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smanship Genius of the Knight School RAW novel - Chapter 88
1위 결정전은 이후 검은 반구가 사라지고 쓰러진 알렌과 우뚝 선 아슬란의 모습이 드러나며 비교적 싱겁게 끝났다.
하지만 그 여파는 전혀 싱겁지 않았다.
레지나는 공식적으로 아슬란이 마스터 나이트가 되었음을 선포했다.
원래 심검은 상성이 중요한 만큼 각성했다고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허나 아슬란의 심검은 외부에서 알아볼 수 없는 공간장악형 심검.
검은 반구 안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저것이 어떤 효과를 가지고 있는지 보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아슬란 또한 자신의 심검이 공간장악형 심검이라 기밀유지에 문제가 없었기에 남들 앞에서 내보인 것이다.
그 후 아슬란은 스텔라리움으로 소환되었고, 학생들은 흥분으로 잠을 설치다가 다음날 아침 수업에 나와야 했다.
“분위기가 왜들 이래?”
강의실에 들어온 노아는 아침부터 느껴지는 묘한 분위기에 카를로스를 붙잡고 물었다.
“어제 그런 일이 있었는데 분위기가 왜 이렇게 침체되어 있냐? 졸면 졸았지 이건 또 뭐야?”
“왜긴 왜야. 당연히 어제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지.”
새로운 마스터 나이트의 탄생은 분명 정도와 사도의 구분을 뛰어넘어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승리는 누군가의 패배를 뜻했고, 이 수업에는 알렌의 동생인 펠릭스가 있었다.
“그래서 다들 눈치 보고 있다고?”
“상황이 이러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지? 겸사겸사 우리 기수 애들은 다들 펠릭스한테 밉보이기 싫어하니까.”
“흐음.”
노아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이런 꼴을 보고만 있을 생각이 없었다.
그는 곧장 펠릭스의 옆자리에 앉아 직설적으로 물었다.
“알렌 선배는?”
“어설프게 지는 것보단 차라리 후련하시다더라.”
펠릭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눈치를 보는 게 불편하긴 매한가지였다.
그는 노아가 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
“뭐, 여러모로 전대미문의 사건이니까.”
옛날에는 산속에 박혀 있던 은거기인들이 기사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있던 경우도 흔했다.
그러나 정규 커리큘럼 안에 있던 학생이 기사가 되기도 전에 마스터 나이트가 되는 건 역사상 처음이었다.
마스터 나이트에게 진 건 어쩔 수 없다.
졌지만 잘 싸웠다 같은 소리가 아니었다.
이 세상에 수많은 기사들 사이에서도 마스터 나이트는 극소수.
천재적인 재능도, 뼈를 깎는 노력도 그저 최소 조건에 불과했다.
이건 진 쪽이 부족했다고 할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충격이 꽤 크셨던 모양이야. 졸업 전까지 폐관수련에 들어가겠다고 하시더라.”
“폐관수련?”
“학점은 다 따두셨으니까.”
아직 알렌과 아슬란의 졸업까진 마지막 4학기가 남아 있었다.
알렌이 연말까지 자신도 심검을 각성할 수 있다면, 기회가 없는 것도 아니리라.
물론 그게 노력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긴 하지만, 그렇다고 노력조차 안 하고 포기하기에는 시간이 꽤 남은 것도 사실이었다.
“강하구나.”
그냥 져도 분한 것이 사람이었다.
그런데 저렇게 빛나는 별에 치이고도 아직까지 열의를 불태울 수 있다는 건 분명 대단한 것이었다.
-웅성웅성.
“음?”
아무튼 노아가 펠릭스와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주변에서 수군거림이 일었다.
-그러고 보니 노아 쟤도 검은 달 기숙사에 살고 있지?
-똑같이 사도와 정도이기도 하고. 뭔가 구도가 그 둘이랑 비슷하네.
‘나랑 펠릭스를 알렌, 아슬란 선배에 빗대고 있는 건가.’
아슬란이 그렇게 화려하게 저질러 준 시점에 이미 검은 달도 주목을 받게 될 거란 건 알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조용한 학교생활을 보내던 티우나 다른 선배들도 덩달아 주위가 시끄러워지리라.
“저런 말들은 신경 쓰지 마라, 노아. 그런데 랭킹전은 언제 복귀할 예정이지?”
“네가 제일 신경 쓰네.”
