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276)
EP.277)요정과 여름 여행 # 1
277 – 어설픈 요정과 여름 여행 # 1
미르나와 고급 요정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로 며칠.
나는 평소처럼 많은 업무에 시달리며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벨호크 가문에 대한 처리부터 님프 열병 코로노이에 대한 방역 그리고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마녀 숲의 비무제까지.
처리해도 끝없는 일들이 내 책상 위에 잔뜩 얹어져 있었으니까.
“진짜 끝도 없네.”
그것뿐만이 아니더라도 이 위대한 왕도 모나크 시티에는 문제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얼마 전에 그 유지노이인가 하는 녀석과 펀치노이가 시내에서 격돌했다지?
━펀치노이라면 그 지하 격투장의 왕자? 벌꿀 주먹 말이야. 그런데, 그 유지노이라는 놈은 도시전설 아니었어…?
━이야, 그런 대결은 처음 봤어. 벌꿀을 손으로 쥐어짜 사탕을 만드는 악력이라니. 그런 기술은 처음 봤다니까. 두 님프들의 싸움에 건물 하나가 완전 작살이….
유지노이와 펀치노이의 싸움?
창문 바깥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나는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자 내 얼굴을 발견한 귀족들이 으흠, 어흠-헛기침을 하더니 저 멀리 휙 자리를 비켜버린다.
━마저 일 해야지. 너무 놀았네.
━으흠, 그래, 가자. 점심 전까지는 다 끝내야 할 일들이 있지.
“…….”
내가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아니, 그래서 누가 이겼는지는 좀 말해주고 가야지.
결국 나는 하루 종일 두 최강 님프들의 대결이 어떻게 끝났는지 알 수가 없어서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냥 오늘 하루는 좀 쉴까? 그런 마음으로 서명해야 하는 서류들을 주르륵 책상 한 구석으로 밀어 넣은 채 늘어지도록 기지개를 켠다.
“느으읏…!”
두둑, 두두둑.
온몸의 기가 탁 풀리면서 팔 다리가 쭉쭉 늘어나는 기분이 꽤 좋다. 실제로 기지개를 켜는 것에는 상상 이상의 스트레칭 효과가 있다지.
덕분에 맑아진 내 머리에 책상 위 한 구석에 잘 보관해두었던 편지가 보였다. 그 편지에 적혀 있는 글자는 「테오 가스펠」이라는 글자.
팔락.
사실 내가 최근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에 이 편지의 지분도 꽤 높다.
이미 몇 번이고 읽었던 글자지만 시간이 난 김에 다시금 펼쳐서 위부터 아래로 읽어나가기로 했다.
「테오 동지, 나 마르마르 마르노이야! 여름이 무척 더운데 모나크 시티에서는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삐뚤빼뚤한 글자로 적혀 있는 이야기들을 보니 눈앞으로 작은 주황빛의 소녀가 부산을 떠는 모습, 그 소리가 생생히 그려지는 듯했다.
적혀 있는 내용은 가벼운 안부 인사.
「동지가 맡겨준 다람쥐 컹컹이가 암컷들을 잔뜩 데리고 왔어! 그래서, 같이 한 상자 안에 넣어주었는데. 암컷들한테 물어 뜯겨서 등 쪽 털에 땜빵이 생겼지 뭐야!」
또 나의 친구 개다람쥐 컹컹이에 대한 소식이나 가르가르, 타르타르나 푸르푸르에 대한 임프들의 이야기도 적혀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아크의 여왕 콘테스트 3위에 입상한 부상품으로 관광권을 받았어! 마녀 숲 너머 대장벽을 관람하는 코스인데. 다른 임프들이랑 같이 며칠 다녀오려고!」
내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
마르마르가 임프들과 함께 방학동안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항목이었다.
앙그마르 북부에 위치한 대장벽은 엄중하게 관리되면서 동시에 민간인들을 향해 관광코스가 되기도 했다.
인간이 만든 것 중 가장 대단한 것으로 꼽히는 거대 장벽 ‘클라리스’.
그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인류 문명에 대한 경외심과 그림자 군대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충분하다던가?
다만 나는 본디 클라리스 대장벽이 지금쯤 무너졌어도 이상하지 않은 구조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쪽으로 예산과 지원이 충분히 가고 있으니 잘 보수 되었다고 하지만. 내 친구가 그곳으로 향한다고 하니 왜인지 조금 불안해진다고 해야 할지….
슥.
나는 몸을 일으킨 후에 창밖을 바라봤다.
