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4)
EP.5)꽃 아이라 # 5
005 – 악의 꽃 아이라 # 5
“우에에엑-.”
궁정 정원의 화단에, 내 속이 순식간에 게워졌다.
누군가 보면 칠칠치 못한 태도라고 말했겠지만, 어차피 연회로 떠들썩한 지금 궁정 뒤에 있는 나를 신경 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일부러 토하려고 사람이 없는 곳을 고른 것이기도 하고.
“와, 진짜 꼴사납네-. 겨우 그거 먹고 토해? 야만인의 애송이들도 너보다는 기개 있겠다.”
아-. 깜짝아-.
나는 오이를 본 고양이처럼 튀어오를 뻔 했다.
내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온 것은 정말 예상치도 못했던 일이었으니까.
화들짝 놀란 나는 술기운을 뒤로 물리며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엘가가 있었다. 머리를 뒤로 묶은 그녀가,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며 손수건을 건넨다.
“자, 여기-.”
“괜찮습니다. 저도 제 손수건이 있으니-.”
“…….”
내가 호의를 거절하자 엘가의 표정이 구겨진다.
순간 내 오른쪽 눈이 찌릿찌릿했다. 오른쪽 눈의 흉터가, 옛 일을 떠올렸는지 다시금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어서 받아-. 나, 세 번 말하는 거 싫어하는 거, 너는 잘 알지? 지금이 두 번째.”
엘가의 계속되는 재촉에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녀의 손에서 손수건을 받아 입가를 닦았다.
이 녀석이 나에게 호의를 베풀어 온다니. 오히려 불안하고 기분이 나빴지만 하는 수 없다.
아-. 이게 다른 사람들의 기분이었구나. 나 태오가 갑자기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려고 하면, 다들 이런 기분을 느꼈겠구만.
이 새끼가 나한테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그러지-라는 감각.
당연히 거절당하겠지.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직접 느껴보니 확연히 기분 나쁘다.
나는 내 스스로의 행동을 반성하며 근처 분수대에서 입을 행궜다. 손수건으로 입가를 마저 닦은 뒤 적당히 격식을 담아 벽을 쳤다.
“이것은, 제가 잘 빨아서 돌려드리겠습니다.”
가능하면 엘가에게는 빚을 지거나 지워놓고 싶지가 않다. 그냥 서로 관여하기 싫다고 해야 할까?
엘가는 나와 상극이다. 엘가만 보면 어렸을 적, 내 돈을 자꾸 뺏어갔던 뒷골목 무서운 누나들이 떠오른단 말이지.
“쌀쌀맞네, 태오-. 요즘 이 누나랑 안 본 사이에, 좀 많이 편하게 지냈나 봐? 자꾸 기어 오르지? 응? 요새 어때?”
엘가의 손이 내 목덜미를 스르륵 훑고 지나갔다.
또 그 목소리는, 방금까지 전장을 호령하고 있었던 여장부답지 않게 나긋나긋하고 제법 친절함까지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녀의 손에서 나는 피냄새는 지워지지가 않는 법이다.
나는 내 귓불을 잡아당기려는 손가락을 슬쩍 피하며 거리를 벌렸다.
“그냥 똑같았습니다. 현명하고 지혜로우신 아이라 여왕 폐하께서 나라를 다스리고 계시니, 문제도 없고-. 사람들은 행복하고-.”
“야, 야, 나는 그런 걸 물어본 게 아니잖아. 너무 오랜만이라 감을 좀 잃었어? 머리 대. 꿀밤 때리게.”
엘가의 손이 거리를 벌리려는 나를 향해 뻗어진다.
그녀는 아이라와 마찬가지로 이제 막 성년의 나이가 되었지만, 그보다 서너 살은 나이가 많은 나를 이렇게 빵셔틀 취급했다.
“볼일 없으면, 저는 이만 가봅니다.”
나는 이 불편한 만남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그녀의 옆을 돌아서려 했다.
“어쭈, 태오-. 내가 모처럼 큰 맘 먹고 친절하게 대해주려고 하는데-. 날 이렇게 모욕해야겠냐?”
그러나 그런 내가 맘에 들지 않았는지, 엘가의 나름대로 다정한 표정으로 유지하고 있던 얼굴이 여러 감정으로 울그락불그락 해진다.
“그래, 뭐 좋아-. 아직도 뭐, 그 옛날 일을 신경 쓰고 있는 거겠지.”
그녀의 목소리 또한 친절함을 잃고 다시 앙칼진 여장부의 그것으로 돌아왔다. 차라리 이쪽이 상대하기 좋았기 때문에 내게는 좋은 일이다.
“옛날 일이라뇨?”
