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269)
EP.270)# 2
270 – 화해 # 2
슬슬 인정하기로 했다.
내가 좆됐다는 것을.
망할, 거지같은 감옥.
얼른 탈출해야 하는데.
이 앙그마르 왕성 지하 감옥 「희망의 끝」이 생각 이상으로 빈틈없고 튼튼해서 탈출의 기회가 전혀 보이질 않았다.
또 내 몸에 칭칭 감겨 있는 쇠사슬과 구속구들이 상당히 강력해서 움직이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탈출할 방법이 있다면 마법뿐.
내 손과 발, 혀를 비롯해 모든 부위가 아주 조금조차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단단히 봉쇄되어 있는 지금으로서는 간단한 영창조차 힘들었다.
━저 녀석, 이제 너무 조용하지 않아? 아까는 그렇게나 버둥거리더니 말이야.
━내버려 둬. 무슨 수를 해도 빠져나갈 수 없다는 걸 알아낸 모양이겠지. 마법사들이 아무리 뛰어나봤자 저렇게까지 봉인해두면 아무것도 못하잖아.
“…….”
간수들의 말대로.
하다못해 입에 채워져 있는 재갈이나 손가락 사이사이에 끼워져 있는 무거운 돌덩이가 좀 느슨해지기라도 한다면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니면 손짓이나 주문, 마법진이 필요 없는 마법이 있다면….
그때 머릿속에 파지직 번개가 치는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해도 기가 막힌 작전이었으니까.
영창이나 주문, 인을 맺을 필요 없는 마법이라면 이 자리를 빠져나갈 수 있을 터.
상상과 심상만으로 발동하는 마법.
그런데 그런 게 가능한가?
이 세상의 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어야하는 법.
마법에서는 특히 그게 중요하다. 주문과 영창 혹은 마법진. 그러한 것으로 불러일으키는 필연적인 결과가 마법이니까.
하지만 내가 생각한 무영창의 마법은 그 어떠한 원인이나 인과도 없이 결과만을 관측하도록 만드는 행위다. 그게 진짜 가능하다면 기적이고 진짜 ‘마법’이라고 불릴 만하겠지.
그것이 가능한 자가 있다면, 마르마르의 말처럼 유일하게 진정한 마법사를 칭할 자격이 있었다는 솔로몬 정도가 아닐까?
그렇다면 나도 가능할지 몰라.
상상.
마법은 상상이라고 했었던가.
아이라가 내게 가르쳐 주었던 팁들을 이용해 내 머릿속으로 이 난관을 멋지게 해쳐나가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고 있을 즈음이었다.
고오오오-.
내 아랫배에서 부글부글 끓는 무언가가 내 몸을 타고 감도는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무언가 될 것 같은 예감.
하지만 나의 명상은 멀리서 들려온 기척에 방해받고 말았다.
━상부 명령이다. 궁정 마법사 태오 가스펠을 이송하도록 한다. 애초에 감옥에 수감시키라는 명령이 아니었는데,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남들과 접촉시키지 말고. 도망치지 못하게 밀실에 두라는 말이 감옥에 가두라는 말 아니었습니까?
━…그렇게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군. 아무튼, 그래. 그보다 혹시 자네들도 이 반요정과 접촉했나? 만약 그렇다면 자네 둘도 따라오도록 해.
* * *
내가 이송된 곳은 온통 새하얀 구조물이 가득한 시설이었다.
감옥이라기보다는 실험실에 가까운 느낌. 최근 벨호크의 지하실에서 이런 장소를 발견했던 기억이 있기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고 만다.
여기는 앙그마르 왕성 어딘가에 은밀히 위치한 실험실이 아닌가?
나를 왜 이런 곳으로 끌고 왔지?
“태오 가스펠 맞습니까?”
쿠우우우-. 쿠우우우-.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나를 인수했다.
그들의 손에 이끌린 나는 투명한 유리관처럼 보이는 장치 안에 쑤셔 넣어졌다. 플라스틱 포장지 케이스 안에 갇히는 빵들의 기분이 딱 이럴까?