재해급 영약의 흡수는 하루 이틀로 될 일이 아니지만, 노아는 무형검의 원리로 이능을 조종하며 느낀 바가 있었다.
‘아직 흡수하지 못한 오러도 외부의 힘인 채로 쓰면 된다.’
다만 이건 무형검과 달리 신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잘못 건드리면 골로 간다.
진짜로.
따라서 실전에서 쓸 수 있도록 연습할 시간이 필요했다.
“기다릴 거 없이 먼저 올라가 있어. 네가 아무리 랭킹을 올려봐야 곧 따라잡을 테니까.”
“자신만만한 걸 보니 걱정할 필요 없겠군.”
1위 결정전의 여파는 하이 랭커들의 랭킹전, 나아가 부동의 15인 내의 랭킹전까지 뒤흔들어 놓았다.
그러한 혼란 속에서 노아는 묵묵히 약속의 땅에 기록되어 있던 검흔을 따라 승을 익혔다.
그리고 3학기 종료까지 열흘을 남긴 시점.
내내 기권하던 노아가 처음으로 랭킹전 자리에 등장했다.
* * *
나이트레이 랭킹 752위 아나이스 발렌.
그녀의 특기는 양측이 서로 검을 맞댄 길항상태에서 상대의 움직임을 읽고 한순간에 제압하는 것이었다.
맞댄 검을 통해 상대의 호흡, 근육의 움직임, 시선의 방향, 나아가 사고의 흐름까지 읽어낸다.
“아무리 네가 화제의 신인이라도 나는 쉽지 않을 거야!”
이 카운터 검술 하나로 그녀는 나이트레이의 상위 랭커 자리를 꿰찰 수 있었다.
하지만,
“미안하지만 내가 더 잘 읽어.”
“……!”
정신을 차린 순간 아나이스는 자신이 경기장 바닥에 누워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를 쓰러뜨린 노아는 이미 그녀를 보고 있지 않았다.
“다음.”
696위 척 프레스톤.
8대 가문 산하의 나름 있는 집 출신.
자식이 하나뿐이라 어릴 때부터 가문의 투자를 몰아 받아 엄청난 오러량을 보유한 상위 랭커.
“아무리 네가 대단해도 근본적인 힘 차이는 어쩔 수 없을 거다.”
오러량에서 나오는 힘으로 상대를 찍어 누르는 전법이 특기인 그였지만,
콰앙!
“미안하지만 내 힘이 더 세.”
오러량으로는 노아를 이길 수 없었다.
517위 카라.
암부기사 스타일의 사도 학생.
랭킹전의 날 단체전이나 서바이벌 등의 특별경기로 이번 학기 들어 엄청난 상승세를 보인 상위 랭커.
“무엇에 당한 건지도 모르게 쓰러뜨린다. 나를 찾아낼 수 있겠어?”
“미안하지만 미아가 더 잘 숨어.”
노아의 폭풍 같은 연승은 그 후로도 계속되었다.
433위.
365위.
256위.
189위.
그리고 100위.
황실의 후원을 받는 100위권의 하이 랭커.
케인은 곤란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경기장에 나왔다.
“어째 다들 내가 어떻게 질지만 궁금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게 산제물의 기분인가?”
3학기가 끝나가는 지금.
나이트레이를 휩쓸던 랭킹전 열풍도 잦아들어 슬슬 모두가 실력대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분위기였다.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랭킹을 올려대고 있던 건 늦게 시작한 노아나, 시작 지점이 저 밑이었던 펠릭스, 티우 정도.
유니아조차 한 학기 만에 랭킹을 다 따라잡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일단은 상위 랭커를 목표로 페이스를 내린 상태였다.
“아하하…… 그 점은 죄송하게 됐네요.”
“됐어. 어차피 100위는 말이 좋아 하이 랭커지 사실상 빨리 위로 도망치지 않으면 나가리 되는 자리니까. 네가 아니라도 도전자는 줄을 섰거든.”
하이 랭커와 상위 랭커를 가르는 100위는 안주하려고 해도 안주할 수 없는 자리였다.
‘나는 더더욱 안주할 수 없고 말이지.’
노아가 여기까지 쫓아왔음에도 펠릭스는 그새 41위까지 올라가 있었다.
