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smanship Genius of the Knight School RAW novel - Chapter 73
강대한 오러가 집중되자 카밀라의 머리칼과 눈동자가 연한 녹색으로 물들었다.
정령태의 발현.
유래 없는 재난 상황에서 카밀라는 진정한 의미의 무녀로 발돋움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
“제게 당신이 다룰 수 있는 오러를 모두 주입하세요.”
“그랬다간 죽을지도 몰라요. 이건 자기 오러만 폭주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요!”
카밀라는 노아를 의식하며 말했지만 베로니카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냥 하세요.”
베로니카의 단호한 목소리에 카밀라는 하는 수 없이 그녀의 어깨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베로니카는 글레이시아를 뽑아 들고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이윽고 막대한 오러가 흘러들었다.
‘으윽……!’
자신의 몸을 필터 삼아 대자연의 오러를 얼음 속성으로 변환한다.
끝없이 밀려오는 오러에 전신이 덜덜 떨렸다.
마치 맨몸으로 댐에 난 구멍을 막고 버티는 기분.
전력을 다해 검을 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손아귀에 힘이 빠지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검을 놓치려는 찰나, 누군가의 넓은 손이 검을 든 그녀의 손을 감싸 쥐었다.
“오러의 제어를 도와줄게. 집중해.”
카밀라의 오러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자신의 오러도 마찬가지리라.
그렇게 판단한 노아는 베로니카에게 힘을 더했다.
노아의 보조가 더해지자 점차 떨림이 잦아들었다.
‘어떻게?’
분명 베로니카의 기술을 보조하는 것임에도 노아의 제어력이 더 강했다.
게다가 단순히 강력한 오러 조작 능력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제 몸을 움직이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이건 마치…….’
어린 시절 아직 베로니카가 마안의 힘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던 때.
아기였던 베로니카가 감당하기 힘든 오러에 고통스러워하면 옆에서 그녀의 손을 잡아주던 누군가가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 손을 잡으면 날뛰던 오러가 잠잠해지며 고통이 사라졌다.
베로니카는 노아의 손길에서 마치 그때와 같은 편안함을 느꼈다.
타인의 오러를 조작한다.
그건 자연 상태로 존재하는 오러를 다루는 정령태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노아와 베로니카는 그것을 해내고 있었다.
‘지금은 여기에 집중해야!’
노아의 든든한 보조에 딴생각에 빠져들던 베로니카는 황급히 정신을 바로잡았다.
이미 레비아탄의 초롱을 베었을 때와 맞먹는 수준의 얼음이 검을 덮고 있었다.
힘의 집중이 필요했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압축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넓고 얇게.
“백야.”
바다가 얼어붙는다.
멀리 떨어진 구조선들을 향해 얼음의 길이 만들어졌다.
“바다를 얼린 거라 오래는 못 가! 모두 뛰어!”
폭죽이 쏘아 올려졌다.
그것은 대탈출이었다.
구조선에 버림받은 수천 명의 사람들이 바다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비가 와서 미끄러워! 기사들은 넘어지는 사람 챙겨!”
“전방에 마수다! 해양 마수가 길 위에 올라왔어!”
“리카르도!”
노아는 얼음의 길 위에 마수들이 올라서는 것을 보자마자 리카르도를 찾았다.
“뇌명을 써라!”
“그런 조절도 안 되는 힘을 이런 상황에서 썼다간 난리가 날 거다!”
“괜찮아! 내가 조절해 줄게! 지금이라면 할 수 있어!”
베로니카를 보조하며 노아는 무언가 손에 잡힐 듯한 기분을 느꼈다.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젠장, 나는 어떻게 되도 모른다!”
리카르도는 노아의 손을 붙잡고 뇌명을 시전했다.
번개가 리카르도의 전신을 뒤덮는다.
그러나 번개는 이내 몸을 타고 흐르며 다리로 빨려 들어갔다.
마치 노아의 뇌명신과 같은 모습.
단순히 남의 기술을 보고 따라 하는 것을 뛰어넘어, 남의 기술에 직접 개입한다.
‘이게 기승전결의 승인가?’
확신 없는 생각은 일단 젖혀두고 노아는 자기 자신 또한 뇌명신을 발동했다.
