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268)
EP.269)# 1
269 – 화해 # 1
내가 왕성으로 도망친 것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앙그마르 왕성은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성역과 마찬가지.
그곳에 들어서는 자들은 드높은 왕궁 법률에 의거하여 여왕의 허락 없이 무장을 행하거나 폭력행위를 진행할 수가 없다.
한 나라의 왕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니 그게 당연한 일이다.
그랬기에 아무리 온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리오네스 가문과 그 병사들이라 하더라도 일단 왕성으로 들어서면 나를 어찌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내 생각은 맞았다.
왕성의 문턱 앞에 선 나를 병사들이 어찌하지 못하고 당황하는 걸 보니, 비로소 나도 한숨 돌릴 수 있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내 뒤에 나타난 여성은 내 계획에도 상정해 두지 않았던 변수였다. 아이라가 왕성 입구까지 직접 나타난다니? 아이라의 방과 여기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을 텐데?
“무엇들 하니? 너희들의 여왕이 묻고 있지 않느냐. 어째서 나의 궁정 마법사를 올가미로 붙잡으려 한 것인지 묻고 있어.”
여왕 아이라의 태도는 제법 여유로웠다. 병사들을 추궁하고 있다지만 노기를 비추지도 않았고 고압적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병사들은 잔뜩 긴장한 내색을 비치며 서로 눈치를 봤다. 생각보다 유능한 자들이니 일이 기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겠지.
━야, 어쩌지?
━나도 몰라. 퇴근 시간 언제냐? 이제 집에 가고 싶다 그냥.
그들이 우물쭈물 아무것도 못하고 있을 즈음. 츳-혀를 찬 아이라.
“과연, 여왕으로서 나의 질문 태도가 잘못 되었던 것이구나. 어리석었다. 질문에 답할 자를 직접 지정하는 게 좋았을 텐데 말이야. 거기, 지휘관.”
아이라의 까만 눈동자가 바라보는 것은 투구를 깃털로 장식하고 유난히 멋들어진 휘장을 어깨에 패용한 병사였다. 그가 이 병사 한 무리의 지휘관이라는 건 누가 봐도 자명한 일.
아이라의 지목에 지휘관은 자신의 투구를 벗으며 고개를 숙였다.
“리온하트 대대 3중대장 길포드 나이트 벨레이엄. 지고한 앙그마르의 지도자이시자 위대한 정복자이신 아이라 폰….”
슥슥.
길어지는 설명에 손을 흔드는 아이라.
“그런 걸 물어 본 게 아냐. 그래, 길포드. 이 일이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네 여왕인 내게 설명해줄 수 있겠니?”
“그게….”
“설마 여왕인 내게 말하지 못할 일이라도 있니?”
“명령에 따라 태오 가스펠을 추격 및 포획하고 있었습니다.”
길포드라 불린 중년의 남자는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이라가 가볍게 미간을 좁히더니 “명령? 포획?”하고 중요 키워드를 읊는다.
“어째서?”
“저희도 이유는 알지 못합니다. 명령이 있기에 수행할 뿐입니다.”
그 대답에 나의 의문도 조금은 환하게 트이는 듯했다. 리오네스의 병사들이 나를 추격하는 이유란 그저 단순하게 명령 때문이었구나.
내가 앙그마르의 후예라서 그런 건 아닌 듯하다. 그들은 알지 못하는 것이겠지. 그렇지만 그들에게 명령을 내린 자는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터. 엘가인가? 아니면….
그런 느낌으로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에 아이라가 근엄하게 말했다.
“그렇구나. 명령. 하지만 내 왕국에서 나의 허락도 없이 내 궁정 마법사를 죄인처럼 다루려고 한 것은 큰 죄야. 죄에는 마땅한 대가가 필요하지.”
슥.
허공에 손을 뻗은 아이라.
“나는 드높은 왕궁 법률의 지상대행자. 앙그마르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범법 행위를 즉결 심판할 권리가 있어.”
“커헉-!”
곧 기사 길포드의 몸이 크게 떨리며 공중으로 붕 떠오른다. 그는 교수대에 매달린 사람처럼 자신의 목을 매만지며 다리를 버둥거렸다.
실제로도 그것과 비슷할 테지. 아이라의 주특기인 염동 마법. 4위계의 포스 그립에 목이 졸리면 누구라도 저렇게 되리라.
다만 나는 이대로 기사 길포드가 죽어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으읏, 게엑!”
