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Bireido, a parody RAW novel - Chapter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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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일
당산의 말이 시작되었다.
” 뭐라고 하지? 그런 거…”
그가 자조적으로 킥킥 웃었다.
” 보통 ‘발악’이라고 하고, 좋게 말하자면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고 하지. 결과적으로 말하면 그런 거야. 어려운 건 아무 것도 없다고.”
” ……”
” 우리 목적은 하나다. 살아남는 거.”
생존!
그 말은 단순하고도 직설적이었다.
‘ 말도 안 돼.’
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가 있었다. 도무지 상황과 맞지 않았다. 물론 당산이나 연화가 아닌 다른 이가 그런 말을 했다면 받아들였겠지만 – 말한 자가 당산이라는 시점에서 효력을 잃어버린다.
천하를 적으로 돌려도 살아남을 것만 같은 두 사람.
도리어 여유롭게 농락할 것 같은 건 내 착각일까? 그런 당산과 연화가 생존을 논한다는 건 어색하고 이질적인 광경이었다. 내 눈빛을 느낀 건지 당산이 불쾌하게 머리를 긁적거렸다.
” 아, 알고 있어. 나나 연화를 전면전에서 없애려 든다면 정천맹 전력의 팔 할이 투입되어야 할 거다. 물론 서로 옥쇄를 각오한다는 전제 하에. 만일 나와 연화가 힘을 합친다면 그 이상도 바랄 수 있겠지.
하지만 우리가 도망도 치면서 그저 생존만 바란다면 그 어떤 세력도 우릴 어찌할 순 없다. 천하에서 우릴 잡아죽일 수 있는 자는 단 세 명 뿐이겠지. 그 자들은 애초에 인간의 경지가 아니니 논외로 치고.”
이빨이 뽑혀서 발음이 샐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전음으로 대화했다.
” 아니! 말했잖아. 그들은 인간의 경지가 아니라고. 이미 무림따위 의미없어진 자들에게 우리라고 무슨 의미가 있겠어? 그들은 전혀 위협거리가 아니야. 우리가 먼저 도발하지 않는 한 그 세 명이 우리를 공격할 일은 절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알 것 같았다.
지독하게 높은 경지에 오른다면 인간사의 세력다툼이나 고수들의 싸움도 하잘것없게 변할 것이다. 그저 위에 또 위를 추구하는 [방향성] 그 자체가 될 뿐. 인간세상에서 신선(仙)이라고 표현하는 자들이다.
그 셋이 누군지 궁금했지만 일단 당산의 말을 끝까지 듣기로 했다. 당산은 손목을 휘휘 내젓더니 말을 이었다.
” 너도 알다시피 우리 수준이면 천하를 논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데 생존을 말하는 이유가 궁금하겠지. 그건 애초에 우리가 이 세계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 ……”
역시 그랬던 건가.
나는 예감했던 사실이 귓가로 들어오자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들었다. 이 녀석들도 나처럼, 다른 세계에서 이 세계로 건너온 – 이른바 진입자다. 그들도 육체를 빌고 있을 뿐 영혼은 이 세계 것이 아닌 것이다.
” 정식으로 소개하지. 내 원래 이름은 권강한이라고 하고, 이런 경험은 몇 번 있다. 나는 연화와는 달리 영혼만 넘어와서 육체에 빙의했다. 물론 그것도 내 의지는 아니었다.”
권강한. 이름으로 보아서는 나처럼 한국 출신인 것 같다. 물론 동방계 이름 중에서 그런 게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래도 왠지 말하는 투가 익숙해서 친근감이 들었다. 게다가 녀석도 나처럼 진입 경험이 있는 것이다.
[ 연화와는 다르다고?]내가 힐끗 연화를 바라보자 연화는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옥구슬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저는 제 의지로 건너왔습니다. 그대들처럼 전생(傳生)하진 않았습니다.”
[ 뭐라고?!]나는 순간 놀라고 말았다. 그런 게 가능하다고 들은 적은 없다!