“앞을 뚫어! 저놈들이 얼음을 부수지 못하게 해!”
일자로 이어진 얼음의 길을 벗어나 바다 위를 달린다.
“옆으로 쳐내기만 해! 우리가 마무리할게!”
두 사람이 앞으로 뛰쳐나가자 로젤리아와 리나리아가 외쳤다.
불을 사용하는 두 사람의 공격은 얼음의 길을 부술 위험이 있었다.
초신속을 사용해 앞서 나간 노아와 리카르도가 얼음 위에 올라온 마수를 옆으로 쳐냈다.
오러의 소모를 줄이기 위해 검기도 사용하지 않는다.
주먹과 발차기만으로 수도 없이 튀어나오는 마수들을 쳐내면, 로젤리아와 리나리아가 불꽃을 쏘아 놈들을 요격한다.
구조선까지 수 킬로미터.
평소라면 그리 멀지도 않았을 거리가 끝도 없이 멀어 보였다.
계속해서 마수가 튀어나온다.
손에 잡힌 녀석을 집어 던지고, 발로 차고, 돌진해서 들이 받아버린다.
사람들이 그들의 뒤를 따라 달려온다.
입안이 바닷물로 짭짤하다가도 마수의 피로 쓰라렸다.
얼굴에 흐르는 피를 닦을 여유가 없어 중간부터는 아예 눈을 감고 육감에 의지해 싸웠다.
끝이 없는 것처럼 이어지는 싸움.
어느 순간부터 기억이 애매했다.
덕분에 구조선 위에서 눈을 떴을 때,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다만 저 멀리 초승달 군도의 4번섬이 보였고, 그 위로 뛰어오른 레비아탄의 거체가 뇌리에 각인되었다.
섬 위로 그와 맞먹는 크기의 마수가 뛰어오르고 있었다.
‘미친. 저걸 뛰어넘어 오는 거냐.’
탈진해서 쓰러지는 와중에도 노아는 그 모습을 보며 어이가 없어졌다.
저 망할 마수는 초승달 군도를 돌아서 쫓아오는 대신 아예 뛰어넘고 있었다.
저게 수면에 떨어지면 아까처럼 엄청난 해일이 밀려오리라.
그때.
“미안하다. 조금 늦었구나.”
허공이 갈라지며 그 안에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노아는 눈을 크게 떴다.
“레지나 님……?”
갑판에 내려선 레지나는 안고 있던 코코아를 내려놓았다.
“여긴 어떻게……?”
“전보를 듣고 나이트레이에서 여기까지 공간을 베며 달려왔다.”
“공간을 뭐요?”
나이트레이에서 초승달 군도까지는 못해도 수백 킬로미터다.
이번 사태가 시작된 건 아직 24시간도 안 된 상황.
코코아는 몰라도 레지나가 여기서 튀어나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노아가 지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반신반의하는 동안 코코아는 무서운 표정으로 레비아탄을 노려보고 있었다.
“고작 하루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런 꼴이 되다니……!”
대무녀인 그녀에게는 초승달 군도를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그 의무를 다하지도 못하고 자리를 비운 사이 초승달 군도가 뒤집어졌다.
비록 이 모든 건 벤자민의 배반 때문이라고 해도 코코아는 자신과 저 마수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리고 레비아탄을 용서할 수 없는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화르륵!
수평선에서 불꽃의 장벽이 솟아난다.
불길이 바다와 하늘을 갈랐다.
어둡던 하늘이 붉게 물든다.
후끈한 열풍과 함께 유황 냄새가 풍겨왔다.
불바다가 되어버린 수면 위를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물 위를 걷는 남자, 테오도르의 품에는 우르슐라가 안겨 있었다.
“우르슐라 선배!”
“초열지옥. 아니, 대초열지옥인가? 테오도르 녀석. 심검까지 썼군.”
“심검이라면…….”
마스터 나이트의 상징이자, 전유물이라 불리는 5단계 검기.
“심검은 천리(天理)를 베는 검기다. 삼라만상을 베고 물리법칙을 다시 쓸 수 있는 절대적인 권능이지.”
검기지만 검기가 아닌 것.
마스터 나이트가 ‘마스터’ 나이트라 불리는 이유.
검의 극의에 달한 자는 이치 그 자체를 벨 수 있게 된다.
