든?”
“꼬리.”
“듣고 있어? 나도 어색하니까 적당히 보면 안 될까?”
“움직이기까지.”
“전혀 안 듣고 있잖아!”
그러거나 말거나 노아는 홀린 듯이 귀와 꼬리를 계속 바라보았다.
애초에 그런 종족이라고 알고 본 다른 수인들과 달리 진작부터 알고 있던 티우에게 달려 있으니 느낌이 새로웠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노아의 고개가 레지나에게로 돌아갔다.
“나는 왜 보는 거냐. 나한테는 꼬리 같은 거 안 난다.”
이어서 나루를 바라보자 그녀는 양손으로 자신의 귀를 끌어안았다.
“아무리 손님이라도 만지는 건 용서 못 해요.”
그러자 고개는 다시 티우에게로 돌아왔다.
“잠깐 스승! 왜 저는 생략하시는 건데요!”
“그야 너는 동물귀도 꼬리도 없잖아.”
한별은 같은 세대의 나루보다도 더 인간에 가까워 수인의 특성이라곤 문신화된 등갑이 전부였다.
“그건 그렇지만! 그럼 용이 되면서 자라난 뿔이라도 만져보실래요?”
“그거 성분은 성련검이랑 똑같잖아.”
“스승 미워!”
노아의 거절에 한별은 밥을 먹다 말고 뛰쳐나갔다.
정작 노아는 그러한 한별을 쫓아가는 대신 남겨진 밥을 아깝다는 듯이 바라볼 뿐이었다.
“이만큼이나 남기다니 너무하네.”
“너무한 건 너겠지.”
노아의 바둑도 티우의 적응도 결국 새벽녘이 되어서야 끝났다.
덕분에 숙소로 돌아온 그들은 저녁을 대신해 야식 타임을 가지고 있었다.
“뿔이라고 하니 생각났는데, 그럼 티우 너는 나중에 성련검도 변화하고 뿔도 자라는 건가?”
“특별히 선술을 익히는 게 아니라면 뿔은 안 자랄 거예요.”
대답은 나루에게서 들려왔다.
자다가 일어나 일행의 식사를 준비해 준 나루는 설거지까지 하고 잘 생각인지 옆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수인들은 선술을 배울 때 몸 안에 진법을 구축하기 위해 별의 파편을 먹어요. 소화한 별의 파편을 몸속에서 진법의 축으로 삼는 거죠.”
“별의 파편을 먹는다니, 성식자들처럼 말이야?”
여름방학에 탑 소드에서 성식자들을 본 적이 있는 노아였다.
별의 파편을 이용해 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직접 먹고 몸을 강화하려는 이들.
세상의 여러 기인이사들 중에서도 유별난 이들이었기에 노아의 기억에도 남아 있었다.
“반대예요. 수인들이 별의 파편을 먹는 것을 보고 성식자들이 생겨난 거죠. 저희는 그렇게 무식하게 생각 없이 먹는 게 아닌데도 말이에요.”
나루는 드물게도 감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쟤 무슨 일 있어요?
-나도 모른다. 소요한테 물어보면 알지도 모르지.
직접 물어보기에는 좀 그런 분위기였으므로 그것으로 이야기가 끊겼다.
식사를 마친 일행은 자러 돌아갔다.
종일 고생했으므로 모두는 금방 잠에 곯아떨어졌다.
* * *
그 뒤로도 일행의 용궁 체류는 더 이어졌다.
티우의 경우에는 귀와 꼬리를 조절할 수 있게 되기까지 연습이 더 필요했고, 마인 판별기의 제작에도 시간이 걸렸다.
노아는 그 시간 동안 계속해서 한별에게 검술을 가르쳤다.
나루는 말없이 그런 그들을 계속해서 수행했다.
그것은 나루에게 일종의 수행(修行)이었다.
‘한별이는 어째서 인간의 검술 따위를……!’
용궁은 제국에 속해 있었지만 인간과 수인의 교류는 매우 한정적이었다.
일반적인 수인들에게는 사실상 교류가 끊긴 것이나 마찬가지.
때문에 대부분의 수인들이 기억하는 인간이란, 과거 수인들이 마수의 일종이라며 박해받았을 때의 일이었다.
지금처럼 적당한 수준이 된 것도 그나마 20년 전의 대전쟁에서 구원자 엔야나 영웅 레지나 같은 이들을 만났기 때문.
젊은 수인들의 인식은 그나마 괜찮았지만, 나루는 아니었다.
외부와 격리된 환경인 용궁에서는 상당히 많은 것들을 자급자족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별의 파편만큼은 자급자족이 불가능.
중앙과의 교류를 통해 수입해 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광휘제가 별의 파편의 대가로 제시한 것이 바로 용궁의 검림 합류 및 사병화.
자기가 개인적으로 다룰 수 없는 8대 가문의 기사단과 다르게 집행관처럼 부릴 수 있는 황실의 용병이 되어주는 것.
