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160)
EP.161)밤 # 2
161 – 낮과 밤 # 2
솔직히 말해서 나는 밤에 종종 거리를 돌아다녔다.
물론 앙그마르 왕국에 있었을 때의 이야기다.
그런 내가 밤에 돌아다니는 이유는 남의 눈을 피해 나쁜 짓을 하기 위함이었다.
나를 반대하고 물어뜯는 귀족들의 정보를 캐고, 그들의 약점을 붙잡기 위한 일 같은 것 말이다. 남들 눈에 들키면 안 되는 일 같은 거.
보통 그런 일들은 검은 옷을 입고 은밀한 밤, 뒷골목에서 행해지니까. 암살자 칼리라 영애를 만난 것도 뒷골목의 으슥한 밤이었지.
그런데 굳이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내게 ‘밤에 돌아다니는 것’ = ‘나쁜 짓’이라는 공식이 꽤 오래 전부터 있었다.
내가 태오 가스펠이 되기 전에, 그러니까 평범한 인간 이성음으로 지낼 때부터 나는 밤에 돌아다니는 것에 기묘한 배덕감 같은 것을 느꼈다고 해야 하나.
보육원과 학교에서의 가르침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딴 짓 하지 말고 일찍들 들어가라.
어느 곳이건 선생님들은 늦은 밤 시간에 학생들이 돌아다니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그래서 학생들을 일찍 귀가하도록 만들려 하니까.
그래서 나는 중학생 때까지만 하더라도 오후 10시를 넘겨서 돌아다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성인이 되고. PC방을 비롯하여 찜질방 등과 같은 시설을 자정 넘겨서 이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또 자취하던 새내기 시절, 새벽의 공기를 마시며 혼자 새벽의 24시간 편의점을 오갈 때 나는 기묘한 일탈감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내가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기분.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고 있는 배덕감.
물론, 밤에 돌아다니는 것으로 뭐 그리 호들갑을 떠냐고 누군가 핀잔 줄 수 있겠지만 그때의 나는 적어도 그랬다.
사실 지금의 나는 이제 밤에 돌아다니는 것으로는 별 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나이를 먹고 이런저런 경험을 했기 때문이겠지.
그런 내가 지금 왜 이런 시시콜콜한 자기피력을 하고 있느냐-. 나르미의 손에 이끌려 향하고 있는 밤거리에서 그 어린 시절의 향수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나르미는 나를 으슥한 골목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근처에 놓인 맨홀 뚜껑을 열고 그 밑으로 보이는 사다리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먼저 내려갈래? 아니면 내가 먼저 내려갈까?”
저 지하도 밑에 뭐가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나르미가 내게 엿을 먹이려고 하거나 혹은 함정에 빠트리려고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제가 먼저 가죠.”
그랬기에 나는 용기를 내서 먼저 사다리에 손을 뻗었다. 텁텁텁-하고 박자감 맞춰서 하나씩 내려가고 있으려니까 나르미가 나를 따라와서 사다리를 내려온다.
그때 위에서 나르미가 말했다.
“아, 위보면 안 돼! 나 지금 교복 치마입고 있으니까!”
“그러죠, 뭐.”
타닥. 철퍽.
마침내 발을 딛자 생각보다 축축하고 습한 바닥에 내 구두 밑창이 질척인다. 찝찝하구만.
─라이트.
나는 1위계의 가장 기본적인 발광 마법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내 손바닥에서 떠오른 구체가 사방을 비췄다.
평범하구만.
평범한 하수도야.
쥐들이 찍찍거리고, 용도 모를 쓰레기나 고철 따위가 버려져 있는 지하 하수도. 그것이 내가 내린 감상이었다. 앙그마르 국내에서도 이런 하수도가 잔뜩 있었지.
검은 로브단인가 하는 도적떼 녀석들이 하수도를 점거해서 온갖 불법적인 일들을 행했기 때문에 대대적인 토벌을 계획하고 있었던가. 라인하르트가 잘 해결했을지 모르겠네.
그때 바닥에 내려와 탁탁-하고 치마 주름을 편 나르미가 말했다.
“어때? 괜찮겠어? 축축하고 곰팡내나지만.”
“그렇긴 한데, 이 정도를 못 참을 정도는 아니니까요.”
나는 나보다 나르미가 이 하수도에 있는 것이 더 신기했다. 그녀는 드레이코 가문의 영애. 꽃과 이슬, 아름다운 화원과 나비 같은 것이 더 어울리는 여자애였으니까.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르미는 무덤을 지키면서 시체들을 파묻고, 또 흑마술과 강령술에 재능이 많은 강령술사였다. 강령술사들에게는 이런 지하도 같은 곳이 어울리긴 하지.
“그럼 나 잘 따라와야 해! 중간중간 함정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 * *
아무튼 아크 본관 근처의 지하에 이렇게 던전 같은 지하수로가 존재한다는 건 또 처음 알았다.
다만 나르미는 이곳에서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꽤 익숙한 듯이 보였다. 이곳에 와 본 경험이 꽤 되는 것처럼 능숙하다.
“여기 이쪽이야!”