나를 들짐승처럼 그물로 포획하려고 했던 남자였고 오늘 처음 본 사람이었기에 정 따위는 없었다만. 아이라가 사람을 죽인다-는 상황은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황급히 몸을 일으켜 아이라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아이라 님, 올바른 판결은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지휘관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고, 또 그 명령을 내린 자가 누구인지를 여쭤보는 게 먼저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흐응, 무척 올바른 의견이로구나.”
슥.
아이라는 길포드를 풀어주었다. 동시에 손가락을 까닥이자 바닥에 널브러졌던 몸이 아이라의 코앞으로 끌려 나온다.
“명령에 충실한 나이트 길포드. 그럼 네 여왕으로서 명령하겠다. 네게 태오 가스펠의 포획령을 내린 자가 누구지?”
“그건….”
목이 졸렸던 피해가 아직 가시질 않은 건지 쇤 목소리로 입을 연 남성. 그가 마침내 무어라 입술을 달싹일 때였다.
“내가 했소.”
아이라의 뒤에서 제법 큰 기척이 났다. 큰 키에 길쭉한 몸. 넓은 어깨에 붉은 망토를 멋지게 두르고 있는 그의 머리칼은 백금 빛으로 바람에 흔들린다.
궁정에서 나타난 남자는 아이라를 향해 침착한 태도로 말을 걸어왔다.
“그들은 아무 죄가 없소. 명령을 내린 건 나니까.”
“라인하르트 공. 어째서 그런 명령을?”
“그만한 이유가 있었으니까. 잠시 실례하겠소. 설명을 듣는다면 여왕께서도 충분히 이해하실 것이라 믿소.”
슥.
라인하르트는 아이라를 향해 무언가의 작은 쪽지를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 읽은 아이라는 “이것이 사실인가?”라고 담담히 묻는다.
그에 라인하르트는 “사실이오.”라고 엄중하게 답할 뿐. 그들이 귓속말로 대화를 나누었다면 예민한 귀로 내가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을 것이지만.
이렇게 쪽지를 나눠 받으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혹시 내가 엿들을 걸 알고 일부러 쪽지로 주고받는 건가?
「침착한 상황 판단!
재능 《침착한 사고》에 의해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모든 직업 경험치 + 5」
라인하르트, 치밀한 남자구만.
그때였다.
“그럼, 계획되었던 대로 태오 가스펠을 포획 및 격리하라.”
라인하르트가 먼저 선수를 치듯 말했다. 그러자 병사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더니 크게 술렁이기 시작한다.
━뭐라고? 방금 뭐라고 했어?
━붙잡으라는 것 같은데.
━그렇지만 아이라 여왕님이….
병사들이 아이라의 안색을 살폈다. 하지만 아이라는 나를 안타깝게 바라볼 뿐이다. 내가 그런 아이라를 향해 입을 벌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물어보려던 때였다.
“아이라 님, 이게 대체-.”
“두 번 명령하지 않겠다. 태오 가스펠을 포박하라하지 않았나?”
촤아악-!
내 머리 위로 수많은 그물이 뿌려졌다.
끈적끈적하고 무거운 그물에 짓눌린 나는 그만 옴짝 달싹 할 수가 없어졌다. 동시에 파짓파짓 흐르는 전류에 온몸이 경련을 일으킨다.
“구아악…!”
━드디어 잡았다! 포상 휴가는 내꺼야!
어째서 아이라가 이 광경을 보고만 있는지, 당장의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 * *
앙그마르의 궁전 아래에는 지하 감옥이 있다.
도둑들의 왕 알리바바 벨호크를 제외하면 역사상 그 누구도 탈옥한 적이 없다는 철통의 감옥.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희망의 끝」.
일찍이 형법을 완성시켰던 옛 왕 아비멜레크 앙그마르가 만들어낸 그 감옥에 갇히게 된 자들은 가혹할 정도의 수형 생활로 인해 피폐해져만 간다고.
나는 그 감옥에 또 갇히고 말았다.
또라고 표현한 것은 예전에도 아이라의 심기를 거슬렀다가 반나절 정도 갇힌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와 지금의 상황은 그 궤를 달리했다.
“…….”
간단히 수갑이 묶여 있었던 그때에 비해 지금의 나는 온몸이 칭칭 묶인 채 입에는 혓바닥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큰 재갈과 마스크가 씌워져 있었으니까.