“네 눈에 난 그거-. 흉터. 내가 미안하다고 했잖아? 아이라는, 언제나 내게서 가장 예쁘고 좋은 것들만 골라서 뺏어 갔는걸. 그렇게 상처라도 내지 않으면, 빼앗겼을 거란 말이지.”
“…….”
“그렇게 했어도 결국 빼앗기긴 했지만 말이야. 아이라 그년, 늘 그년 때문에 나는 뒷전이야.”
“그 이상 여왕님에 대한 망발은-.”
“썅-! 그놈의 여왕, 여왕-!”
엘가가 빽 소리를 질러서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니, 엘가가 품속을 뒤지며 말했다.
“네가 언제부터 아이라를 그렇게 챙겼다고 그래? 그래서, 뭐, 둘이 진짜 그러기라도 했냐?”
“그러다니요?”
내 되물음에 엘가는 주변을 슥슥 둘러보고는 품에서 마력초 시가를 하나 꺼냈다.
아, 마력초란 이 세계의 담배 비슷한 것으로 귀족들이 즐겨 피는 기호식품이다.
손가락을 탁탁 튕겨 마법 불꽃을 일으킨 엘가가 시가를 쭉 들이켜더니, 사과 향의 하얀 연기를 뿜는다.
“나도 귀가 있거든? 너랑, 아이라랑. 그렇고 그런 관계라고. 궁정 내에 소문이 파다하던데…? 그게 진짜냐…?”
뭐야, 난 또 뭐 다른 이야기가 있는 줄 알았네. 나는 긴장을 풀며 대수롭지 않은 듯이 답했다.
“그렇지 않다는 걸 가장 잘 아는 분이시지 않습니까? 설명할 가치를 못 느끼겠습니다.”
“그래, 그렇지? 그러니 아이라가 아직 왕좌에 앉아 있는 것이겠지. 그래, 뭐. 결국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거구나.”
귀족 새끼들-. 헛소문은 잘 만들어-라고 엘가는 시가를 바닥에 던진 뒤에 구두로 대충 밟아 불씨를 껐다.
“그보다 태오-. 이렇게 둘이 있으니까 옛날 생각난다. 오랜만에-. 그거나 좀 해볼까? 거절하지 마. 이거 부탁하는 게 아니라 명령하는 거니까.”
망할 년.
나를 협박하는 건가?
“자, 그럼 여기 내 앞에 서서 눈을 감아 봐. 예전에 했던 걸 다시 할 거니까. 아이라를 잘 보좌했으니까, 상을 주는 거야.”
상이라니.
고문이겠지.
그렇지만 나는 천천히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엘가를 거절했다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녀는 사람을 죽이고 괴롭히는 것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난 프로니까.
눈을 감으니 어질어질하구만. 이래서 술은 싫었는데.
그때 엘가의 사과향기가 후욱-고개 앞으로 끼쳐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는 부드러운 것이 내 입술에 닿고 매끌매끌거리고 따뜻한 것이 내 입 안으로 훅 들어온다.
그것은 엘가의 혀다.
“츠르, 츠르르르르-. 혀, 깨물지 마-. 그럼, 후으으, 츠릅, 혼날 줄 알아-.”
“…….”
“츠르, 츄르르, 추르, 흐아, 하으, 츠르-.”
그녀의 혓바닥은 나의 입 안과 목구멍 안쪽을 자비 없이 희롱했다. 그것도 잠시, 그녀는 곧 내게서 고개를 슬쩍 떨어트리고는, 붉게 물든 얼굴로 말했다.
“어때? 너무 기분 좋아서 미쳐버릴 것 같지? 아이라는, 너한테 이런 거 안 해주잖아.”
솔직히 말해서, 분하지만 기분 좋기는 했다.
씁쓰름한 마력초 냄새만 없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왜 이 녀석은 항상 마력초를 태운 다음에 이러는지 모르겠다. 덕분에 담배도 피우지 않는 내 목은 따끔따끔해서 죽을 맛이다.
콜록-, 콜록-.
내가 기침을 하고 있자 엘가는 그게 퍽 재미있는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깔깔 웃었다. 남이 고통 받는 걸 좋아한다니.
변태인가.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응-?”
내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으려니, 엘가가 나를 벽 쪽으로 몰아붙인 후에 다시금 입을 맞춰왔다.
거친 숨을 내쉬면서, 손으로는 내가 어디 도망가지 못하도록 어깨 양 옆으로 울타리를 친다.
“프하으, 츠르릅, 흐으-. 하으, 어때에-. 좋지이-? 응-?”
솔직히 말해서, 엘가는 사춘기 중학생처럼 의욕이 앞섰다. 키스에 무드라고 할 것은 없었고, 기술도 없이 우직하게 내 입안을 이리저리 휘저을 뿐.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기분 좋은 일이지만, 아무래도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은 내 성미에 맞지 않다.
