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5)
EP.6)꽃 아이라 # 6
006 – 악의 꽃 아이라 # 6
내가 기억하는 소설 ‘빌런 사냥꾼’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바로 다크 히어로물이다.
싸이코패스 주인공이, 세상에 넘쳐나는 악당들을 더 큰 악으로 부순다. 그 과정에서 동료도 만들고 계속해서 나쁜 놈 혼내주고, 이득 볼 것을 챙기는 그런 이야기.
악인형 주인공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는 시원시원한 전개가 나름대로 인기가 있어서 나도 보게 됐었는데.
한 번은 연재 도중에 이런 댓글이 달린 적이 있었다.
「다른 애들은 다 죽이면서 쟤는 왜 안 죽임?」
그것은 어느 악역캐릭터에 대한 이야기였다. 등장 때마다 댓글 숫자를 늘리는 악역 캐릭터 태오.
그리고 그런 녀석이 등장하든, 등장하지 않든 열렬히 태오를 처형하라고 댓글을 다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나였다.
「저 새끼 찢어서 죽이죠!」
…씨발.
어쩌면 소설에 추가 된 ‘어느 날 태오가 그 동안의 업보에 따라 처형당했다.’라는 글귀는 나 때문에 대충 집어넣는 문장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정말 업보가 아니었을까.
나는 벌을 받는 건가-.
아니, 내가 벌을 받을 게 뭐가 있어? 내가 무슨 잘못을 그리 했냐.
나는 그냥 열심히 살았을 뿐이다. 열심히 일하고, 남는 시간에 소설 좀 읽고 댓글을 달았다는 게 잘못은 아니잖아.
지금에 와서야 과거의 일은 꿈같은 생활이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물론 잠들기 전에 집 안의 창문과 집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결계석들이 잘 작동하고 있는 지 확인하는 것도 잊질 않았다.
나는 언제 어디서 죽음을 맞이해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막말로 지금 내 침대 밑에 자객이 숨어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
진짜 있지는 않겠지?
부스럭, 부스럭-.
귀를 기울여보니, 확실히 내 침대 아래에서 무언가 기척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몸이 된 뒤로 최근 숱한 사선들을 넘어왔기 때문에 내 예민함은 악어 떼가 가득한 물가에서 목을 축이는 사슴과 비견 된 다고 자부할 수 있는 상태.
뭔가 진짜로 내 침대 밑에 있다.
나는 침대의 베개 맡에 놓인 단검을 스릉 뽑았다.
━사람을 쓰러트릴 때에는 목이나 눈을 노리는 게 가장 좋아. 망설이지 말고.
옛날에 엘가가 사람 죽이는 법을 내게 알려주었던 걸 떠올리며, 나는 천천히 침대 바닥을 향해 발을 뻗었다.
슥-.
나의 맨 발이 따스한 카펫에 닿았음에도 별 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잠들기를 바라고 있는 암살자인가?
그런 생각으로 긴장했던 것도 잠시-.
━컹컹.
“아-.”
바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팽팽히 당겨졌던 고무줄이 느슨해지는 것처럼 몸에서 탈력이 빠져나간다.
“뭐야, 암살자가 아니잖아.”
하긴, 결계로 보호받고 있는 내 집에 암살자가 있을 리 없지. 오늘 일이 많아서 예민했나보다.
침대 아래로 고개를 숙여보자, 그 아래에 도사리고 있는 까만 눈동자가 보였다.
“언제 왔어?”
━컹컹-!
내가 손을 뻗자 자그마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컹컹 짖는 소리로 우는 그 생물의 정체는 물론 모두가 예상할 수 있다시피 다람쥐다.
그렇다 다람쥐.
이 세계에서는 다람쥐가 컹컹하고 운다. 왜 그러는지는 나도 모르는데 아무튼 상식이다.
근데 원래 다람쥐가 어떻게 울지? 쥐니까, 찍찍인가?
…아무렴 어때.
“이리 와-.”
내가 손바닥을 펼치자 내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다람쥐가 내 손에 쪼르르 올라탔다.
━컹컹-.
왼쪽 눈가에 상처가 난 이 녀석은 이 근처 가로수에 집을 짓고 사는 줄무늬 다람쥐인데, 종종 이렇게 내 방에서 나타나고는 했다.
“내가 문을 열고 닫을 때 따라 들어온 거냐?”
━컹컹.
제법 똑똑해서 가끔 보면 먹이도 주고 그랬는데, 이제는 이렇게 사람 손을 탈 정도로 친해져서 종종 핸들링을 한다.
“기다려 봐.”