죄인이라기보다는 마치 역병의 보균자를 취급하는 듯한 태도가 아닌가?
“으애으읍-!”
바닥에 쓰러진 내가 지렁이처럼 꿈틀거리자 바깥에서 나를 감시하고 있던 간수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수군거렸다.
━왜 저러는 거지?
━화장실 가고 싶어진 거 아닐까? 화장실 보내줘야 하나?
━조심해, 최대한 접촉을 금하라 했어. 일단 바지에 싸도록 내버려 두자.
“…….”
그로부터 얼마의 침묵이 흘렀다. 내가 수도 없이 뛰어다니느라 지쳤던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또 여러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을 즈음.
간수 중 한 명이 은근한 느낌으로 입을 열었다.
━대체 이 녀석을 왜 붙잡은 거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웅이라고 그랬잖아. 벨호크의 무슨 실험체를 쓰러트렸다며? 궁정 마법사가 된지도 얼마 안 됐잖아?
━몰라. 우리가 언제 감옥에 들어오는 놈들 사정을 일일이 생각이나 해 봤냐? 높은 자리에 올라갔던 몸이니까, 분명 알게 모르게 비리를 저질렀던 모양이지.
━일리 있네.
뭐가 일리가 있어.
다만 나로서도 내가 어찌하여 이렇게 감옥에 갇혔는지 알 길이 없었다. 라인하르트가 아이라에게 건넨 쪽지에 무언가 중요한 단서가 적혀 있었던 게 분명한데.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추측은 이 정도.
엘가가 나의 정체를 자신의 아버지인 라인하르트에게 밀고했거나 혹은 들켰고. 결국 라인하르트가 그것을 아이라에게 말했다-라는 것.
그렇지 않고서야 이 감금 상황은 설명이 되질 않는다.
…시발.
라인하르트, 그 남자는 이사야 가스펠과 우호적인 남자가 아니었나? 이제 와서 앙그마르를 다시 배척하는 쪽으로 돌아선 건가?
파지짓.
그때 내 머리에 전류가 흐르듯 기가 막힌 사고들이 이어졌다. 어쩌면 그의 아들 리차드 때문이 아닐까 싶다는 추측.
현 여왕인 아이라가 물러나게 된다면 왕위가 리차드에게 승계되기로 약조되어 있었으니까.
쉬이 왕좌를 넘겨받게 된 리오네스 가문에게 있어서 나의 존재는 거슬리기 짝이 없겠지. 라인하르트는 원래 야욕 있는 인물.
자신의 아들을 리오네스 왕가의 첫 왕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그걸 붙잡지 않는다면 멍청이다.
문제는 그런 왕위 승계 제안을 했던 것이 바로 나라는 점이다.
즉 내 추측이 맞다면 나는 내 스스로 무덤을 파고 목줄을 착용한 것이 된다. 아니, 아냐. 지금 중요한 건 이런 과정의 추측이 아니다.
“…….”
이제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만약 아이라에게 나의 정체가 들켰다면. 내가 현재로서 세상에 한 명 남은 옛 왕가의 후예라는 것이 들통 났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설마 죽나?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죽이는 것만큼 깔끔한 게 또 없지. 반대의 입장이었다면 나 역시 그랬을 확률이 높으니까.
그래도 아이라와는 나름대로 유대 관계를 쌓아왔고, 지금까지 함께 해온 정이라는 게 있을 터. 이제 와서 아이라가 나를 죽일 리가 없어….
─라고 확신할 수가 없다!!!
미르나와 엘가라면 나의 정체를 알아도 나를 당장 죽이려고 들 지는 않을 게 확실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기묘한 여왕님 아이라의 생각이 어디로 어떻게 튈지 지금까지 꽤 긴 시간을 함께했음에도 나로서는 도무지 추측할 수가 없다.
그래도 이렇게 생포해서 감옥에 넣어둔 거 보면 죽일 것 같진 않은데. 죽이려고 했으면 곧바로 처형하지 않았을까? 굳이 생포할 필요가 있었나?
아니, 어쩌면 마지막 남은 앙그마르를 공개 처형할 이벤트를 위해 살려두고 있는 걸지도.
당장 확실한 것은 이렇게 갇혀 있다간 내 목이 위험할지 모르니 일단 어떻게든 빠져나가야 한다는 것 정도.
6위계에 오른 소마왕으로서 이런 감옥 하나 빠져나가지 못한다면 꼴이 말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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