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smanship Genius of the Knight School RAW novel - Chapter 133
우장왕은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젊은 기사를 내려다보았다.
따닥!
자신이 돌을 놓는 것과 겹치듯 들려오는 노아의 착수음.
‘내가 수를 두면 곧바로 쫓아오듯 자신의 수를 두는가.’
우장왕이 고민 끝에 수를 두면 노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수를 두었다.
‘게다가 두는 수는 초보자라곤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날카롭다.’
노아가 선술바둑을 접한 것은 오늘이 처음.
일반적인 바둑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해도 이건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마치 자기는 수읽기가 끝났으니 빨리 두기나 하라고 외치는 듯한 모습.
어느 하나 초보자 같은 구석이 없었다.
‘이건 마안의 힘인가?’
제국의 황가에 이어져 내려오는 특질인 마안.
노아가 엔야의 아들이라면 그 또한 황가의 피를 이었으니 마안을 각성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은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니, 마안은 오러를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줄 뿐. 반상 위의 흐름을 분석해서 길을 찾는 건 저 아이 자신의 능력이다.’
선술바둑이 처음임에도 저렇게 둘 수 있는 것은 엔야의 재능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20년 전의 일이 우장왕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엔야는 인간은 물론 수인들에게도 불가해한 인물이었다.
‘그것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마수.
따로 훈련을 하지 않아도 날 때부터 오러를 느끼고 조작할 수 있는 존재.
실례되는 생각이지만 솔직히 말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이 아이는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선술바둑의 수는 무한.
완전한 수읽기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러니 저렇게 주저 없이 수를 두는 것도 불리함을 뒤집기 위한 심리전일 뿐이다.’
마치 상대를 전부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여 실수를 유도하려는 속셈이 분명했다.
‘아무리 구원자의 아들이라도 초보자에게 밀릴 수는 없다!’
실제로 노아는 거침없이 수를 두면서도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앉은 자세와 호흡조차 흐트러져있다.
저 정도의 기사가, 그것도 심리전을 걸면서도 태연을 가장하지 못한다는 건 그만큼 힘들어하고 있다는 뜻.
‘마냥 초보자로 대할 순 없어도 내 유리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란 소리!’
우장왕은 침착하게 자신의 수를 둬갔다.
아무리 노아가 대단해도 판세는 이미 기울었다.
자신이 질 이유는 없었다.
“시간을 다 쓰셨으므로 지금부터 우장왕 님은 초읽기에 들어가겠습니다.”
‘뭣이?’
제한시간을 모두 사용한 뒤부터 자신의 차례가 되면 30초 안에 수를 둬야 하는 규칙이 바로 초읽기.
집중에 빠져 있던 우장왕은 자신이 제한시간을 다 사용했다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앞서 레지나 공과 대국하며 시간을 소모한 탓인가!’
레지나는 고민할 것 없이 바로바로 자신의 수를 뒀다.
때문에 우장왕은 레지나의 체력을 깎기 위해 공격을 걸어놓고 자신의 차례를 길게 가져갔다.
덕분에 판세는 우장왕이 유리했지만, 남은 시간은 오히려 노아가 더 많은 상황이었던 것.
‘괜찮다. 아직은 내가 더 유리해!’
그러나 노아는 천천히 상황을 복구해나가고 있었다.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수에만 집중하려고 해도, 그의 실력으로는 형세가 변화하는 것을 모른 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초보자에게 쫓기고 있다고?’
어느새 끈적한 불쾌함이 우장왕의 전신을 뒤덮고 있었다.
기분 탓이 아니었다.
실제로 우장왕에게는 벌써 10가지가 넘는 부정적 효과들이 적용되고 있었다.
‘어느새 이런……!’
노아와의 대국은 부정적 효과를 지우려는 노아와, 그걸 방해하는 우장왕의 형세로 진행되었다.
노아는 상당수의 효과를 지워내는데 성공했으나, 그 감소세는 얼마 전부터 현저히 줄어들었다.
우장왕은 자신이 잘 막아냈기 때문이라 생각했으나 실상은 달랐다.
‘설마 처음부터 방어가 아니라 공격을 하려 한 것인가!’
근성으로 버틴다.
노아는 레지나의 작전을 완전히 버린 것이 아니었다.
버티면서 맞기만 하던 레지나와 달리 노아는 버티면서 ‘공격할’ 생각이었던 것.
어느새 판세는 우장왕이 쫓기는 듯한 상황이 아니라 진짜 쫓기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극단적인 상황을 이어받아 시작한 노아는 싸워서 이길 생각으로 대국에 임하고 있었다.
‘그래도 대국은 이미 막바지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 역전당하기 전에 끝내면 되는 일이다!’
따닥!
