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smanship Genius of the Knight School RAW novel - Chapter 145
“황녀님이 검댕을 묻히고 돌아다니면 난리가 날 테니 들어와서 씻고 가.”
“그럴 거면 아예 저녁까지 먹고 가면 되겠다!”
“선배는 방금까지 그렇게 먹어놓고 바로 저녁 생각이 난다니 대단하네요.”
일이 그렇게 진행되어 베로니카는 잠시 검은 달 기숙사에서 씻고 가게 되었다.
검댕을 묻힌 인간들이 우르르 들어오자 그날의 실내 청소 담당이었던 유니아가 화를 냈지만 노아와 쌍둥이는 베로니카의 뒤에 숨어서 사과하고는 재빨리 욕실로 뛰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으아, 개운하구만. 이게 삶이지.”
후다닥 목욕을 마친 노아는 차갑게 식힌 탄산수를 마시며 감탄을 내뱉었다.
“저쪽은 아직인가? 하긴 그 긴 머리들을 말리는 것만 해도 한참은 걸릴 테니.”
여유가 생기자 노아는 곧바로 월식을 꺼내 들고 선술 연습에 들어갔다.
오늘 치 땀 흘리는 훈련은 이미 끝냈으니 이후로는 땀 안 나는 훈련.
이것이 바로 노아 나름의 루틴이었다.
‘나이로비 선배와의 싸움에서 축지를 써먹긴 했지만 아직은 위력도 정확성도 떨어지지.’
용왕궁에서는 축지를 이용해 수십 개의 복도와 방들을 서로 정교하게 이어놓고 있었다.
그에 비해 노아가 사용하는 축지는 길어야 몇 미터 정도의 거리에 도착지점의 오차도 컸다.
그것만 해도 근접전에서는 꽤나 강력한 능력이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았다.
‘남들 앞에선 처음 쓰는 기술이라 통했던 거지 알려진 지금은 안 통할 거야.’
기사들은 진법의 흐름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그게 진법이라는 것만 알면 흐름을 깨부술 수 있었으니까.
‘그냥 싸우면서 선술도 쓰는 걸로 그치지 않고 확실히 내 기술로 정립해야지.’
이에 관해선 생각해 둔 바가 있었으므로 성과를 기대할 만했다.
* * *
씻고 나온 베로니카는 거실에 펼쳐진 광경에 발을 멈췄다.
검집을 중심으로 펼쳐진 16개의 진법.
그 진법을 통해 재해급 오러가 순환하고 있었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그 광경을 보면서도 다들 익숙하다는 듯이 여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평소에도 저러는 거예요?”
“노아? 뭐 그렇지. 이젠 다들 그러려니 해.”
일반적으로 기사가 오러를 모으는 방식은 이랬다.
1. 명상을 통해 내면에 집중한다.
2. 호흡을 통해 외부의 오러를 빨아들인다.
3. 몸 안의 오러를 순환하며 이물질이나 다름없는 외부의 오러를 자신의 오러에 섞는다.
4. 자신이 버틸 수 있는 농도를 맞춰가며 이를 반복한다.
익숙해지면 명상을 하지 않아도 상시 이것들을 반복할 수 있었다.
다만 이 방법에는 한계가 있었다.
“용궁에 갔다 오더니 호흡으로 얻는 오러가 부족하다고 저런 걸 만들더라고.”
한 호흡에 들어오는 오러의 양은 많아봐야 한 줌에 불과했다.
초기에는 그마저도 버틸 수 있는 농도에 맞춰 조절해야 하지만, 숙련된 기사라면 호흡으로 얻는 양으로 문제가 생길 일은 없었다.
때문에 추가적으로 영약을 먹으며 자신의 흡수력을 최대한으로 써먹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저건…….”
사람의 몸은 하나뿐이라 호흡으로 얻는 양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몸 안의 오러를 밖으로 꺼내면 호흡기를 통할 필요가 없이 주변의 오러를 쓸어 담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발상으로 만들어진 것은 진법을 이용한 인공 혈도.
노아는 자신의 몸에 더불어 16개의 진법으로 17인분의 호흡을 하고 있었다.
“남들보다 17배나 높은 효율로 오러를 모을 수 있다면 영약도 필요 없잖아요…….”
남들이 호흡만으로는 부족해서 영약을 찾을 때, 노아는 그냥 호흡으로 혼자서 소화량의 최대치까지 채울 수 있었다.