나는 침대 옆에 놓인 나무선반에서 아몬드 씨앗 하나를 꺼내어 녀석에게 줬다. 녀석은 곧 잘 그것을 받아들고 가득, 가드득 깨물어 먹더니 더 달라는 것처럼 앞발을 움직였다.
━컹컹-!
“아몬드는 이제 없는데. 이것도 먹어 볼래? 이번에 들어온 민트맛-”
━크르릉-!!!
“알았어. 새끼, 동물주제에 거 참 까탈스럽네.”
그래도 두 볼이 부풀어가는 다람쥐를 보자 방금까지 이것저것 복잡하게 떠오르고 있었던 문젯거리들이 싹 사라지는 기분이 든다.
역시 동물은 좋아.
이 녀석들은 음모를 꾸미지 않고, 악의를 지니지 않으니까.
그저 먹고 자고, 들판을 놀고, 나무를 오르고. 본능적으로 평안한 삶을 살아가니 대하는 게 편하다.
이런 동물들이랑 있을 때는 나도 악동 태오가 아닌 그냥 평범한 사람일 수 있었다.
“네가 유일한 내 편이지. 그치?”
나는 다람쥐의 머리를 쓰다듬기 위해 검지를 슥 들어올렸다.
━크르릉-!
그러자 녀석은 방금까지 내 옆에서 먹이를 얻어먹었던 것이 거짓말처럼 쪼르르 다시 도망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정 없는 놈.
날 먹이 나오는 자판기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야?
그렇지만 침대 밑에 있는 것이 암살자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긴장이 사라지니 피곤함이 파도처럼 엄습한다.
내일은 할 일이 많으니 일단 자자.
곧 있으면 용사가 출몰할지 모르니까.
아이라에게는 내일 하루 연차를 쓰고 싶다고 말해 두었으니, 내일은 일찍 일어나서 바로 시장으로 가봐야지.
* * *
앙그마르의 궁정이 위치한 모나크 시티는 현대로 따지면 서울 정도로 큰 도시다.
인구가 많이 몰려있고, 크기도 딱 그 정도 된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묘사도 ‘높은 산이 둘러싸고 큰 강이 흐르는 도시.’라서 서울 느낌이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내 부족한 어휘력을 발휘해서 묘사를 조금 더 추가를 해 보자면-.
사실 현대의 서울보다는 구한말 혼잡한 한양에 가깝지 않을까?
고위층이 살고 있는 깔끔한 중앙구역을 제외하면 깨끗한 가도도 별로 없고.
빈민들과 강도떼 또 온갖 협잡꾼과 사이비 종교 포교자들이 드글거리는 도시가 바로 이 모나크 시티였으니까.
나는 연차를 내면 이런 도시 시내를 종종 돌아다녔다. 깨끗한 중앙거리부터 지저분한 외곽까지 가리지 않고.
바람도 쐴 겸 이것저것 알아볼 것들도 많이 있기도 하거니와, 민심과 여러 사태들을 파악하는 데에는 역시 직접 시장을 돌아다니는 것보다 좋은 게 없다.
━저거 봐-. 저기! 용사가 지나간다-!
━저기, 저 등에 저것이 그 축복받았다는 무기야? 신기하게 생겼네.
용사라고?
후드를 뒤집어 쓴 채 진창 가득한 도로를 걷고 있던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단연 눈에 띄는 남자가 보인다.
키가 멀대 같이 크고 깡말랐는데 잿빛 수염이 덥수룩해서 무슨 빗자루인줄 알았다.
━쟁기의 용사-?
━그냥 평범한 쟁기 같은데. 저게 어떻게 성무기가 된다는 거지?
━우습게보지 말어. 저걸로 죽인 도적들 수가 두 손으로도 못 꼽을 걸-.
사람들의 수군거림처럼 체격이 건장한 남자는 등에 밭을 갈 때 쓰는 쟁기를 메고 있었다.
하지만, 저 녀석이 진짜 성물에 선택받은 용사가 맞다면 저 쟁기로도 어지간한 사람이야 충분히 반 토막을 낼 터다.
이 세상에서 용사란 그런 놈들이니까.
근데 그 놈은 아니네.
나는 내가 찾고 있었던 녀석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 반 아쉬움 반의 한숨을 내쉬었다.
괜히 사람 헷갈리게 하고 있어.
그렇지만, 나비의 날개바람으로 폭풍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이 세상의 어떤 변수가 내 목의 칼날로 돌아올지 모르는 일.
혹시 모르니 ‘쟁기의 용사’라는 키워드는 내 머릿속에 잘 집어넣어 두자.
━거 참, 신기한 사람이구먼. 근데, 용사가 뭔데?
