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183)
EP.184)앤 테이크 # 3
184 – 기브 앤 테이크 # 3
내 방에 찾아온 손님들은 꽤 있었다.
엘가는 내 방이 무슨 자신의 아지트라도 되는 것처럼 자주 들락달락 거렸고. 미르나나 스텔라 벨호크 교수가 찾아오기도 했었다.
그녀들이 이야기도 없이 불쑥 찾아왔을 때 여러모로 놀라긴 했었지만 오늘 만큼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은 때가 없었다.
“태오야, 어딜 갔다가 이제 오는 거냐고 물었어. 너도 잘 알겠지만. 나는 같은 이야기를 두 번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여왕 아이라가 내 침대에 앉아서 고고하게 다리를 꼬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자신이 이 방의 주인이고, 내가 멋대로 찾아와버린 손님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다.
여기가 내 방이 아닌가.
잠깐 패닉을 일으킨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자 사방에 내 물건들이 가득했다. 여기는 틀림없는 나만의 공간. 그 사실을 깨닫자 여러모로 침착한 사고가 발동이 된다.
“아이라 여왕님. 저는 잠깐 제 일을 하고 왔을 뿐입니다. 그러는 아이라 님께서는 이곳까지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미리 언질을 주셨으면 방이라도 치워두었을 텐데 말입니다.”
내 방은 깨끗한 편이다. 방에서 생활을 잘 안하고 잠만 자니까 말이다.
하지만 엘가가 이것저것 들여다 놓은 물건이나 아이라에게 보여주면 좀 안 될 만한 물건들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
─요정안-!
나는 안력을 최대로 끌어올려 방 안 구석구석을 살폈다. 엘가의 속옷 같은 건 없고, 벗어두고 간 스타킹이나 곤란한 물건들은 보이질 않는다.
다행이야.
안도감을 삼키며 다시 물었다.
“방이 잠겨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잠긴 문을 따고 들어오시려면 꽤 고생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아이라의 노고를 치하해주는 척 하면서 왜 잠긴 문을 열고 멋대로 들어온 것이냐 은근히 돌려서 타박했다. 하지만 아이라는 알아듣지 못한 듯했다.
“내가 열지 못하는 자물쇠는 없지. 그래서 태오야, 그 계집애, 세라자데와는 무슨 이야기를 나눈 것이니?”
“…….”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나.
나는 혹시 내 몸에 아이라가 붙여 놓은 거미가 있는 건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세라자데를 만나는 지 어떤지 아이라가 알고 있을 리 없었으니까.
“그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나는 현명한 여왕이다. 현명한 여왕은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을 알고 있지. 그래서 태오야, 세라자데가 설마 네게 해코지를 하거나 하지는 않았니?”
“별로 그런 건 아니었는데요. 제게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좀 듣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 대가로 공청석유라는 것도 받았고-.”
주절주절.
나는 아이라가 괜한 오해를 하기 전에 방금 있었던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이야기를 들은 아이라는 “별 것 없었구나.”라고 어딘가 안심한 것 같았다.
문득 나는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닌가 새삼스럽게 신기해졌다.
내가 미르나나 엘가를 만나서 무슨 일을 하든 아이라가 이렇게 과민하게 반응을 보였던 적이 있었나?
“세라자데 그 계집애는 독사 같은 사람이지. 발목을 콱 물려서 움직이지 못하게 될 수 있으니 주의하는 게 좋을 거야. 그래서, 세라자데와 나눈 이야기는 그걸로 끝이니?”
아이라의 물음에 나는 세라자데가 키를 키우고 싶다고 했던 것과, 또 나를 향해 투르키의 궁정으로 올 생각이 없냐고 물었던 일을 떠올려 봤다.
키를 키우고 싶다고 했던 것은 그녀와 나만의 비밀이었기 때문에 말하는 게 좀 그렇고. 나를 스카웃 했던 걸 말하면 혹시 아이라가 노발대발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들었다.
요 며칠 얌전하게 잘 지내고 있었는데. 그게 전부 허사이자 물거품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눈앞이 아찔해진다.
“더 있구나.”
그때 아이라가 나를 향해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더 있는 게 분명해. 어서 말 해 보거라.”
이런 때에는 감이 좋다니까.
아이라가 나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으며 더 이야기하기를 재촉하고 있었다. 이대로 얼버무리려고 했다간 아이라의 분노가 오롯이 나를 향할지도 모르는 일.
