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336)
EP.337)오브 하트 # 6
337 – 퀸 오브 하트 # 6
미르나와 나는 리오네스 저택으로부터 잠깐 떨어져서 대화를 나눴다.
“여긴 2년 전의 왕도인 것 같습니다. 제가 아직 노예 학대방지 법을 발의하기 전의 모나크 시티에요. 태오 가스펠이 아직 없는 세상이라는 거죠.”
우선 내가 습득한 정보에 대해서다.
“더 확인 해봐야 알겠지만요.”
내가 생각하기에 이곳은 2년 전의 왕도다.
그 증거로 리오네스 가의 늙은 집사가 엘가가 올해로 열아홉의 생일을 맞이한다고 했다. 엘가의 원래 나이가 스물이 넘었던 걸 생각하면 지금은 과거로 돌아오게 된 게 맞다.
물론 진짜 과거로 돌아온 건 아니지만.
이 심상세계는 마치 진짜라고 부를 만큼 정교하교 생동감 넘치게 구성되어 있어서, 마치 진짜 2년 전의 어느 날로 돌아온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온 몸을 차갑게 적시는 빗물과 젖은 옷의 촉감도.
빗물에 젖어 나는 흙내음과 사방을 때리는 빗방울 그리고 천둥의 소리들. 모두 하나 꿈이라고 할 만한 것 없이 너무나도 생생하다.
이런 게 가능한 건가?
촤르르르르-.
떨어지는 빗물을 손바닥으로 만지고 있을 때.
미르나가 말을 걸어온다.
“생생하죠? 마치 모든 것이 진짜처럼. 어떤 의미에서 이곳은 진짜 세상이나 다를 바가 없긴 하죠. 사람들의 행동과 얼굴까지도. 이번 주술에는 특별히 공을 들였으니까요.”
“그렇군요. 확실히, 방금 그 집사는 진짜 사람처럼 이야기했었죠.”
“물론 한계는 있어요. 이 세상은 타란테라 여왕의 기억과 사고를 토대로 움직이는 곳이니까. 그녀의 안에 깃든 무의식. 그것으로부터 구성된 세상이기도 하고.”
미르나가 무슨 말을 하는 지는 알 것 같았다.
사람의 의식과 뇌는 본디 빙산과도 같다고 했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의식과 사용되는 부분은 전체에 비해서 일부일 뿐.
그런 의미에서 이 세상은 그 드러나지 않은 무의식의 세계였다.
아이라가 평소 보아왔던 사람들의 얼굴, 스쳐지나갔던 일들. 아무렇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정보들까지 차곡차곡 쌓여서 만들어낸 세상.
아이라가 인식하고 있는 모든 것.
미르나가 내 사고를 도울 만한 설명을 덧붙여줬다.
“꿈꾸는 자는 그것이 꿈이라는 걸 깨어나는 순간까지 자각할 수 없죠. 아이라 여왕이 깨닫기 전까지. 이 세상은 진짜나 마찬가지랍니다.”
“확실히, 꿈을 꿀 때는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죠.”
그렇지만 하필 2년 전이라니.
“미르나 님,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어려워질 지도 모릅니다. 2년 전의 아이라 님은 조금, 많이 아프고 삭막한 분이었거든요. 아크에서 만났던 때와는 비교도 안 될 겁니다.”
일단은 우리 작업이 어려워 질 지도 모른다고 경고를 해 두었다.
다행인 점은 미르나가 “어려움은 각오하고 있었어요.”라고 흔쾌히 답을 내린 것 정도. 미르나의 정신은 탄탄하구나.
감탄에 잠겨 있으려니 미르나가 내 눈치를 슬쩍 보고는 내 새끼 손가락을 붙잡았다.
“태오 경은 홀로 그 시간을 버텨왔잖아요. 지금은 저와 함께 있으니 그때보다 훨씬 나을 거에요.”
“정말 든든하네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만한 기분이 든다.
확실히.