━아, 이 무식한 새끼. 근데 나도 몰라. 뭐 그냥 대단한 사람 아냐?
멀리서 들려오는 말에 용사라는 개념에 대해 오랜만에 떠올려 봤다.
이 땅에서는 살다 보면, 어느날 갑자기 자신이 애착 갖던 물건이 신기한 힘을 갖게 될 때가 있는데.
그걸 광염의 교단에서는 성물(聖物)이라고 부르고 그걸 가진 이들을 용사라고 불러서 심부름꾼으로 쓴다고.
저 쟁기 남자는 아마 자신이 쓰던 쟁기가 갑자기 성물이 되어 쟁기의 용사가 된 것이겠지. 농사꾼이었을까?
이제 와서 숨길 것도 없이 진실을 밝히자면 내가 찾고 있는 그 녀석도 용사의 범주에 들어간다.
이 세상과 거울처럼 꼭 닮은 소설 ‘빌런 사냥꾼’의 주인공.
오늘도 결국 허탕인가.
그놈들 소식은 진짜 하나도 없네.
쓰는 무기가 특색이 있으니 금방 소문이 퍼질 텐데.
━석궁을 쓰는 용사? 모르겠는데.
━여기 그런 사람 없어요. 없어!
내 소중한 시간과 약간의 금전을 허비했음에도 내가 찾는 놈에 대한 것은 단서 하나가 없다.
시간만 날렸나.
분명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을 텐데?
어딘가에 웅크리고 내 최대의 적으로 나타나려고 발톱을 갈고 있을 게 확실하건만.
내가 가진 모든 수단을 총 동원해도 빌런 사냥꾼의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는 들려오는 게 없었다.
혹시 이 세상은 소설과 달라서, 그 놈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닐까-라는 가설까지 내 머릿속에 감돌고 있을 정도.
그럴 가능성도 아주 없진 않다.
나는 해가 저물기 전에 마지막 한 곳만 더 들려보자 생각했다.
* * *
내가 들린 곳은 모나크 시티의 중앙거리에서 거리가 꽤 있는 서문 빈민가 구역의 주점이다.
주점 이름은 「님프의 도랑물」이었는데, 주점 이름은 좀 괴상하지만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3층짜리 거대 여관이었다.
온갖 것들이 몰려오는 쓰레기통 같은 곳.
의외로 그런 곳에 흥미로운 소문과 귀담아 들을 만한 격언들이 뭉치는 법이다.
물론 헛소문과 온갖 음해들도 당연히 따라붙기 마련이라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도 잊질 말아야 한다.
달랑, 달랑-.
종을 울리며 미닫이문을 열자 이미 초저녁부터 얼큰하게 취해서 술을 들이 붓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바닥에는 깨진 컵과 흘러내린 술 방울들이 질질 흐르고, 저기 보이는 쥐새끼는 떨어진 치즈조각을 입에 물고 구멍으로 달아난다.
“크, 술냄새-.”
위생 상태가 형편 없구만. 물론 이런 것을 일일이 신경 쓸 정도로 지금 내 신경이 예민하진 않다.
나는 적당히 아무도 날 신경 쓰지 않을 구석에 자리 잡은 후에, 주근깨가 인상 깊은 가게 종업원 소녀에게 삼겹살 비슷한 물건을 주문했다.
그리고는 이제 이 시끄러운 광경에 조용히 귀를 기울인다.
나 악동 태오 가스펠은 은근히 귀가 좋아서, 아무리 이렇게 시끄러운 주점 속이라도 내가 원하는 정보들을 쏙쏙 골라들을 수 있는 신기한 힘이 있었으니까.
━자기야, 오늘 나 팬티 안 입고 나왔어.
━이거만 먹고 대실하자-. 내가 푸릉푸릉 해줄게.
푸릉푸릉이 뭐지? 아니, 아주 흥미롭지만. 이런 거 말고.
용사.
용사에 대한 말은 없나?
한참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 은근히 신경 쓰이는 이야기가 내 미간을 움찔거리게 만들었다.
━그거 들었어? 벨모트 경이 그 여왕에게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했다고 하던데?
━나도 들었어. 설마 그 벨모트 경이 항복을 할 줄이야. 태오, 그놈이 난 놈이기는 한 가 봐. 그 대쪽 같은 지조를 꺾을 정도면.
━그런 능력을 왜 그렇게 못된 일에만 써먹고 있는 건지-, 쯧-.
그들은 지난 날 궁정에서 있었던 벨모트 처형 사건을 알고 있는 듯했다. 분명 바깥으로 세어나가지 않도록 함구하라고 했는데, 결국 또 이렇게 소문이 나는구만.