“그게, 오해를 하시거나 화를 내지 않고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태오야, 너도 알겠지만 나는 언제나 오해를 하거나 화를 내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단다.”
“세라자데 님께서 제게 투르키의 궁정에 올 생각이 없냐고 여쭈셨습니다.”
“흐응, 그래. 그런 말을 들었단 말이지.”
아이라의 말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
“…….”
나도 그녀도 서로 말을 하지 않는다.
반요정 특유의 예민한 감이 아이라가 무척 화를 내고 있고, 또 그 분노를 표출하기 일보직전이라는 경고를 왕왕 알렸지만 아이라의 표정은 무척 평온했다.
그러다가 아이라가 물었다.
“그래서 태오야, 네 대답은 어쩔 생각이니?”
“당연히 거절할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있는 곳은 앙그마르 궁전이고, 아이라 여왕님의 옆일 테니까요.”
“과연 그렇구나. 하지만 태오야, 나는 태오 네 선택을 존중해. 네가 투르키의 궁전으로 간다고 해도 나는 크게 개의치 않을 것이야.”
“그게 진짜입니까?”
나는 조금 놀랐다. 아이라가 나를 순순히 다른 곳으로 보내줄 생각을 한다니. 지금까지 아크에서 보내왔던 평화로운 나날들이 아이라의 성격에 큰 영향을 준 모양이었다.
빙긋.
그에 아이라가 웃었다. 아름다운 미소였다.
“아무렴, 태오 네가 투르키의 궁전에 간다면, 나 여왕 아이라가 투르키의 궁전을 차지하면 되는 일 아니겠니.”
“그게 무슨 소리죠?”
“당장 라인하르트에게 전서구를 보내어 투르키를 침공할 원정대를 편성하라고 해야겠어. 앙그마르와 투르키의 긴 다툼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온 거야.”
“…….”
내가 소속을 옮기면, 그곳을 인수해버릴 생각인 것이로구나. 아이라는 변하지 않았다. 아니, 변하긴 했지만 현명한 쪽으로 안 좋아졌다.
“그럼 종이와 펜, 그리고 왕가의 도장을 가져 오거라.”
“정말로 투르키와 전쟁을 하시려는 겁니까?”
“그래, 여왕과 왕자인 카심이 외국으로 나와 있는 지금이야 말로 침공의 적기라고 생각하지 않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투르키는 앙그마르에 비하면 약소국.
그렇지만 절대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다. 투르키는 병사들 중에서도 화력 좋은 마법사들의 부대가 많기로 소문이 난 곳이니까.
또 앙그마르의 마왕 솔로몬의 진격을 막아낸 슐레이만 대제가 아직 살아있지 않나? 마왕조차 침략하지 못했던 투르키를 아이라가 어떻게 할 수 있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만약 투르키를 침공하는 것에 군비를 증강시키고 예산과 병력을 쏟아 부어 버린다면 만약 승리할 지라도 잿더미뿐인 영광이 될지 몰랐다.
그럼 앙그마르 역시 국운이 기울지도 모르고, 병력을 분산시킨 턱에 장벽으로 가야할 물자와 자원이 끊겨 악의의 군세가 넘어올지 모르는 일.
안 돼.
그것만은 막아야한다-!
“아이라 님, 지금 이곳 그라시아는 중립국입니다. 이곳에서의 일로 정치적인 행위, 하물며 전쟁을 결심하는 것은 큰 규정위반입니다.”
나는 허둥지둥 아이라를 설득했다. 아이라는 어디 더 말 해 보라는 것처럼 턱을 살짝 들어올렸다.
“태오야, 도발 행위를 한 것은 투르키의 탕녀 쪽이란다. 내게 참고만 있으라고 하는 것이니? 여왕으로서 그건 옳지 못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도발이라면-?”
“세라자데가 네게 그런 이야기를 한 건 다름이 아냐. 너와 내 사이를 이간질하고, 또 그것으로 이득을 취하려 한 것이겠지. 태오 네 대답이 어찌되었든, 나와 네 사이에 불신을 만들려는 것이고.”
생각보다 똑똑한데?
아이라의 말대로였다.
애초에 세라자데가 나와 둘 만의 시간을 가진 것에서 아이라가 오해를 하게 될 것은 당연한 일.
그녀와 내 사이에 금이 가고 앙그마르의 불화가 이어진다면 이득을 보는 것은 멀리서 관망하고 있는 주변국이겠지.