그래서 나는 가만히 입을 벌리고 있는 대신, 나 역시 혀를 그녀의 입 안으로 밀어 넣기 위해 힘을 줘 봤다.
츠릅-.
“으으, 으읍-?! 흐으아아-!?”
그러자 엘가는 정말 깜짝 놀란 것처럼 화들짝 놀라 내게서 떨어져 나왔다. 자신이 공격당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걸까?
“누, 누가 멋대로 혀를 움직이래? 내가, 내가 가만히 있으라고 했지? 내 말이 우스워?”
엘가는 단단히 화가 났는지, 만약 아이라가 명령한 것이었어도 그랬겠냐는 둥, 자기가 여왕이 아니라서 무시하는 것이냐는 둥 조잘조잘 시끄럽게 떠들었다.
이쯤 되면 솔직히 바보라도 눈치 챌 수 있겠지.
엘가는 앙그마르의 현 여왕 아이라를 향해 자격지심 같은 것을 은근히 지니고 있었다. 무엇이든 그녀와 비교하고, 그녀보다 잘 하려고 혼자서 의욕을 높인다.
아마 나를 괴롭히는 것도 아이라에 대한 열등감 때문일 거다.
아이라의 그늘에 매일 가려지고 살다보니, 그 울분을 아이라의 종자인 내게 풀려는 것이겠지. 그게 내가 파악한 엘가 리오네스다.
“아무튼, 다시는 내가 시키지 않은 거 하지 마-. 알겠냐? 어?”
엘가는 자신의 입가에 묻은 타액을 드레스의 소매로 슥슥 닦아냈다.
그녀의 파란 눈동자는 무엇이 그리 불안한 것인지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는데, 한참 그렇게 불안정해 보이더니 무언가 생각난 것처럼 “아-.”라고 짧게 감탄을 내뱉는다.
스르륵-.
곧 엘가는 깊게 파여 있는 드레스의 가슴 사이에서 무언가를 하나 꺼냈다. 그것은 자그마한 배지 혹은 엠블럼 비슷한 물건이다.
“그게 뭡니까?”
“악마를 소환한 야만인들이 갖고 있었던 물건. 좀 느낌이 이상해서 가져와 봤다. 혹시 너라면 알까 했거든.”
엘가에게서 넘겨받은 배지는 엘가의 가슴 온기 때문인지 따뜻했다.
냉혹한 여자애라도 가슴 살결은 따뜻한 모양이네-같은 시시껄렁한 생각을 하며 배지 여기저기를 살펴봤다.
“제법 정교한 세공품 같은데, 불에 그을린 자국이 너무 심해서 못 알아보겠습니다.”
“그나마 그게 제일 멀쩡한 걸로 가져온 거니까 징징대지 마.”
징징대지 말라니. 말이 심하네.
그런데, 이렇게 보니 확실히 알겠다. 그을린 배지에서 아직도 풍기고 있는 탄 내음과 지워지지 않는 피 냄새-.
엘가가 자신의 병사들과 얼마나 위험한 사선을 겪어온 건지, 머릿속에 어렴풋이 그려지는 것 같기도 하다.
산제물의 심장을 뽑아 태양신인지 뭔지 하는 악령에게 바치는 남만의 야만인 녀석들과 전투를 벌인 것이니까, 그 현장은 정말 지옥 같았겠지.
이런 삶이 되었어도 나는 다행스럽게, 전쟁터를 두 눈으로 목도한 적이 없었다. 그건 현장에서 피를 흘리는 엘가 같은 전사들 덕분이고.
따뜻한 궁정에서 숫자놀음 하는 내게 징징대지 마라-라고 말 할만도 하다.
“아무튼, 남쪽 밀림의 쿠쿨자르 야만인들이 만들었다기엔 지나치게 정교하네요. 이런 걸, 여러개 갖고 있었다면 단순한 우연은 아닌 것 같은데-.”
프락치로 심어두었던 비둘기파 의원에게 물어보면 뭐 나오는 게 있을 것 같은데. 그걸 눈 앞의 여자애가 도끼로 찍어버려서 영 불편해졌다.
“제가 알아보도록 하죠.”
“그래. 그래서, 다음 원정은 어디로 가면 되냐? 네가 아이라를 부추겨서, 또 나를 원정으로 내보내려고 할 거잖아. 그치?”
엘가 녀석, 제법 날카롭구만. 하지만 그렇게 날카롭지 않으면 최전방의 야전 사령관 같은 건 못할 거다.
나는 배지를 품에 넣으며 적당히 대답해줬다.
“일단 원정에서 돌아오셨으니 당분간은 왕도에서 머물면서 쉬시죠. 요양도 하고, 다친 곳이 있으시면 치료도 좀 하시고-.”