그 시절의 내게 미르나와 같은 동료가 있었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을 것이고. 더 많은 일들을 이뤄냈을 지도 모른다.
그 시절을 미르나와 함께했었다면 서로 밤마다 많은 이야기도 나누고, 함께 아이라의 험담을 나누기도 하고 또….
그렇게 생각하니까 내 옆에 있는 미르나가 몹시도 사랑스럽게 보여서, 나는 그녀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고 그 가슴에 얼굴을 문질렀다.
슥슥슥.
“우앗, 앗…!”
그 갑작스러운 행동에 미르나는 당황한 것처럼 괴상한 소리를 냈다. 물론 나는 그녀의 말랑하고 따뜻한 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새삼스럽지만 미르나 님이 제 아내라서 다행입니다.”
“알겠으니까, 조금, 떨어지도록 하세요…! 빗물에 젖기도 했고, 아까 태오 경을 찾기 위해 뛰어다니느라 땀도 좀 나서 냄새 날 수도 있으니까….”
킁킁.
“하나도 안 나는데요. 좋은 냄새만 나요. 따뜻하고.”
“…아무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어서, 리오네스 영애와 합류해야 해요. 홀로 오래 떨어져 있으면, 꽤 헷갈리게 될 수도 있어요.”
슥.
미르나의 진지한 이야기에 나도 미르나의 품에서 고개를 때어내고 진지한 생각에 잠겨봤다.
미르나의 말에 따르면 엘가와 얼른 합류하지 않으면, 엘가가 이곳을 ‘진짜 세상’으로 판단해서 꽤 영향을 받을지 모른다고 그랬다.
그게 어떤 방식의 영향일지는 모르겠지만.
별로 좋은 일은 아니겠지.
“하지만, 미르나 아가씨께서도 보셨다시피 저는 이 세상에서 아직 없는 사람 취급입니다. 리오네스 가문의 사유지에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죠?”
대가문의 영지에 함부로 발을 들였다간 꼬챙이 신세가 될 거다. 리오네스에는 거수자를 즉결처분할 권리가 충분히 차고도 넘칠 테니까.
어쩌지?
미르나의 이름을 팔아야 하나?
미르나가 짊어지고 있는 드레이코 가문의 이름은 이 2년 전 세계에서도 통용되고 있을 테지.
하지만 미르나는 고개를 저었다.
“드레이코의 장녀가 갑작스럽게 나타나 리오네스 영지를 방문 한다-. 이런 일은 세간의 이목을 너무 끌 테죠. 그럼 저희의 위치가 경비들에게 발각될 테구요.”
가능하면 은밀하고 신중하게.
그것이 미르나의 방침이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있어서 외부 침입한 병균이나 마찬가지. 또 우리가 왔다는 걸 아이라 내면에 깃들어있는 아르스 노바가 확신하게 된다면 꽤 골치가 아파질 거라고.
“아직은 나설 때가 아니에요. 타란테라 여왕의 정신을 더욱 무장시켜서, 스스로의 어둠과 마주하고 싸울 수 있을 정도로 만든 후에야 저희가 본격적으로 나설 때죠.”
“과연, 미르나 님은 현명하시네요. 정실 점수를 드리고 싶습니다.”
내 농담에 미르나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끝나고 결산할 거에요.”
결산하긴 하는구나.
아무튼.
“그럼, 아무튼 은밀하게 일을 진행해야 한다는 소리겠네요. 리오네스 가문에 몰래 잠입해서 숨어 들어가기라도 해야 한다는 말일까요?”
내 물음에 미르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들켰다간 난리가 날 테죠. 그리고 태오 경, 당신과 제가 도둑처럼 숨어서 담을 넘어야 할 이유는 없어요. 저희는 정문의 입구로 당당히 들어갈 것이랍니다.”
정문 쪽으로 당당히 들어갈 거라고?
대체 어떻게?
내가 의아함을 느낄 때 미르나가 후후-웃었다.
“태오 경은 자각몽(自覺夢)이라는 말을 알고 있나요?”
