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Bireido, a parody RAW novel - Chapter 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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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겁가(永劫歌)
” 쿨럭, 허억…”
간헐적으로 신음소리와 함께 피를 토해내는 백발의 청년이 있었다. 그는 희미한 빛이 들어오는 동굴 속에서 몸을 비틀고 있었는데 종종 눈이 은빛으로 빛나곤 했다. 전신이 말을 안 듣는지 부들부들 몸을 떠는 모습이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런 청년이 정신을 차린 것은 왠 목소리 때문이었다.
” 슬슬 이야기를 나눠도 될 것 같군.”
그 목소리에는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패기가 서려 있었다. 현재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백발청년은 이를 악물며 전신을 몰아치는 고통을 간신히 버텼다. 그러나 몸의 떨림만큼은 어찌할 수 없어서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며 한기를 견디는 정도였다.
그런 백발청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자가 말했다.
” 용안(龍眼)을 심하게 쓰면 그런 부작용이 일어나나 보군. 처음 알았다.”
” 크.. 크으… 윽…”
백발청년은 뭐라고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전신의 혈맥을 찢어발기는 고통이 너무 심했다. 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은 의문의 괴인은 품에서 왠 풀을 꺼내서 백발청년의 입에 강제로 쑤셔넣었다.
” 크읍! 윽!”
백발청년은 그 풀을 거부했으나 괴인은 억지로 턱과 근육을 움직이게 만들어서 씹게 했다.
풀을 강제로 씹게 된 백발청년은 약 반 각 후 자신의 무시무시한 격통이 가라앉으면서 약간의 부유감이 찾아오는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 정천맹의 암부(暗部)로써 교육받은 지식에 따라서 이게 무슨 풀인지 알아차렸다.
‘ 마약(麻藥)…!!’
마약이라고 통칭하는 진정제 중에서도 양귀비를 포함한 강력한 중독성 풀을 조합한 듯 싶었다. 당연히 고통이 씻은듯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대로 가면 자신이 마약에 중독된다는 걸 알아챈 백발청년은 억지로 위를 게워냈다.
” 우웨에에엑..!!”
잠시 후 백발청년이 위를 게워내는 게 끝나자 괴인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 비싼 약초인데 무례한 놈이군.”
” 큭… 웃기지 마라. 마약을 주다니!”
” 그런건 중요하지 않다. 네가 내 말을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게 중요하다.”
그제서야 백발청년은 괴인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어둠 한켠에 몸을 묻고 있으나 숨길 수 없는 미청년이며, 강대한 힘을 흘려내는 초고수(超高手)였다. 용안을 보유하고 있는 백발청년은 그가 자신보다 고수라는 걸 첫 눈에 알아챘다.
이윽고 괴인이 말했다.
” 종남파 검군(劍君)의 막내, 그리고 선운산 10인의 기재로 발탁된 무검(無劍) 간화명. 맞나?”
” ……”
무검은 대답하는 대신 자신의 검을 뽑아들었다. 몽롱한 기운이 머리에 감돌고 있었으나 무공을 발휘하는데는 이상이 없었다. 그러자 괴인이 이어서 말했다.
” 기억나지 않는가? 선운산이 통째로 날아갈 때 내가 너를 구해줬다.”
” 음.”
무검은 침음성을 흘렸다. 정신이 들면서 그 사실도 함께 기억난 탓이었다.
그는 북천멸겁을 막아서려다가 무신마의 비키라는 한 마디에 맥을 잃고 옆으로 튕겨나갔다. 그리고 두 절대자들의 충돌의 후폭풍에 휘말려서 밀려나다가, 마침내 산이 부숴지는 순간에 암괴(巖壞)의 소용돌이에 들어가버린 것이다.
용안을 이용해서 필사적으로 목숨을 부지하는데는 성공했으나 기력을 모두 소모하며 기절해버린 듯 했다. 그리고 기절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게 괴인이 장력을 날려서 자신을 구해주는 장면이었다.
무검은 이대로 싸워봤자 자신이 10할 확률로 패배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또한 초절정의 경지를 넘어섰으나 괴인은 그런 무검보다 더욱 강했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괴인의 말을 한번쯤 들어봐도 좋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당신은 누구지?”
들려온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 남천멸겁(南天滅劫) 비(秘).”
” ……!!”
무검은 그 순간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그 말대로라면 천겁령을 지배하는 4인의 절대자 중 한 명이 눈 앞의 미청년이란 말이 아닌가! 그는 즉시 도망칠 준비를 했으나 이윽고 비가 의념의 영역을 확장해서 심어권(心御圈)으로 무검을 붙들어매었다.