벨모트의 처형이 저지되어서 반란의 불씨가 꺼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위험한 불씨가 어딘가에서 타오르고 있을지도 모르는 상태.
일단은 거대 전력인 엘가와 그녀의 리오네스 친위대를 왕궁 근처에 주둔 시키는 게 여러모로 좋을 것 같았다.
엘가가 원정을 단기간에 빨리 끝내고 돌아온 게 의외로 도움이 되었구만. 그래서 나는 감사 반 비꼼 반을 담아 엘가에게 말했다.
“늦었지만, 원정에서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뭐래니-. 누가 너한테 그런 인사 받고 싶어서 일찍 온 줄 알아? 아, 몰라-. 술이 다 깨네. 난 갈 테니, 거기서 궁상 떨고 있던가 해!”
휙.
마침내 엘가는 내게서 흥미가 떨어진 것처럼 등을 돌리고 거리를 벌려 연회장으로 돌아가려했다. 멋대로 와서 괴롭히다 멋대로 돌아간다.
이제야 좀 쉴 수 있겠구나 살짝 안도하고 있자니-. 한참 거리를 벌렸던 엘가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녀답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야, 태오-.”
“더 할 말 있습니까?”
“만약에-. 1년 전에, 아이라의 생일에, 내가 널 궁정에 데리고 가지 않았다면 말이야-.”
1년 전-. 1년 전인가-.
나는 내가 이 캐릭터에 딱 빙의했던 순간을 떠올려 봤다.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갑자기 웬 철창에서 눈을 떠서 내가 납치라도 당한 줄 알았지.
내가 소설 속으로 들어왔다는 걸 깨달은 때는, 그로부터 일 주일이 지나고, 술 따르는 노예를 구매하기 위해 시장에 들렸다는 엘가 폰 리오네스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였다.
별로 그때의 일은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미간을 찌푸리고 있자니-,
엘가가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아니다.”라고 짧게 말을 끝내고 연회장으로 돌아가버렸다.
“뭐야? 의외로 싱겁구만.”
퇴근이나 해야지. 야근 거지같네. 상사들과 회식하는 기분이 이러 할까?
나는 궁정에서 나와 모나크 시티 중앙 거리에 위치한 내 개인 저택으로 돌아갔다. 말이 저택이지, 방 두 개가 딸린 자그마한 가정집이다.
빈민가와 떨어져 있기에 주거 환경이 조용하고, 왕궁 출퇴근이 용이하다는 것 말고 딱히 장점이 없다.
세간의 소문은 ‘태오가 으리으리한 저택에 살며, 지하 저택 비밀 창고에 금괴를 산더미처럼 쌓아두었다더라-.’라고 흘려져 있는 것 같았지만.
사실 나는 물질에 대한 욕심은 별로 없는 편이었다.
황금을 많이 갖고 있으면 분명 누군가 내가 가진 황금을 탐내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굳이 황금이 없어도 어지간한 물품과 보안 경비는 아이라가 알아서 해결해 주니, 나로서는 내가 죽을 지도 모르는 업보, 카르마를 쌓을 이유가 없었던 것.
하지만 세간의 소문은 반 정도 맞았다.
내 평범한 가정집에는 특수 제작한 지하금고가 있다. 아무나 못 여는, 정말 굉장한 금고.
나는 주변에 누가 없는지 살핀 뒤에 거실 카펫 아래에 숨겨져 있던 비밀문을 열고 지하실로 들어섰다.
이 지하실의 금고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당장 몇 년 정도는 부족함 없이 쓸 수 있을 정도의 금괴와 그것보다 더욱 더 중요한 두루마리다.
두루마리.
그렇다 두루마리다.
나는 오랜만에 그것을 펼치고 거기에 적혀 있는 것들을 눈으로 읽어 내렸다.
『벨모트 처형 이후 반란. 여명회가 벨모트의 비자금으로 변방부터 득세함.』
거기에 적힌 것은 다름 아닌 소설, ‘빌런 사냥꾼’의 내용이다.
내가 소설 속 내용들을 까먹기 전에 기억나는 대로 굵직굵직한 내용들을 적어놨던 것인데, 이게 내가 가진 그 어떠한 보물들보다 가장 값졌다.
“벨모트 처형은 끝. 여명회도 일단 끝.”
나는 항목을 체크하듯, 내가 적어놨던 내용 옆에 작게 X자를 쳤다. 그럼, 이제 타임 테이블에서 벌어지는 내용이 뭐지?
나의 눈은 점점 더 밑으로 내려가 글자들을 천천히 읽는다.
『용사 등장.』
쉣.
나는 누가 볼 새라 얼른 두루마리를 접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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