“자각몽이라면, 꿈인 걸 깨달은 상태에서 꾸는 꿈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아요. 저와 나르미는 자각몽을 꾸는 훈련을 꽤 받았거든요. 그래서 이것이 꿈이라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면 이런 일도 할 수가 있죠.”
슥슥.
미르나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자신의 손바닥을 슥슥 문질렀다.
그렇게 한참 부스럭대기를 몇 초 정도. 나는 곧 그녀의 손바닥 안에서 작은 종이 하나가 접혀 있다는 걸 눈치 챌 수 있었다.
미르나가 말했다.
“됐네요. 이게 저희를 리오네스 영지 안으로 들어가게 해 줄 거에요.”
“그게 뭡니까?”
내 질문에 미르나가 내게 종이를 펼쳐 보여주었다.
“리오네스 가문의 인장이 찍힌 구인문서죠. 저희는 리오네스 가문에서 고용하기로 한 신입 하인과 하녀라는 명목으로 이 저택에 들어설 것이구요.”
과연.
펼쳐진 종이에는 태오와 미르나를 시종으로 고용한다는 글귀와 계약 내용이 잔뜩 적혀 있었다. 또 마지막에 찍혀 있는 것은 틀림없는 리오네스 가문의 인장이다.
이런 걸 위조 해낸다니.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자각몽의 훈련이라는 것이 굉장하구나.
나도 따라해보려 했지만 잘 안 됐다.
그래서 나는 아쉬움 반 기대 반으로 미르나에게 물었다.
“다른 것도 더 만들어내실 수 있습니까?”
“저도 노력은 해봤는데. 안 되네요. 제 꿈이 아니라 그런가 종이 한 장 만드는 정도가 최대였어요. 제법 지치는군요.”
그렇구만.
마음대로 사용할 수는 없다는 건가.
그래도 이 종이 하나만 있으면 지금은 충분했다.
* * *
우리는 다시금 리오네스 별장 정문에서 종을 울렸다.
달랑달랑.
빗소리에 퍼지는 작은 종소리. 곧 누군가 우산을 쓴 채 우리에게 다가온다.
아까 전의 그 집사였다.
슥.
집사는 미르나가 건네는 종이를 받은 후에 우리들의 얼굴을 슥슥 살폈다. 또 종이에 적힌 글귀나 인장을 한 번 더 세심하게 바라본다.
“사용인들의 고용은 저 로완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두 사람을 채용 했던 건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 군요. 그렇다는 말은….”
슥.
그때 노집사가 손가락을 튕겨 불꽃을 일으킨 뒤. 그 불꽃에 종이를 이리저리 대 보았다.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꼭 위조지폐를 검사해보는 검사관 같은 행동이었다.
실제로 그것과 비슷했으리라.
“리오네스 가에서 사용되는 업무 용지는 모두 특수한 처리가 되어 있지요. 만약 이것이 진짜라면 뒷면에 불을 비추었을 때 사자의 문양이 흐릿하게 떠오르는 법.”
“…….”
노집사의 말에 나는 잔뜩 긴장했다.
혹시 위조된 게 들키진 않겠지.
“후….”
미르나 역시 제법 긴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리오네스 가의 업무 용지가 특수한 처리가 되어 있다는 걸 그녀가 알고 있었을 것 같지 않은데.
역시 내가 나서야 하는 건가.
발동해라.
─요정의 잔꾀!
지금까지 비축해두었던 설탕과 당분이 내 머리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덕분에 과열된 기계장치처럼 뜨거워진 머리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도출해냈다.
“저희는 리오네스 영애님께서 특별히 고용하신 인원입니다.”
내 말에 로완의 시선이 내 얼굴로 향했다.
“…아가씨께서?”
“앞으로 있을 여왕님의 생신을 위해서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죠. 먼 길을 왔으니 안으로 들어가서 쉬게 해주시면 좋겠네요.”
“…….”