미혹을 떨쳐내기 위해 힘을 주어 돌을 내려놓은 우장왕이었으나, 노아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 뒤에 바짝 붙어서 착수했다.
두 사람의 대국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한별은 그 모습에 상황이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상수인 우장왕께서 오히려 수세로 돌아서셨어……?”
선술바둑은 수를 둘 때마다 오러가 휘몰아치며 변화하기 때문에 선술이 낙제점인 한별도 대략적인 형세판단이 가능했다.
그녀가 보는 노아의 모습은 그야말로 폭풍.
노아는 노도의 쾌진격으로 온갖 국면을 거침없이 뚫어나가고 있었다.
“정말로 스승이 이기는 거야……?”
그러는 동안에도 노아는 초읽기에 들어간 우장왕을 계속해서 몰아쳤고,
타앙!
마침내 전세가 역전됐다.
“이제부터는 제가 공격합니다.”
* * *
같은 시각, 용왕궁.
“……우장왕은 용들 중에서도 적수가 없는 고수인데 대단하네요.”
소요는 천리안을 통해 용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전부 보고 있었다.
“그래봐야 저한테는 다 거기서 거기지만요.”
우장왕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봐야 7성.
8성인 용왕이나 9성인 신산에 비하면 선술의 차이가 너무 커서 대국이 성립하지를 못했다.
“그건 그렇고 티우 양? 슬슬 제어에 성공해 주시지 않을래요? 밥 먹으러 가고 싶은데요.”
“으으윽, 그게 말처럼 쉽게 되는 게 아니라고요……!”
티우는 자신의 귀와 꼬리를 붙잡고 신음했다.
산군의 피.
유전자에 각인된 호랑이 수인의 힘이 깨어나자 그녀에겐 고양잇과의 귀와 꼬리가 자라났다.
또한 그와 동시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수십 년간 잠들어 있던 본능이 일제히 깨어나며 날뛰기 시작했다.
덕분에 호환떡을 먹은 이후 그녀는 계속 아슬아슬한 의식으로 충동을 억눌러야만 했다.
“그, 그보다 이건 도대체 뭐예요! 아까부터 몸이 뜨겁고 간질간질한 게…….”
“발정난 거예요.”
“예??”
“대를 잇는 것이야말로 생물의 본능. 다른 문제가 없으면 번식욕이 가장 먼저 올라오는 게 당연해요.”
“버, 번식욕이라니……!”
순간 티우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어린애도 아니고 저런 단어를 들었다고 부끄러워하는 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몸이 이런 상태가 되어 있는 동안 계속 한 사람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 탓이었다.
‘이러면 내가 변태 같잖아!’
“……혹시 손님방은 두 개만 잡는 편이 좋았나요?”
“아니거든요!”
어쨌거나 이게 진짜로 발정한 거라면 진정시키기 전까진 돌아가지도 못한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제어해야 하는 건데요……!”
“수인으로서의 자신을 마주하는 건 난생처음일 테니 조급할 건 없어요. 배고프니까 빨리 적응해 줬으면 좋긴 하겠지만요.”
“팁 같은 건 없어요?”
“단순히 억누르기만 해선 안 돼요. 그것 또한 자신이니 그냥 받아들이세요. 그렇다고 아무나 붙잡고 교미를 해대면 안 되겠지만요.”
몇 시간 동안 이러고 있으니 티우도 슬슬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이 용왕.
반쯤 맛이 가 있는 게 분명하다.
‘이 사람한테 뭘 기대하느니 내가 어떻게든 하는 수밖에.’
언행이 저러니 아무리 용왕이라고 해도 영 미덥지가 못했다.
게다가 산군의 피라는 이 힘은 결국 자신이 스스로 제어해 내야 하는 것.
호흡을 가다듬은 티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뽑아 들었다.
“상대 좀 해주세요.”
“본능을 제어하는 것만 해도 벅찰 텐데요?”
“저는 이쪽이 집중하기 편해요.”
소요는 신기하다는 듯이 티우를 쳐다보다가 등에 맨 의기양양을 풀어 바닥에 쾅 하고 꽂았다.
“잠깐 놀아주는 데 이것까지 쓸 필요는 없겠죠?”
자세를 낮추고 발의 위치를 앞뒤로 벌린다.
오른손은 눈높이에 가깝게, 왼손은 옆구리와 복부를 커버하며 전방에 위치.
소요는 선술박투의 교과서와도 같은 자세로 티우를 맞이했다.
“수인들은 대부분 무기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선술에서는 맨손박투를 가르친답니다. 당신도 배워두도록 하세요.”
“저는 검을 쓰니 그것보다는 용왕님의 검술에 더 관심이 가지만요.”