대전쟁 이후 마수가 줄어들어 재해급 영약은 마스터 나이트는 되어야 구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이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그래도 다른 사람은 못 쓴다더라. 뭐라더라? 승을 쓸 수 있어야 가능하다던가?”
“그걸 감안해도 영약을 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대단하지만요.”
쌍둥이쯤 되면 자기 먹을 영약 정도는 필요한 만큼 구할 수 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또 신기한 걸 하는구나 정도에 그쳤지만, 베로니카에게는 이야기가 달랐다.
‘졸업하고 제 기사단을 만들게 되면 영약을 미끼로 영입할 생각이었는데……!’
솔직히 노아의 실력을 생각하면 베로니카가 그를 영입하는 건 힘들었다.
노아가 졸업하면 깜냥이 안 되어 포기할 중소기사단을 제외한 거의 모든 대형기사단이 그를 노릴 테니까.
특히 그중에서도 무서운 것이 바로 리베리 가문이었다.
‘테오도르 님의 성격을 생각하면 억지로라도 데려갈 게 뻔한데.’
일단 데려가서 자기네 기사단 간부로 박아놓고 영지 내에서만 굴리면서 회유.
그것이 바로 테오도르가 리베리의 몸집을 키운 방식이었다.
비슷한 방식으로 아예 소규모 기사단을 통째로 합병하는 경우도 많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8대 가문의 가주와 일개 황녀가 쓸 수 있는 자원의 차이는 막대했다.
이 차이를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
‘제가 황위라도 잇지 않는 이상은…….’
그러나 광휘제의 건재함을 생각하면노아의 졸업 전까진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어라? 언제부터 다들 나와 계셨대?”
명상을 끝낸 노아는 집중을 풀고 나서야 베로니카와 쌍둥이가 자신을 구경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녀들은 씻고 나서 옷도 갈아입은 상태였는데, 베로니카의 옷이 도대체 어디서 났나 싶어 바라보고 있자니 리나리아가 설명해 주었다.
“로제의 옷이에요.”
“……왜??”
노아는 로젤리아와 베로니카를 번갈아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사이즈가 안 맞는다.
특히 흉부가.
“그야 예뻐 보였으니까. 나중에 크면 입으려고 샀지. 그걸 베로니카가 먼저 개시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나중에 커요?”
“클 거거든!”
노아의 태클에 반박한 로젤리아는 베로니카와 리나리아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리는 것을 보며 급격히 자신감을 잃었다.
“그래도 조금은 크지 않을까? 클 거라고 말해줘, 얘들아…….”
“암요. 크겠죠. 선배가 언제까지고 작을 리가 없잖아요.”
“흑흑, 노아 너밖에 없어.”
로젤리아는 빠르게 회복했다.
“그보다 나이로비도 이겼으니 이제 밀리아만 쓰러뜨리면 다음은 나랑 붙는 거네?”
현재 랭킹 10위에 위치한 로젤리아는 기대된다는 듯이 말했지만 노아는 그 기대를 배신했다.
“아뇨. 로제 선배는 올라가서 나중에 리나 선배랑 한 번에 상대할 거예요.”
둘을 동시에 상대한다는 어려움을 생각하면 등수가 어찌 되든 쌍둥이가 가장 어려울 가능성이 높았다.
그 점을 생각하면 노아는 아직 쌍둥이를 상대할 준비가 안 되었다.
“에엥? 그야 나도 전력으로 붙어보는 편이 즐겁긴 하지만. 리나 이번에 베로니카랑 붙던데 그때쯤 되면 1등이 되어 있는 거 아냐? 그럼 한참 걸리잖아.”
로젤리아가 무심코 뱉은 말에 베로니카가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저는 안 질 거거든요?”
“후후, 하지만 두 달째 율리우스에게 고전하고 있는 걸 보면 폼이 예전 같지 않던걸?”
“그건 율리우스 선배가!”
반박하려던 베로니카는 순간 율리우스와의 약속을 떠올리고 입을 다물었다.
노아는 그 모습을 보며 베로니카를 놀렸다.
“이거, 이거, 선발전에서의 복수는 한참 나중에야 하게 될 줄 알았는데. 그렇게 랭킹을 떨어뜨리면 생각보다 금방 붙어볼 수 있겠는걸?”
“안 진다니까요!”
베로니카는 안 되겠다는 듯이 이야기를 정리했다.