나루의 부모님은 양쪽 다 용병 수인기사로서 검림에서 일하던 이들이었다.
그리고 10년 전 임무에서 행방불명으로, 사망 판정을 받았다.
당시 두 사람이 파견된 임무는 성식자들의 불법행위 조사.
수행을 위해 별의 파편을 먹어야 하는 만큼 성식자들은 나름의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헌데 그 세력을 가지고 불법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의혹이 있어 잠입 조사에 나갔다가 사라진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실종 이후 동해용왕이 직접 나서 성식자들의 세력을 대대적으로 조사했으나, 발각된 것은 비교적 평범한 수준의 불법행위뿐.
나루의 부모님에 대한 행방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아버지랑 어머니가 이유도 없이 사라지셨을 리가 없어. 그 실종은 분명 성식자들이 꾸민 짓이야.’
착한 인간들도 있다.
그 말은 모든 인간들이 착하진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특히 성식자들은 필요하다면 별의 파편만이 아니라 마수든 뭐든 잡아먹는 것으로 유명했다.
별의 파편이라는 것이 그렇게 흔한 게 아니었으니 오히려 이런 쪽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면 과거 말하는 마수 정도로 여겨졌던 수인이라고 다를 이유가 있을까?
먹어버리면 시신도 남지 않는 게 당연했다.
물론 이것은 추측일 뿐 증거는 없었다.
아니, 어쩌면 망상이라고 봐도 좋으리라.
정말로 그랬다면 동해용왕이 그냥 넘어갔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결국 인간과 엮였기 때문에 두 분이 사라지셨다는 건 달라지지 않아.’
그런 나루에게 한별이 수인의 선술을 버리고 인간의 검술을 선택한 것은 배신이었다.
심지어 신산의 후예이기도 한 한별이.
흔해 빠진 토끼 중 하나로 선술에 목숨을 건 나루에게는 용서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게 한별이 네 꿈이라면…… 내가 부숴줄게.”
* * *
“마안의 발현은 결국 일시적인 것이었나요? 본인은 마안을 발현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는 것 같네요.”
티우가 혼자서도 연습이 가능하게 되자 소요는 신산을 돌보며 노아를 구경하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워낙 알아서 잘하다 보니 노아가 한별을 가르치는 것처럼 잠깐 봐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서 한가해진 것.
그에 반해 노아 쪽은 혼자 명상에 잠기나 싶더니 수시로 용궁의 진법을 툭툭 건드려 대서 방심할 수가 없었다.
“레지나 님도 본인에게 마안에 대해 알려주지 말라니. 그만큼 황제의 눈에 띄는 걸 피하고 싶은 걸까요. 어차피 의미는 없을 텐데요.”
광휘제는 역대 황제들 중에서도 상당히 냉혹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알 순 없지만, 적어도 황위에 오른 이후로는 항상 그랬다.
“자기 자식들조차 도구로 여기는 황제가 제 누이의 아들만큼은 저렇게 신경 쓰고 있는데. 마안이 있든 없든 노아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진 않을 테죠.”
노아가 마안을 각성해 황실로 편입된다면 광휘제는 무조건 노아에게 황위를 물려주려 할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노아의 검술 실력을 보면 다른 이들도 거기에 반발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양 부모의 장점만을 이어받은 역사상 최강의 재능. 이런 황제를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인간은 자신과 비슷하거나 그 이하로 여겨지는 인물이 위에 있으면 시기하는 법이다.
하지만 따라갈 엄두조차 나지 않는 강자가 위에 있으면 시기하는 대신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저기 앉아서 용궁의 진법조차 교보재로 사용하고 있는 천재는 범인(凡人)들이 시기하기에는 너무나도 뛰어났다.
“으응? 배고프신가요? 식사는 아까 하셨잖아요 신산님.”
소요는 엄지손가락을 물리는 감각에 신산을 내려다보았다.
그녀가 들고 있는 대야 안에서 신산이 할 말이 있다는 듯이 소요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게 아니다?”
소요는 천리안으로 앉은 자리에서 용궁 전역을 둘러볼 수 있었으나, 볼 수 있는 거지 항상 보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에 반해 용궁 그 자체를 유지하고 있는 신산은 이변이 일어나면 누구보다 빠르게 그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카인 씨의 손님이라 정중하게 대하긴 했지만 저래서야 더 이상 손님이라고 할 수가 없겠네요.”
손님이 아니라면 침입자일 뿐이다.
그리고 용궁의 침입자에게는 죽음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소요를 또다시 신산이 깨물었다.
“가만히 놔둬라? 그럴 이유가 있나요?”
신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신산(神算)이라는 이름답게 그는 남들이 헤아리지 못하는 곳까지 하늘에서 내려다보듯 훤히 들여다보는 현자였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저는 가만히 있겠습니다.”
그리하여 3일 뒤.
마인 판별기의 완성과 함께 토끼와 거북이, 검술과 선술의 대결이 용궁에서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