당산 – 아니, 권강한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 뭐, 그런 거지. 연화는 우리들 중에서도 특별해. 육체를 지니고 차원의 장벽을 넘을 정도로 강했거든. 이 세계에 건너온다고 힘을 거의 다 써서 지금은 원래 실력의 일 할에 불과해.
아! 이젠 연화불창을 얻었으니 삼 할은 되겠군.”
” ……”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지금만 해도 천무삼성보다 강하다. 아마 팔왕 하은천보다 반 수 위에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게 원래 실력의 삼 할에 불과하다니, 원래는 얼마나 강했다는 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 때 나는 당산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느껴서 반문했다.
[ 우리들이라고?]” 눈치가 빠르군. 뭐 그래 – 진입자는 더 있어.”
[ ……!!]” 이 세계가 미쳐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지.”
원한이 서린 눈으로 씹어뱉듯이 말한 권강한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왠지 감정표현이 풍부한 녀석이었다. 원래 성격은 꽤 산만했을 것 같지만 무예수련때문에 많이 가라앉은 것으로 보였다.
권강한이 검지손가락으로 하늘을 스윽 가리켰다.
” 지금으로부터 약 이십여 년 전 – 최초의 진입자가 이 세계에 도달했다. 그를 시작으로 총 다섯 명의 진입자가 도달했지. 진입자들은 서로의 존재를 거의 느끼지 못했고, 예외가 있다면 연화 정도였다. 말했듯이 그녀는 자기 의지로 건너온 거니까.
사실 문제는 없어보였다. 우리가 무협에 나오는 천살성이나 악의 수뇌도 아니잖아? 그냥 태어나서 먹고살고 죽으면 그만이야. 특별할 건 아무것도 없지.
문제가 있다고 하면 그거였지.
뭐 살면서 이런 말 들어본 적 있지? [존재 자체가 죄].
우리는 바로 그런 상황에 놓여버린 거다.”
” …..”
나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무협을 논하는 것으로 보아서 역시 권강한은 한국계의 인간이다. 동향 사람을 만났다는 반가움을 느낄 새도 없이 불길함이 엄습했다. 그건 내가 살아오면서 터득한 직감이 경종을 울렸기 때문이다.
권강한이 어둡게 웃었다. 그 웃음은 마치 환마동에서 봤던 미래의 내 웃음과 비슷했다.
” 가득 차 있는 물통에 다른 음료를 한 모금씩 떨어뜨리면 어떻게 될까?
물통이 넘쳐버리게 된다.
우리의 존재가 세계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파멸을 초래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왠만해서는 세계 하나에 진입자 하나가 딱 적당하다. 실제로 나는 그런 경험을 세 번이나 겪었다. 세계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정도였지만 – 이번엔 좀 달라. 진입자만 다섯 명이나 된다구. 이상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지.”
권강한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지. 각자에게 ‘저주’가 내려져버린 것이다.
유천영, 너에게는 열흘의 하루가 덧씌워져 버렸고, 나는 전생에 얻었던 힘을 거의 발휘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내가 얻은 힘은 전우주적인 능력이었는데 말이야. 연화는 이 세계로 건너오는 대신에 힘을 거의 다 잃어버렸다.”
그랬던 건가.
환마동에서 나 자신이 했던 말이 그제야 이해가 갔다. 세계가 나를 없애려고 열흘의 하루를 내렸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권강한과 연화는 원래 엄청나게 강대한 신적 존재였겠지만 힘을 거의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나는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하고 물어보았다.
대답은 즉시 들려왔다.
” 내가 원래 힘을 되찾으면 가능해. 내 힘만 되돌아 오면 너희들을 모두 돌려보내고 난 다음에, 이 거지깽깽이같은 세계를 통째로 박살내버리는 것도 손쉽다. 세계 하나쯤 없애버리는 건 일도 아니라고.”
[ ……]과도한 자신감이나 오만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게 더 무섭다.
권강한이 힘을 되찾지 않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샘솟았다. 이 놈이 원래 어떤 존재였을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곧 권강한은 피식하고 웃으며 자신의 손을 내려서 무릎 위에 올렸다.