나의 당당한 태도가 어떻게 느껴졌는지 모르겠지만 늙은 집사 로완의 외안경 뒤 눈동자가 게슴츠레하게 뜨였다.
엘가는 원래 멋대로 노예를 구매하거나 하인들을 고용할 정도로 기분파.
엘가의 방종함이 설득력이 될 터.
자, 어떠냐.
“흠.”
곧 노신사는 자신의 손에 들린 종이를 둘둘 말은 뒤에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서류도 틀림없는 진품이로군요.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십시오.”
기이이익.
곧 무겁게 닫혀 있던 철문이 좌우로 열리며 개방되었다. 그것이 뜻하는 것은 하나. 우리들의 작전이 잘 먹혀 들어갔다는 것이다.
과연 미르나의 말대로 우리는 정문으로 당당히 들어설 수 있게 되었다!
“아가씨께 모셔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느낌으로 우리는 집사의 뒤를 따라 드넓은 정원을 걸었다. 그 뒤를 따라 걸으며 나는 집사가 듣지 못할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미르나에게 말을 걸었다.
“용케도 리오네스 가의 업무 서류를 복제해내셨네요. 특수한 처리가 되어 있다는 것. 알고 있었습니까?”
“그 정도야 당연한 일이죠. 저는 리오네스 가에 대한 이야기라면, 리오네스 영애보다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답니다. 그런 사이니까.”
낭만적인 사이는 아니겠지.
서로 공작원이라도 보내 정보라도 빼냈나.
이에 대해서는 그냥 비밀로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지금 중요한 것은 리오네스 가문의 별장 내에 무사히 잠입했다는 것이니까. 내게는 꽤 익숙한 곳이었지만 미르나는 그 건물 내부가 신기한 건지 이곳저곳 들여다보기 바빴다.
“이렇게 생겼었군요. 태오 경은 이곳에서 머물렀던 기간이 있다고 그랬죠. 진짜와 비교해봤을 때 똑같은 것 같나요?”
“똑같긴 한데. 비가 와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더 우중충하군요. 원래는 사람들이 많아서 바글바글 시끄러운 곳이거든요.”
그 뒤 우리는 일단 하녀들이 안내하는 욕실로 가서 몸을 씻고 깨끗한 옷으로 환복 했다.
대가문 리오네스 영애의 얼굴을 봐야 하는데 젖은 모습으로 만날 수는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대강 몸단장을 끝낸 후 집사는 우리들을 이끌고 익숙한 복도를 걸었다.
저택 2층의 좌측 복도.
그곳을 걷다보면 엘가의 개인 집무실이 있지.
그곳 앞에 선 집사가 문을 똑똑 두드리며 말 한다.
“아가씨, 아가씨께서 고용하신 사용인 둘이 도착했습니다. 안으로 들여보내도록 할까요?”
그에 곧 안쪽에서 기척이 들려온다.
━내가 최근에 사람을 고용했던가? 이상하네. 일단 안으로 들어오라 해 봐.
덜컥, 기이익.
집사가 슬쩍 문을 열었다. 그 열린 틈으로 스며나오는 탁하고 불쾌한 냄새가 나의 감각을 자극한다. 정말 지독하네. 화생방이냐.
미르나 또한 인상을 찌푸린 뒤 콜록콜록 기침했다.
“지독한 마력초 냄새네요. 잔뜩 불붙은 장작에 고개를 쳐 박고 있는 것 같군요.”
“엘가 님은 원래 애연가셨거든요.”
하지만 끊었을 터다.
뱃속에 아이가 생긴 이후로는 그녀가 마력초를 태우는 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 모습에서 한 편으로는 의지력과 결단력을 느끼며 존경심마저 품고 있었는데.
이 불쾌한 냄새와 뿌연 연기가 마치 드라이아이스처럼 자욱하게 깔린 방으로 들어섰을 때 나는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엘가 역시 2년 전으로 돌아가 버린 건가?
“그래서, 너희가 누구라고?”
우리를 알아보지 못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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