펠릭스는 8대 가문의 적통이니 그렇게 올라가는 게 당연하다는 의견이 대다수였지만, 그딴 건 노아가 알 바 아니었다.
그는 펠릭스를 따라잡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100위에서 발목 잡히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나 소나 훌쩍 넘어가는 불량 허들로 남을 순 없지. 나도 이 자리에 최대한 오래 남아 있고 싶거든.”
서로의 검이 바닥을 두들김과 동시에 노아는 흑아를 시전하며 돌진했다.
콰아앙!
케인은 하이 랭커답게 능숙하게 노아의 공격을 막아냈다.
‘하이 랭커는 쉽지 않다는 건가. 그래도 힘은 내가 우위야.’
재해급 오러에서 나오는 거력은 같은 세대에선 상대할 자가 없을 수준이었다.
허나 케인은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키이이잉!
사방에서 생성되려 하는 무형검을 육감으로 감지하고 상쇄한다.
허나 무형검을 다루는 실력은 케인이 노아보다 우세했다.
파바박!
상쇄하지 못한 무형검이 노아를 노린다.
무형검은 직접 들고 휘두르는 검보다 힘이 덜 실릴 수밖에 없으니 막아내는 건 문제가 없었지만, 수 싸움에서 밀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역으로 치고 들어온 케인의 공격을 흘려낸다.
노아는 선공으로 시작했으나 어쩔 수 없이 수세로 돌아서야 했다.
‘예전에 오필리아 선배와 싸웠을 때 같네.’
당시 무형검을 사용할 수 없었던 노아는 계속해서 날아오는 창으로 인해 공중에 발이 묶여 대응이 불가능했었다.
케인의 무형검은 그에 비해 훨씬 가벼웠지만 사람 하나 묶어놓기엔 충분할 정도로 빨랐다.
“역시 반쪽짜리 무형검으로는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
모두가 알고 있는,
하지만 연승 중 노아가 아직까지 한 번도 꺼내지 않은 기술.
파지지직!
“뇌명신.”
처음으로 속성변환을 꺼내 든 노아가 무형검이 따라가지 못할 고속이동으로 상대의 공격 범위에서 빠져나왔다.
내 무형검을 꺼낼 수 없다면 상대의 무형검을 발판으로 쓴다.
모든 속도를 상승시켜 제어가 불가능했던 뇌명과는 달리 순수하게 이동속도에만 집중해 컨트롤이 가능한 뇌명신.
무형검을 밟고 화려한 입체기동을 선보이며 파고든다.
허나 놀랍게도 케인은 그 속도에 반응했다.
‘그래도 안 돼!’
평범한 검기라면 모를까 노아의 흑아는 아예 닿지를 말아야지, 일반적인 막고 흘려내기가 불가능했다.
첫 공격을 막아냈던 것도 어디까지나 무형검을 덧씌웠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허나 이번에는 무형검까지 씌울 시간이 없었고,
카가가각!
노아의 흑아가 케인의 검기를 갈아 버렸다.
퍽!
검기가 강제로 깨지자 일어난 오러 반동.
노아는 쇼크로 강체술이 약해진 케인을 발로 차서 날려 버렸다.
그 정도로는 케인 정도의 실력자를 제압했다고 할 수 없었지만, 이것은 실전이 아닌 랭킹전이었다.
“끄응, 설마 했던 장외패인가…….”
하이 랭커 초고속 격파.
“먼저 올라가보겠습니다.”
케인은 노아를 바라보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나이트레이에 새로운 물결이 밀려오고 있었다.
* * *
같은 시각 스텔라리움의 퍼플 섹터.
광휘제에게 마스터 나이트임을 인증한 아슬란은 졸업 전까지 황실 기록보관소의 최고 등급 구역인 퍼플 섹터에 박혀 있었다.
마스터 나이트가 자신의 검술을 남기는 대가로 열람할 수 있는 퍼플 섹터.
이곳은 제국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마스터 나이트의 검술이 남아 있는 성소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여기엔 없군.”
그러나 ‘모든’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하는 퍼플 섹터엔, 아슬란이 찾는 검술이 없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없다. 그렇다는 건…….”
이곳에 있는 모든 서적들은 하나하나가 기사들의 보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아슬란이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그가 찾는 것은 그저 제목조차 없는, 일기장에 기록된 어떤 이름 없는 기사의 검술서.
“무명검술서는 황제가 직접 보관하고 있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