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235)
EP.236)여름 방학 # 1
236 – 각자의 여름 방학 # 1
환호 소리가 잠잠해졌을 때 수정 마이크를 쥔 아이라가 설명을 덧붙였다.
“비무제의 참가 자격은 없다. 하지만 기사들의 토너먼트 식으로 진행되는 대전의 끝에서 우승한 승자에게는 내게 도전할 권리를 주도록 하겠어.”
그리고 마침내 결정적인 한 마디가 사람들 사이로 내던져지듯 한다.
“만약 내게서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면 앙그마르의 국서가 될 기회를 주도록 하지.”
국서(國壻)라는 것은 여왕의 남편을 뜻하는 단어다. 그리고 아이라와는 가장 거리가 먼 것 같은 단어이기도 했다.
━들었어? 여왕의 남편이 될 기회라니!
━굉장해…!
━호에노이! 기사를 쓰도록 해라! 전국으로 퍼트려!
━호외에에에-!
천장을 때리는 빗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이 들떴다. 그들의 웅성거림에 강당은 마치 소음의 파도가 넘실거리는 듯했다.
이건 걷잡을 수 없이 퍼지겠구만.
아이라가 이런 토너먼트를 열 것이라고 생각조차 못했던 나는 퍽 얼떨떨한 마음을 감출 바가 없었다. 그때 내 옆에서 누군가 내 허벅지를 꽉 꼬집는다.
“야, 이게 무슨 일이야? 타란테라 님이 비무제를 연다니! 네 짓이지!”
릴리는 내가 아이라에게 이러한 일을 벌이도록 귀띔한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듯했다. 그러나 아까도 말했다시피 이번 일은 나와도 전혀 상의가 되어있지 않았던 일.
요새 잠잠해진 줄 알았는데, 아이라가 멋대로 일을 벌리는 건 여전하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그 고고한 여왕이 진짜 남편감을 찾고 싶다는 생각으로 비무제를 열었을 리는 없을 듯했다. 애초에 당장 이 세상에서 개인 대 개인으로 붙어 아이라를 이길 수 있는 자가 있기는 할까?
비록 환상 속에서나마 폭군 여왕과 대결해봤던 나는 그녀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강함을 지니고 있는 지 확실히 체감했었다.
아이라 본인의 강함은 스스로가 더 잘 알 터.
어쩌면….
“어쩌면 아이라 님께 다른 생각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어. 여왕의 국서를 뽑는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비무제에 사람들을 모으기 위한 계획일지도 몰라.”
“다른 생각?”
릴리는 내 말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얼굴을 서서히 붉히며 화를 냈다.
“나,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거든! 여왕님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는 내가 가장 잘 알아!”
“그래.”
적당히 대답한 나의 눈은 이제 무대에서 내려와 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아이라를 향해 있었다. 나를 향해 가볍게 묻는 아이라 폰 타란테라.
“어땠니, 방금 나의 연설이?”
“아주 훌륭했습니다. 그야말로 7월의 여왕과도 같은 모습이셨습니다.”
일단 나는 긍정해주기로 했다.
그러자 내 눈앞으로 글자가 하나 떠오른다.
「일일 목표 달성!」
「10. 여왕 아이라의 선포와 질문에 긍정해주기.」
“아.”
이런 식이었구만.
분명 항목에 이런 것이 있었지.
혹시 점성주문 바사고의 일일 목표는 오늘 내가 마땅히 겪을 일 또한 이런 식으로 은근히 예지해주는 게 아닐까? 그것이 아니고서야 지금 일이 설명이 안 된다.
나는 떠오르는 글자들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아이라 님, 국서를 뽑을 비무제라니. 분명 아이라 님께서는 훌륭하신 혜안이 있으셔서 계획하신 일이겠지만. 그 이유를 제게 좀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이유라. 그야, 합리적이고 앙그마르 왕권에 친화적인 이유가 다섯 가지는 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을 꼽아보라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지.”
재미인가.