나르미는 열정적인 모험가 같았다.
아크의 지하수도, 그 곳곳에 도사린 온갖 함정들과 거대한 마물들을 척척 쓰러트리는 모습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본 스피어.
촤아아악.
나르미의 손끝에서 뭉쳐진 뼈의 창이 거대한 괴물 쥐의 몸통을 단박에 꿰뚫는 걸 보면 감탄스럽다 못해 무서울 정도였다.
툭툭.
내 몸통만큼 커다란 쥐의 사체를 발로 툭툭 건드려보며 내가 물었다.
“쥐가 뭐 저렇게 크죠?”
“나도 몰라!”
“그렇군요.”
“내가 알기로는, 무슨 마법진 영향이라고 그랬던 것 같은데.”
“마법진요?”
“성장촉진의 마법인가. 무슨 그런 게 이 아크 어딘가에 있고. 또 그것에 영향 받은 생물들이 이렇게 커진다고 들었어.”
성장촉진 마법이라.
그러고 보면 이 아크 주변에서 나타나는 마물들은 비정상적으로 커진 생물들이 대부분이었다.
거대한 개미부터 헬리콥터처럼 거대한 헤라클레스 말벌 그리고 거대한 쥐에 바퀴벌레까지. 그게 마법진의 영향이라면 나름 납득이 된다.
그런 편리한 주문 같은 게 정말 있다면 혹시 나처럼 작고 왜소한 반요정들도 키를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진다.
182cm, 태오 가스펠.
멋진데.
다만 그런 꿈같은 상상은 오래가질 않았다.
━즈즈즈.
프더더더덕.
내 몸만큼 커다란 바퀴벌레가 날 향해 날개 짓해서 날아왔으니까.
“으악, 시발, 깜짝이야-!”
방심하고 있던 나는 그만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날리며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 모습에 나르미가 깔깔 웃으며 손을 내밀어주었다.
“벌레, 무서워하는 구나?”
“나르미 님은 무섭지 않나요?”
“나는 종종 고독(蠱毒)을 만들어봤거든! 묘지에서는 지네나, 송장메뚜기 같은 거 잔뜩 나오니까. 그래서 벌레는 아무렇지도 않아. 우리 언니는 무서워하지만.”
고독이 뭔가 싶다가 예전에 책에서 봤던 글을 떠올려 봤다.
독이 있는 벌레들을 항아리 하나에 가둬놓고 서로 죽이게 만들고 잡아먹게 만들면 그 결과 그 자체로도 하나의 저주가 된다고 했었나.
“그걸 만들어서 어떻게 했나요?”
“지금도 별장에서 잘 키우고 있어! 언니는 질색하지만. 자세히 보면 귀엽거든. 나중에 한 번 볼래? 성격도 착해.”
“그, 그렇군요.”
으스스하구만.
그래서 결국 이 벌레들 득시글거리는 지하에 나르미가 날 데려온 이유가 뭘까 고민에 잠길 즈음, 서서히 뿜어지는 밝은 빛 같은 게 보이기 시작했다.
“거의 다 온 모양이야!”
걸음을 재촉하는 나르미.
나 역시 나르미를 놓칠 새라 허겁지겁 뛰어가니 곧 나의 얼굴로 화아아 빛이 뿜어졌다. 지하수로의 오랜 어둠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 그 눈부심은 절로 인상이 찡그려질 정도였다.
“어때? 멋지지?”
나르미가 밝은 달처럼 웃으며 손을 뻗어 허공을 가리켰다.
그녀의 가느다란 손끝에는 여기저기 설치되어 있는 발광석 조명과 그 아래로 분주히 오가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자, 오늘 던전에서 갓 들어온 광대버섯 팝니다. 품질 좋아요.
━던전 우두머리 죽이고, 상자에서 얻은 저주받은 장검 팝니다. 감정은 아직 안해봤어요. 가격은 제시해주세요.
그들이 여기저기 떠들어대는 소리가 웅성웅성 시끄럽지만 그만큼 활기가 있어서 보기 좋았다. 그때서야 나는 이곳이 뭘 하는 장소인지 눈치 챌 수 있었다.
지하시장이구나.
아크 내에 용사들끼리 물건을 사고 파는 장터가 활성화 되어 있다고 얼핏 들었던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바로 여기였다.
“교단의 방주 아래에 이런 곳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네요.”
내가 순수하게 감탄하자 나르미가 하얀 이를 씩 드러내며 웃는다.
“빛이 밝으면 그림자도 짙은 법이니까. 물론 교단 사람들도 알고 있을 걸. 그냥 쉬쉬 해주는 거지.”
그 깐깐한 교단이 이런 불법적인 시장을 묵인해준다니.
하지만 나는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이런 시장은 뭘 해도 생기게 되어 있다. 그걸 탄압할 경우 더욱 음지로 파고들고 점조직으로 분화되어서 통제할 수 없게 되어버릴지 모르는 일.
그랬기에 그냥 이렇게 한 데 모아서 관리하는 게 편하긴 하다.
실제로 교단의 관리를 증명하듯 여기저기 성십자를 견장에 달고 있는 병사나 용사들, 기사들이 지하에 돌아다니고 있는 게 보였다.