” 뭐 불가능한 일이지만. 내가 이 세계의 육체를 빌려서 전생한 시점에서 힘을 되찾는 건 물건너 갔어. 다행히 최소한의 힘은 남아 있어서 지금까지 살아 남은 거라고.
아무튼 돌아갈 방법이 있냐고 하면 두 가지밖에 없어. 법칙을 조율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러서 차원의 벽을 넘던가, 그것도 아니면 육체를 버리고 영혼만 남아서 차원을 헤매는 것이다.
후자의 방법은 그리 추천하지 않는다.
차원의 미아가 되면 신도 구제할 수 없거든.”
권강한은 술수나 차원지식에 정통한 것 같았다. 나처럼 억지로 끌려다닌 것과는 달리 상당히 주체적으로 진입자의 경험을 겪은 듯 하다. 나는 권강한의 말에 집중해서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 이 세계에서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갑자기 철학적인 질문이냐? 좀 봐줘.
한 번 죽어보면 알지 않겠냐.”
나는 살기를 일으켰다.
” 농담이야. 그렇게 째려보지 마. 난 아직 경지가 낮아서 무섭다고.”
권강한은 황급히 말을 수습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이 녀석은 너무 장난기가 많아서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열흘의 하루를 겪기 전이었다면 꽤 마음이 맞았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가 싫은 쪽에 가깝다.
” 죽으면 이 세계의 윤회(輪回)에 귀속된다. 태어나서 죽고 환생하고, 다시 죽고… 그걸 반복하면서 이질적인 성격이 사라지게 된다. 그 때가 되면 저주도 풀리게 될 거다. 왜냐면 더 이상 침략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너도 그렇게 되기는 싫지?
그건 어떤 의미에서 진짜로 죽는 거다. 그것만큼은 피해야 된다. 두 번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없게 되어 버려.
참 상황이 더럽기도 하지. 우리는 한 번 죽으면 그대로 끝이라니.”
나는 대답을 하면서도 복잡한 심경에 휩싸였다.
그렇다면 어째서 환마동에서 내 미래가 나타난 것일까? 결국 평행세계에서 모두 죽고 말았다면, 그들도 내 앞에 나타날 수 없었다. 윤회에 영혼이 스며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환마동에서 미래를 보고 말았다.
나는 연이어서 질문했다.
[ 그러면 방법을 알아낼 때까지 그냥 이 세계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면 될 거 아닌가. 어째서 굳이 이렇게 번거로운 일을 하면서 동료를 모으고 있는 것인가?]이해가 안 된다. 당산이든 연화든 천하에서 건드릴 사람이 없다.
그러면 조용히 무림에서의 자기 지위를 누리며 살아가도 무리가 없는 것이다.
” 좋~은 질문이야.”
권강한은 피식 웃더니 말했다.
” 아까 우리 말고도 두 명의 진입자가 더 있다고 했지?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면서 뛰어다니는 건 그 녀석들 때문이라고. 그 녀석들이 본격적으로 우리를 없애려고 들기 때문에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
[ 없앤다고? 왜?]그의 목소리가 차츰 가라앉았다.
” 우리들은 결코 자기 존재가 사라지는 걸 원하지 않아.
아무리 차원을 이동하든 나는 나다! 그렇게 강대한 자기(自己)가 있기 때문이다. 너는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무념(武念)의 길에 몰두하기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유천영 이전에 있던 자기자신을 부정하진 않잖아.
그래서 아직까지 돌아갈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고.”
그건 확실히 그렇다.
이 세계에서 내 이름은 유천영이지만, 원래 이름은 다르다.
” 그 녀석들은 다르다.
이 세계에 푹 빠져버려서, 이 세계에 뼈를 묻고 싶어하는 거지.
그래서 세계의 수정력과 계약해서 또 다른 [능력]을 손에 넣었다. 그 힘으로 우릴 없앤 다음에 무림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려는 속셈이다.”
권강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 네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 두 녀석과 싸운다면 필패(必敗)다.
그 능력이 뭔지는 나도 모르지만, 확실히 무림의 패자(覇者)로 올라서도 이상하지 않을 능력일 게 분명하다. 우리는 그들의 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너와 손을 잡으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