구름들이 북쪽으로 흘러가는 모습을 보니 문득 나도 북쪽으로 향하고 싶어지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원래 나도 장벽에 한 번 정도는 가볼 생각을 하긴 했었지. 이번 기회에 한 번 시찰을 해두는 게 좋을까?
“비무제.”
여왕의 비무제 역시 장벽과 가까운 북쪽의 마녀 숲에서 열리니 그 전에 보안을 점검한다는 명목으로 들려서 이것저것 살펴봐도 문제는 없을 터.
“이사야 가스펠.”
또 이 몸의 아버지로 추측되는 이사야 가스펠이 마녀 숲과 그 장벽 너머에서 실종되었다는 말을 들었던 이상 내게 있어서 클라리스 장벽은 솔직히 신경 쓰이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좋아, 결정했다.
“그래서, 대체 언제쯤 들어오실 겁니까?”
내가 문 바깥을 향해 묻자 바깥에서 흠칫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곧 어흠-하고 목을 가다듬은 누군가가 내 문을 열고는 조심스럽게 고개만을 빼꼼 내민다.
“태오 경, 언제부터 눈치 채고 계셨죠?”
“사실, 아까 제 방문 앞에 오셨을 때부터 눈치 채고 있었습니다.”
“으흠.”
미르나 드레이코는 부채를 촤르륵 펼친 후에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내 집무실의 앞에서 서성이고 있던 걸 들킨 것이 꽤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 * *
나는 미르나에게 차를 한 잔 건네주었다.
얼음을 띄운 잔에 상큼한 레몬청과 벌꿀 그리고 설탕을 조금 첨가한 뒤 탄산수를 부어 잘 섞은 레모네이드다.
새침한 얼굴로 내 집무실을 이리저리 살피고 있던 미르나는 내가 건넨 레모네이드를 한 잔 마시더니 얼굴을 확 밝혔다.
“생각보다, 아주 맛있네요.”
“오늘처럼 더운 날에는 차갑고 시원한 걸 마셔주면 좋을 것 같아서요.”
“예전부터 느낀 것이지만, 태오 경은 무언가 만드는 데에 재주가 있는 것 같네요. 요리나 차도 잘 만들고. 마법 반지나 주문 자체도 휙휙 만들고.”
그런가?
나는 그냥 평범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멋쩍어하고 있자니 잔에 들은 음료를 몇 모금 더 들이킨 미르나가 입가를 손수건으로 우아하게 닦으며 말을 덧붙였다.
“어쩌면 솔로몬과 같은 고유마법을 개화 하실 지도 모르겠네요.”
솔로몬.
그 이름이 미르나의 입에서 나온 것에, 나는 미르나가 어째서 나의 집무실에 찾아온 건지 파악할 수 있었다.
아마도 내가 앙그마르 가문의 생존자인 것에 대해서 이야기 했던 걸 마무리 짓기 위해 찾아온 것이겠지.
그래서 내가 살짝 마음을 무겁게 긴장시키고 있을 때 미르나가 물었다.
“솔로몬의 고유마법을 아시나요?”
“고유마법이라.”
5위계 이상의 대마법사들은 각자 자신의 고유 아이덴티티라고 불러도 좋을 속성을 하나씩 갖게 된다.
이를테면 현자회의 늙은 마법사 하이낙스 같은 경우 무슨 주문이든 한 번 숙달하면 재빠르게 영창 할 수 있는 고속영창.
혹은.
현재 8위계를 넘보고 있는 아이라의 경우 빛무리를 조작할 수 있는 광원조작이 바로 고유 마법의 예시다.
대마법사라는 것은 누구나 자신만의 특기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10위계의 솔로몬 역시 고유 마법을 지니고 있다 들었다.
마르마르가 말해주었던 바에 따르면 솔로몬의 고유 마법은 무려 세 개.
“계시와 예지, 그리고 부여마법이었던가요?”
내 말에 미르나가 후후 웃었다.
“그렇게 알려져 있긴 하죠. 왜냐하면, 그렇게 알려지는 게 형편이 좋았으니까. 하지만, 솔로몬의 고유 마법은 사실 하나였습니다. 창조.”
“창조(創造)?”
만들어낸다는 뜻인가.
마치 신과 같은 능력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때 미르나가 먼저 한 발 앞섰다.
“마치 신과 같은 능력이다. 그렇게 생각 들지 않나요?”