나는 지금 빵이었다.
“태오 경, 몸의 구속과 재갈을 풀어드릴 테니 함부로 날뛰거나 하면 안 됩니다. 동의하시면 눈을 두 번 깜박여주세요.”
깜빡, 깜빡.
스륵.
문을 닫기 직전에 방호복을 입은 연구원 한 명이 내 입에 걸쳐져 있던 재갈을 풀어주었다. 그리고는 유리문을 닫은 후에 그 너머로 물어온다.
“태오 경, 머리가 아프거나, 호흡이 곤란하거나 한 일 있습니까? 아니면 몸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나 참을 수 없는 짜증을 겪은 적은?”
질문은 괴이했다만 그 물어오는 태도가 퍽 친절했다.
죄인을 다루는 태도는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그래서 나도 무작정 마법을 영창해 탈출하기보다는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물어나 보자 싶었다.
“아니, 아픈 곳은 없는데요. 그보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 겁니까? 저를 왜 붙잡아서 가두고 이런 기이한 장치에 밀어 넣는 거죠?”
“라인하르트 경으로부터 태오 경의 몸에 큰 문제가 생겼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혹시 님프 독감 코로노이에 대해 아십니까?”
“코로 뭐요?”
“코로노이요. 그게 지금 태오 경의 몸 안에 있어요.”
“…그게 대체 왜 제 몸속에 있죠?”
“혹시 벨호크 가의 지하 실험실에서 옳지 못한 방법으로 비인가 실험체들과 조우하거나 접촉했던 적이 있으십니까?”
“그야….”
그야 많았다.
내가 온갖 일들을 떠올리고 있는 사이 방호복을 입은 연구원이 말을 덧붙였다.
“코로노이는 님프를 비롯한 엘프들에게 치명적인 질병이거든요. 요정들의 수명을 절반 이상 줄이는 아주 끔찍한 질병입니다. 세간에 퍼지면 요정족은 종말을 맞이할 거에요.”
“그럼, 지금 제 몸속에 그 병균이 있으니 벌써 제 수명이 줄어들었다는 겁니까?”
나는 덜컥 겁이 났다. 그러나 방호복을 입어 표정을 알 수 없는 연구원의 태도는 태연했다.
“그걸 이제 검사해 봐야죠. 요정 병리학 전문가인 약물의 님프 메디노이 님을 모셨으니까 검사는 금방 치러질 겁니다.”
약물의 님프?
나는 이 얼떨떨한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를 체포하려고 했던 이유가 바로 내가 님프 독감 코로노이의 전염자였기 때문이라니?
그러고 보면 엘가가 울면서 이렇게 안하면 네가 죽는다 어쩐다 말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엘가는 내가 모종의 병에 걸린 걸 알고. 그걸 검사하고 치유하기 위해 병사들을 부렸는지 모를 일. 진짜 그런건가? 침착한 사고를 발동한 나조차 조금 헷갈린다.
스윽.
그때 누군가가 유리창 너머로 모습을 드러냈다.
파란 머리색을 가졌고, 하얀 가운을 입은 기묘한 소녀다. 귀가 살짝 뾰족하고 얼굴에 엣된 것을 보니 아마도 님프가 확실했다.
“당신이 약물의 님프 메디노이입니까?”
“그렇다…! 메디노이 님인 것이다…! 태오노이야, 네가 아주 님프 혐오적이고 못된 병에 걸렸다고 들은 것이다…!”
“…….”
“못된 긴 귀 엘프들의 실험실에 갔던 날부터 지금까지 어디서 누굴 만났는지 전부 이야기 해주는 것이다…! 그래야 감염되었을지 모르는 자들의 동선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생각보다 본격적이네.
그렇지만 그날부터 지금까지 어디서 뭘 했는지 전부 알려 달라니. 그걸 다 기억하는 것도 일이고 설명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처형당하는 것보단 낫지 않나…? 지금까지 긴장했던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나는 사르르 몸에 생기가 감도는 기분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나는 또 정체를 들켜서 처형당하는 줄 알았잖아.