도망치려 하면 즉시 죽여버리겠다는 기세의 영역.
그걸 깨달은 무검이 침을 꿀꺽 삼켰다.
남천멸겁 비가 천천히 말했다.
” 내가 너를 구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 ……”
” 너를 내 부하로 만들고 싶어서다.”
무검은 이를 악물고 즉시 대답했다.
” 거절한다. 죽어도 천겁령은 되지 않아.”
꼴사납게 북천멸겁과 무신마의 대전에 휘말려서 쓰러지긴 했으나, 그 또한 의념의 영역에 도달한 고수였다. 용안이라는 타고난 재능은 다른 기재들 못지않은 엄청난 성장성을 보여주었다. 단순한 무공만으로 친다면 모용휘나 윤준호들의 바로 아래까지 와 있는 상태였다.
또한 그는 정천맹의 암부로써 제대로 교육을 받은 상태였다. 고문훈련에 정신교육까지 확실하게 되어있는 검군이 이런 회유에 넘어간다는 게 바보같은 일이리라. 그러나 남천멸겁 비가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 천겁령은 끝났다.”
” 뭐라고?!”
” 그리고 나도 더 이상 남천멸겁이 아니다.”
거기까지 말한 비는 무검을 강하게 쳐다보았다.
” 이해가 되지 않나? 천겁령이나 남천멸겁의 부하가 아니라, 이 나의 부하가 되라는 거다.”
그 말에는 수많은 뜻이 함축되어 있었다.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인 무검은 잠시 생각한 후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는 잠시 후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더듬더듬 말했다.
” 북천멸겁이… 죽은 거냐?”
” 북천멸겁도 죽었고 동천멸겁도 죽었다. 나도 천겁령을 이어나갈 생각이 없으니 천겁령은 이제 해산이다.”
” 음…..!!”
무검은 갑작스레 닥쳐온 특급정보때문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천겁령의 수괴인 북천멸겁과 동천멸겁이 죽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담담하게 남천멸겁이 고하며 천겁령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건 장난이 아니었다. 강호의 역사가 뒤바뀌었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검은 비가 자신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 받아들이지 않으면 날 죽일 생각이군.’
방금 전까지도 그는 죽을 각오를 굳히고 있었으나 지금은 다르다. 눈 앞의 상대는 천겁령을 버린 채 자신의 친위대를 만들 목적으로 자신에게 제안을 하고 있는 것이며, 이건 아까와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있는 제안이었다. 무검이 비를 쏘아보며 말했다.
” 이게 정천맹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알지? 그리고 당신이 천겁령을 잇지 않겠다는 것도 믿을 수가 없다.”
”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 뭐라고.”
” 무검 간화명. 너는 왜 정천맹과 종남파에 충성하고 있는 것인가?”
뜬금없는 물음에 간화명은 잠시 머뭇거렸다.
비의 물음은 당연해보였으나 검군이라는 정체성의 핵심을 꿰뚫고 있었다. 무검을 포함한 모든 검군들은 정천맹에 충성하고 있었으나 동시에 그들을 증오하고 있었다. 사문에서의 밝은 미래를 버리고 어둠속에서 평생 살아야 하는 울분, 그리고 타락한 정천맹의 뒤치닥거리나 하며 소모품으로 쓰이는 좌절감이 강했다. 그렇기에 다른 정천맹의 무력단체들처럼 망설임없이 충성을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비의 말이 이어졌다.
” 나는 너희 검군들에게 충성심이 없다고 생각한다. 네가 아닌 다른 검군이었다면 나의 첫 제안을 그대로 승낙했을거라고 본다. 천겁령에 거부감을 보이며 내 속내를 알아보려는 건 네놈의 마음속에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 기대감?”
비가 싸늘하게 말했다.
” 내가 네놈의 주군이 될 수 있을지 시험하는 거겠지!”
막무가내였다.
그러나 간화명은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먹먹해지는 걸 느꼈다.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는 자신을 느꼈기 때문이다. 눈 앞의 괴인, 비는 인간의 마음을 읽는데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렇다. 사실 간화명은 그렇게 정천맹이나 흑천맹같은 단체에 애착심이 없었다. 천겁령에 거부감을 가지는 건 어디까지나 선운산 기재로서의 정체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검군들처럼 언제든지 정천맹에 칼을 들이밀 수 있다. 다만 자신과 함께 수련하고 시간을 쌓아온 선운산 기재들에 대해서는 다르다.