나는 생각이 읽힌 것 같아 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미르나의 태도는 완연하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니까요. 아마, 솔로몬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기에 오만해졌죠. 더욱 높은 것을 탐했기에 강욕을 품었고. 하늘이 가진 것에 대한 질투와 닿을 수 없음에 분노─.”
“스스로 선을 행하지 않은 나태. 세상을 집어 삼키려한 탐식. 이게 솔로몬의 죄악들이었죠.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교단에서 이르기를 여섯 개의 대죄를 저지른 악인이라 했다. 그가 저지르지 않은 죄는 오로지 색욕 뿐.
그것을 모르는 앙그마르 주민은 없다.
예배당에 나가면 질릴 정도로 들으니까.
“태오 경, 만약 태오 경이 솔로몬과 같이 떨어진다면 색욕의 죄까지 추가 될 거에요. 칠 죄의 마왕이라니. 그건 솔로몬에 비할 바 없이 끔찍하겠죠.”
“…….”
부정할 수 없군.
내가 살짝 비관을 점치고 있을 때, 미르나가 초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앙그마르의 이야기는 역시 거절하는 것이 옳을 것 같네요.”
“…아.”
거절당했다니.
내가 살짝 충격을 느끼고 있으려니 미르나가 조잘조잘 말을 덧붙인다.
“드레이코 가문은 건국의 때부터 앙그마르와 여러모로 깊은 인연을 가진 가문이지만, 그것도 제 부친의 대까지 이야기. 제게는 앙그마르 가문에 충성할 의리도, 의무도 없으니까요.”
“그건, 그렇죠.”
“하지만 태오 경과는 많은 인연을 맺었죠. 지금까지 지켜본 바, 앙그마르의 후예가 아닌 반요정 태오 경이라면 믿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 말에 내 귀가 트이는 것 같았다.
“제 가문이 아닌, 저를 믿어주시겠다는 것이로군요?”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죠. 두 번은 말하지 않을 테니까 알아서 잘 알아듣도록 하세요.”
부채로 얼굴을 가린 미르나가 시선을 휙 돌렸다.
엘가와 다르게 솔직하지 못한 면이 많은 미르나로서는 이런 이야기를 내게 해야 하는 것이 조금 부끄러웠나 보다.
어찌되었든, 요 며칠 나의 마음을 크게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던 이야기가 약간 일단락 되어가는 상쾌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미르나 아가씨, 정말 후회하지 않도록 행동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슥.
감격한 내가 맞은편에 앉은 미르나의 손을 붙잡으려 할 때였다. 그녀는 내 손을 부채로 탁 튕겨낸 후에 도깨비처럼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 태오 경, 리오네스 영애가 홑몸이 아니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대체 언제 말해주시려고 하는 거죠?”
눈앞이 삽시간에 아찔해진다. 방금 상쾌해졌던 마음에 마치 번개가 내리친 것처럼 번쩍 스파크가 튀었다고 표현해도 좋다.
“…그걸 어떻게…?”
내 물음에 미르나가 왕창 미간을 찌푸렸다.
“얼마 전, 리오네스 영애와 가게에서 싸웠을 때 말이에요. 리오네스 영애가 계속해서 배를 보호하는 걸 눈치 챘단 말이죠. 요즘 벌였던 이상 행동들까지 보면….”
“아.”
“힌트가 있음에도 눈치 채지 못한다면 바보가 아니겠어요? 리오네스 영애라면 모를까, 저는 그렇지 않거든요.”
한 가지 일이 해결 되니 한 가지 일이 몰아닥쳐 온다. 나는 흥분한 미르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사실대로 해 그녀를 진정시켜야만 했다.
“뭐라구요? 저, 저를 임신시키기 위해서 리오네스 영애와 작당모의를…!?”
“쉬잇, 미르나 아가씨, 목소리가 너무 크십니다. 조금 진정을….”
“으흠, 정말이지 아주 저질이군요. 할 말이 굉장히 많지만. 어디부터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도 모르겠고. 태오 경, 지켜볼 거에요.”
“알겠습니닷….”
나는 꿀밤 맞은 님프처럼 고개를 조아리는 수밖에 없었다. 내 진심을 담은 연기가 맘에 들은 것인지 미르나는 흥-코웃음을 칠 뿐.
그러다가 내 책상 위에 대장벽 클라리스에 대해 적혀 있는 서적들이 좌르르 늘어서 있는 것을 보고는 흥미가 생긴 것처럼 물었다.
“혹시 장벽으로 가실 생각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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