“레지나. 부탁하마.”
“어째 최근 들어 제게 뭘 부탁하는 사람이 많군요. 제 심검은 안 그래도 소모가 큰데.”
“길만 열어주면 돼.”
코코아가 가리킨 것은 레비아탄이 수면에 떨어지며 일어난 해일이었다.
두 마스터 나이트는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는 해일을 보면서도 느긋했다.
“어쩔 수 없죠. 선생님께는 신세진 게 많으니까요. 겸사겸사 이 녀석에게도 최대한 많은 심검을 보여주고 싶고.”
레지나는 들고 있던 검을 집어넣고 다른 검을 뽑아 들었다.
동서남북이라 이름붙인 네 자루의 검 중 북에 해당하는 검.
“잘 봐둬라. 이게 나의 심검, 시공단열이다.”
레지나는 아래에서 위로 검을 스윽 그었다.
별로 빠르지도, 강해 보이지도 않는 종 베기.
그러나 검의 궤적을 따라 바다가 갈라졌다.
“……!?”
노아는 경악했다.
강력한 힘이 있다면 바다를 가를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이건 달랐다.
힘으로 갈랐다면 다시 바닷물이 쏟아져서 틈을 메워질 뿐이었다.
그러나 레지나가 베어낸 곳은 마치 그림으로 그려진 바다를 오려낸 것처럼 그대로 사라졌다.
양옆으로 갈라진 바닷물은 무언가가 잡고 있는 것처럼 쏟아지지 않고 멈춰 있었다.
마치 바다 한복판에 투명한 벽이 세워진 듯한 모습.
그 벽은 해일을 가르고 해저에 숨은 레비아탄을 드러냈다.
“내 시공단열은 말 그대로 시공간 그 자체를 베는 심검이다.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상당히 강력한 편이지.”
오만한 말처럼 들렸으나 그조차 겸손이었다.
시공단열은 제국 역사상 손에 꼽힐 정도로 강력한 심검이었다.
레지나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사들 중에서 두 번째로 손꼽히게 만든 사기적인 심검.
공간을 베고 먼 곳으로 도약하거나, 필요하다면 시간마저 벨 수 있는 심검이 바로 시공단열이었다.
“내 것에 비해 테오도르의 심검은 훨씬 간단명료하지. 놈의 심검은 자신의 불꽃을 강화하는 것. 심검으로 강화된 놈의 불길은 무엇이든 태울 수 있다.”
새로운 효과를 얻는 것보단 기존의 검술을 강화하는 형태의 심검.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약한 것은 아니었다.
바다가 불탄다.
바닷물이 고열에 끓어오르는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불타고 있었다.
물리법칙을 무시하고 불탄다는 현상 자체가 강제된다.
그의 불꽃은 물질이 아닌 오러마저도 불태운다.
만일 테오도르가 원한다면 불꽃조차 불태울 수 있으리라.
“그리고 선생님의 심검은…….”
“됐다. 직접 보도록 해라.”
코코아는 자신의 검을 뽑아 들고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무녀의 춤.
짧은 검무 끝에 그녀의 검이 갑판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갑판에 구멍이 뚫리는 대신 바닥에 닿은 검신이 그대로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심검.”
대역만리무궁해겸
(大域萬里 無窮害兼)
레비아탄의 몸뚱이에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맹그로브 나무는 레비아탄의 오러를 빨아들이고 순식간에 구름에 닿을 정도로 솟아올랐다.
반대로 나무가 자라날수록 레비아탄은 말라붙기 시작했다.
끝내 나무가 다 자라났을 때, 나무의 뿌리에는 그저 지옥아귀의 미라만이 남아 있었다.
“한평생 대자연을 품기 위해 수련한 몸이나, 나의 적마저 품을 수는 없나니.”
코코아의 읊조림에 레비아탄을 빨아들인 맹그로브 나무가 빛의 입자로 화하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막대한 오러가 마치 검기처럼 육안으로 보일 정도의 밀도를 가지게 된 것.
반짝이는 입자들은 이내 완전히 흩어져 대자연에 녹아들었다.
“내 세상에서 사라져라.”
초승달 군도를 덮친 재해급 마수는 그렇게 마스터 나이트들에 의해 토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