시장의 손님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시선은 손님의 그것이라기보다는 관리하고 감독하는 자에 더 닮아 있다.
아무튼.
이런 곳에 또 있었구만.
“여기는 밤에만 열리거든. 미르나 언니는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곳일걸?”
“과연, 미르나 님은 이런 곳에 오실 분은 아니죠.”
미르나는 나르미에 비해 좀 더 교단의 규율에 깐깐하다.
그녀라면 이곳을 보고 분명 “불경한 장소네요. 쥐처럼 어둠 속에 숨어 속닥거리는 곳이라니…!”라고 분개했을 터.
그런 의미에서 나르미는 미르나 보다 신앙심이 낮은 모양이다.
그리고 그 말은, 미르나가 마음에 두르고 있는 강철 같은 정조관념이 나르미에게는 현저히 더 적다는 소리가 아닐까. 상대적으로 오픈 마인드라고 봐도 좋다.
나르미의 점수를 딸 수 있는 기회가 좀 생겼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할 때 내 눈에 잡화들이 좌르르 놓인 가판이 보였다. 그리고 그 가판을 운영하고 있는 것은 금발 머리칼을 짧게 단발로 자른 님프다.
“골드노이?”
요정의 밤에서 내게 고위 주문을 팔았던 도굴꾼 님프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분명 녀석의 이름이 보물의 님프 골드노이였던가.
하지만 금발의 님프는 미간을 찌푸렸다.
“골드노이? 나를 그런 사기꾼 님프와 같은 취급, 하지 말도록 하는 것입니닷…! 나는 매물의 님프, 도지노이…! 언젠가 열심히 돈을 모아서 달나라로 갈 것입니닷…!”
매물의 님프? 도지노이는 또 뭐야.
님프들이란.
녀석이 내게 관심을 갖는다.
“아앗, 당신은 님프입니까? 요정인데 남자라니. 분명 반요정이 틀림없는 것입니닷…! 형제에게는 특별히 물건, 할인 해드리겠습니닷…!”
물건을 할인해준다니.
녀석이 무슨 물건을 파나 살펴봤다. 녀석의 가판에는 깨진 유리조각이나 찌그러진 깡통 같은 잡동사니부터 누군가의 금이빨이나 정체를 알 수 없는 단검. 반지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내 시선을 잡아 끈 것은 귀걸이였다. 손톱 크기 정도 되는 은빛 귀걸이. 모양은 부메랑처럼 생겼는데 이제 보니 초승달을 나타낸 듯하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도지노이가 잽싸게 말했다.
“안목이 좋은 것입니닷…! 이 귀걸이로 말하자면, 달의 여신으로부터 축복을 받은 아주 훌륭한 물건인 것입니닷…! 재질도 무려 백금…! 알러지 반응도 없을 것입니닷…!”
달의 여신?
내가 알기로 교단 아크에서 섬기는 신은 빛과 소금의 신이다. 유일신이라고 해도 좋다. 하지만 달의 여신이라는 것은 아마도 이단 종교, 이교의 신을 뜻하는 것이겠지.
확실히 지하시장이 아니면 볼 수 없는 물건이다. 그때 눈앞으로 글자가 떠올랐다.
「달빛 귀걸이 : 달빛을 받으면 은은하게 반짝인다. 별 다른 효과는 없지만 여성들에게 인기 만점. 매력 수치를 소량 보정해준다.」
달의 여신으로부터 축복을 받았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던 것 같지만, 나름대로 마법적인 세공을 거친 물건인 모양이다.
“초승달처럼 생겨서 예쁘다. 크기도 작아서 앙증맞고.”
나르미가 흥미를 갖는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도지노이가 음흉하게 웃었다.
“지금 사시면 귀를 뚫는 무통 바늘…. 바르는 마취약…, 서비스로 드리는 것입니닷…! 이런 대 출혈 서비스는 오직 지금, 여기 이 자리의 도지노이밖에 없는 것입니닷…!”
“그래서 이게 얼마인데?”
내가 묻자 도지노이가 어딘가에서 꺼낸 주판을 이리저리 튕겼다. 그리고는 무슨 근거를 기준으로 했는지 모르지만 제법 놀랄 만한 가격을 말한다.
“깔끔하게 한 쌍, 100만 코인만 내는 것입니닷…!”
백 만원짜리 귀걸이라니. 비싼 건지 싼 건지 구분이 잘 안 된다. 여성의 장신구치고는 싼 편인가? 아니면 귀걸이 치고는 비싼 건가?
“이걸로 줘!”
그때 나르미가 명랑하게 외쳤다. 지갑에서 꺼낸 지폐 다발이 오가고. 그것으로 거래는 깔끔하리만치 끝.
내가 물었다.
“다른 곳을 더 돌아봐도 되지 않겠나요?”
“아냐, 난 이게 좋아. 근데, 귀걸이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어떻게 하면 되지? 귀를 뚫어야 하잖아. 아프면 어떻게 하지….”
그런 나르미의 빨간 시선이 이내 나를 향했다.
“태오야, 네가 대신 해줄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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