그 외에 나머지 합리적 이유 네 가지를 듣고 싶었으나 아이라가 쉽게 설명해주지는 않을 듯했다. 그때 릴리가 말했다.
“아이라 님이 결혼을 하신다니. 그게 진짜인가요? 가장 아름다우신 여왕님께서 얼굴도 출신도 모를 남자와 결혼할 지도 모른다니….”
“아직 확정이 난 것은 아니지 않니. 그리고 남자가 아닐 수도 있어. 이번 비무제에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출전을 받을 생각이니까.”
“그, 그게 무슨…!”
릴리는 거의 졸도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아이라의 태도는 평온하다.
“말 그대로야. 나와 맞서 싸울 각오와 용맹함, 용기를 지닌 자라면 누구도 가리지 않고 도전에 응해주겠어. 그것이 설령 짐승이나 마물이라고 하더라도 말이야.”
내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아이라는 이미 일종의 각오를 끝낸 것처럼 보였다. 그렇기에 이토록 차분하고 일관적인 태도로 우리들을 대할 수 있을 터.
나는 아이라를 떠볼 겸 한 마디 해보기로 했다.
“그렇지만, 비무로 아이라 님을 이길 수 있는 자가 세상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고로 이번에 발표하신 행사는 이미 문제가 큰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만….”
“그럴지도 모르고. 아닐 수도 있지. 태오야, 세상은 지도 위로 보이는 그림이나 숫자보다 넓은 법이야.”
스윽.
아이라가 천장을 올려다봤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지만 아직도 저 지붕의 바깥으로는 세찬 비가 내리고 있으리라.
“그리고, 현실은 언제나 상상을 뛰어넘는 법이지.”
* * *
행사 내내 성대하게 진행된 전하제의 축제였으나, 그 마무리는 생각보다 고요했다.
단순한 소나기인 줄 알았던 것이 알고 보니 커다란 태풍이라서 행사를 진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축제의 마무리가 엉성해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실망을 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만 사람들의 분위기 자체는 매우 좋았다.
━이봐, 비무제에 대해 들었어? 참가하고 싶은 의지만 있다면 자격 요건이 전혀 없다고 그러는구만!
━나도 들었어. 왕족들이란.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네. 하지만 재미는 있을 것 같구만!
아이라가 축제의 막바지에 선포했었던 비무제.
사람들의 관심사는 온통 그곳을 향해 있었다.
덕분에 나를 만나는 사람마다 “그게 사실입니까?”라는 말을 수도 없이 물어 와서 나는 일일이 답해주느라 꽤 시간을 소모했다.
“하하핫-! 아주 재미난 축제였어. 이 몸의 누이가 얼굴이 벌게져서는 재검표를 요구했단 말이지! 하지만 재검표를 해도 결과는 똑같아서, 결국 바득바득 이를 가는데…!”
“저도 압니다, 카심. 벌써 세 번이나 얘기를 듣고 있어요.”
“그랬나? 해도해도 재밌단 말이지. 그 자존심 강하고 굴강한 누이가 패배하게 돼서는 말이야. 그래도 내 누이가 3위의 마르마르 양과 표를 나눠받지 않았으면 결과가 어땠을까 싶군.”
카심의 마지막 말을 듣고 나는 잠깐 생각에 잠겨봤다.
투표율 2위의 세라자데 그리고 투표율 3위의 마르마르는 닮은 구석이 있었다. 물론 출신과 성분은 정 반대지만 생김새는 얇고 가느다랗고 작고, 어린 소녀틱하다는 게 닮았다.
그래서 이번 여왕제의 결과에 대해 뭇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컨셉이 겹쳐서 표를 나눠 먹은 것이 아닌가-.’라는 의견을 내놓았던가.
━마르마르 후보와 다, 단일화를 했다면 짐이 이겼을 것이니라!
종국에는 세라자데도 저런 식으로 정신적 승리를 했다지.
무척 일리 있는 이야기지만 결과론적으로는 아이라가 승리했으니 의미 없는 분석이다.