“리나리아 씨에게도 지지 않을 거고, 율리우스 선배도 꺾을 거예요. 그리고 1위의 자리에서 당신을 기다릴 거예요. 당신의 1등은 제가 차지할 거라고요!”
그녀 딴에는 ‘노아 네가 1등을 하기 위해선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를 쓰러뜨려야 할 것이다’ 같은 소리를 하려고 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방에서 놀려대는 와중에 홧김에 외치니 말이 뭔가 이상해졌다.
옆에서 듣고 있던 리나리아가 귀엽다는 듯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당신의 1등을 내 차지다! 라니 로맨틱하네요.”
화아악!
베로니카 본인도 말하고 나서야 그 사실을 깨닫고 얼굴이 새빨개졌다.
“아무튼 그렇게 알고 계시라고요!”
베로니카는 그렇게 말하곤 밖으로 뛰쳐나갔다.
“앗, 내 옷.”
“선물한 셈 치세요.”
* * *
며칠 뒤 노아는 약속의 이행을 위해 나이로비와 만났다.
“그 후로 아무 말이 없기에 소개는 물 건너갔나 했는데 기억하고 계셨네요?”
“약속은 지켜야지. 내가 너를 좋아하고 싫어하고와는 별개로, 내가 진 건 진 거니까.”
사람이 어떻든 검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기사들은 자신이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을수록 실력자를 존중했다.
강해지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아는 만큼 상대의 노력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
‘행실은 마음에 안 들지만…….’
고지식한 나이로비에게 자유분방한 노아의 행동은 눈에 거슬렸다.
하지만 노아는 검술까지 가볍게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인정할 건 인정하는 성격이었다.
“미리 말해두자면 이 자리에는 테리도 나와 있다.”
“현재 6위인 테리 맥도웰 선배 말씀이시죠?”
“그렇지. 그때 봐서 알겠지만 둘이 서로를 끔찍이 아끼거든. 그러니 테리가 동행하게 된 점은 감수하도록.”
“괜찮아요. 애초에 딱히 단둘이 아니어도 상관없는 일이고.”
그렇게 도착한 약속 장소에는 밀리아와 테리가 노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야, 네가 나이로비한테 나를 소개시켜 달라고 했다며?”
풀어헤친 셔츠, 아슬아슬하게 줄인 타이트한 치마.
밀리아는 나이트레이에서는 보기 힘든 불편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보통은 꾸민다고 해도 격렬한 움직임에 방해되지 않는 수준에서 그치는 데 반해 이쪽은 당당한 비전투용 복장이었다.
“어딜 보고 있나.”
덕분에 노아가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자 옆에 앉은 테리가 도끼눈이 되었다.
“죄송합니다. 파격적인 패션이구나 싶어서요.”
“이 자식이?”
테리는 당장이라도 일어설 기세였으나 밀리아가 그것을 말렸다.
“하하핫, 너 재미있는 녀석이구나?”
“선배도 만만치 않으신데요? 8대 가문은 아니어도 나름대로 이름 있는 정도 가문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제가 만나본 정도 학생들과는 다르시네요.”
밀리아의 저런 자유분방한 모습은 보통 사도 학생들의 이미지였다.
“네가 만나본 정도 애들이 누구누군데?”
노아는 그 물음에 말없이 나이로비를 바라보았다.
“왜 나를 보는 거냐.”
“아뇨, 그냥.”
밀리아는 그 모습에 또다시 빵 터졌다.
“푸핫! 테리, 얘 좀 봐. 되게 웃겨.”
“난 안 웃겨.”
“또 삐졌네. 노아 네가 이해해. 얘가 좀 잘 삐져. 나는 삐진 모습이 귀여워서 좋지만.”
밀리아는 노아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랑 만나서 뭘 하고 싶었던 건데?”
“가능하면 서로 최선을 다한 상태로 맞붙고 싶어서요. 서로가 사용하는 검술도 알아보고, 오필리아 선배 때처럼 필요하면 경기장도 바꾸고요.”
“좋네. 그런 거라면 동감이야. 기껏 나이트레이에 왔으면 최대한 배워가야지 않겠어?”
노아의 의도를 들은 밀리아는 역으로 그녀가 먼저 제안을 내밀었다.
“그럼 월말까지 나한테 린드버그 검술을 배워볼래?”
“네?”
“반대로 너는 네 검술을 나한테 가르쳐 주는 거지.”
밀리아는 사심 없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 월말에는 작정하고 최선을 다해 붙어보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