━그래서, 소문이 진짜일까? 태오놈, 그 희멀건한 정원사 놈이, 사실은 존나 큰 대물이라는 게-.
━그러니까 그 여왕이 뻑 갔겠지, 인마. 크-. 존나 나쁜 새끼긴 해도. 부럽기는 하네. 매일 밤 그 큰 가슴을 만져보겠지?
만진 적 없는데.
━예전에, 아이라 그년이 중앙 거리에 행차할 때 얼핏 봤는데. 진짜 존나 예쁘긴 하더라. 갑자기 내 마누라가 오징어처럼 보이더라고. 왕국에서 가장 예쁘다는 게 호들갑이 아니더라니까.
━그 정도야?
━그렇다니까-!
이렇게 아이라와 나에 대한 이야기는 술집에서 흔히 들을 수 있었다.
나에 대한 것은 주로 욕설이 대부분이고, 아이라에 관해서는 증오와 함께 선망이 은근히 섞여 있기도 했다.
들리다시피 아이라가 폭군이라고 해서 무작정 욕만 먹는 것은 아니었다.
의외로, 이 거리에는 아이라를 지지하는 열렬한 훌리건들도 많이 있었으니까.
정치인에게 뛰어난 외모가 상당히 중요한 가산 포인트라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정작 아이라는 그걸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내가 옆에서 어떻게든 보조해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아니, 어떻게든 해야만 한다.
그때 와장창-하고 깨지는 소리가 나서 나는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고개를 들어 올리니 내게 주문을 받았던 주근깨의 종업원 여자애가 바닥에 넘어져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게 보였다.
“꺄악-!”
“뭐가 어쩌고 어째?”
그 앞에서는 잔뜩 화가 난 듯한 족제비 수염의 남자가 씩씩거리고 있다.
어깨에 달고 있는 체스말 폰 모양의 브로치를 보니, 아마 왕국의 하급 관리가 아닐까? 어깨에 달린 노란 띠 완장을 보니 세금 징수원 같은데.
그가 자신의 기름 바른 머리를 뒤로 차르르 넘기며 성질을 부렸다.
“내가 너 좋아하면 안 되냐? 어? 내가 너 좋아하는 게, 그렇게 큰 잘못이야? 사정 딱해 보여서 힘내라고 엉덩이 좀 토닥거려줬더니-.”
남자는 깡마른 손을 펼쳐 쓰러져 있는 종업원 여자애의 손을 우악스럽게 붙들어 일으켰다. 덕분에 여자애는 비명을 지르며 울상 짓는다.
“왜, 왜 이러세요-! 이건 놓으세요-!”
“감히 빈민가 작부(酌婦) 주제에-!”
“저는, 작부가 아니고 그냥 종업원-.”
“시끄러-! 소피야, 나에게도 순정이 있다. 네가 나의 이 깨끗한 마음을 구둣발로 짓밟으면, 너는 그때 진짜 작부가 되는 거야-!”
뭐야.
어디서든 매번 일어나는 해프닝이잖아. 이런 일이야 주점에서는 흔하다.
곧 이 여관 「님프의 도랑물」을 관리하는 떡대들이 나타나서 저 하급 관리의 몸을 흠씬 두들겨 패줄 테지.
이 여관을 관리하는 자는 제법 무시무시한 마담이니까.
“누, 누가-! 누가 좀 도와주세요-!”
“내 저택으로 가자-. 응? 내가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게 해줄게-!”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떡대들은 나타나질 않는다.
고개를 돌려보니, 저기 저 멀리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 모습을 침통하게 바라보고 있는 주점 직원들이 보인다.
뭔 일이지? 가게 마담이, 자기 가게가 이렇게 망가지는 걸 두고 볼 성격이 아닌데?
궁금해졌던 나는 주변에서 혀를 끌, 끌차고 있는 노인네에게 이게 어찌된 일인지 물어보기로 했다.
“저기, 왜들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겁니까?”
그러자 노인네는 마치 누군가 물어보기라도 기다렸다는 것처럼 와락 소리친다.
“어떻게 움직일 수 있겠소-! 저 놈의 뒤에 그 망할 놈이 있는데 말이오-!”
“망할 놈 말입니까-? 그게 누굽니까?”
“망할 놈이라고 하면, 그 놈 말고 또 누가 있겠소? 태오, 그 여왕의 비첩(婢妾) 놈이 저런 놈을 자기 오른팔로 삼고 있으니, 아무도 나설 수가 없는 거요-!”
“아-.”
나한테 저런 오른 팔이 있는 지, 나도 지금 처음 알았다.
재밌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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