아무튼.
7월의 여왕이 된 아이라는 축제가 끝난 며칠을 바쁘게 지냈다.
오죽 바빴으면 “이럴 줄 알았다면 이런 귀찮은 것, 세라자데에게 넘겨버릴 걸 그랬구나.”라고 툴툴거렸을 정도.
며칠 태풍도 지나가고 슬슬 여유가 나서야 우리들은 한 숨을 놓을 수가 있었는데.
그렇게 시끄럽고 떠들썩했던 축제가 진행 되었던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아크는 한적하고 평화롭게 변했다.
다들 하나 둘, 짐을 싸들고 각자의 전장과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기 때문이겠지. 축제의 폐막과 동시에 방학식이 진행됐으니까.
카심도 그랬다.
“이제 투르키 왕국으로 돌아가는 겁니까?”
내 물음에 카심은 짐을 가득 실은 말과 코끼리를 보며 가느다란 눈을 떴다.
“그래야지.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재미있는 시간이었어. 연인도 잔뜩 만들고 말이야. 역시 아크의 여인들은 활달하고 씩씩한 게….”
말을 멈추고 흐흐흐-웃는 카심. 그런 그의 곁에는 이 아크에서 만나 인연을 맺은 것으로 보이는 여성들이 꺅꺅 아우성친다.
인기 많은 남자의 표본이로구만.
“아무튼 태오 군도 잘 지내게. 조만간 인연이 있으면 또 보도록 하지. 어쩌면 비무제에서 만날 수도 있고.”
비무제라.
“카심, 전하께서도 이번 비무제에 참가하실 생각이십니까?”
카심은 본디 아이라와의 결혼을 통해 왕위를 계승받으려고 했던 몸.
자신의 이복 누이인 세라자데에게 계승전을 패배하며 그 결혼 또한 진즉 포기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가 비무제를 언급하니 나는 혹시나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에 그가 고개를 젓는다.
“의미 있는 성적은 낼 수 있겠지. 하지만 우승 하지 못하는 대결에는 흥미가 없어서 말이야. 누가 그 괴물 같은 7위계의 마법사를 이길 수 있겠나?”
“그건 그렇죠.”
“요새 마법사들 사이에서 떠도는 소문을 들으면 이미 7위계를 아득히 넘어 8위계에 달하고 있다는 말도 들려오던데…?”
그의 말은 묘하게 의문문으로 끝났다. 어쩌면 나를 떠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즉 그는 내게 아이라가 8위계에 달했냐, 달하지 않았냐 묻고 있는 것이었다.
앙그마르의 최종병기가 될 수 있는 아이라 여왕의 위계와 주문의 목록은 본디 국가의 기밀로 쉬쉬 되어져야 하는 것. 그래서 나는 적당히 어깨를 으쓱이기로 했다.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으흠, 그렇군. 아무튼, 비무제에는 분명 많은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고. 그 중에는 예쁘고 이국적인 여성들도 있을 테지. 어쩌면 비무제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
카심이 말을 끝맺지 못한 것은 그의 주변에 서 있던 여성들이 아우성치면서 그의 팔과 귀를 잡아당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카심, 우리가 있으면서!
━다른 여자를 만나기 위해 비무제를 관람하겠다구?
“안 돼! 거기는 잡아당기지 마!”
그것으로 카심과의 대화는 끝이었다.
그가 여성들에게 시달리는 모습을 보며 나는 미래의 내 모습을 얼핏 엿봤다.
예지 주술 바사고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여러 여성들에게 쥐어 뜯겨지는 내 미래가 보이는 것 같아서 식은땀이 흐르고 만다.
주르륵.
정말로 이마에서 줄줄 땀이 흐른다.
사실 그냥 더워서 그런 것이었다.
태풍도 끝나고 이제 본격적인 여름이라 그런가 진짜 너무 덥구만. 이 기묘한 세상에서 맞이하는 또 한 번의 여름이라.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올해는 그 어느 때와도 다르게 긴 여름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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