나는 기억나는 대로 동선을 말해주었다. 그러자 그것을 받아 적고 있었던 방호복 연구원들 사이에서 경악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공원에, 동물원? 대성당에 중앙 시장거리까지 갔다고? 이거, 동선을 조사하는 의미가 있는 건가…?
━몰라.
그들은 내가 사람이 와글와글 몰리는 관광지만을 돌아다니는 것에 절망한 듯했다. 나도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사람 많은 곳으로 안 갔지.
* * *
검사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검사라고 해 봐야 매우 긴 면봉을 콧속 깊숙이, ‘아니 이것보다 더욱 깊숙이 집어넣을 수가 있다고…?’ 싶을 정도로 푹 꽂아 넣는 것이 끝.
“히에엑…!”
“아앗-! 실수한 것이다…! 반대쪽으로 다시 찔러야 하는 것이다…!”
시발.
아무튼 콧속 매우 깊숙이 면봉을 찔러 넣는 게 상당히 괴로웠다는 점만 빼면 검사는 생각했던 것보다 조촐했다.
배를 가르는 일도 없고, 피를 뽑거나 수상한 기계를 몸에 달아야 하는 일도 없다.
덕분에 결과가 나오는 것까지 전부 한 시간 만에 끝이었다. 빨리빨리 진행 되서 좋네. 앙그마르 사람들의 국민성이 답답한 걸 싫어하는 탓도 있겠지.
그러다가 검사 결과가 나왔을 때 메디노이가 말했다.
“태오노이야, 아주 유감스러운 것이다….”
“유감스럽다뇨?”
“태오노이는, 아주 유감스럽게도 최신 의료기기와 치료기술을 먼저 체험해볼 기회를 잃은 것이다…! 다음 기회를 노려보는 것이다…!”
“…그게 무슨 소리죠?”
“님프 열병 코로노이에 걸리지 않았다는 말인 것이다…!”
“…….”
못된 님프녀석 같으니. 하나도 안 유감스러워.
결과적으로 이 모든 사건은 일종의 해프닝이었다. 나는 님프 독감인지 뭔지 하는 것에 걸려있지 않았다고 한다.
“태오야, 독감에 걸리질 않아서 다행이구나.”
그때서야 저 멀리 격리실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아이라와 면회를 가질 수 있었다. 아이라의 반응을 보니 왜인지 조금 안심이 든다.
거기에는 아이라 뿐만 아니라 미르나와 엘가도 있었다. 둘의 얼굴에 생체기가 나 있었지만 둘다 크게 다치진 않은 듯이 보였다.
다만 약물의 님프 메디노이는 표정을 어둡게 만든 채 제법 비관적인 전망을 내비췄다.
“하지만 태오노이의 몸은 정상이 아닌 것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태오노이의 몸은 님프치고는 매우 치명적인 한계에 몰려있다고 봐도 좋은 것이다…!”
그에 먼저 반응한 것은 엘가였다.
“…역시, 남은 수명이 얼마 안 되는 거지? 몸에 무리가 가서, 수명이 너무나도 확 줄어버린 거지?”
“그렇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약물의 님프 메디노이. 다른 님프들의 수명 정도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다….”
수명이라니.
그 기묘한 단어에 내가 의아함을 느낄 때 메디노이가 조잘조잘 말을 덧붙였다.
“몸이 마력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분명한 것이다…! 이걸 낫게 하려면 마력 회로를 특수한 약물로 지진 후에 수술로 몸에서 제거해 봉인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말에 미르나가 크게 당황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무슨 소리죠? 마력 회로를 지진다면, 앞으로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는 말이지 않나요?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라는 말이잖아요!”
그에 약물의 님프 메디노이는 매우 침통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매우 애석하지만, 태오노이의 남은 수명은 고작해야….”
메디노이가 말을 멈췄다. 그 표정이 매우 진지하고 울먹거리는 것이 무척 슬퍼보였다. 덕분에 나도 매우 긴장 됐다.
내 수명이 얼마 안 남았다니.
그리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마력회로를 지져야 한다고?