비가 본론을 꺼냈다.
” 너는 용안(龍眼)의 소유자다. 그리고 선운산에서 무신마에게서 특별수련을 받았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너라면 충분히 앞으로 내 오른팔이 되어서 일해줄 수 있을 것이다.”
” 용안이 뭔지 알고나 말하는 건가?”
무검이 그를 살짝 비웃었다.
” 당신 경지가 앞서 있다고 자만하지 마라. 나는 2년 내에 당신을 넘어설 자신이 있으니까.”
허세인가?
무검을 아는 사람들이 보면 황당하다고 느낄 발언이었다. 세상에 천무삼성급 이상으로 성장한 비를 넘어서겠다고 당당하게 말하다니!
그도 그럴것이 용안의 소유자라서 선운산 기재들 명단에 넣었는데 정작 성장한 속도는 다른 기재들에 비해 특별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신마조차도 무검이 특별한 존재인가 묻는다면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것이다.
그러나 비는 흥미로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 용안이 특별하다는 건 알고 있지. 너는 아직까지 용안을 각성하지 않았나보군.”
” 뭘 다 아는 것처럼 얘기하는지 모르겠다만.”
” 당연히 알고 있지.”
이어진 비의 말에 무검이 눈을 부릅떴다.
” 용안의 정통계승자, 월승혼이 내게 용안 각성의 비밀을 알려줬다. 네가 아는 것만큼은 나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 뭣…!!”
” 틀렸나? 너는 인위적으로 용안각성을 멈추고 있었다. 이유는 짐작이 간다.”
” ……”
잠시 후 무검이 말했다.
” 내가 당신 부하가 된다면 뭘 해줄 수 있지?”
반쯤 마음이 흔들리는 무검이었다.
비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 용안천성(龍眼天星)과 용안영수(龍眼靈樹)의 부작용을 막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
” 확실한가?”
” 정통후계자가 남긴 방법이다.”
백발청년, 무검은 고개를 끄덕였다.
” 좋다. 비 당신을 따르겠다.”
무검이 더 이상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선운산의 기재이자 정천맹의 암부라는 출신을 모조리 버리고서라도 비에게 협력할 이유가 충분했다. 무검은 언제고 검군의 운명을 가둬버린 정천맹이라는 단체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길 원하고 있었고, 비는 천겁령을 버린다고 확언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마지막 제시안이었다.
부나 명예 따위는 무검에게 필요 없었다.
용안의 부작용을 막는다!
그것 이상으로 현재의 무검에게 중요한 것은 없다.
나예린처럼 용안이 옅게 발현된 경우는 잘 모르겠지만, 순수 용안혈통에 가까운 무검에게 있어서 용안의 각성이란 축복이자 저주였다. 천성의 단계에 오르면 지계(止界)가 가능해지는 무적의 능력이지만, 동시에 용안능력자는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수명이 깎여 나갔다. 게다가 각성을 해서 용안의 능력을 강화시키면 강화시킬수록 명줄이 단축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무검은 마음만 먹으면 영수(靈樹)의 단계를 넘어서 천성에 올라 지계능력까지 쓸 수 있었음에도 자신의 용안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강해져봤자 명줄이 짧아지면 아무런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비가 말했다.
” 이 세상에 초월자가 날뛰는 건 영원하지 않다.”
” ……”
” 멀지 않았어.”
서서히 동굴 밖에서 빛이 밝아오고 있었다.
비는 아침햇빛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 나는 언젠가 새로운 질서가 될 것이다.”
북천멸겁이 죽은 순간부터 그의 삶에 씌워져있던 굴레는 풀렸다.
이제 남은 건 자기자신으로 살아가는 일 뿐이다.
그는 이제부터 바쁘게 움직일 생각이었다.
그는 아직까지 판도를 움직이기에 자신의 힘이 미약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억지로 팔왕들에게 엉겨붙기 보다, 할 수 있는 한에서 자기만의 세력을 만들어서 확장할 생각이다.
이제 곧 검군에 이어서 화정맹(華正盟), 마천각(魔天閣)을 장악하고 나면 그것만으로도 구파일방과 대적할만한 세력이 될 것이다. 거기에다가 서천멸겁과 검문(劍門)까지 자신의 휘하에 넣게 된다면 구(舊) 천겁령에 못지 않은 새로운 어둠이 탄생할 게 분명했다.
세상이 주목하지 않는 한 켠에서 또 하나의 야망이 일렁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