“호신술로 시작한 무술이지만 호신술에 불과한 무술은 아니랍니다. 또한 제가 쓰는 검술도 결국 이 선술박투를 기반으로 한 것. 선술을 다 배울 게 아니더라도 이 정도는 배워두면 티우 양의 검술에도 적용할 수 있을 거예요.”
선술박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오러를 이용한 전투술이었다.
오랜 세월 연구되어 온 8대 가문의 검술들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백문이 불여일견. 일단 한번 겪어보세요.”
그 말과 동시에 소요는 티우에게 뛰어들었다.
티우는 산군의 피로 집중력이 흐트러진 상태에서도 소요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내 신체 능력에 맞춰주고 있어?’
소요는 티우와 완전히 동일한 수준으로 힘을 제한하고 있었다.
덕분에 티우는 그녀의 움직임을 통해 순수한 기량 차이를 맛볼 수 있었다.
초격은 정면의 붕권.
티우는 검을 들어 그것을 막고 반격하려 했지만 소요는 맨손으로도 검과의 맞대결을 피하지 않았다.
착!
티우의 검이 소요의 손에 붙잡힌다.
아무리 기사들이 검을 신체의 일부처럼 느낀다고 해도, 실제로 여러 관절과 손가락이 있는 맨손보다 자유로울 순 없었다.
후욱!
소요는 검을 붙잡은 상태로 여봐라는 듯이 크게 돌려차기를 날렸다.
검을 놓고 피하든, 발차기를 맞든 무엇을 고르든 손해인 선택지의 강요.
그러나 티우가 고른 것은 제3의 선택지였다.
‘하지만 검기를 붙잡히는 건 익숙해!’
노아와 대련할 때마다 호신강기를 이용해 검기를 붙잡히는 일은 얼마든지 있었다.
티우는 검의 표면에 무형검을 생성해 소요의 손을 떼어냈다.
까딱 잘못하면 붕괴현상으로 검이 망가질 수도 있었지만, 그녀의 검은 초승달 군도의 일로 광휘제에게 하사받은 성련검.
“가진 걸 최대한 이용하는 건 좋은 마음가짐이에요.”
넘어지듯 몸을 숙인 소요는 손으로 땅을 박찼다.
기사의 신체 능력이라면 팔로도 다리에 뒤떨어지지 않는 추진력을 낼 수 있었다.
그렇게 티우의 뒤로 돌아간 소요는 발을 그녀의 등에 가져다 대고 세게 밀었다.
부우웅!
티우의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익숙해지면 방금 같은 공격도 꼬리로 막아낼 수 있을 거예요.”
공중에서는 회피가 불가능하니 무형검으로 발판을 만들어 대비해야 한다.
기사의 상식과도 같은 말에 따라 반사적으로 무형검을 만들어 멈춘 티우였으나, 실책이었다.
파앙!
“으긋!”
티우가 정지하자 그녀를 쫓아 뛰어오른 소요와의 거리가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자세를 바로잡는 것보다 추격타가 더 빨랐다.
“세상을 눈으로 보지 말고 귀로 들으세요.”
“그게 무슨…….”
“눈으로 볼 수 있는 범위보다 귀로 들을 수 있는 범위가 더 넓습니다. 지금의 당신이라면 육감보다도 귀가 더 좋을 것이 확실. 오러를 소리로 느끼세요.”
한평생 인간으로 살아온 자신에게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싶었다.
그러나 상대는 용왕.
적어도 수인의 능력에 관해서는 무조건 상대의 말이 옳을 터.
티우는 억지로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했다.
“……!”
세상이 달라졌다.
‘아냐, 이건 내 인식이 달라진 거야.’
용궁은 거대한 진법 속에 자리한 세상이었다.
어디를 둘러보더라도 인위적인 오러의 흐름이 빈틈없이 모든 곳을 가득 메우고 있으니, 봐야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것도 일이었다.
말하자면 모든 것이 꿈결처럼 몽롱하게 느껴졌다.
그야말로 신비로운 수인들의 세계인 것.
반면 소리로 주위를 인식하자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타앗!
허공에서 뒤집어진 상태로 소요의 무릎차기를 막아낸다.
황급히 손을 뻗느라 손가락을 제대로 갈무리하지 못해 찧어버리고 말았지만, 공격을 미리 알 수 있었다.
“좋아요. 나이트레이의 학생답게 배우는 게 빠르네요.”
숨도 차지 않은 평온한 목소리.
티우는 황급히 상대를 밀어내고 거리를 벌렸다.
소요는 먼저 착지하여 티우가 내려서길 기다렸다.
“감은 잡은 것 같으니 텐션을 올려볼까요?”
소요에게서 느껴지는 오러의 양이 한순간에 2배로 늘어났다.
“야성을 조절할 수 있을 때까지 단계별로 두들겨 패 드릴게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