마법에 익숙해진 이제야 좀 쉽게쉽게 갈 줄 알았더니 완전 하드모드다. 마법이 아무 대가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었구나.
어쩐지 너무 일이 잘 풀린다 싶었지.
내가 침울해 하고 있을 때 제법 슬퍼 보이는 표정의 아이라가 물었다.
“…그래서, 태오의 삶은 얼마나 남은 거지? 마력회로를 제거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말이야. 사실대로 말하도록 해.”
“태오노이의 수명은, 정말 얼마 남지 않아서…, 이대로 있다간 앞으로 약 200년 정도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
님프 의사선생님의 말에 주변 사람들 모두가 충격을 받은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가 엘프와 님프 간호사 및 연구원들이 먼저 끔찍한 이야기라도 들었다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겨우 200년 밖에 살지 못한다니…, 매우 끔찍한 것입니닷…! 이렇게 불쌍한 님프는 처음 보는 것입니닷…!
━아무리 열등한 님프의 피가 섞였다지만 앞으로 200년밖에 못산다니…, 우수한 엘프의 피가 섞였다면 적어도 300년은 살 수 있었을 텐데.
━거기 깐프, 방금 말 다한 것입니까…? 이 약물의 님프 도핑노이에게서 공포의 쓴 맛 좀 봐야 정신을 차리는 것입니까…?
장내가 엘프와 님프들의 싸움으로 소란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연구실이라면 이제 현기증 나니까 빨리 여기서 좀 나가게 해줘요.”
* * *
그렇게 풀려난 나는, 여러 말들을 걸어오는 영애들의 사이를 스쳐지나가 익숙한 왕성의 집무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영애들과 할 말이 많았지만.
“태, 태오야…. 나는 네가 정말로….”
“엘가 님, 이번 일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나중에 하도록 해요. 꼭. 그 전에, 해야만 하는 일이 있어요.”
특히 엘가와는 못 나눈 이야기가 더 많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내가 두꺼운 문 앞에 도착했을 때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것처럼 말해왔다.
━문은 잠기지 않았으니 들어오도록 하지.
맹수 같은 감이로구만.
나는 무거운 문을 열고, 앙그마르 재상의 집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사자의 아가리에 들어가는 것 같은 감각에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지만 방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라인하르트 공.”
“…….”
내가 방에 들어섰음에도 남자는 그저 자신의 앞에 놓인 검을 손질했다. 나를 바라보지도 않고 여유를 부리는 모습에서 일종의 관록이 느껴진다.
그가 여유롭게 말했다.
“그래서, 병에 걸렸던 것은 괜찮나? 그것을 해결하려면 마력 회로를 지지는 수밖에 없다고 그랬을 터인데.”
역시. 한 가지 사실이 명확해진다.
“제게 병 같은 게 없다는 건 당신이 더 잘 알 것이라 봅니다, 라인하르트 공. 이 모든 일을 꾸민 게 당신인 것 다 알고 있으니 수읽기는 그만 두죠.”
“재미있군.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지. 그대는 열병을 앓고 있어. 절대 치유할 수 없는 열병. 과거의 망령이라는 병 말이야. 음모와 모략. 그게 병의 증상이고.”
“…….”
“기침 대신 거짓말이. 머리에 오르는 열 대신 미친 망상이 그대를 좀먹어 갈 것이네, 태오 가스펠.”
스릉. 탁.
라인하르트는 검 집에 도로 검을 꽂아 넣었다. 그러나 그의 기백은 검을 뽑아들고 있을 때보다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래서, 내게 할 말이 무엇인가? 위대한 궁정의 마법사.”
고오오오오오-.
눈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 정도의 박력. 그러나 내 안에 깃든 재능 《카리스마》가 그것을 상쇄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나는 입을 땠다.
“라인하르트 공, 저는 궁정 마법사나, 오락담당관이나 정원사로 이 자리에 온 게 아닙니다.”
그러자, 마치 우스운 이야기라도 들은 것처럼 라인하르트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여왕이 선물해준 호칭들이 없다면, 그대에게는 무엇이 남지?”
“진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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