세레자데가 그러한 계략을 꾸미고 있었다는 것도 놀랍고, 또 아이라가 그것을 재빠르게 파악했다는 것도 꽤 놀라운 일이었다.
감격적이구만.
그렇게 보면 확실히 먼저 선공을 해온 것은 투르키 쪽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곧바로 군사적인 행동을 돌입하는 건 좀 과한 거 아닌가. 꿀밤 한 대 맞았다고 배를 칼로 찌르는 격이잖아. 과잉대응이란 말이다.
교단이 그런 걸 인정할 리 없지.
아이라가 말했다.
“투르키의 계집애가 먼저 시작한 싸움이야. 격과 분수도 알지 못하고 덤벼오다니. 그럼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는 것이 옳겠지.”
“…….”
무척 옳은 이야기였기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세상의 중요한 규칙인 기브 앤 테이크.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 하는 것처럼.
얻어맞은 게 있으면 나도 상응하는 대응을 보여야 한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가만히 있었다간 얕잡혀 보이는 세상이니까.
“하지만 태오, 네 말대로 투르키를 침공하는 건 옳지 못한 방법일지도 모르겠어.”
“제 뜻을 알아주시는 겁니까?”
“투르키의 왕궁에 타란테라의 깃발이 꽂혀도 세라자데, 그 계집애라면 자신이 나보다 못하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겠지. 좀 더 철저한 승리가 필요해.”
후후후-하고 아이라는 우아하게 웃었다. 하지만 얼굴에 그늘이 졌기 때문인지 무척 음흉한 얼굴로 보였다. 왕좌에 앉아 주인공 파티를 기다리던 아이라의 얼굴이 이랬을까.
“과연, 태오야. 덕분에 좋은 생각이 났구나. 결투재판부터 투르키 여제 나부랭이까지. 태오, 너는 이 모든 걸 계획해두고 있었던 것이었어.”
그때 아이라가 내 두 볼에 자신의 손바닥을 가져갔다. 그리고는 내 볼을 주압주압 잡아당기기 시작하는 데 나로서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 * *
“아이라 님의 호화로운 방에 비하면, 이곳은 좁고 초라한 곳일 겁니다. 별로 대접해드릴 것도 없어서 죄송할 뿐이네요.”
나는 냉장고에 있는 맥주를 한 잔 아이라에게 건넸다. 좁은 방에 두 사람이 있으니 공기가 덥고 오늘따라 바람도 잘 불지 않아 무척 더웠다.
맥주 자체는 매점에서 산 싸구려였으나 얼음이 띄워져 있으니 시원하게 마실 만 할 테지. 물론 이건 엘가의 것이지만 당장 아이라에게 건네줄 게 이정도 밖에 없었다.
그것을 받아 든 아이라가 꿀꺽 한 모금 마셨다.
“시원하구나.”
“해가 저물고 바깥이 조금 서늘해지면 제가 모셔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태오야, 하지만 이렇게나 좁은 방 안에서 생활하고 있다니. 불편하지는 않니?”
아이라의 물음에 나는 방을 슥 돌아봤다. 1인실. 결코 넓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좁지도 않았다.
딱 적당한 크기라고 생각했는데 평소 으리으리한 곳에서만 살아왔던 아이라에게는 여기가 짐승의 우리처럼 비좁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저보다 더 좁은 곳에서 사는 녀석도 있는데요.”
나는 손가락으로 개다람쥐 컹컹이를 가리켰다.
녀석은 유리로 된 케이지에서 열심히 쳇바퀴를 돌리고 있다. 개다람쥐 컹컹이의 집은 한 평도 되지 않을 만큼 좁았지만, 녀석은 그에 대해 불만을 말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 모습을 심드렁하게 지켜본 아이라가 맥주를 몇 모금 더 들이키며 말했다.
“이번 기회에 태오, 너도 우리와 같은 싱글 넘버즈가 되면 좋겠구나. 싱글 넘버즈의 전용실은 나름 괜찮은 것이니까 말이다.”
“제가 싱글 넘버즈에…?”
“그래. 보아하니 세라자데에게서 받은 선물로 5위계의 벽을 돌파한 모양이구나. 마력도 끓어오르고 있고 몸도 가볍게 느껴질 테지?”
뛰어난 마법사답게 아이라는 나의 수준을 정확하게 판단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어딘가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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